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94)
교실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섬뜩할 정도의 고요.
[누님······.]흑태자의 어김없는 탄식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아니 이게 무슨······.
진심으로 당황스럽다.
원작에서도 이런 미친 짓은 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네. 특별 전학생은 세라땅이에요.”
묘하게 얼굴이 굳은 마유가 세이라를 소개한다.
언제나 활기찬 마유즈미 선생의 얼굴을 굳을 정도로 당황시키다니.
세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할지도?
[아이고······.]흑태자가 한숨을 내쉬던 그때.
드르르륵.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사장님이 특별 전학생이라니! 이건 인정할 수 없어요! 권력 남용이라고요!”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올리비아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보나파르트의 말이 맞습니다. 이사장님. 이사장님의 권력 남용은 결코 묵과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닙니다.”
올리비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는 시노자키 린.
그녀가 남색 포니테일을 흔들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에리링도 권력 남용 반대야! 이사장님 치사해! 우우우우우우!”
뒤이어 에리가 볼을 부풀린다.
그녀의 짧은 트윈테일이 흔들린다.
야유를 보내는 에리.
“지이이이이이······. 이사장님 나빠.”
옆에 앉은 마코토가 입으로 지이이 소리를 내며 이사장을 노려본다.
“니시시시. 세라땅 할머니. 나이값 하는 건 이제 그만하기로 결정한 거야? 세라땅 할머니가 초 귀여운 JK갸루 하루와 동급생이라니 윽, 하루 초 어지러워. 방금 초 소름 돋았어. 으.”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가 진짜 소름이라도 돋은 것처럼 팔을 벅벅 긁으면서 붉은 눈동자로 세이라를 바라본다.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하루.
나와 같은 반인 히로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만큼 히로인들이 든든할 때가 또 없었다.
이사장의 전학이라니.
이 끔찍한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 이사장님······. 보셨죠. 마유가 생각해도 이건 무리수라니까요?”
그 모습을 본 마유즈미 선생이 이사장의 귓가에 속삭인다.
역시 마유즈미 선생.
정상인의 사고방식이라면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마유즈미 선생의 속삭임을 들은 세이라가 고개를 숙인다.
뭐지?
뻔뻔하게 나갈 줄 알았는데.
“언니들······. 세-라땅 마음에 안 들어? 세-라땅이랑 체육대회 하기 싫어? 세-라땅은 친구들이랑 같이 좋은 추억 남기려고 전학 온 건데······.”
훌쩍.
우는 척을 하며 어깨를 떠는 세이라.
교복 차림에 혀 짧은 소리는 덤이다.
아니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당황스럽다.
내 어이가 날아가던 그때.
“뭐야······. 불쌍해.”
“어린아이를 울리다니! 기사공주님 그렇게 안 봤는데······. 못됐어.”
“이사장님! 괜찮아요! 이사장님은 학원의 아이돌이에요!”
“이사장님 완전 귀여워!!”
“이사장님 전학 완전 찬성!”
“이사장님 최고!”
“세-라땅 괴롭히지 마!”
엑스트라들의 함성과 환호성이 들린다.
훌쩍.
우는 척을 하던 세이라가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한다.
“친구들! 세-라땅 1학년 A반 전학 괜찮은 거야?”
초롱초롱한 붉은 눈빛으로 생도들을 바라보던 세이라.
“네!!”
“어서 오세요! 이사장님, 아니 세-라땅!”
“반대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귀여워!”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생도들의 열성적인 함성이 다시 학급을 채운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지만, 여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라노벨 세상.
세상이 비정상이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전학생을 환영하는 것이다.
[누님······. 늠름하고 카리스마 넘쳤던 백색 여제의 모습은 어디 가고 대체 왜 이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설정에 따르면 30년 전, 파이브 크라운즈로 활동하던 시절의 세이라는 백색 여제라는 이명에 걸맞게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님 스타일의 캐릭터.
본편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여준 적 없지만, 같은 파이브 크라운즈 동료였던 흑태자로서는 여왕님 모습이 익숙했을 터.
저렇게 애들처럼 애교를 부리는 세이라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질 만하다.
내 억장도 무너지는 기분이고.
어차피 이 학원에서 이사장은 절대 권력자.
그녀가 전학을 강행하겠다고 하면 막을 수단은 없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해주면 안 될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덕성 오빠!”
세이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야, 지금 날 부른 거야?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이사장님, 아니 세라땅이 검은 귀축을 불렀어.”
“세상에, 검은 귀축이 이사장님한테까지 벌써 마수를 뻗친 거야?”
“이 학원, 사실 검은 귀축이 지배하는 학원인 거야?”
“학원의 모든 여생도를 하렘 멤버로 조교할 생각은 아니겠지? 꺄악!”
“무서워, 검은 귀축!”
그냥 나를 부른 것일 뿐인데 두뇌를 망상으로 풀가동하는 엑스트라들.
초롱초롱.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덕성 오빠도 세-라땅 전학 찬성인 거지? 응? 그렇지? 세-라땅. 덕성 오빠 믿고 있어.”
세이라의 폭탄선언에 엑스트라들이 다시 수군댄다.
“검은 귀축한테 물어봤어!”
“하긴, 이 반의 중심이 검은 귀축이기는 하지.”
“검은 귀축, 피도 눈물도 없는 귀축이라고 들었는데. 거절하지 않을까?”
“이사장님이 불쌍해······.”
내가 사이다패스에 소인배인 건 맞다.
그런데 이건 사이다패스도 아니고 사이코패스 취급이 아닌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한국 웹소설의 사이다패스지 중국 웹소설의 사이코패스가 아니란 말이다.
[파트너······. 나도 이젠 모르겠다······. 알아서 해······.]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세상에 흑태자가 포기하는 상대는 처음 본다.
“당신······.”
“덕성.”
“주인님···.”
“주군······.”
“덕성 오빠!”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하루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런데 이거 나에게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건, 이사장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특별 전학을 시도할 게 분명하다.
이 학원의 절대 권력자인 이사장의 권력 행사를 내가 막을 방법은 없다.
게다가 여기서 거절했다가 이것보다 더 매운 주책과 주접을 보게 된다면 내 정신 건강이 위험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녀의 제안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라.”
내 말을 들은 세이라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가 웃으면서 와아 하고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돈다.
저 모습이 진심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가?
“덕성 오빠! 고마워! 세-라땅은 덕성 오빠가 허락해줄 줄 알았어!”
눈을 반짝이는 세이라.
옆에 있던 마유 선생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후후. 그럼 이 몸, 아니 세-라땅을 소개할게. 친구들. 이 몸은 세-라땅! 앞으로 체육대회 동안 1학년 A반 동년배 급우들과 같이 지낼 예정인 특별 전학생이다. 세라땅이라고 불러주면 좋겠군. 훗.”
촤르륵.
세이라가 품에서 검은 레이스 부채를 꺼내면서 의기양양해진 눈동자와 치명적인 척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니 이사장이면 이사장 세라땅이면 세라땅 컨셉을 하나만 하지 두 개 섞으니까 더 이상하잖아.
속이 안 좋다.
“와아아아아! 세-라땅 환영해!”
“세라땅이 있는 우리 A반은 무적!”
“체육대회 우승도 우리 홍팀 차지!”
“우주 최강 아이돌 세-라땅 만세!”
어김없이 환영하는 엑스트라들.
“권력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간과했어요. 으으.”
“큿······. 예상치 못한 변수가······.”
“쳇. 에리링 이사장님한테 삐졌어.”
“지이이이······.”
“세라땅 할머니, 결국 추하게 가는 거구나. 하루 지금 초 어이없어.”
그에 반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히로인들.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하루의 못마땅한 시선이 세이라에게 향한다.
“훗. 그럼 앞으로 이 몸을 잘 부탁하느니라.”
그녀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자기소개를 끝내는 세이라.
“그럼 이사장님······.”
“어허. 마유즈미 선생, 이사장님이 아니라 세라땅이라고 불러야지.”
이사장이라고 부르는 마유즈미에게 바로 딴지를 거는 세이라.
그녀가 가슴에 있는 세-라땅이라고 적힌 명찰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 네······. 세, 세라땅······. 자리는 저기 빈 자리예요!”
마유즈미 선생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지시봉으로 자리를 가리킨다.
그녀가 가리킨 빈 자리는 공교롭게도 바로 내 뒷자리였다.
“알겠다. 교관이여. 후후.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하지.”
세이라가 웃으면서 백색 머리를 휘날리며 내 뒷자리에 앉는다.
벌써 예감이 좋지 않다.
“좋아요. 그럼 특별 전학생 소개도 끝났으니, 이인삼각 파트너를 정하는 제비뽑기를 진행하겠어요!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석번호 순으로 제비를 뽑는 거예요!”
탁.
마유즈미 선생이 교탁 위에 제비통을 올려놓는다.
출석번호대로 호명하기 시작하자 생도들이 일어나 제비를 뽑는다.
드디어 내 차례.
제비를 뽑는다.
걸린 숫자는 3.
이제 같은 3을 뽑은 상대와 내가 이인삼각 파트너가 되는 거다.
뽑은 제비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주군, 3번이구나.”
내 제비를 본 마코토가 붉어진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흐음, 3번이라. 알았다.”
세이라의 목소리도 들린다.
“검은 귀축이 3번을 뽑았대.”
“3번은 절대로 뽑으면 안 되겠어.”
“으으으, 저주 받은 숫자야.”
엑스트라들의 수군거림이 뒤따른다.
“10번! 10번 누구야?”
“나! 나 10번이야!”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인삼각 파트너를 찾는 소리인 모양.
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파트너, 넌 누구랑 하고 싶냐? 이인삼각.]‘유지 아니면 이시하라.’
히로인들보다는 차라리 걔네가 더 편하다.
부담도 안 가고.
[호오? 그래?]내 말에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기는 흑태자.
그때.
“다음! 세라땅 생도! 나와주세요!”
마유즈미 선생이 세이라를 호출한다.
“다녀오마. 꼬마야.”
뒷자리에서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 세이라가 당당한 걸음으로 나선다.
“여기, 뽑으세요.”
찰그락.
제비가 잔뜩 담긴 통을 내미는 마유즈미 선생.
“흐음······.”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제비 끝을 하나하나 건드린다.
[아니, 누님······!]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경악한다.
‘왜 그래?’
제비 그냥 건드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세상에······. EX랭크의 마력 컨트롤으로 제비 하나하나의 미세한 질감 차이를 감지해서 특정한 제비를 찾으려 들다니······. 같은 EX랭크가 아니면 감지 불가능한 마력 컨트롤을 왜 이런 데에······.]흑태자가 해설을 맡은 나레이터처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제비 하나 뽑으려고 거창하게 EX랭크 마력 컨트롤까지 동원했다는 말이지?
대체 무슨 제비를 뽑으려고.
설마 나인 건······.
오싹.
무서운 가능성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그렇게 내가 애써 유력한 가능성을 부정하던 그때.
“좋아. 이 몸은 이 제비로 하겠다!”
쑤욱.
세이라가 통에서 제비를 뽑아낸다.
뽑아낸 제비 끝에 적힌 숫자는 3.
“후후.”
그녀의 붉은 눈이 휘어지며 눈웃음을 짓는다.
세이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고······. 누님, 애들 노는 체육대회서 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겁니까. 정말로······.]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그렇다.
나랑 같은 숫자였다.
지금 이 순간, 내 이인삼각 파트너가 세이라로 결정된 것이다.
이 양반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