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19)
제 317화
빼빼로 데이
몸을 배배 꼬던 세이라와 내 눈이 마주친다.
“헛······.”
나와 눈이 마주친 세이라가 헛바람을 삼킨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말을 멈춘다.
“꼬, 꼬마야······.”
세이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부채를 꺼내 촤르륵 펼친다.
펼쳐진 레이스 부채가 그녀의 새빨개진 얼굴을 가린다.
“흠흠. 잘 잤느냐? 좋은 아침이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면서 멀쩡한 척 아침 인사를 날리는 세이라.
[아이고 누님······.]머릿속에서 어김없이 흑태자의 탄식이 뒤따른다.
“니시시시. 세라땅 할머니. 뭐야. 갑자기 왜 조신한 척이야. 아까 그렇게 이렇고 저렇고 그런 음란한 이야기 잔뜩 했으면서, 할머니인데 부끄럼 타는 거야? 그런 거야? 니시시. 초 웃겨. 완전 빵 터짐.”
하루가 입을 가리면서 세이라를 디스한다.
하루의 말에 세이라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으, 으으음란한 이야기라니?! 이 몸이 언제 그런······.”
“니시시시, 아까 순수한 처녀 JK 갸루 하루한테 세라땅 할머니가 그랬잖아? 그의 뜨거운 기운이 몸 안에 들어오는 순간 절정을 연상시키는 황홀······.”
“하루야! 그만! 그만 말하거라!”
하루의 역공에 정신 못 차리고 결국 항복을 선언하는 세이라.
“니시시시. 세라땅 할머니 부끄러워하는 모습 초 주책이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운 건 초 카와이 JK 갸루 하루뿐이라고.”
세이라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 하루가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금속 팔찌가 짤랑거린다.
“······으읏······.”
하루에게 덤벼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세이라가 입술을 오물거린다.
아침부터 이 난리라니.
머리가 아프다.
[파트너, 그런데 다른 아가씨들은? 안 보이는데?]흑태자가 말한다.
그의 말에 나는 이제야 위화감을 느꼈다.
매번 아침마다 같이 등교하면서 내 가방 쟁탈전을 벌이던 히로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라면 하루 말고도 린, 마코토, 에리, 올리비아가 여기 있어야 할 터.
그런데 하루와 세이라 말고는 아무도 없다.
대체 무슨 일이지?
머리를 갸우뚱한 순간.
“니시시. 덕성 오빠.”
하루가 나를 부른다.
하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귀여운 토끼 캐릭터 열쇠고리와 마카롱 열쇠고리 여러 개가 달려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분홍색 가방의 지퍼를 부욱하고 연다.
“여기! 선물! 오늘은 한국의 빼빼로 데이라며! 니시시시. 초 귀여운 JK 갸루 하루가 만든 덕성 오빠 한정 러브♡러브 특별 수제 빼빼로야! 니시시시. 아껴 먹어”
그녀가 열린 가방에서 하트 모양으로 포장한 선물 상자를 꺼낸다.
빼빼로 데이?
아니 그걸 어떻게?
일본에는 없는 기념일 아닌가?
순간 멈칫한 나는 하루가 서울에서 내 기억을 공유받았다는 사실을 간신히 떠올렸다.
나와 기억을 공유했다면, 빼빼로 데이 정도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별로 이상할 일은 아닐 터인데.
왠지 불길한 이 기분은 뭐지?
[파트너. 빼빼로가 뭐야?]“빼빼로 데이라고······? 빼빼로가 무엇이지?”
흑태자와 세이라가 동시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빼빼로를 모르다니.
하긴 모를 수도 있지.
그거 한국 과자니까.
일본에도 수출됐었나?
“니시시시. 빼빼로를 모르다니, 세라땅 할머니 초 할머니네. 유행에 초 뒤떨어진 할머니. 니시시.”
“으읏······.”
또다시 튀어나온 하루의 디스에 부채를 파르르 떠는 세이라.
“초 귀여운 JK 갸루 하루가 특별히 불쌍한 세라땅 할머니를 위해 이번 한 번만 알려줄게. 세라땅 할머니. 빼빼로는 한국의 포키 같은 막대 과자고, 빼빼로 데이는 11월 11일이 막대 과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연인들끼리 서로 사랑의 빼빼로 선물을 교환하는 기념일이야. 니시시시. 한국의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같은 특별한 날인 셈이지.”
하루가 의외로 제대로 된 설명을 늘어놓자 세이라의 눈동자가 떨린다.
“포, 포키?! 막대 과자를 주고받는 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포키라고 하니까 알아듣는 세이라.
[파트너, 저 설명 진짜야?]흑태자가 머릿속에서 묻는다.
‘어, 진짜야.’
쓸데없이 완벽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일본까지 와서 빼빼로 데이라니.
원래 이런 이벤트 스토리는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때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뜬금없는 이벤트 진행이 당황스럽다.
“이럴 수가, 이 몸은 전혀 몰랐군······. 으읏······.”
부채를 손에 쥔 채 몸을 파르르 떠는 세이라.
“니시시시. 이번에도 또 하루가 1승이네. 덕성 오빠. 그럼 초 귀여운 JK 여고생 하루랑 같이 등교할까? 하루가 준 러브♡러브 수제 빼빼로, 꼭 덕성 오빠 혼자 먹어야해. 알겠지? 니시시시.”
승리한 표정을 지은 하루가 내 옆에 달라붙으며 팔짱을 낀다.
그녀가 준 하트 모양 빼빼로 상자를 가방에 넣던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한서진이 화물용 핸드 카트를 밀며 나타난다.
핸드 카트 위에는 종이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니 저건 또 뭐야?
“김덕성님. 좋은 아침입니다. 등교하십니까?”
핸드 카트를 밀고 가던 한서진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중하게 인사한다.
“어, 그래. 근데 저 박스들 뭐야?”
“아, 이것 말입니까?”
한서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화물용 핸드 카트를 가리킨다.
“국민들께서 빼빼로 데이를 맞이하여 김덕성님께 보내온 빼빼로 선물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핸드 카트 위로 산처럼 쌓인 거대한 박스들을 보았다.
“저게 전부 빼빼로라고?”
저 많은 게?
군대에 간 연예인이 생일, 기념일마다 팬들에게 택배 선물을 산더미처럼 받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게 내 상황이 될 줄이야.
어안이 벙벙하다.
“예. 이건 전체 택배 선물의 0.1% 정도 분량입니다. 빼빼로의 제조회사인 로테그룹에서 김덕성님께 보낸 한정 특별 빼빼로도 있습니다. 마침 이사장님께서 여기 계시는군요. 택배 선물을 수용할 학원 창고 사용 허가서를 제출해뒀으니 이사장님께서 확인 바랍니다.”
전체 선물의 0.1%?
저게 전부 한국에서 온 빼빼로라고?
그럼 100% 분량의 빼빼로는 얼마나 되는 거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김덕성 님을 응원하는 위문편지도 함께 왔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위문편지까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학원 창고 사용 허가가 떨어지면 제가 전부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즐거운 학원 생활 되시길.”
한서진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화물용 핸드 카트를 몰고 지나간다.
“······저 빼빼로들 뭐야. 하루 잠깐 초 당황했어.”
“이 몸도 마찬가지이니라······. 빼빼로 데이가 한국에서 저 정도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었다니······.”
한서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이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세이라와 하루.
[흐음. 한국의 빼빼로 데이는 사실 엄청난 명절이었던 건가?]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그거 아니라고.
빼빼로 데이가 무슨 명절이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거 시작부터 불안한데.
*
기숙사 앞의 소란을 뒤로 한채, 세이라의 배웅을 받으며 하루와 함께 나는 본관 입구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내가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실내화로 갈아신으려던 순간.
“이거 뭐야?”
신발장 안에서 예쁘게 포장된 세 개의 상자가 나타났다.
가타카나로 김덕성이라는 내 이름이 적힌 상자.
상자에는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나쁜 후배 군을 위한 다크 초콜릿 막대 과자야. 잘 먹어. 후배 군. – 후배 군의 손에 떨어진 가련한 선배 호시노 카스미가] [이건 의리 막대 과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한국인 후배를 위해 한국 기념일을 챙긴 것일 뿐입니다. –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 [김 군! 막대 과자 맛있게 먹어요♥ – 김 군의 선생님이]사이온지 아리스, 호시노 카스미.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이라고만 적힌 이건 100% 마유즈미 마유가 보낸 빼빼로 같은데.
아니 근데 왜 신발장에 수제 초콜릿도 아니고 빼빼로를 넣는 거야.
일본 학원물 만화 발렌타인 이벤트도 아니고.
[오, 파트너. 이것도 그 빼빼로인가 뭔가 하는 막대 과자야?]흑태자가 말한다.
‘그런 거 같은데······.’
일본에서도 유명한 발렌타인 데이라면 모를까,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빼빼로 데이는 대체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거지?
의문이 들지만, 고맙기는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11월 11일에 제대로 된 빼빼로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빙의 이후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빼빼로를 받아볼 줄이야.
상상조차 못했다.
카스미 선배, 아리스, 마유즈미 마유가 만든 빼빼로를 가방에 넣고 복도를 걸어 교실로 간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자 평소와 같은 교실 풍경이 들어온다.
“검은 귀축이다!”
“꺄악! 나랑 눈 마주쳤어!”
“히이이익! 살려줘요!!”
등장하자마자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는 엑스트라들.
이제는 익숙해진 비명을 들으며 자리에 앉고는 무심코 손을 책상 서랍에 뻗는다.
“뭐지?”
거기서도 뭔가 만져진다.
신발장을 겪어보니 이것도 뻔하다.
학원물 이벤트처럼 책상 서랍 안에 빼빼로를 넣어놨겠지.
빼빼로를 꺼낸다.
파란색으로 포장된 빼빼로 상자와 주황색으로 포장된 빼빼로 상자가 보인다.
[덕성, 너를 위해 며칠 동안 준비한 시노자키류 비전 수제 막대 과자다! 부디 받아다오! – 네 미래의 현모양처 시노자키 린] [주인님! 에리링의 사랑과 애정이 잔뜩 들어가 있는 막대 과자,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먹어줄 거지? 에리링! 주인님이 막대 과자 먹는 상상만 해도 황홀해! – 주인님의 영원한 노예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상자에 꽂힌 카드 내용을 본다.
시노자키류 비전 수제 막대 과자는 대체 뭐야.
짐작도 안 간다.
에리가 만든 막대 과자는······. 카드 내용은 둘째치고 요리 실력을 보면 맛있을지도 모른다.
린과 에리의 빼빼로를 손에 들고 있던 그때.
“주군······.”
옆에서 수줍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얼굴을 잔뜩 붉힌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이거······. 어제 어제 밤새서 준비했어. 막대 과자야······. 헤헤헤.”
마코토가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면서 선물 상자를 꺼낸다.
오늘 빼빼로를 몇 개를 받은 거지?
“어, 그래. 고맙다. 수고했어.”
“으읏······.”
내 인사를 들은 마코토가 얼굴을 붉히던 그때.
“주인님! 에리링의 선물 받았어! 에리링,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수제 막대 과자 만들었어!”
“덕성, 나도다. 너를 위해 지금까지 배웠던 시노자키류 비전 요리술을 집대성해서 막대 과자를 만들었다. 부디······. 잘 받아다오.”
기다렸다는 듯 에리와 린이 내게 다가오면서 붉어진 얼굴로 본인들이 만든 빼빼로를 어필한다.
“어······. 그래. 다들 수고했다. 고마워.”
그녀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었는데, 무슨 발렌타인 데이처럼 이렇게 챙겨줄 줄은 몰랐다.
당황스럽네.
[파트너. 좋지? 좋으면서. 솔직하지 못하긴.]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였어?”
“빼빼로 데이라는데?”
“그게 뭐야?”
“한국의 기념일인데, 포키처럼 생긴 초콜릿 막대 과자인 빼빼로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래!”
“정말? 한국에는 그런 기념일도 있었구나.”
“낭만적인걸?”
귓가에 엑스트라들의 대화가 들린다.
그것도 평소와는 다른, 지극히 정상적인 대화.
아니 얘네 왜 이렇게 지극히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낯선 걸 넘어서 소름이 돋는 그때.
내 시선이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올리비아의 시선과 마주쳤다.
화악.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다.
“흐, 흥! 바보!”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거유를 부각하는 팔짱을 낀다.
평소의 올리비아······.
아니 평소의 올리비아는 아닌가.
살짝 불안해 하는 표정 같은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
‘으으으으······. 다들 빼빼로를 준비하다니······.’
올리비아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히로인들이 챙기지 않은 빼빼로 데이에 그에게 수제 빼빼로를 준다면.
그렇다면 선두 주자 자리를 굳힐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어떻게 안 거죠? 대체 어떻게······.’
올리비아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그때.
우웅.
올리비아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가씨. 방과 후에 주인님의 주인님을 옥상으로 불러내십시오.] [그 이후 비장의 계획, ‘빼빼로 게임’을 실행하는 겁니다.]그것은 방금 올리비아가 보낸, 다른 히로인들도 빼빼로를 준비했는데 어떻게 하냐는 질문 메시지에 대한 벨라의 대답.
그녀가 내놓은 답안지를 본 올리비아가 주먹을 불끈 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열정이 타오른다.
‘그래요!’
아직 빼빼로 게임이 남았다.
옥상으로 그를 불러내고, 한국의 전통대로 빼빼로 게임을 한다면······.
‘그렇다면 빼빼로 데이도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승리예요!’
두근두근.
올리비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김덕성과 자신의 입술이 부딪히는 광경이 떠오른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 어떻게 그, 그그그런 망측한······.’
괜히 부끄러워진 그녀가 빨개진 양쪽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마른 세수를 한다.
빼빼로 데이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