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85)
스스스.
폭음과 함께 일어난 충격파가 가라앉는다.
베르세르크가 날린 일격은 방어 스킬에 상쇄되어 사라졌다.
베르세르크의 미간이 조용히 일그러진다.
그의 시야에 마지막 일격을 막아낸 불청객이 들어온다.
“영국의 왕녀, 에반젤린 스튜어트······.”
베르세르크의 붉은 눈동자가 영국의 왕녀에게 향한다.
분홍색 트윈테일을 휘날리고 있는 에반젤린이 손에 검을 든 채 베르세르크를 노려보고 있다.
“김덕성님을 위협하는 상대는 용서할 수 없사와요!”
에반젤린이 아스칼론의 칼자루를 꽉 쥔다.
여름 학교에서 이반 안토노프를 상대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방패가 될 것이다.
“아스칼론──! 진명해방!”
고오오오오오오오!
에반젤린의 몸에서 폭풍이 불어닥친다.
그녀의 눈동자가 분홍색으로 빛난다.
커다란 대검, 아스칼론에서 분홍색 빛이 솟구친다.
“──용의 목을 참한 대검!”
번쩍.
아스칼론의 검신에 용 비늘이 솟아오른다.
그녀의 등 뒤로 요정의 날개와 분홍색 용의 날개가 겹쳐져서 펄럭인다.
뚝, 뚝.
검신에서 용혈을 연상시키는 핏빛 마력이 흘러내린다.
그녀에게 요정 공주라는 이명을 선사한 에반젤린의 기프트, 페어리 윙과 함께 펄럭이는 네 장의 마력 날개가 분홍빛을 뿌린다.
“제법 기세가 대단하군.”
뚝, 뚝.
마찬가지로 핏빛 마력을 흘리는 흐룬팅을 든 베르세르크가 웃는다.
“하지만······. 아직 나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다. 너희 같은 떨거지들이 아무리 몰려들어봤자 이 나를 막는 건 무리······. 방해되니 깔끔하게 치워주지.”
우우우우우우우우!
베르세르크의 흐룬팅이 섬뜩하게 울던 순간.
“홍련의 사슬이여! 여의 이름으로 명한다! 여의 적을 속박하거라!”
번쩍.
한 줄기 보라색 섬광과 함께 바닥에서 쇠사슬이 솟구친다.
철컥, 철커덕.
베르세르크의 사지가 쇠사슬에 결박된다.
“?!”
베르세르크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드러난다.
베아트리체.
그녀의 사슬이 베르세르크를 결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크으으윽! 여의 마안이 폭주하고 있느니라······.”
털썩.
안대를 벗은 베아트리체의 눈이 보랏빛으로 빛난다.
그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지금이에요!”
만신창이가 돼서 기절한 김덕성을 땅바닥에 조용히 눕힌 올리비아가 소리친다.
그녀의 지시와 함께 베르세르크의 바로 뒤에서 에리의 모습이 나타난다.
“주인님의 적! 사라져라! 얍!”
촤르르르륵!
주황색 마력으로 불타는 사슬낫이 베르세르크의 바위 같은 근육에 직격한다.
깡!
베르세르크의 몸에서 붉은 마력장이 일어나 사슬낫을 튕겨낸다.
“간지럽군.”
베르세르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이따위 조악한 사슬로······. 감히 이 나를 속박하려 들다니.”
베르세르크가 팔을 움직인다.
그그그그그그그그!
속박되어있는 사슬에 순식간에 금이 간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여의 마안이이!!!”
번쩍.
주르르륵.
베아트리체가 비명을 지른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마안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이반 안토노프 때와는 달라요.’
에반젤린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홍련의 사슬.
EX랭크 영웅조차 일시적으로 속박 가능한 마안의 권능.
하지만 같은 EX랭크라도 이반 안토노프와 베르세르크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역량의 격차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베르세르크를 속박한 사슬은 이반 안토노프 때보다 훨씬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깡!
에반젤린의 공격을 베르세르크가 막아낸다.
‘방어력도 이반 안토노프보다 한 수 위.’
방금의 공격으로 적의 방어력을 파악한 에반젤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올리비아를 보며 소리친다.
“보나파르트 황녀님! 시간이 없사와요! 적이 곧 풀려나는 것이와요!”
“전부 나와요!”
화르르륵.
에반젤린의 말을 들은 올리비아가 소리치면서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플랑베르주에서 백금빛 화염이 타오른다.차가운 바람과 함께 주변 일대가 하얗게 얼어붙는다.
삭풍의 중심에 남색 포니테일을 휘날리는 미소녀가 일본도를 쥔 채로 나타난다.
“나도 합류하겠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나도!”
휘이이이이잉!
녹색 돌풍과 함께 와키자시를 든 마코토가 단발을 휘날리며 나타난다.
“하루도 지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일본도를 뽑은 하루가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크림슨빛 마력을 불태운다.
총합 일곱의 미소녀.
진명해방 상태인 올리비아, 린, 에반젤린과 그에 버금가는 재능을 지닌 하루, 마코토, 에리 그리고 베르세르크를 속박하고 있는 베아트리체까지.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들을 시야에 담은 베르세르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무가치한 자들을 베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과 그들 사이에는 인간과 벌레보다 더한 격차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귀찮고 집요하게 군다면 벨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을 문 벌레를 때려잡는 것처럼.
하지만 그 사실이, 무가치한 자들에게 무력을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이 베르세르크에게는 모욕이었다.
필요 없는 싸움은 전투광인 그에게 수치였으니까.
“벌레 같은 년들이 감히······.”
“공격해요!”
베르세르크의 말이 끝난 순간.
올리비아의 명령과 함께 형형색색, 여섯 가지 마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이 그대로 베르세르크의 몸을 직격했다.
콰-과-과-광!!
여섯 마력이 뒤섞이며 폭음이 터지고 지축이 흔들린다.
지반이 내려앉고 하늘 위로 빛기둥이 치솟는다.
한밤중의 벳푸가 일순간 대낮처럼 밝아진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
일본 영웅 협회 벳푸 지부.
통째로 검게 물든 빌딩.
생물의 내장 안처럼 어두컴컴하고 탁하고 기분 나쁜 아이보리빛 안개로 뒤덮인 빌딩 내부.
거기에는 그가 있었다.
검은 로브를 쓴 인영.
언더테이커.
포 호스맨의 최강자이자 뉴 월드 리그 서열 2위이며 메사이어의 왼팔이 나타났다.
“전부······. 제압해······.”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안쪽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의 어둠에서 칠판을 쇠로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등 뒤에 있던 마네킹 같은 인형들이 걸어 나온다.
마리오네트.
이계종의 시체를 사용해 만들어낸 꼭두각시 인형.
하나하나가 영웅과 동등한 힘을 지닌 인형들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협회 영웅들을 덮친다.
“아, 안 돼!”
“끄윽!”
양산형 초상병기를 든 인형 군단의 공격에 협회 영웅들이 맥없이 당한다.
끝없는 인형의 물결 너머 언더테이커가 팔짱을 낀 채로 방관하고 있다.
그의 손아귀 위에는 아이보리색 오브가 떠 있었다.
오브에서는 탁한 아이보리색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대의 기감은 흩트리고, 자신의 기감은 증폭시키며 인형들의 신체 능력을 배가시키는 마술인 데스 스모그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오브형 초상병기 네크로노미콘.
언더테이커가 연구한 수많은 마술 술식이 전부 새겨진, 그가 손수 제작한 고유무장이었다.
우우우우웅!
아이보리색 오브가 떨린다.
“적······. 이군······.”
언더테이커의 목소리가 긁힌다.
“나와라······. 테디 베어······.”
언더테이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그림자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인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그림자에서 사나운 울음소리와 함께, 솜이 이곳저곳 터지고 누더기로 기워진 너덜너덜한 봉제 인형을 닮은 괴물 곰 인형이 손에 식칼을 든 채로 튀어 오른다.
언더테이커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유니크 마리오네트.
EX랭크 영웅과 준하는 괴물 같은 힘을 지닌 그의 수호자, 오메가 랭크 이계종의 시체를 소재로 만들어낸 인형인 테디 베어였다.
깡!
테디 베어가 휘두른 식칼의 공격을 받아친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린다.
“아니?”
직장인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나기나타를 든 남자.
부협회장, 명왕 나카야마 소지로였다.
EX랭크 영웅이 전력을 다해 가한 기습이었다.
그걸 태연하게 막아낸 괴물 곰탱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협회장님. 빨리 좀 나오십쇼! 윽! 부하 직원한테 일을 전부 떠맡길 작정입니까?”
번쩍.
초록빛 검기가 보랏빛 안개를 잘라내며 날아오다가 오브에서 마술진과 함께 튀어나온 아이보리빛 방어막에 막힌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매끈하게 잘린 아이보리빛 안개 사이로 녹색 전신 장갑을 걸친 우울한 눈동자의 남자.
협회장 검귀 시노자키 이치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언더테이커의 안광이 아이보리색으로 빛난다.
두 명의 EX랭크 영웅의 등장.
하지만 언더테이커는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언더테이커······. 리그의 서열 2위······.”
언더테이커의 이름을 들은 소지로가 움찔하고 이치로의 미간이 좁혀진다.
EX랭크 빌런.
리그의 2인자.
단신으로 일국의 전력을 압도하고 한나절 만에 도시를 폐허로 만든다는 최흉최악의 빌런이자 일인군단이 지금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아무리 명왕과 검귀가 함께 싸운다고 해도, 함부로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
일국이 전력을 다해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부조리한 전력을 보유한 괴물의 몸에서 아이보리빛 마력이 피어오른다.
“너희 같은 잔챙이들 따위······. 한꺼번에······. 상대해주지······.”
로브 안에서 미소가 떠오른다.
우우우우웅!
언더테이커의 오브가 떨리며 아이보리빛을 토해낸다.
*
[······트너, 파트너! 파트너!!]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린다.
다급한 말투.
눈을 뜬다.
머리가 아프다.
[파트너! 일어나! 일어나라고!!]흑태자?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쓰러지기 직전 기억이 동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베르세르크 상대로 버티다가 올리비아랑 다른 히로인들이 왔고, 나는 올리비아의 품에 쓰러졌고, 그다음 의식을 잃었다.
잠깐, 히로인들이 왔다고?
‘지금 걔들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베르세르크를 못 이길 텐데?’
정신이 번쩍 든다.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다.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이제는 료칸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지반이 내려앉은 거대한 폐허.
그리고 거기에 만신창이가 돼서 쓰러진 그녀들이었다.
“으으윽······.”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떠는 린의 모습이 보인다.
무릎을 꿇은 채 엎어진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주인······. 님······.”
입가에 피를 흘리며 나를 부르는 에리의 모습이 보인다.
깜빡이는 크림슨색 마력으로 온몸을 간신히 지탱 중인 하루의 모습도 보인다.
핏자국이 말라붙은 왼쪽 눈을 한쪽 손으로 감싼 채로 기절한 베아트리체의 모습도 보인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풍성한 트윈테일이 풀려서 장발이 된 채 쓰러진 에반젤린의 모습도 보인다.
“그 바보는······. 제가 지킬 거예요······.”
마지막으로 양팔을 벌린 채로,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백금발을 휘날리는 올리비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말이 귓가에 못처럼 박힌다.
“대체 왜 저자를 감싸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군.”
“왜냐하면······.”
올리비아가 플랑베르주를 든다.
칼날에서 희미한 백금빛 불꽃이 일어난다.
“그 바보는······. 아니 김덕성은 제가 인정한 유일한 영웅이고,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의 전속 시녀니까요!!”
그녀의 외침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전속 시녀라니.
그 빌어먹을 아무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약속에 대체 왜 집착해서.
대체 왜.
“의미 없는 대답이군. 이만 쓰러져라.”
베르세르크의 차가운 말과 함께 핏빛 섬광이 번쩍인다.
콰-광!
부웅.
올리비아의 몸이 폭발과 함께 튕겨 나온다.
[파트너!]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리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우우웅!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저절로 공명하며 마력을 뽑아낸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 흐르는 마력이 활력을 강제로 부여한다.
그대로 땅을 박차서 허공으로 튕겨 나간 올리비아를 공주님 안기로 받아든다.
“······당신.”
얼굴에 피가 묻은 올리비아가, 간신히 떨리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는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그녀의 고개가 떨궈진다.
“아······.”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올리비아를 마지막으로, 모두가 의식을 잃었다.
하루도, 에반젤린도, 린도, 마코토도, 베아트리체도.
마유즈미 선생님도.
전부 상처입고 쓰러졌다.
나 때문이다.
나를 지키려고, 대체 내가 뭐라고 전부 등신처럼 목숨을 걸었다.
자기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가 따로 없다.
오지랖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왜 이렇게 착해 빠진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자기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게 웹소설이었다면 5700자 쪽지를 보내고 댓글창을 불태웠을 것이다.
역시 나는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이 싫다.
화가 치민다.
[······.]흑태자가 침묵한다.
올리비아를 조용히,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는다.
피가 묻은 그녀의 얼굴을 깨끗이 닦는다.
“여자들한테 보호받는 꼴, 그나마 그 여자들마저 제대로 된 도움을 못 준 꼴이라니. 촌극이 따로 없군. 김덕성.”
귓가에 베르세르크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트너.]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열받는데? 내 사랑스러운 동생을 저렇게 만든 놈이······.]흑태자의 목소리가 드물게 분노에 차 있다.
“나도야.”
흑태자에게 동조한다.
화가 난다.
나 때문에 등신처럼 목숨을 던진 히로인들에게.
혼자 상대한다고 쇼하다가 아무것도 못한 나에게.
그녀들을 전부 만신창이로 만들고 모욕하는 저 빌어먹을 악당에게.
그리고 사이다패스에게 쓸데없이 호구만 양산하고 고구마나 먹이는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에게.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간 순간.
우우우우웅!
손에 쥔 듀랜달이 떨린다.
그와 함께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 의식이 다른 누군가의 의식과 연결됐다는 사실을.
그건.
[파트너.]흑태자의 의식이었다.
합일.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지금 찾아왔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거 하자.]“그래. 하자.”
나는 주저 없이 그대로 의식 속의 빨갛고 큰 버튼을 눌렀다.
번쩍!
알 수 없는 고양감과 함께 암흑이 전신을 감싼다.
합일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