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98)
다(삽화 有)
슈오우 영웅 학원.
운동장.
본관 건물 바로 앞에 펼쳐진 넓은 운동장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만국기가 줄에 매달린 채로 휘날리고 있었다.
사열대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백색 천막과 홍색 천막이 펼쳐져 있었다.
홍백전 컨셉인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의 풍경이었다.
본관 창문에는 반마다 형형색색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운동장 입구에는 저런 문구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표어가 왜 저래.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 그대로의 모습.
“가자꾸나. 꼬마야.”
부르마 체육복을 입은 세이라가 나를 1학년 A반 대열 맨 끝으로 이끈다.
오와 열을 맞춰서 선 1학년 A반 생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체육대회에 맞춰 체육복을 스패츠에서 부르마로 변경한 탓인지, 옛날 러브 코미디 만화처럼 부르마를 입은 여생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부르마는 대체 언젯적 부르마야 진짜.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래도 평소와는 달리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은 덕분에 움직이는 건 좀 편하다.
마치 군대에 있던 시절 주말에 전투복 대신 활동복을 입고 일과를 보내던 그때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입은 교복은 생각보다 불편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꺄악! 검은 귀축이야!”
“아침부터 세라땅이랑 같이 오다니.”
“세상에, 세라땅님마저 검은 귀축의 마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의 수군거림.
그 목소리를 들은 세이라가 으쓱하면서 내 팔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낀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래?
[후우······.]흑태자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지이이이이······.”
“이사장님, 아침부터 주인님 바로 옆이라니, 이거 권력 남용이야.”
“으으으으으······. 그의 전속 시녀는 저일 텐데······.”
“우우우우! 세라땅 할머니 초 무리수!”
“큿······.”
엑스트라들에 이어서 이제는 히로인들까지.
마코토, 에리, 올리비아, 하루, 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은 세이라의 어깨가 으쓱한다.
세이라가 한층 내 옆에 달라붙던 그때.
“이사장님······. 아니 세라땅 생도. 지금은 개회식 시간이에요. 줄을 맞춰 서야해요.”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난 마유즈미 선생님이 세이라를 내 옆에서 떼어낸다.
“훗. 알겠도다.”
마유즈미 선생의 말에 순응하는 세이라.
“선생님 최고!”
“역시 검은 귀축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뿐이야!”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뜨린다.
라노벨 세상다운 풍경.
한숨이 절로 나오던 그때.
툭.
운동장에 설치된 스피커에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사열대 위에 선 은빛 머리 미녀, 사이온지 아리스가 보인다.
학생회장인 그녀가 특별 전학생인 이사장 대리로 체육대회 개회사를 맡은 모양.
체육복 상의에 하의로 부르마를 입은 아리스의 팔뚝에는 평소처럼 학생회장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백팀을 상징하는 하얀 머리띠가 둘러져 있다.
“안녕하십니까. 생도 여러분. 이사장님 대리로 개회사를 담당하게 된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입니다.”
아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중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꺄아아아아아악! 학생회장 선배다!”
“회장 선배! 칸사이 사투리 해줘요!”
“체육복 차림 회장 선배도 너무 멋있어!”
“최고다!! 사이온지 선배!”
전 학년 최고의 아이돌답게 인사만 했는데도 모두가 열광하는 모습.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과거 어떤 상황에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던, 완벽 초인 아가씨를 연기했던 때와는 달리 스스로의 감정을 조금씩 표출하는 모습.
나쁘지 않다.
“흠흠. 다들 정숙해주세요. 정숙.”
아리스가 헛기침을 하자 운동장이 급속도로 조용해진다.
“오늘은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슈오우 영웅 학원의 체육대회는 전 학년 모든 생도가 참여하는 축제와 화합의 장입니다. 모두 오늘 하루만큼은 학업은 잠시 잊고 체육대회를 순수하게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의례적인 개회사가 아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는 생도 간의 순수한 육체의 기량을 겨루는 대회로, 기마전을 제외한 종목에서는 마력, 기프트, 초상병기 사용은 금지됩니다.”
이건 원작에서도 나왔던 체육대회 규칙.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리스 대신 이사장이 말했던 대사다.
기마전을 제외하면 능력 사용은 금지된다.
그 말은 거꾸로 보자면 기마전에서는 능력 사용이 허용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기에 슈오우 영웅 학원의 하이라이트는 화려한 기프트가 총동원되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기마전이다라는 것이 설정집에 나온 설명이다.
“······또한 체육대회에서 MVP로 뽑힌 생도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데이트 신청권을 증정합니다.”
아리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한다.
데이트 신청권.
생도 중 원하는 사람을 지명해서 일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티켓으로 강제성은 없지만 관례상 거부하기 힘든 그런 물건이다.
당연하게도 원작 체육대회 에피소드의 핵심 아이템으로 원작에서는 유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히로인들이 체육대회에서 사생결단처럼 경쟁하는 장면이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데이트 신청권이라니, 히로인 캐빨 편의주의를 정당화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라노벨다운 설정이다.
한국 웹소설이었다면 유니크 아이템을 포상으로 내걸었을 텐데.
역시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따위에 빙의하는 게 아니었다.
상태창도 레벨업도 없는 염병할 세상 같으니.
“방금 들었어? 황녀님. 데이트 신청권이래! 에리링, 무조건 MVP 차지할 거야!”
“좋아요! 이번에야말로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활약할 차례로군요! 오호호호호호호호! 백금의 기사공주라는 이명이 허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어요!”
“지금 실컷 웃어둬라. 어차피 MVP는 내 차지니까, 보나파르트.”
“나도, 나도 MVP 할래!”
“니시시시, 언니들 김칫국 드링킹 하는 거 초 웃겨. MVP는 초 귀여운 체육계 갸루 JK 하루의 차지라구!”
에리, 올리비아, 린, 마코토, 하루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염병.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훗······. 꼬마들이 귀엽게 노는구나.”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어디선가 검은 레이스 부채를 꺼내 살랑살랑 부쳐댄다.
“어차피 MVP는 이 몸의 차지이거늘······.”
아니 당신도냐고.
[······.]침묵하는 흑태자.
나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그때.
“······주의사항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슈오우 영웅 학원 체육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리스의 개회사가 끝나면서 폭죽이 터진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체육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체육대회 개회 선언 이후.
나는 1학년 A반이라 적힌 천막에 앉았다.
기마전과 공 던져넣기는 어차피 단체전.
빠질 방법은 없으니 적당히 조용하게 묻어가면 된다.
이인삼각 이어달리기가 문제긴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다.
“첫 번째 종목은 미션 달리기입니다!”
체육대회의 진행을 맡은 사람은 신문부의 아마노 노도카.
그녀가 안경을 반짝이면서 사열대에 서서 마이크로 말하고 있었다.
“미션 달리기는 개인전으로 진행됩니다. 홍팀과 백팀, 양팀에서 각각 대표 주자 한명을 뽑아서······.”
노도카가 룰을 설명한다.
이미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와서 알고 있는 내용.
대충 달리다가 트랙 중간쯤에 제시되는 미션에 적힌 사항을 수행한 뒤에 결승전까지 상대 주자보다 먼저 골인하면 승리하는 종목이다.
원작에서 주인공 유지에게 제시된 미션은 금발 머리 생도 업고 달리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라노벨다운 미션.
덕분에 원작에서 주인공은 올리비아를 업고 뛰었는데.
뭐 그건 원작이라 그렇고 그 많은 홍팀 생도 중에서 내가 대표 주자로 뽑힐 리는 없겠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이건 그냥 강 건너 불 구경하면서 팝콘이나 뜯으면 된다.
“그럼 각 팀 주장들은 대표 주자를 뽑아주세요!”
노도카의 사회 진행과 함께 홍팀과 백팀 주장이 운동장 중앙에 서서 서로 마주본다.
백팀의 주장은 당연히 하얀 머리띠를 두른 아리스.
“백팀 대표 주자는 주장인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녀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한다.
아리스는 원작에서도 주인공의 상대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홍팀 주장이 뽑은 대표 주자인데.
“흐음, 그럼 우리 홍팀에서는······.”
유지가 홍팀 주장이었던 원작과는 다르게 지금의 홍팀 주장은 빨간 머리띠를 머리에 두른 백발 적안 미소녀, 세이라인 상황.
그녀가 설마 날 뽑겠어?
에이 설마.
“이 몸은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도록 하지. 자! 이 몸의 팀원들이여! 대표 주자로 누구를 선출하였으면 좋겠느냐?”
세이라의 외침에 사열대 기준 왼쪽에 자리한 홍팀 진영이 술렁대기 시작한다.
설마 여기서 나를······.
“검은 귀축은 어떨까?”
“우리 팀에 검은 귀축도 포함이야?”
“그럼 당연히 검은 귀축이지!”
“검은 귀축이요!!”
“검은 귀축 김덕성 군!”
“검은 귀축!! 나와라!!”
“검은 귀축!! 달려라!!”
“침대 위의 볼트! 트랙 위의 볼트가 되어줘!!”
이런 씨발.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침대 위의 뭐?
[푸, 푸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 파트너 잘됐네! 파트너를 원하는 팀원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이 흑태자 님도 예상 못 한 상황이라고.]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웃는다.
검은 귀축을 연호하는 홍팀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빨리 세이라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세이라가 요염한 척 웃는다.
이거 불안한데.
“그럼 이 몸은 우리 홍팀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대표 주자로 김덕성 군을 내세우도록 하겠다.”
염병.
[파트너, 운명을 받아들여. 홍팀의 대표 주자라는 영광스러운······.]‘하기 싫은데.’
[미션 달리기에서 승리하면 개인 점수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어. 그럼 MVP를 획득해서 데이트 신청권을 얻을 확률이 수직 상승한다고.]‘그런 거 관심 없어.’
웹소설처럼 유니크 아이템도 아니고.
[그럼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는 건 괜찮고?]흑태자의 말을 들은 순간.
몸이 살짝 멈칫한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 말은 특정한 히로인에게 데이트 신청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
신청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히로인들을 생각하니 벌써 오한이 돈다.
그런 꼴을 볼 바에는 차라리······.
내가 데이트 신청권을 따내서 상황의 주도권을 쥔 뒤에 아예 신청권을 사용 안 해서 존재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편이 낫다.
그편이 덜 피곤하다.
‘아니, 안 괜찮아.’
[좋아. 바로 그 마음가짐이야. 파트너.]흑태자가 말한다.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검은 귀축 파이팅!”
“꺄아아악! 검은 귀축!”
“홍팀의 자랑! 검은 귀축! 출격!”
“백팀을 이겨줘!”
“난 회장 선배가 더 좋은데······.”
뒤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함성이 들린다.
펄럭.
내 뒤에서 홍팀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휘날린다.
시야에 운동장과 함께, 내 상대 선수인 아리스가 트랙 위에서 몸을 푸는 모습이 보인다.
이왕 대표 주자가 된 이상,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이 빌어먹을 미션 달리기에서.
*
대표 주자를 선출한 뒤.
홍팀 진영에 마련된 주장 특별석으로 돌아온 세이라가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친다.
세이라가 염동력으로 공중에 띄운 검은 레이스 양산이 뜨거운 가을 햇살을 가린다.
“후후후······.”
세이라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이번 미션 달리기에서 홍팀 주자 미션은 미소녀 이사장 공주님 안기로 함께 뛰기.’
세이라 본인이 권력 남용을 통해 직접 끼워 넣은 미션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학원에서 미소녀 이사장은 그녀밖에 없었다.
이것이 세이라가 검은 귀축, 김덕성을 대표 주자로 내세운 이유였다.
홍팀 진영에게 물어본 것 역시 그녀의 계획.
홍팀 생도들이 당연히 학원에서 여러 소문으로 유명한 검은 귀축을 대표 주자로 추천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두근, 두근.
그의 품에 안길 생각을 하니 세이라의 심장이 제멋대로 뛴다.
화악.
세이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세이라가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을 애써 감추면서 붉은 눈동자로 운동장을 응시한다.
‘자, 꼬마야. 어디 한번 이 몸이 있는 곳까지 달려보려무나.’
검은 레이스 부채 너머로 가려진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그런 그녀의 뒤통수를 한 쌍의 시선이 노려보고 있었다.
분홍 머리 미녀.
마유즈미 마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