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15)
제 313화
빌헬미나 하이젠버그(삽화 有)
“오, 오빠. 흐, 흑역사라니······. 세-라땅은 그런 어려운 말 잘 몰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세이라.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이고 누님······.]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목소리로 탄식을 흘리는 흑태자.
“그만하시죠. 이사장님.”
그래, 이건 좀 아니다.
흑태자도 보기 민망해하지 않는가?
나도 보기 좀 그렇다.
“······.”
내 말에 침묵을 지키던 세이라가 하얀 곰인형을 끌어안으면서 입술을 삐죽인다.
“쳇······. 눈치 빠른 꼬마는 이래서 싫은 것이도다.”
붉은 눈동자로 이쪽을 힐끔힐끔 보는 세이라.
유아 퇴행인 척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어리광 안 부리니까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꼴은 내가 도저히 못 보겠다.
내 말을 들은 세이라의 몸이 움찔한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한다.
“······정말인가?”
하얀 곰돌이 인형에 얼굴을 묻은 세이라.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붉은 뺨을 가린다.
“저, 정말 지금 모습도 좋은 것이냐······?”
스윽.
다시 내게 다가오는 세이라.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혀 짧은 소리 내는 것보다는 낫다.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네.”“후후. 역시 우리 꼬마야. 드디어 이 몸이 지닌 어른의 매력을 알아주는구나.”
촤르륵.
세이라가 품에서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얼굴을 가린다.
어른의 매력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내가 뭐라하려던 그때.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린다.
거기에는······.
“안녕, 김. 나 병문안 왔어.”
“안녕하세요. 김덕성 님.”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하는 유지와 그 옆에 찰떡처럼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낀 쿠사나기가 있었다.
뭐야?
왜 히로인들이 안 오고 주인공이 오는 거지?
문이 닫힌다.
어이가 없어진 그때.
탁.
유지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와 오렌지 주스 선물 세트를 서랍 위에 올려놓는다.
뭐지?
이 쓸데없이 정석에 충실한 한국 병문한 선물 세트는.
“선물이야. 한서진 씨가 한국 병문안 선물은 과일 바구니랑 주스 선물 세트가 제일 인기 많다고 해서 사 왔어. 마음에 들어?”
“아, 어······. 근데 왜 네가 왔냐?”
히로인들이 와서 평소처럼 왁자지껄 병원이 시끄러워질 걸 각오했는데, 뜬금없이 유지가 오니까 조금 어색하다.
“아······. 다들 김 병문안보다는 훈련에 집중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대신 왔어.”
다들이라면 히로인들을 칭하는 말일 터.
그런데 훈련에 집중이라니?
갑자기?
“집중이라고? 왜?”
“그건······. 보나파르트 양이 병문안보다는 훈련에 집중해서 더 강해져서 김을 돕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게 진짜 널 돕는 길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게 전해달래.”
유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실 나도 훈련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병문안을 아무도 안 가면 쓸쓸하니까, 내가 대신 왔어. 모두를 대표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유지.
그래서 유지 혼자 온 건가.
히로인들이 병문안 갈 시간까지 아껴가며 훈련에 매진하다니.
그게 나를 돕는 길이라니.
안 그래도 메사이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히로인들의 전력도 향상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그래서 조만간 단체 훈련을 지시할 예정이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본인들 의지로 스스로 훈련할 줄은 몰랐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빌어먹을 호구들 같으니.
[캬, 역시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훈련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성실함이라니! 파트너. 넌 복 받은 줄 알라고. 알겠어?]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팔불출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그래.”
그래서 결국 병문안 온 게 유지라는 말이지?
게다가 옆에 쿠사나기도 붙어 있고.
유지만 오는 거면 몰라도 쿠사나기까지 같이 오다니.
“오메가 랭크 이계종 토벌은 완료됐어. 김이랑 이사장님이 상대했던 빌런 프로페서는 협회 직속 빌런 교도소에 갇힌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고······.”
유지가 내가 쓰러진 사이 있었던 일들을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의 말에서 내가 알아낸 사실은 아포칼립스 레드 드래곤의 토벌이 사망자 0명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는 것.
그리고 프로페서가 살아서 교도소에 갇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기마전의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체육대회는 슈오우 영웅 학원 역사상 최초로 홍백 양팀의 무승부로 끝났다는 소식도 있었다.
“MVP는 어떻게 됐는데?”
“아, 그건······.”
부스럭.
유지가 품에서 봉투와 금색 메달을 꺼낸다.
“김이 이번 체육대회 MVP로 선정됐어. 여기 메달이랑 부상.”
원래라면 시상식을 열어야 정상이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이렇게 전달하게 됐다고 유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에게서 메달이랑 부상을 받는다.
봉투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부상은 데이트 신청권.
중간에 여러 가지 일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MVP를 따낸 것이다.
“호오······.”
옆에서 세이라가 데이트 신청권을 바라본다.
‘역시 이건 내가 가지고 있다가 무효로 만들어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파트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고.]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니?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냥 챙겨두는 게 어때?]쓸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용 안 하고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무효나 다름없으니 상관은 없겠지.
‘그래.’
[잘했어, 파트너.]흑태자의 쓸데없는 칭찬을 들으면서, 유지가 가져온 음료수 선물 세트 상자를 뜯어서 노란색 오렌지 주스 병뚜껑을 따서 마셨다.
꿀꺽, 꿀꺽.
미지근하기는 하지만, 달콤한 오렌지 주스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이사장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이 정도야 이 몸한테는 별 거 아니니라.”
옆에서 유지와 세이라가 안부를 주고받는 걸 들으면서 내가 오렌지 주스의 맛을 음미하고 있던 그때.
“아, 그리고 김덕성 님께 드릴 중대 발표가 있어요.”
스윽.
쿠사나기가 유지의 팔짱을 끼면서 말한다.
중대 발표?
게다가 언제나 날을 세우며 날 빌어먹을 게이로 몰아가던 평소와는 다르게 많이 누그러진 게 신경 쓰인다.
쿠사나기의 말에 빨개진 유지의 얼굴도.
뭐야, 얘네 둘 설마······.
“저 쿠사나기는! 저번 결전에서 마스터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운명의 붉은 실이 서로 이어진 거예요! 후후. 당신 따위가 쿠사나기와 마스터 사이에 끼어들 틈은 이제 요만큼도 없다고요!”
쿠사나기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가 얄미운 목소리로 웃는다.
“뭐?”
쿠사나기와 유지가 이어진 건 놀랍지도 않다.
원작에서도 유지는 오래전부터 쿠사나기를 사랑했다면서 엔딩에서 다른 히로인들을 전부 차 버렸으니까.
그런데 엔딩 이전에 유지와 쿠사나기가 이어지지 못한 건, 라노벨 주인공 특유의 둔감한 성격과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이었다.
물론 작품 외적인 이유로는 쿠사나기가 그 빌어먹을 히로인 인기 투표에서 1위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기 투표 생각하니까 아직도 화가 난다.
그때 올리비아랑 아리스 사이에 표만 안 갈렸어도······.
으득.
이가 갈린다.
그런데 벌써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고?
왜 이렇게 전개가 빨라.
“후후. 김덕성 님, 예상대로 놀란 표정이군요. 마스터께서 설명해주세요.”
“아······. 그, 그게······. 아하하하하······.”
얼굴이 잔뜩 붉어진 유지.
그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쑥쓰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쿠사나기 말이 맞아. 교, 교제하기로 했어······. 우리.”
그 뒤로 유지가 교제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길고 지루한 설명을 요약하자면 쿠사나기의 애정 공세 때문에 서서히 마음이 기울었다가, 오메가 랭크 이계종이라는 위기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각성, 합일했다는 말이었다.
“어, 그러냐? 축하한다.”
어차피 빙의 전부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빙의 후에는 게이 몰이나 하던 쿠사나기였다.
당연히 호감은 단 1%도 없고, 악감정뿐이다.
게다가 원작에서도 쿠사나기랑 유지는 서로 이어질 운명이 아니었던가?
그냥 제 자리 찾아간 것뿐이다.
“후후. 그러니 김덕성 님은 우리 둘만의 세계에 더 이상 끼어들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으, 으아······. 쿠사나기······. 다들 보는데······. 이러면······.”
그래도 눈앞에서 저러니까 좀 꼴불견이기는 하다.
빌어먹을 애정 행각은 좀 다른 데 가서 하면 안 될까?
내가 뭐라 하려던 그때.
“후후. 보기 좋구나. 쿠로사와 군. 쿠사나기 양. 역시 청춘이야. 흠흠. 청춘.”
내 옆에 앉아 있던 세이라가 이렇게 말하면서 슬며시 내 팔짱을 낀다.
“끼어들 생각 없으니까 둘이서 뭘 하던 알아서 해.”
유지와 쿠사나기의 연애 따위에는 별로 관심 없다.
“고마워. 김. 우리 사이를 축하해줘서······.”
유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축하는 무슨.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은근슬쩍 달라붙는 세이라를 견제하려던 그때.
“그래서 김은······. 그녀들한테 언제 솔직해질 거야?”
유지가 진지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묻는다.
갑자기 돌직구 확 들어오네.
나는 라노벨 주인공처럼 눈치 없는 바보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 하기는. 네가 말 안 해도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됐어, 단지······.”
내 말에 팔짱을 낀 세이라의 눈동자가 떨린다.
유지와 쿠사나기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아직은 때가 아닐 뿐이야.”
심상전개를 각성한 순간.
나는 이미 모든 걸 결정했다.
이쪽 세상의 인연과 원래 세상의 부모님.
둘 중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내가 독식하겠다고.
원작을 파괴한 내가, 그 대가를 전부 책임지겠다고.
문제는 아직 메사이어도, 양방향 게이트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일단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구나. 역시 김이야. 하하하하. 정말 대단해. 내가 동경하는 남자다운 말이야.”
유지가 웃는다.
와 방금 소름 돋았다.
동경?
미치겠네.
지금만큼은 옆에 팔짱을 끼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쿠사나기가 고맙다.
적어도 게이로 오해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흐음. 그렇구나.”
세이라가 내 곁에 붙은 채로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이제, 빌어먹게 끔찍한 국내 여론을 확인할 시간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너튜브 어플을 터치했다.
*
벳푸시.
얼마 전 베르세르크와 김덕성, 그리고 슈오우 학원 생도들의 충돌이 있었던 일본의 지방 도시.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벳푸는 게이트와 테러 사건으로 입은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였기에 벳푸는 재건 도중에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수많은 온천탕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는 이곳에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
아이보리색 머리가 인상적인, 흐리멍텅한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미소녀.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이름은 빌헬미나 하이젠버그.
대외적으로는 이명인 언더테이커로 알려진 EX랭크 빌런이었다.
그녀가 여기 온 이유는 프로페서가 전달한, 김덕성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정체를 추적하라는 메사이어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정체불명의 조력자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력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벳푸 시내의 현장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곰인형을 안은 언더테이커, 빌헬미나 하이젠버그가 벳푸의 거리를 걷는다.
“······이 근처······.”
탁.
언더테이커의 발걸음이 멈춘다.
그녀의 멍한 눈동자에 재건 중인 료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력······. 흔적 감지······. 해야해······.’
조력자의 마력 패턴을 파악할 수 있을 터.
자리에 멈춘 언더테이커가 눈을 감고 은밀하게 입 안으로 마술을 영창한다.
‘······매직 포스 서치.’
언더테이커의 영창이 끝난 순간.
마술이 발현되며 그녀의 시야가 흑백으로 변한다.
흑백으로 변한 시야 너머, 수많은 마력의 흔적이 그녀의 인지에 전해진다.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지나 희미해져서, EX랭크인 언더테이커 수준이 아니라면 감지가 불가능한 마력 패턴들을 언더테이커가 되짚는다.
‘이건 아니야······. 이것······. 아니야······.’
흔적으로 남은 수많은 마력 패턴을 필터링하던 언더테이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던 그때.
제일 희미한, 그리고 낯설지만 동시에 낯익은 모순된 마력 패턴이 언더테이커에게 느껴진다.
‘이건······. 목표물 근처 패턴······. 하지만 목표물 마력 패턴······. 아니야······.’
EX랭크 중에서도 최강에 가까운 그녀 수준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뛰어난 위장이 깃든 마력 패턴의 등장.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틀림없다.
그렇게 판단한 언더테이커는 해석 마술을 동원해 마력 패턴 위장 해석을 시작했다.
해석은 어렵지 않게 끝났다.
하지만 해석 결과를 언더테이커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왜냐하면 해석이 끝난 마력 패턴이 지목한 대상은 다름 아닌.
‘······라울······. 이라니······.’
흑태자 라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남동생이었던 데미안의 동료이자 베스트 프렌드이며, 10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10년 전에 죽은 라울의 마력 패턴이 어떻게 10년 후인 지금 다시 나타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마력 패턴과 흔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라울이 죽었다는 10년 전의 소식 자체가 거짓이던가.
아니면 라울이 죽음에서 소생했거나.
10년 전의 소식이 거짓일 확률은 거의 없다.
동생의 베스트 프렌드의 죽음을 몇 번이고 확인한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죽음에서 소생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언더테이커가 주먹을 말아쥔다.
“대답······. 들어야 해······.”
언더테이커의 눈동자에 빛이 조금 돌아온다.
메사이어의 임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메사이어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동생을 살릴 실마리가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으니까.
김덕성.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가진 그에게 가야만 한다.
한시라도 빨리.
마술을 해제한 언더테이커가 공사중인 료칸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도쿄도.
김덕성이 있는 슈오우 영웅 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