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79)
대욕탕.
잘 조경된 일본식 정원과 대나무 장벽이 조화로운 커다란 노천온천 안에는 슈오우 학원의 내로라 하는 미소녀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콸콸콸.
대나무 파이프를 따라 온천수가 노천탕으로 떨어진다.
올리비아, 린, 하루, 에리, 마코토, 에반젤린, 베아트리체에 한서진까지.
잘 안 알려진 한서진을 제외한다면 다들 팬클럽 하나씩은 갖고 있는, 슈오우 학원의 인기인들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김덕성이 있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양아치처럼 사나운 인상.
하지만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는 수요가 있을 만했다.
온천의 열기 탓인지 붉어진 얼굴로 몸을 담그고 있는 김덕성을 바라보면서 올리비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 너무 파렴치해요······.’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김덕성의 알몸이 보인다.
그의 알몸을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방금 목격했던 그의 묵직한 하반신이 머리에 아른거린다.
여름 학교에서 수영복으로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아, 안 돼요! 불건전해요!!”
올리비아의 입에서 소리가 튀어나온다.
“황녀님. 왜 그래?”
에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올리비아의 뜬금없는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심지어 눈빛이 살짝 흐릿해진 김덕성의 시선마저.
“흡.”
올리비아가 입을 틀어막는다.
‘내, 내내내내가 대체 무, 무무무무슨 실수를?!’
두근.
그녀의 심장이 뛴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속마음을 무심코 말하는 그녀의 버릇이 타이밍 안 좋을 때 튀어나온 것이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젓는다.
“그래?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해. 에리링. 황녀님의 고민이라면 들어줄 수 있거든!”
에리가 배시시 웃는다.
“흥.”
올리비아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빨갛게 물든 얼굴이 에리를 힐끗거린다.
원래 위대한 보나파르트 황실의 적통이자 흑태자의 뒤를 이을 프랑스의 영웅으로 기대받던 그녀였다.
고귀한 백금의 기사공주.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녀 본인이 유일하게 인정한 상대, 김덕성을 제외한다면 원래 그녀와 말을 섞을 자격도 없는 자들.
기껏해야 그녀와 맞먹는 혈통을 지닌 에반젤린이나, 일본 최고 명문가의 아가씨인 시노자키 린 정도가 그녀에게 그나마 말을 거는 것이 가능한 자였을 터.
따라서 니시자와 에리 같은 서민이 그녀에게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 분명 그랬었다.
‘그날의 빚만 아니었어도······.’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시야에 다른 히로인들이 들어온다.
강제 약혼 때문에 곤란하게 됐을 때.
김덕성뿐만 아니라 그녀가 평소에 무시했던 사람들, 린, 에리, 마코토까지.
전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왔다.
그 이후부터 올리비아는 이전처럼 다른 사람을 모질게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은인을 냉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 일도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으래?”
올리비아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는 에리.
그녀를 바라보면서 올리비아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방금의 기억이 떠오른다.
김덕성.
그와 에반젤린이 진한 키스를 나누는 광경이.
어디까지나 사고라고는 해도 키스는 키스.
‘저, 저는 고작 뽀뽀밖에 못 해 봤는데······.’
인정할 수 없다.
아리스도, 린도 키스했는데 전속 시녀인 자신의 진도가 고작 뽀뽀라니.
‘저, 저도 키, 키스를······.’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김덕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트르담 성당.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에게 진하게 키스하는 턱시도를 차려입은 김덕성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흔든다.
‘아, 아니에요! 저, 절대로! 키, 키스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요!’
파렴치한 상상은 하면 안 된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뭔가 허전하다.
그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
영국 공주처럼 그의 품에 안겨서 진하게······.
화악.
올리비아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다시 흔든다.
“아니에요!”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친 순간.
“어, 황녀님. 주인님 등 밀어주기 안 할 거야?”
옆에서 에리가 말한다.
등 밀어주기?
올리비아의 푸른 눈동자가 김덕성을 향한다.
“덕성! 내가 등을 밀어주겠다!”
“린 언니는 비켜! 덕성 오빠. 초 카와이한 여동생 하루가 등 밀어주고 싶은데 괜찮지? 하루 친여동생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주군, 나도 등······.”
“소녀도 김덕성님의 등을 밀어주고 싶은 것이와요!”
거기에는 린, 하루, 마코토, 에반젤린이 김덕성 곁에 모여 등 밀어주기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에리링은 주인님 등 밀어주기 할 건데.”
에리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웃는다.
에리는 이미 등 밀어주기를 해준 전적이 있었다.
러브호텔에서, 단둘이 있을 때.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린 에리의 얼굴이 붉어진다.
“드, 등 밀어주기라니 무슨 파렴치한 행각을······!! 다들 비켜요! 전속 시녀인 저의 허락 없이는 아무 행위도 할 수 없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올리비아가 난장판이 된 김덕성 옆으로 뛰어든다.
“주인님! 에리링도! 에리링도 낄래!”
에리링이 올리비아의 뒤를 따른다.
“······여, 여기는 무서운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구석에서 떨고 있는 베아트리체.
그녀 옆에는 한서진이 있었다.
수건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조용히 몸을 담그고 있던 한서진이 눈을 뜬다.
그녀의 시야에 아수라장이 된 노천탕이 보인다.
한서진의 머리에 방금 전의 광경이 떠오른다.
‘그분의 나신······.’
균형 잡힌 몸매와, 그 아래 자리한 거물.
과연 대한민국의 유일한 영웅다운 위풍당당한 물건이었다.
‘2세 생산에는 전혀 문제가 없겠군요.’
하렘 멤버 전원의 만족은 물론이고 2세 생산까지.
하렘 계획은 오늘도 순조롭다.
한서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어쩌면 나도······.’
거기까지 생각한 한서진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
그의 곁에 설 자격이 없다.
연습이나 엔조이 상대라면 모를까.
물론 그분께서 몸을 요구한다면 언제건 응할 수 있도록 상시 준비하고 있기는 하다.
자신의 모든 것.
털오라기 하나, 영혼 한 조각마저 오로지 그분의 소유물이니까.
‘김덕성 님.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서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김덕성을 조용히 응시했다.
*
등 밀어주기라고?
여기가 무슨 대중목욕탕도 아니고 온천에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용물이야 어쨌건 미소녀랑 같이 온천욕이라는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남자라면 싫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하다.
안 그래도 몸을 너무 오래 담그고 있어서 그런가,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대놓고 몰아내는 것도 좀 그런데.
내가 난감해하고 있던 그때.
“드, 등 밀어주기라니 무슨 파렴치한 행각을······!! 다들 비켜요! 전속 시녀인 저의 허락 없이는 아무 행위도 할 수 없어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풍덩.
내 앞쪽 물에 올리비아가 빠진다.
온천수와 함께 김이 솟아오른다.
“주인님! 에리링도! 에리링도 낄래!”
뒤에서 에리의 목소리가 같이 들린다.
올리비아.
좋은 타이밍이었다.
“뭐지? 보나파르트. 그 말은 전속 시녀라는 지위를 내세워 덕성의 등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냐?”
“맞아. 올리브 언니. 초 치사해. 하루 스코어 초 대량 감점! 삑삑!”
올리비아의 등장에 린과 하루가 그녀를 견제하며 말한다.
“그, 그그그건······.”
올리비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는다.
이렇게 되다간 또 등 밀어주기 흐름으로 간다.
다시 그 수렁에 빠질 수는 없다.
여기서는 올리비아 편을 들어주는 게 맞다.
“올리비아 말이 맞아.”
내 말에 온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뻘쭘하다.
“등 밀어주기는 무슨 밀어주기야. 온천에 왔으면 그냥 몸만 담그면 되는 거지.”
내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얼굴이 화악 빨개진다.
온천수에 젖어 촉촉해진 올리비아의 백금빛 머리가 빛난다.
그녀가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 다들 보셨나요? 전속 시녀인 이 저의 권위를! 여러분과 저 사이에는 이 정도의 엄청난 격차가 있다고요!”
덥석.
그녀가 내 팔짱을 낀다.
올리비아의 커다란 가슴이 내 팔뚝에 느껴진다.
올리비아가 우쭐한 표정으로 아가씨 웃음을 흘린다.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야말로 단 하나뿐인 적법한 전속 시녀! 어중이떠중이인 당신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내가 편 한번 들어줬다고 신난 모습 봐라.
저 모습도 이제 계속 보니까 익숙해져서 은근히 귀엽다.
귀엽다?
내가 온천에 너무 푹 절여져서 미친 것 같은데.
올리비아의 하늘을 찌르는 고 옥타브 아가씨 목소리에 내려앉은 침묵.
그걸 가장 먼저 깨뜨린 건 에리였다.
“뭐야. 황녀님. 그렇게 말하면서 왜 주인님한테 달라붙어! 에리링도! 에리링도 주인님 옆에 있을 거야!”
찰싹.
에리가 올리비아 반대편 쪽 팔에 달라붙는다.
올리비아만큼 풍만한 감촉은 아니지만, 살짝 느껴지긴 한다.
이거 왠지 불길한다.
“나도 빨래판, 보나파르트한테 질 수 없지. 덕성! 여기 나도 있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안아도 좋다!”
“린 언니! 비켜. 덕성 오빠는 내 거야. 초 귀여운 여동생 하루만의 오빠라고. 하루도 초 밀착해서 언니들처럼 부비부비 할 거야.”
“주군 나도······.”
“하와와와와······. 김덕성 님. 소녀도 밀착하고 싶은 것이와요.”
에리가 스타트를 끊자 뒤이어 린, 하루, 마코토, 에반젤린이 달려든다.
서로 다른 미소녀의 살결이 전신에서 느껴진다.
모든 히로인들의 몸이 나를 덮치고 있다.
아니 얘네는 부끄러움도 없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가 들끓는다.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욕망을 억누르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아직은 책임지지 못 할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책임질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해야 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마음속으로 조용히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 하면 아침 점호지.
머릿속에 군인 시절 했던 아침 점호가 떠오른다.
내가 군 복무 할 때는 동기 생활관이 아니라 분대 생활관이었는데, 전날 말번초 바로 앞 근무를 섰다가 무심코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분대장에게 점호 끝나고 아침 먹으러 가기 전에 왜 이렇게 분대원들 늦게 깨우냐고 털린 적이 있었다.
1분 늦게 일어난 건데.
박 병장 이 개새끼 진짜 생각해보니까 빡치네.
박 병장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자 들끓던 아랫도리가 빠르게 식는다.
고마워요, 박 병장!
박 병장의 도움으로 들끓던 소년의 몸을 진정시킨 내가 히로인들의 살결을 뿌리치려던 그때.
“곧 저녁 시간이에요! 생도 여러분도 이제 온천욕 그만하고 다들 저녁 먹으러······.”
익숙한 목소리가 노천탕 입구에서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노천탕 입구로 향한다.
거기에는.
“······히, 히끅!”
말을 하다 말고 잔뜩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며 딸꾹질하는 분홍머리 미녀.
마유즈미 마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