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82)
휴대폰이 깜빡거린다.
외부 통신은 예상했던 대로 불가능.
지원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승률을 최대한 올려야 한다.
EX랭크 빌런.
원래라면 상대가 불가능한 괴물.
놈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다행히 있었다.
상대할 방법 정도는.
‘듀랜달을 찾아야 해.’
원작 11권.
아직 심상전개를 각성하지 못한 주인공이 EX랭크 빌런 프로페서와 일시적으로나마 제한적인 조건에서 대등하게 맞설 수 있던 이유는 정령과 합일했기 때문.
원작 20권에서 올리비아가 흑태자와 합일해서 적을 상대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그게 지금 가능하냐인데.
어차피 불가능하면 죽는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
언제 적이 올지 모른다.
빠르게 숙소로 향한다.
[파트너. 뭐야? 이제 찾은 거야? 레이디들이랑 해피 타임은 충분히 가졌어?]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오랜만에 울린다.
흑태자의 목소리다.
벽에 세워져 있는 듀랜달을 끈과 함께 허리춤에 매단다.
‘야, 큰일 났어.’
[큰일? 무슨 일? 파트너. 설마 레이디들과의 해피 타임을 다른 사람한테 들킨 건 아니지?]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물론 그것도 진짜 일어난 일이고 큰일이 맞긴 하지만, 지금 말할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적습이야.’
[뭐?]흑태자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적은 추정 최소 EX랭크 이상.’
베아트리체의 반응으로 볼 때 여름 학교 때 무인도에서 만났던 이반보다 더 강력한 빌런이 등장한 게 틀림없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포 호스맨의 일원 정도 되는 강자가 온다고 생각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적을 얕보다가 패배하는 것보단, 적을 과대평가하고 빈틈없이 준비하는 편이 이성적이니까.
[지원은?]‘없어.’
지원은 없다.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협회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있던 상황.
협회에 두 명의 EX랭크 영웅이 도사리고 있으니, 당연히 여기보다 더 강한 전력이 배치됐을 게 틀림없다.
지원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파트너. 현재 여기 전력으로 EX랭크 영웅을 상대하는 건······.]흑태자가 말끝을 흐린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거겠지.
흑태자 본인은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원에 꼽힐 만큼 강력했던 영웅.
그러니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싸움의 결말을.
‘알고 있어.’
[대책이라도 있어?]흑태자가 되묻는다.
대책이라.
도박이나 모험 같은 건 죽어도 하기 싫었다.
언제나 모든 변수를 파악한 상태에서, 상대보다 앞선 계획을 세워서 승리한다.
빙의자로서의 이점, 나에게만 유리한 비대칭 정보를 최대한 활용했던 나였다.
마치 아카데미물 웹소설 주인공처럼.
물론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하필 지금 상황에 최악의 형태로 그 상황이 닥칠 줄은 몰랐다.
현실은 빙의물도 웹소설도 아니다.
적은 바보처럼 당해주지만 않는다.
후회가 밀려 들어왔지만, 나는 곧바로 털어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지금부터는 최대한 희박한 승률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불확실한 모험일지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콰-광!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시작이군.]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의 말이 맞다.
드디어 시작된 거다.
*
“으으으으······.”
마유가 손을 뻗는다.
그녀의 온몸이 삐걱거린다.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머리가 어지럽다.
단 일격.
스킬도 아닌, 그냥 평범한 휘두르기에 당해서 이 모양이었다.
방어 스킬을 펼칠 시간도 없었다.
상대가 안 된다.
마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생도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했다.
“끄으응······. 선생님이······. 모두를 지킬 거니까요!”
입술을 깨문다.
턱.
마유의 피묻은 손이 바닥을 짚는다.
그녀가 일어선다.
완전히 폐허가 된 건물 속.
붉은 머리를 갈기처럼 휘날리는 거구의 남자, 베르세르크가 보인다.
“호오? 일어난다고?”
베르세르크의 눈썹이 살짝 꿈틀한다.
최소 기절 최대 사망을 노리고 날린 일격이었다.
그런데 S랭크에 불과한 파괴의 마법소녀, 마유즈미 마유가 그걸 맞고도 일어날 줄이야.
의외의 변수.
하지만 전투광인 그의 피를 끓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선생님은 학생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까요! 여기서 쓰러질 수 없어요!”
마유즈미가 이를 악문다.
무너진 천장 사이로 비치는 달빛.
마유즈미의 마법봉에서 분홍색 마력이 타오르던 그때.
“블러드 스트라이크.”
베르세르크의 입에서 스킬 이름이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베르세르크의 흐룬팅이 요사스러운 붉은빛으로 빛난다.
번쩍!
흐룬팅의 검신에서 일어난 핏빛 마력 칼날이 빛무리와 함께 마유즈메에게 쏘아진다.
콰-광!
폭음과 함께 마유즈미의 전신이 불꽃에 휩싸인다.
방어 스킬을 전개할 틈도 없이 들이닥친 일격.
그녀의 전신장갑이 갈기갈기 찢기고, 마법봉의 분홍빛이 깜빡이며 사그라든다.
“끄윽!”
마유즈미 마유가 비명을 삼킨다.
몸이 공중에 부웅하고 떠오르다 바닥에 처박힌다.
콰-과-과-광!
이미 박살난 건물 잔해에 그녀의 몸이 파묻힌다.
“으으으으으윽!”
마유가 비명을 지른다.
번쩍.
그녀의 몸에서 분홍빛 마력이 일어난다.
마유의 몸을 짓누르던 건물 잔해들이 허공에 둥둥 떠오른다.
“호오? 두 번의 공격에도 버티다니.”
베르세르크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의 시선이 잔해를 헤치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마유를 향한다.
“그 몸을 지탱하는 건 교사로서의 의무인가? 적이지만 칭찬할 만한 강한 마음이로군.”“절대로······. 생도들을······.”
적의 손아귀에 내어줄 수는 없다.
마유는 뒷말을 삼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세게 깨문 탓인지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휘청.
마유의 몸이 휘청거린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분홍색 마력도 힘을 다했는지 수명이 다한 전구처럼 깜빡거린다.
버틸 수 없다.
이제 쓰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쓰러진다면······.
“하지만 그 몸으로는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게 고작일 터. 무의미하게 목숨을 버리고 싶다면 소원 정도는 들어주지.”
베르세르크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린다.
무의미, 무가치.
아까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마유는 그의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싸움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마유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튄다.
지금 이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녀의 머릿속에 생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수학여행을 즐기던 생도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덕성의 얼굴까지.
“생도들을 지킬······.”
휘청.
마유의 몸이 휘청인다.
베르세르크의 말이 맞다.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아, 안 돼······.’
마유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던 그때.
툭.
그녀의 몸에서 바닥의 딱딱한 감촉이 아닌, 사람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희미한 시야 속 누군가의 얼굴이 보인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날카로운 얼굴의 소년.
김덕성이었다.
“기, 김 군······!”
마유즈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 안 돼요. 위험해요. 여기 왜 온 거예요······.”
마유즈미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도, 도망쳐······!”
마유즈미가 남은 힘을 전부 짜내서 소리친다.
“저는 괜찮습니다.”
김덕성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니 이제 쉬셔도 됩니다.”
김덕성이 조용히 마유즈미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번쩍.
그의 몸에서 검은 섬광이 피어오른다.
“저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정신을 잃기 전에 들은 마지막 음성이었다.
*
시야에 피투성이가 돼서 쓰러진 마유즈미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누가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생도를 위해서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목숨을 도외시해서 EX랭크 빌런과 맞서다가 저렇게 된 게 틀림없다.
호구들이 넘쳐나는 세상 같으니.
역시 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돼서 쓰러진 마유즈미 선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도망치라고 소리친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마유즈미 선생의 얼굴에 카스미 선배와 에반젤린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쉽게 목숨을 걸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고구마란 말인가?
전부 제정신이 아니다.
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시야에 빌런의 모습이 보인다.
붉은 갈기 장발이 인상적인 거구의 근육남.
포 호스맨의 일좌를 차지하는 EX랭크 빌런, ‘전쟁의 기사’ 베르세르크가 틀림없다.
원작에서는 18권에 등장하는 빌런.
포 호스맨과 대등하거나, 놈들 중에서 한 명이 직접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진짜 올 줄이야.
[지금 상태로는 혼자서 저놈을 상대할 수 없어.]흑태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합일이 필요한 거지.’
[그게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 지금이라도 다른 동료들한테 도움을······.]‘그건 안 한다고 했잖아.’
흑태자의 말을 재차 거절한다.
동료들에게 도움.
말이야 좋은 말이지.
하지만 그 호구 멍청이들이랑 같이 싸웠다가는, 또 저번처럼 앞뒤 없이 달려들다가 잘못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장담은 못 하니까.
여기는 라노벨 세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눈앞에서 아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건 싫다.
나는 사이다패스지 사이코패스가 아니니까.
그게 내가 여기 혼자 온 이유다.
화르르륵.
베르세르크의 전신에 붉은 마력이 일어난다.
“네놈이 김덕성이로군.”
놈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온다.
“그래. 그래서?”
일단 놈의 장단을 맞춰준다.
“내게 순순히 잡혀준다면 쿠로사와 유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은 보장해주지.”
베르세르크가 선심 쓴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한다.
놈의 성격은 전형적인 전투광 빌런.
무협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강자와의 싸움에서 호승심이라는 이름의 희열을 느끼는 변태다.
EX랭크인 놈에게 있어서 고작 S랭크 수준밖에 안 되는 나는 싸울 가치가 없는 자로 생각할 터.
싸울 가치가 없는 자와의 싸움을 가장 싫어하는 베르세르크의 성격 때문에 놈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리라.
[파트너. 들었지?]‘그래.’
그리고 나는 놈의 제안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놈은 내게 잡혀준다면이라고 했다.
만약 내 목숨이 목적이었다면 아무리 싸울 가치가 없는 상대라도 문답무용으로 검부터 날렸을 것이다.
오히려 싸울 가치가 없는 상대이기에 더 빠르게 끝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회유를 한다는 건.
‘놈은 나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거다.’
나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다시 말해 놈은 나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어.]승률이 아주 조금은 올라갔다.
“대답은?”
놈이 대답을 재촉한다.
“싫은데.”
바로 거절한다.
죽으면 죽었지 최종 보스에게 잡혀갈 생각은 없다.
거기 가서 무슨 끔찍한 일을 겪을 줄 알고.
“그럼 어쩔 수 없군. 제압하겠다.”
내 대답을 들은 베르세르크의 눈썹이 꿈틀한 순간.
번쩍.
붉은 섬광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