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03)
제 301화
패배?히로인 모임
점심시간.
백팀 진영.
화기애애한 홍팀 진영과는 달리 백팀 진영에는 엄숙한 비장미가 감돌고 있었다.
살얼음판 같은 백팀 진영 한복판에는 그녀가 있었다.
보름달을 닮은 은빛 머리카락과 은빛 눈동자가 매력적인 미소녀.
부르마가 잘 어울리는, 팔다리가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에 풍만한 가슴이 인상적인 아리스의 얼굴은 지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시락, 기껏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녀 앞에는 전형적인 일본식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하얀 쌀밥, 계란말이, 문어 모양으로 자른 비엔나소시지, 멘치카츠, 새우튀김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반찬.
전부 그를 생각해서 만든 도시락이었다.
하지만 홍팀과 백팀은 점심도 다른 자리에서 따로 먹는다는 규정이 체육대회 점심시간에 갑자기 공포된 덕분에 그녀는 혼자서 먹어야 했다.
“······후배 군······. 내가 만든 도시락, 먹여주고 싶었는데······.”
아리스 옆에는 카스미가 있었다.
보라색 머리,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카스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카스미가 준비한 도시락은 오므라이스.
케찹으로 귀엽게 미소까지 그린 도시락이었는데, 결국 못 전해준 것이다.
“······후배 군은 나쁜 남자야. 내가 준비한 도시락도 안 먹어주는······.”
카스미의 시선이 백팀 진영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돗자리 위에 하하호호 웃으며 도시락과 후식을 즐기고 있는 김덕성과 히로인들이 있었다.
올리비아, 린, 하루, 마코토, 에리, 세이라까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우우우······.”
카스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읏······. 호시노 양. 이래서야 패배 히로인 모임 같지 않습니까?”
그 모습을 본 아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우울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들이 있는 돗자리 반경 10m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모두 두 소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한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무서워.”
“우리 백팀, 이길 수 있는 걸까?”
“저게 여자들의 질투? 무서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는데, 정말인가 봐.”
소곤소곤거리는 엑스트라들.
하지만 카스미와 아리스의 귓가에 엑스트라들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들이 죽은 눈으로 눈물 젖은 도시락을 씹어먹고 있던 그때.
“회장님. 호시노 양.”
올리브색 머리 미소녀, 학생회 부회장 모리시타 미호가 그녀들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입니까? 부회장.”
“무슨 일이에요. 부회장님?”
초점 없는 두 쌍의 시선이 부회장에게 향한다.
“두 분 다 너무 우울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오후 종목인 공 던져넣기랑 기마전을 이기면 우승도 MVP도 우리 백팀 차지니까요!”
부회장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한다.
그녀가 이마에 두른, 백팀을 상징하는 하얀 천이 오늘따라 유난히 하얗다.
“MVP······. MVP······. 그렇군요.”
아리스의 눈동자에 초점이 다시 돌아온다.
체육대회 MVP를 따내면 데이트 신청권이 수중에 들어온다.
암울한 점심시간 때문인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부회장이 상기시켜준 것이다.
아리스가 MVP를 중얼거리던 그때.
“하지만 회장 선배. 기마전에서 우리 팀이 이길 수 있을까요?”
카스미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죠. 호시노 양.”
“그렇지만 홍팀에는 이사장님이 특별 전학생으로 있잖아요. 이능력 사용이 허가되는 기마전에서 우리가 백색 여제를 상대로······.”
카스미가 말끝을 흐린다.
그녀의 말에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요시자키 세이라.
1학년 A반에 특별 전학생 자격으로 합류해서 홍팀 주장을 역임 중인 그녀의 랭크는 무려 EX.
백색 여제, 파이브 크라운즈,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
각종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녀였다.
아무리 부상 상태라더라도 생도 수준 정도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세이라가 진심으로 전력을 다한다면 체육대회에서 가장 많은 점수가 배정된 기마전의 승리는 당연히 홍팀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건······.”
아리스가 말끝을 살짝 흐린다.
어쨌건 이건 체육대회.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 할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아리스 본인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세이라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데이트 신청권을 노리고 있는 건 세이라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전력을 다해 기마전에 임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사장님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그럴 권한도 없고······.”
“배제가 아니라 제한은 어떨까요? 회장 선배.”
아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하는 카스미.
“이사장님께서 EX랭크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거죠.”
카스미가 생글 웃는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완전 배제는 불공평하다.
하지만 제한이라면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합리적인 방안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럴 권한이······.”
“그건 제가 할게요.”
카스미가 웃는다.
그녀가 휴대폰을 든다.
“제가 마유즈미 교관님과 친분이 좀 있거든요. 교관님한테 부탁할게요.”
“······감사합니다. 호시노 양. 신세를 졌군요.”
카스미의 말에 아리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사장님은 그녀에게 있어 스승이자 제2의 부모님 같은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데이트 신청권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좋아. 호시노 양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 기회에 데이트 신청권을······.’
화악.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와 데이트하는 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쿄의 명소를 함께 돌아다니고, 라멘도 함께 먹는 그와 본인의 모습이.
두근두근.
아리스의 심장이 뛴다.
그 모습을 보던 카스미의 눈동자가 둥글게 휘어진다.
‘좋아요.’
하렘 계획 내부에 그녀의 우군을 만든다.
마유즈미 선생의 포섭은 이미 거의 완료되었다.
그런 카스미의 다음 목표는 바로 사이온지 아리스였다.
아리스는 모든 면에서 그녀의 우군이 되기에 최적의 상대였다.
아직 하렘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생도면서, 김덕성을 좋아하고 있고, 현재 선두 주자인 올리비아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거물이라는 점이 그러했다.
‘후배 군은 회장 선배를 유난히 좋아했으니까······.’
카스미는 김덕성의 마음이 아리스에게도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회장 선배야말로 제 체스판 위의 여왕님으로 가장 어울리는 존재······.’
체스판 위의 전차가 마유즈미 선생님이라면, 실버 퀸 사이온지 아리스야말로 체스판 위의 여왕이자 조커 카드로 손색없는 대상.
카스미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녀는 반드시 포섭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의 빚을 지운 지금이야말로 아리스를 하렘 계획으로 포섭할 절호의 기회였다.
“호시노 양, 그······. 도움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아리스가 살짝 머뭇거리며 말한다.
뜻밖의 상대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슈오우 체육대회 MVP 수상자는 오직 한명뿐.
원칙대로라면 카스미 역시 아리스 본인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MVP를 결정하는 개인 점수가 순위권 밖인 카스미가 그녀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의 도움은 그녀의 순수한 호의다.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후배한테 호의를 받다니······.’
모두의 모범인 학생회장으로서, 모든 생도의 선배인 3학년으로서 후배를 이끌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호의를 받아버렸다.
김덕성 이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호의를 받았으니 뭔가 보답해야 한다.
아리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카스미가 웃는다.
“보답······. 딱히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회장 선배한테 바라는 일이 하나 있긴 해요.”
“그게 뭡니까? 호시노 양.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아리스의 말을 들은 카스미가 청순하게 웃는다.
그녀가 말한다.
“회장 선배가 후배 군의 하렘 계획에 합류해서······. 제 편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카스미의 말이 끝난 순간.
아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백팀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었다.
*
그런데 EX랭크인 세이라가 진심으로 참전하면 이거 반칙 아닌가?
어쨌건 이기는 거니까 나야 좋지만, 가장 큰 점수가 배당된 기마전에서 세이라의 하드캐리로 우승한다면 데이트 신청권은 세이라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내 계획은 데이트 신청권을 수중에 넣어서 무효화하는 것.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데이트 신청권을 가져가게 둘 수 없다.
역시 세이라를 배제해야······.
“후후후. 어차피 꼬마의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이 몸이 될 것이다.”
세이라가 제비뽑기 통을 흔들며 주접을 부린다.
통 안에 가득 찬 제비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저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니 불안하다.
이인삼각 파트너 뽑기 때처럼 또 제비 조작하는 거 아냐?
세이라가 꺼낸 제비뽑기 통을 바라보던 히로인들을 응시하던 내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이사장님. 아니 세라땅.”
이질적인 목소리가 히로인들과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유즈미 선생님?”
에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마유······.”
세이라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흠흠. 방금 임시 교무회의에서 특별 전학생 대상 임시 규칙을 신설했어요!”
마유즈미 선생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말한다.
임시 규칙이라고?
갑자기 뜬금없이?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유즈미 선생이 살짝 웃으면서 평소처럼 명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EX랭크 생도는 기마전에서 S랭크 수준의 힘만 사용해야 한다! 예요!”
누가 봐도 세이라를 저격한 규칙.
하지만 합리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반쪽 EX랭크라고 해도, 세이라의 힘은 다른 생도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수준.
이 정도 제한이 없다면 이능력 사용 가능한 기마전은 세이라의 원맨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 정도야······. 수용하도록 하지. 훗.”
세이라가 검은 레이스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한다.
그녀의 부채 끝이 파르르 떨린다.
[누님······. 애들 체육대회에서 진심전력을 내려고 하셨습니까······.]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탄식을 터뜨린다.
아무래도 내 우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돌겠네.
누구도 모르는 사이 세이라의 음모를 저지한 마유가 웃는다.
“그리고 두 번째, 기마전 조 편성은 저희 교무회의에서 교관들의 논의와 임의 추첨을 통해 일괄 결정했어요!”
마유의 말에 세이라의 얼굴이 다시 굳는다.
부스럭.
그녀가 터질 것 같은 가슴골 사이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낸다.
아니 왜 거기서 또 서류를 꺼내냐고.
미치겠네.
“여기! 김 군의 기마전 조 편성이에요!”
내가 어질어질하거나 말거나, 마유가 꺼낸 서류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내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 적힌 조 편성에는.
[기마전 조 편성] [홍팀 B조] [김덕성] [카미야 마코토] [니시자와 에리] [시노자키 린]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세이라의 이름이 없었다.
“으윽······!”
옆에서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얼굴을 가린 검은 레이스 부채가 아까보다 더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마유즈미 선생 손에 들린 명단을 응시하는 백발 적안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였다.
그녀의 음모가 본의 아니게 마유즈미 선생에게 전부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