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96)
요리부 부실.
대낮인데도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모두 가려 우중충한 분위기인 부실 내부.
탁.
흔들리면서 불안하게 켜진 전등 아래, 벽에 걸린 크레파스 현수막이 보인다.
[제1회 세라땅 체육대회 대책 회의]현수막 아래에는 체육대회에서 김덕성의 이인삼각 파트너 자리를 세이라에게 빼앗긴 히로인들이 모여 있었다.
부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 칩을 마코토가 하나 집는다.
와작.
마코토가 과자를 씹은 그때.
탕!
올리비아가 책상을 내리친다.
움찔.
마코토의 몸이 떨린다.
“믿을 수 없어요! 그 바보의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비뽑기 경쟁에서 패배하다니!”
올리비아의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이인삼각 파트너는 당연히 전속 시녀인 자신의 차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굴러 들어온 돌인 이사장에게 빼앗길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다.
“황녀님. 진정해.”“으으으으······.”
에리의 만류에 올리비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대체 왜 전학을 온 거지?”
그 모습을 본 린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리 별의별 일이 일어나는 슈오우 영웅 학원이라지만, 이사장의 특별 전학은 전례가 없는 일.
무언가 있다.
“모르겠어······.”
린의 말에 마코토가 소심한 말투로 답한 그때.
와작.
하루가 과자를 씹어 먹는다.
“니시시시.”
하루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짤랑짤랑.
그녀의 팔목에 걸린 팔찌들이 부딪히며 쇳소리를 낸다.
긴박한 지금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여유 넘치는 모습.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척.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뭔가요? 쿠로사와 하루. 지금이 태평하게 웃고 있을 때인가요?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특별히 당신을 대책 회의에 초대했는데 특별 초대에 감사는 못할망정 이렇게 먹고 놀고 있다니! 믿을 수 없어요!”
올리비아의 말에 하루가 웃는다.
“올리브 언니. 하루는 먹고 놀지 않았어.”
“그럼 지금······.”
“왜냐면 초 똑똑한 우등생 엘리트 JK 갸루 하루는 이사장님이 특별 전학생으로 등장한 이유를 이미 알고 있거든. 니시시시.”
짤랑짤랑.
하루가 장난치듯 손을 흔들며 웃는다.
그녀의 살짝 삐죽 튀어나온 어금니가 전구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게 뭐지?”
“그게 뭔가요?!”
“그게 뭔데?”
“지이이이······.”
하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 올리비아, 에리, 마코토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네 소녀의 시선을 받은 하루가 웃으면서 우마이봉의 포장을 벗겨서 깨문다.
“그건 바로······.”
꿀꺽.
네 히로인이 마른침을 삼킨다.
하루의 붉은 눈동자가 휘어지며 눈웃음을 그린다.
“······세라땅 할머니, 아니 이사장 할머니가 덕성 오빠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야.”
하루의 말에 부실 내부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세이라가 그를 노리고 있다.
사실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사실일까 싶어서 굳이 언급하지 않은 말을 하루가 그대로 내뱉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
그렇기에 올리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루에게 되물었다.
“······정말인가요?”
“덕성 오빠를 노리고 있으니 우리 반에 특별 전학을 왔고, 대놓고 덕성 오빠의 이인삼각 파트너를 차지한 게 아니겠어? 니시시. 올리브 언니. 이래도 못 믿어? 모든 정황 증거가 할머니가 덕성 오빠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구!”
하루가 품에서 주섬주섬 외알 안경과 빵모자, 파이프 담배와 스카프를 착용해서 탐정 코스프레를 하면서 말한다.
뽀글뽀글.
하루의 입에 물린 파이프 담배에서 비눗방울이 솟아오른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원작의 지식과 김덕성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하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요시자키 세이라.
그녀가 김덕성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특별 전학생이 왔을 때도 다른 히로인들 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쿠로사와 양. 하지만 그건 그냥 심증이잖아. 이사장님이 주인님을 노린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어?”
찌릿.
에리의 눈동자가 하루에게 향한다.
“확증? 니시시시. 그건 없지만······.”
하루의 시선이 린을 향한다.
“린 언니가 협회장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하루랑 같은 대답을 할 거야.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니시시. 역시 하루는 초 천재 JK라니까.”
하루가 린을 지목한다.
느닷없이 지목받은 린의 눈동자가 커진다.
“하루.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만약 아니라면?”
린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아니면······. 언니들한테 뭐든지 단 한 번. 무조건 양보할게. 니시시.”
하루가 팔짱을 낀다.
“정말이지? 하루.”
“정말인거죠?!”
“쿠로사와 너, 나중에 가서 딴말하면 안 돼.”
“지이이이.”
하루의 말에 곧바로 반응하는 린, 올리비아, 에리, 마코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네 언니의 시선을 즐기면서 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초 귀여운 JK 하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니시시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하루.
그녀의 어깨와 콧대가 으쓱 올라간다.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의 시선이 린을 향한다.
“이봐요. 시노자키 양. 당장 아버님께 전화 안 드리고 뭐 해요?!”
“······하도록 하지.”
올리비아의 독촉을 받은 린이 휴대폰을 꺼내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한 뒤에 이치로에게 전화를 건다.
뚜르르르, 뚝.
통화 연결음이 가자마자 곧바로 끊기고, 이치로의 목소리가 고요한 부실에 울려 퍼진다.
[어이구. 우리 딸. 무슨 일로 전화했어?]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는, 상냥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다른 사람 같은 협회장의 목소리에 린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협회장 아저씨 뭐야? 충격이야.’
‘저도 조금 충격이군요······.’
소곤소곤.
올리비아와 에리가 입모양으로 작게 말한다.
그 모습을 본 린의 미간이 좁혀진다.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왜 그렇게 딱딱해.]“······돼, 됐으니까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협회장의 말을 무시하면서 린이 발그레한 얼굴로 말한다.
“혹시 이사장님께서 덕성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까······?”
린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온 순간.
부실 안에 정적이 흐른다.
[······그래.]잠깐의 정적 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이사장의 대답.
하루의 말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 부실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니시시시······.’
하루가 입 모양으로 웃으면서 파이프 담배에서 비눗방울을 뽀글뽀글 뿜어낸다.
“알겠습니다. 대답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럼······.”
[자, 잠깐. 린. 우리 딸. 조금만 더 목소리 들려주면 안 될······.]정적을 깬 건 린.
그녀가 통화를 끊으려고 하자 다급해진 협회장의 목소리가 스피커폰 밖으로 새어 나온 순간.
“만일 불순한 짓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런 풍기 문란 행위는 학생회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벌컥!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실 문이 열린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린이 전화를 빠르게 끊는다.
모두의 시선이 부실 입구로 향한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늘씬한 체구의 미소녀.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였다.
어색한 정적이 아리스와 히로인들 사이에 흐른다.
탁.
아리스 뒤의 문이 닫힌다.
“······이게 대체 뭐죠?”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사람은 아리스.
그녀가 현수막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제1회 세라땅······. 체육대회 대책 회의······?”
현수막을 소리 내서 읽은 아리스의 시선이 히로인들에게 향한다.
“히끅!”
시선이 마주친 마코토가 딸꾹질한다.
“파렴치한 풍기 문란 행위는 다행히 아닌 것 같지만······. 이사장님의 대책 회의라니,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중인 겁니까?”
학생회장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아리스의 질문에 다들 당황하고 있던 그때.
“니시시시. 아-쨩 언니. 있지, 아-쨩 언니는 세라땅 할머니가 덕성 오빠를 좋아해서 우리 반에 특별 전학 온 것도 모자라서 이인삼각 파트너가 된 사실. 알고 있었어? 그거 때문에 회의한 거야. 니시시.”
여전히 태연한 웃음을 흘리면서 하루가 말한다.
하루의 말에 아리스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사전에 전부 알던 사실입니다. 슈오우 학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저,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의 소관이니까요.”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세이라의 특별 전학 정도는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안 말렸어? 아-쨩 언니는 세라땅 할머니랑 친하잖아. 솔직히 초 카와이 JK 하루가 생각하기엔 이번 건은 초 무리수 같은······.”
“제게 이사장님을 말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리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하루의 말을 자른다.
자격이 없다.
그 말을 들은 모두의 눈빛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쨩 언니.”
“여러분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분과 가장 가까이 지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사장님은······. 기계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드르륵.
아리스가 빈자리에 앉는다.
이사장님이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리스는 둔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화려하게만 보이는 세이라의 뒷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질투할 자격도 제지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리스에게 있어서 세이라는 은인이자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리스는 후배들이 세이라의 마음을 알아차린 지금, 그녀들에게 진실을 알려 줄 필요를 느꼈다.
“파이브 크라운즈, 인류를 구한 다섯 EX랭크 영웅. 세계의 구원자. 백색 여제. 그분의 화려한 이명 뒤에는 인류 문명의 방파제라는 대의를 위해 끝없이 자기 희생하는 처절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리스의 입에서 나온 세이라의 과거는 처참했다.
슈오우 학원의 이사장이 되기 이전, 파이브 크라운즈 시절의 세이라는 그야말로 기계 같은 삶을 살았다.
대재해 당시, 게이트를 통한 이세계의 침공을 받은 지구는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그녀는 파이브 크라운즈의 동료들과 함께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이계종과의 전장에서 보냈다.
세상은 당연한 듯 세이라에게 의지했고, 세이라는 인류 문명을 짊어지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적과 싸웠다.
그녀에게 있어 일상이란 곧 전쟁이었다.
세이라에게 개인적인 삶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대재해가 종결된 뒤에도, 그녀는 새롭게 나타난 빌런의 위협에 맞서 세계를 지키고 후임을 양성했다.
그렇게 세이라와 파이브 크라운즈는 이계종과 빌런의 위협에 맞서 인류와 세계를 지키는 영웅 시스템과 협회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 그녀를 포함한 파이브 크라운즈의 은퇴가 결정되었다.
20년 동안 개인적인 삶 없이 기계 부품처럼 세계에 공헌하기만 했던 삶에서 드디어 해방되는 날이, 영웅이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서 살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그때,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행은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날에 찾아왔다.
10년 전, 그날.
아들처럼 아끼며 키웠던 제자 프로페서가 그녀를 배신했다.
사랑했던 남자인 검성 쿠로사와 아키라와 그의 가족이 메사이어에게 살해당하고 멸족당했다.
흑태자 라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데스페라도 데미안 하이젠버그, 레드 스타 니콜라이 카사트킨 역시 같은 날에 공교롭게도 죽었다.
상처를 입은 그녀는 다시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모두 한날한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은퇴 이후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려던 세이라의 꿈은 그날 산산 조각 났다.
평생을 걸쳐 세계와 인류를 수호했던 세이라의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이사장님은 이번에는 복수를 위해서 그녀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잃은 상처는 이사장님의 마음에 깊은 상흔과 공허를 남겼습니다.”
아리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장님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사장님께서는 매일 밤마다 동료분들을 그리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1학년 시절, 처음 대면했을 때 언제나 그늘졌던 그녀의 얼굴을.
진심으로 웃지 않았던 세이라의 얼굴을.
매일 남몰래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다가 같은 집에 살던 자신에게 들켜서 당황하던 세이라의 모습을.
“······그랬던 이사장님이 그날, 처음 진심으로 웃었습니다.”
그건 김덕성과 처음으로 면담했던 날이었다.
그날, 아리스는 처음으로 얼굴에 그늘이 사라지고 진심으로 기뻐서 좋아하는 이사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이사장님께서 30년 만에 처음 찾아낸, 백색 여제가 아닌 요시자키 세이라라는 한 여자로서의 개인적인 행복이었습니다.”
아리스의 눈동자가 히로인들을 향한다.
“그런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분의 행복을 제지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는 그분의 행복을 제지할 자격이 없다.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닫았다.
아리스의 말과 함께 부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