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95)
황당함과 어이없음에 내가 할 말을 잊은 그때.
“말도 안 돼! 주인님의 이인삼각 파트너는 에리링이 하려고 했는데! 이건 무효야! 무효!”
벌떡.
에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양 손을 주먹 쥔 채 허리 아래로 늘어뜨리며 항의한다.
“맞아요! 저는 그 바보의 전속 시녀! 당연히 그 바보의 이인삼각 파트너 자리는 제 차지라고요!”
척.
뒤이어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항의한다.
“큿······. 덕성의 옆자리는 내가 차지했어야 했는데······.”
린이 입술을 깨물고.
“세라땅 할머니······. 초 너무해. 연장자로서 귀여운 JK 여동생인 하루한테 양보해줬어야지.”
하루가 불만을 터뜨리고.
“지이이이이이······.”
마코토가 입으로 지이이 소리를 낸다.
“뭐야? 벌써 사랑싸움?!”
“검은 귀축 쟁탈전 너무 치열해!”
“검은 귀축이랑 파트너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검은 귀축이 세라땅까지 함락시키는 거 아니야?”
웅성웅성.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모습을 보던 세이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낙장불입! 이미 결정된 제비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지 않나? 마유즈미 교관?”
촤르륵.
세이라가 검은 레이스 부채를 접었다 펼쳐서 얼굴을 가리며 말한다.
속임수를 쓰고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니.
별명이 괜히 너구리 이사장이 아니다.
이쯤 되면 너구리가 아니라 철면피 아닐까?
[파트너. 그래도 좀······. 넘어가 주자······.]머릿속에서 흑태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세이라가 속임수를 쓴 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사용한 수단은 EX랭크가 아니면 감지가 불가능한 고차원의 마력 컨트롤.
내가 증언해봤자 아무 증거도 효력도 없을 게 분명하다.
되도록 이인삼각 이어달리기는 히로인들이랑 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흑태자 부탁도 있고.
‘그래.’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네? 네······.”
마유즈미 선생이 세이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훗. 이번에는 이 몸의 운이 좋았을 뿐. 꼬마의 옆자리를 노리는 여러분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도록.”
세이라의 말에 얼굴이 굳는 히로인들.
“검은 귀축 쟁탈전에서 이사장님이 승리했어.”
“이사장님이 아니야, 세라땅이야!”
“세라땅 귀여워.”
“세상에······. 이럴 수가.”
“안 돼 세라땅! 검은 귀축의 마수에······. 크흑······. 세라땅마저······!”
“귀여운 세라땅을 검은 귀축에게 넘겨줄 수 없어!”
귓가에 엑스트라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오늘만큼은 그들의 수군거림이 싫지 않았다.
그냥 히로인 말고 유지나 이시하라가 내 파트너가 되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에휴, 누님. 오죽하면······. 저런 수단까지······.]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불쌍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모습을 본 마유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럼 세라땅 생도. 자리로 돌아가세요.”
“알겠다. 선생이여.”
살랑살랑.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오는 세이라.
뒷자리에 앉은 세이라가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럼 이인삼각, 잘 부탁한다. 꼬마야.”
부채를 살랑거리면서 치명적인 척 눈웃음을 짓는 세이라.
[······우리 누님, 저런 분이지만 그래도 잘 부탁한다. 파트너.]마지막으로 흑태자가 머릿속에서 말한다.
무슨 요양원에서 보호사가 보호자한테 부탁하는 말도 아니고.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하는 수밖에.
체육대회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벌써 두려워진다.
*
도쿄.
뉴 월드 리그 일본 지부.
도쿄 교외 낡은 맨션의 지하에 존재하는 거대 시설.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 아이보리색 머리 미소녀가 의자에 앉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더테이커였다.
“후우······.”
두근, 두근.
그녀의 가슴에 있는 또 하나의 심장. 유물 이모탈 하트가 작동하며 그녀의 몸을 조금씩 치유한다.
“······협회장······. 만만한 상대······. 아니야······.”
언더테이커가 입술을 깨문다.
웬만한 부상이나 병은 전부 하루 만에 치유가 가능한 임모탈 하트로도 치유에 이렇게 오래 걸리는 상처라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웅이라는 이름값은 허명이 아니었다.
“후우······.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상처가 다 낫는다.
두근.
언더테이커의 두 번째 심장, 임모탈 하트가 박동한다.
언더테이커가 눈을 감은 그때.
삑, 삐비빅.
두꺼운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린다.
우웅.
언더테이커가 주변에 떠다니던 오브형 초상병기, 네크로노미콘에 마력을 주입한다.
번쩍.
섬광과 함께 그녀의 몸에 로브가 입혀진다.
푸욱.
언더테이커가 후드를 깊게 눌러쓰며 얼굴을 감춘다.
쿠웅.
그와 함께 육중한 소리를 동반하며 지부 문이 열린다.
언더테이커가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프로······. 페서.”
“오랜만입니다. 언더테이커.”
안경을 낀 실눈 미남자.
프로페서의 입에 미소가 서린다.
“당신이 병든 닭처럼 이렇게 골골거리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프로페서의 실눈이 휘어진다.
탁.
지부 문이 닫힌다.
프로페서가 모자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말한다.
“검귀와 명왕한테 입은 상처 때문입니까?”
“······닥쳐······.”
언더테이커가 음성 변조 때문에 노이즈가 낀 껄끄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그 모습을 본 프로페서가 웃는다.
“겨우 일본 영웅 협회 따위한테 이 정도로 당하다니, 리그의 2인자 칭호가 아깝습니다. 역시 그 자리는 제가 차지하는 게 맞겠습니다.”
프로페서의 실눈이 살짝 떠진다.
리그에서 그의 서열은 3위.
2위인 언더테이커와는 한 단계 차이였다.
그래서 프로페서는 지금의 3인자 자리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메사이어에 대한 충성은 흔들림 없지만, 그렇기에 그는 리그에 대한 충심이 의심되는 언더테이커가 자신의 위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그의 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힘.
그렇기에 언더테이커보다 약한 프로페서는 만년 3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언더테이커가 불쾌한 듯 말한다.
“마스터의 대의와 리그에 대한 충성도가 의심되는 당신이 제 위에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너무 불쾌합니다!”
쾅.
프로페서가 탁자를 내리친다.
그는 마스터의 대의를, 신세계의 이상을 굳게 믿고 따랐다.
신도 악마도 없는,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님은 오직 그 세상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신세계를 이 땅에 구현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스승님을 위해 투신한 리그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프로페서에게 메사이어는 그분에 이어 믿고 따르는 두 번째 스승이었다.
그분을 동경해서 행동거지와 말투까지 따라할 정도.
그래서 신세계에는 별 관심 없는 언더테이커는 프로페서에게 있어서 눈엣가시였다.
프로페서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언더테이커에게 향한다.
“······마음에 안 들면······. 나랑······. 붙던가······.”
파츠츠츠츳!
네크로노미콘에서 아이보리색 스파크가 튄다.
언더테이커에게 있어서 메사이어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리그에 무력을 제공하고, 리그는 데미안 소생 연구 비용을 전적으로 제공한다.
어디까지나 쌍무적 계약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세계 계획에는 언더테이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는 했다.
메사이어가 신세계를 구현하면, 새로운 세상에서 부활한 동생과 함께 지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으니까.
그녀가 신세계 계획을 돕는 건 그런 이유였다.
데미안이 살아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방법이 무엇이건 전부 시도해봐야 하니까.
하지만 언더테이커는 다른 사도, 포 호스맨들과 달리 그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메사이어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진실을 교묘히 숨겼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신세계 계획의 구체적인 과정과 결과는 오직 메사이어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최측근인 포 호스맨조차 모르는 극비 사항.
‘뭔가 있지 않다면 숨기는 건 말이 안 돼······.’
그렇기에 언더테이커는 메사이어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
언더테이커의 마력이 프로페서를 압박한다.
스스스스스.
언더테이커의 늘어진 그림자에서 스멀스멀 인형들의 형체가 조금씩 피어오른다.
주룩.
프로페서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괴물 같으니······.’
부상으로 약화된 상태일 텐데도 이 정도의 압박감.
프로페서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상태의 언더테이커와 여기서 싸운다고 해도 승률은 0%.
필패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사적인 방문이 아니라 마스터의 명령을 당신께 전달하러 왔기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내분은 좋지 않으니까요.”
“······도망······. 치긴······.”
언더테이커의 말에 프로페서가 움찔한다.
프로페서가 언더테이커의 말을 애써 무시하면서 말한다.
“······지금 당장 벳푸로 이동해서 김덕성이 남긴 마력 흔적을 조사해서 김덕성한테 협력하는 정체불명의 EX랭크 수준 조력자가 누군지, 그 정체를 알아내서 보고하고 유사시에는 그 조력자를 제거하는 것. 이것이 마스터가 당신께 하달한 명령입니다.”
메사이어.
그는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김덕성을 돕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언더테이커를 직접 움직여 조력자의 정체를 밝혀내고 나아가 조력자를 처단하려고 한 것이다.
“겨우 그것 뿐······? 너는 왜 왔어······?”
“명령 전달 때문입니다.”
프로페서가 웃는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메사이어는 또 다른 밀명을 그에게 하달했었다.
언더테이커를 감시할 것.
하지만 프로페서는 이번에는 그분의 명령을 어기고 선조치 후보고를 감행하기로 했다.
‘더 빠른 신세계의 도래를 위해서라면······.’
대의를 위해서라면.
결과가 좋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절차적 결함 정도는 용납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페서의 머릿속에 슈오우 영웅 학원 일정이 떠올랐다.
곧 시작될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
그곳에 준비한 오메가 랭크 이계종과 함께 게이트를 열고 급습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원을 부수고, 신세계 계획의 핵심인 지하 유적의 입구를 열고 검성의 아들을 처치하고 김덕성을 생포한다면.
그분께서도 자신을 칭찬해줄 것이다.
존경하는 첫 번째 스승님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신세계의 도래가 대폭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이라를 구할 수 있다.
그분의 이상도 이루어줄 수 있다.
프로페서의 몸이 희열로 떨린다.
“당신은 당신의 할 일을 하십시오. 저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스승님을 구할 겁니다.”
“······네 구원을······. 그 사람이 원할까?”
무심코 던진 언더테이커의 말에 프로페서의 미간이 좁혀진다.
“쓸데없는 참견입니다. 언더테이커. 그리고 그 말은 당신한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프로페서의 독설이 언더테이커의 가슴을 찌른다.
언더테이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침묵한다.
동생 데미안의 부활.
그것은 죽은 동생이 원하는 일이었을까?
동생이 죽어버린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도 줄 수 없었다.
“그럼 이만.”
혼란스러워하는 언더테이커를 뒤로 한 채, 프로페서가 지부를 나갔다.
탁.
지부의 묵직한 문이 닫힌다.
우두커니 남겨진 언더테이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로브 속에서 펜던트를 꺼낸다.
딸깍.
펜던트를 열자 갈색 머리의 미남자와 아이보리 머리의 미소녀가 함께 찍힌 사진이 보인다.
동생이 살아 있던 시절 찍은 그녀의 가족사진.
언더테이커가 펜던트 속 사진을 쓰다듬었다.
“누나가······. 누나가 구해줄게······.”
반드시.
언더테이커가 뒷말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
슈오우 영웅 학원.
제1별관.
동아리 부실이 모여 있는 건물 복도.
그곳에 은발 머리 미소녀가 은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걷고 있었다.
그녀의 팔뚝에는 학생회장을 나타내는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였다.
“꺄악! 사이온지 선배다!”
“회장 선배! 엄청 예뻐!”
“허리도 잘록하고, 은빛 머리카락도 반짝반짝! 진짜 인형 같아.”
“시골 출신이라는 점도 갭 모에! 완전 매력적이야!”
아리스를 발견한 주변 생도들이 웅성거린다.
원래의 그녀도 학원 최고의 인기인이었지만, 문화제 이후부터 그녀의 인기는 한층 더 높아졌다.
신비롭고 차가웠던, 절벽 위의 꽃 같았던 아가씨 학생회장이 실은 시골 소녀 출신이라는 사실이 반전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학원 풍기 점검 순찰을 나온 아리스는 주변 시선을 느끼면서 복도를 걸었다.
‘부활동에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생도들은 없겠죠······?’
스윽.
창문 너머 부실의 풍경이 아리스의 시야에 보인다.
다도부, 문예부, 서예부, 연극부 등등.
각자 부활동에 열중하는 생도들의 모습.
아리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린다.
이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좋아하는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일상 풍경이다.
‘좋습니다.’
이상 없는 생도들의 부활동을 보고 아리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 그때.
창문을 암막 커튼으로 막아놓은,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부실이 아리스의 시야에 들어온다.
아리스의 얼굴이 굳는다.
‘저 부실은 뭐죠?’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부실 입구 위의 팻말로 향한다.
팻말에 적힌 부활동 이름은 요리부.
김덕성과 히로인들이 속한 부활동이었다.
그 사실이 아리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그녀의 뇌리에 학원 내부에 돌고 있는 검은 귀축과 그 하렘 멤버들에 대한 온갖 불순한 소문들이 부상한다.
방과 후 부활동에서 사실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더라.
화악.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심장이 뛴다.
“만일 불순한 짓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런 풍기 문란 행위는 학생회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러니 확인해야 한다.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요리부실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렇게 열린 문 너머로 아리스가 목격한 광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