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88)
풀썩.
쓰러지는 김덕성을 올리비아가 받아든다.
“당신!”
올리비아가 김덕성을 부른다.
그녀가 황급히 손목의 맥박을 잡는다.
두근, 두근.
정상적으로 뛰는 맥박.
새근새근.
잠에 빠진 듯,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은 김덕성을 보면서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으으으으으으! 멀쩡한데 괜히 걱정했잖아요!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올리비아가 빨개진 얼굴로 소리친다.
거친 말과는 반대로 조심스럽게 그를 땅바닥에 눕히고 무릎베개를 해주는 올리비아.
올리비아의 손이 김덕성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그 광경을 바라보던 히로인들조차 더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
“하루, 이번만큼은 올리브 언니를 방해할 수 없는 것 같아. 아깝다. 초 귀여운 여동생 하루가 선수 쳤어야 했는데.”
“으으으, 분하지만 쿠로사와 양 말이 맞아. 에리링도 이번 한 번만 황녀님한테 양보할래.”
가장 먼저 입을 연 하루가 볼을 부풀리자, 에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큿······.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이길 것이다! 보나파르트.”
두 여자의 뒤에서는 린이 주먹을 쥔 채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지이이이이······. 나도 주군······. 무릎베개 해줄 수 있는데······.”
스윽.
린 옆에서 나타난 마코토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때.
착.
에반젤린이 양 손을 기도하듯 붙잡으며 명량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하와와와와······. 그래도 김덕성님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인 것이와요. 트릭시 양. 그렇지 않나요?”
덥석.
에반젤린이 베아트리체의 손을 잡는다.
에반젤린의 손에 잡힌 베아트리체가 빨개진 얼굴로 말한다.
“흐, 흥······. 하등한 인간의 목숨 따위······. 딱히 죽건 살건 여와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어머, 트릭시 양.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와요.”
떽.
에반젤린이 단호한 목소리로 베아트리체를 혼낸다.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겠지. 무엇보다 저 남자가 죽으면 여도 곤란하니까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말끝을 흐린다.
안대에 안 가려진 베아트리체의 하나뿐인 눈이 김덕성에게 말한다.
방금 더듬거리며 말한 건 그녀의 진심이었다.
김덕성.
처음에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이용하려고 마음 먹었던 그녀였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교단의 대장로.
EX랭크 빌런, 디에고 모랄레스의 끔찍한 강함을 베아트리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리그의 마스터, 메사이어가 교단을 복속시키지 않고 동맹에 그친 이유가 디에고 모랄레스의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전 세계 최고액 현상범이자 최악의 기술 테러리스트.
그를 상대하려면 김덕성의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단지 메사이어의 계획을 방해한 것에 조금 흥미가 갔을 뿐이다.
메사이어를 방해할 수 있다면, 교단의 계획도 방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오늘 김덕성은 EX랭크 빌런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
그것이 운이건 실력이건, 그의 잠재력이 EX랭크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어쩌면 정말로······.’
베아트리체의 안대에 가려지지 않는 오른쪽 눈이 김덕성을 향한다.
그라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신의 잠재력도 EX랭크인데다가, 일본 영웅 협회장, 프랑스 황실, 영국 왕실과 모두 친분이 있으며 검성의 아들과도 친구이며 일본 재계서열 1위 이시하라 그룹의 남매 모두와 친분이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 전체를 손가락 하나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의외의 거물.
그런 김덕성이라면, 어쩌면 지금까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후후. 잘하셨사와요.”
베아트리체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에반젤린이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우우우우, 여는 홍련의 성녀다! 아이가 아니란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툴툴대면서 에반젤린의 손길에 눈을 감던 그때.
“여러분! 다들 살아있었군요! 선생님은 다행이에요!”
불쑥.
분홍색 머리가 흔들리며 마유즈미 선생이 나타난다.
와락.
그녀가 김덕성과 올리비아를 제외한 모두를 끌어안는다.
“선생님, 정말 걱정했어요······.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갑자기 빌런의 공격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상관없었다.
최소한 제자들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제자들도 멀쩡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유즈미 선생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 군은 어떻게 됐나요?”
김덕성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절하기 직전 기억이 떠오른다.
쉬어도 괜찮다는 그의 말과 그의 따뜻한 체온이 떠오른다.
펑.
마유즈미 선생의 얼굴이 빨개진다.
‘아, 안 돼요! 김 군은 학생이고 저는 선생······. 선생이 제자한테 불순한 마음을 품는 건······.’
마유즈미 선생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담임 교관으로서, 담임을 맡은 학급 소속 생도를 걱정해서 내뱉은 말일 뿐이다.
담임 교관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실천하는 것.
여기에 사적인 감정은 결코 단 하나도 없다.
두근, 두근.
그렇게 마유즈미 선생이 애써 심장 박동을 무시하고 있던 그때.
“주인님은 저기······.”
마유즈미의 품에 안긴 에리가 손을 뻗어 한쪽을 가리킨다.
마유즈미 선생의 시선이 에리가 가리킨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올리비아의 무릎베개를 받고 쓰러진 듯 눈을 감고 있는 김덕성이 있었다.
“김 군도 다행히 무사한 모양이네요.”
마유즈미 선생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이었다.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S랭크 영웅, 현역 시절에는 파괴의 마법소녀라 불리면서 수많은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수많은 빌런을 잡아넣은 경험 많은 영웅이었던 그녀도 속수무책으로 패배했던 상대였다.
평범한 생도가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살아남았다.
‘으으으······. 선생님 선생 실격이에요······.’
교사가 생도를 지켜야 하는데 거꾸로 보호받다니.
교사 실격이 따로 없다.
‘게다가 조금······.’
거기다가 올리비아가 무릎베개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자니 살짝 샘이 났다.
‘선생님도 무릎베개 할 수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마유즈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무릎베개라니!
대체 이 무슨 불건전하고 불순한 발상이란 말인가?
거기다가 선생이 한참 어린 생도를 질투하다니.
이럴 수는 없다.
마유즈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질투를 억누르던 그때.
“우주 제일 바보······.”
올리비아는 주변의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김덕성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1학기 초반, 김덕성과 함께 그라운드 제로로 유적 탐사를 갔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유적 공략 이후 그가 쓰러져서 이렇게 무릎베개를 해줬었지.
화악.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입술을 삐죽인다.
“멍청이!”
올리비아가 괜히 소리친다.
거친 말과는 달리 그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던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깨어난 직후 얼핏 봤던 그 풍경은······. 역시 오라버니의 심상전개였죠?’
김덕성과 베르세르크가 싸우던 마지막 광경.
정확히는 아니지만 흐릿한 형태로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었다.
그건 분명 흑태자의 심상전개.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신의 뒤에 서 있던 정령 역시······.’
생전의 흑태자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듀랜달에 깃든 정령이 흑태자라면.
그녀가 그토록 동경하던 오라버니가 10년 전, 파프니르와의 싸움에서 사실 죽은 게 아니라면.
정령의 형태로 살아남았다면.
지금까지 올리비아가 품고 있던 의문 중 상당수가 풀린다.
김덕성이 프랑스 황실만의 비전으로 엄중히 관리되던 흑광검식을 쓸 수 있었던 이유.
오라버니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싸웠던 이유.
그게 정령이 된 흑태자가 그를 서포트했던 거라면?
‘······.’
듀랜달의 정령은 흑태자다.
올리비아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 거죠? 역시······.’
하지만 흑태자는 그녀에게 정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처음 정령으로서 대면했을 때도, 그녀가 기억하던 과묵하고 중후하고 멋진 모습과는 달리 경박했던 모습.
‘오라버니가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역시 그 모습은 제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한 결과가 틀림없어요!!’
그렇다면 왜 숨겨야만 했을까.
‘역시 10년 전의······.’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10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더없이 선명한 그날의 기억이.
오메가 랭크 게이트와 함께 오메가 랭크 이계종 파프니르가 파리를 습격하던 날.
세상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고, 영웅 강국 프랑스는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그날, 무서워서 떨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던 감촉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리고 흑태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계종과의 싸움에서 죽는 영웅은 많다.
하지만 흑태자는 파이브 크라운즈, 30년 전의 대재해를 종결한 불세출의 영웅.
오메가 랭크 이계종이라 해도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건은 단순한 게이트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더 큰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흑태자가 죽음을 맞이하던 그 날, 다른 파이브 크라운즈 역시 세이라를 제외하고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전부 죽었으니까.
만일 더 큰 음모가 숨겨져 있던 게 사실이라면, 오라버니가 정체를 숨기고 경박한 연기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죽음과 얽힌 비밀이라면, 실체를 아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녀가 아는 흑태자는, 그녀가 위험에 빠지길 바라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올리비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바보가 싸우는 빌런들이······. 어쩌면······.’
벚꽃 축제 때부터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자주 나타나던 빌런들과 사건 사고들.
처음에는 그저 운이 없으려니 했지만, 거대한 음모가 만약 뒤에 있다면.
어쩌면 김덕성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거대한 악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리비아의 볼에 바람이 들어갔다.
흑태자도, 김덕성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바보들 같으니······!”
힘든 일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의지해도 좋다.
그러라고 있는 전속 시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김덕성은 그녀를 의지하지 않고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흑태자처럼.
그녀가 바라던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도 가끔은 당신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올리비아가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드물게 진심을 속삭인다.
당연하게도 의식을 잃은 김덕성은 그녀의 진심을 듣지 못했다.
*
머리가 아프다.
“끄응.”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온다.
“······어났나?”
귓가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흑태자가 아니라 중년인이라고?
번쩍.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예상대로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낯선 병원 천장.
하긴 베르세르크랑 상대하면서 그렇게 난리를 쳐댔는데 병원 신세를 안 지는 게 더 이상하다.
병원 같은 건 이제 익숙하다.
문제는······.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내 바로 옆 침대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초록 머리의 중년인.
검귀 시노자키 이치로였다.
아니 저 양반이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