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20)
제 318화
옥상으로 따라와
어느덧 11월.
낙엽이 하나 둘 지기 시작하고,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는 시점.
교실에서 평소와 같은 일과를 보내고 있던 내 시야에 휴대폰 알림이 떠오른다.
[(영국여자) 김덕성님께 드릴 사랑의 빼빼로 메이킹 영상♥]뭐?
사랑의 빼빼로 메이킹 영상?
갑자기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이거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파트너. 저 영상 뭐야? 궁금한데? 눌러보면 안 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보면 안 되는 거야.’
[파트너. 우리 사이에 이럴 거야? 한 번만 눌러봐. 궁금해서 그래. 응? 남자 대 남자로서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줘?]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남자 대 남자는 무슨.
어이가 없다.
‘그래도······.’
[프린세스 에반젤린의 정성을 무시할 셈이야? 그건 신사답지 못한 일이야. 파트너.]내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흑태자가 내 말허리를 끊는다.
저렇게까지 말하니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안 그래도 빼빼로 선물이 톤 단위로 들어온 것 같아서 조금 거슬리는 참이었다.
국내 여론 확인을 위해서라도 영상을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눈을 딱 감고 너튜브 알림을 누른다.
[기체후일향만강하시었어요? 구독자 여러분! 한국을 사랑하는 영국 여자 에반젤린 스튜어트인 것이와요!]시작부터 들려오는 에반젤린의 쓸데없이 유창한 한국어 발음.
기체후일향만강 같은 말은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버킹엄 궁전 내부처럼 보이는 화려한 인테리어의 방 내부, 역시 화려한 장식이 인상적인 식탁 위에 빼빼로 재료가 널려 있다.
막대 과자부터 초콜릿, 그리고 불닭 소스까지.
엥? 불닭 소스가 왜 저기 있냐?
[하와와와와, 이제 곧 빼빼로 데이인 것이와요! 오늘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덕성 님께 드릴 수제 빼빼로를 만들도록 하겠사와요!]귀여운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에반젤린이 위생 장갑을 낀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쥔다.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공주님 귀여움 실화냐?] [오늘부터 에반젤린단이다 ㅋㅋㅋㅋㅋ] [예끼,,,, 이놈들~~~ 내 동년배들은 다 올리비아 지지한다~~~] [- 네 다음 6주 ㅋㅋㅋ] [- 엘랑스 주제에 어디서 ㅋㅋ] [- 영국 vs 프랑스는 무조건 영국이지 ㅋㅋㅋ] [이제 논영은 혐성국이 아니다 에반젤린 보유국이다!] [대영제국! 대영제국! 대영제국!] [이게 룰 브리타니아다!]개판이 된 댓글창.
[6주라니 이 자식들이······.]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분개한다.
아니 여기서도 6주 만에 항복한 거냐고.
원작 세계관은 대재해 이전부터 이능력자가 존재했다는 설정.
초능력자가 동원된 제2차 세계 대전이라니.
상상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후후, 우선 초콜릿을 중탕해서 녹이는 것이와요······. 그 다음은 데코레이션용 과자 가루를 뿌리고······.]에반젤린이 혼잣말을 하면서 초콜릿을 녹인다.
라노벨에 등장하는 영국인 캐릭터답게 린과 함께 원작에서 투톱 요리치였던 그녀다.
멀쩡하게 만드니까 오히려 불안하다.
[그 다음은 김덕성님께서 좋아하시는 불닭 소스를······.]냄비 안에서 녹는 중인 초콜릿에 새빨간 불닭 소스를 퍼붓는 에반젤린.
이럴 줄 알았다.
탄식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빼빼로 만드는 건 좋은데 불닭 소스는 대체 왜 넣냐고.
[후후! 이제 완성한 것이와요! 그럼 잠깐 김덕성님께 보내기 전에 중간 점검해야 하니까, 지금부터 친구를 게스트로 초대해 제가 직접 만든 빼빼로를 접대하겠사와요!]에반젤린이 눈동자를 반짝인다.
[빼빼로에 불닭소스 ㅋㅋㅋㅋ] [이게… 영국?] [혐성국 수준 ㅋㅋㅋㅋ 정어리 파이랑 장어 젤리의 나라 어디 안가죠? ㅋㅋㅋㅋ] [역시 혐성국보다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지 ㅋㅋㅋ] [올리비아님 만세!] [에반젤린님이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면 나는 불닭 빼빼로라도 좋아…]댓글은 이미 엉망진창이 된 상황.
그런데 게스트라니?
대체 누구를 부르려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계약자여, 무슨 일로 여를 부른 것이냐?]문제의 게스트가 나타났다.
진한 금발이 인상적인 안대 미소녀.
베아트리체였다.
[마침 잘 왔사와요! 트릭시 양! 여기 초콜릿 과자예요! 드셔 보시와요!] [오오! 맛있어보이는구나!]베아트리체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반짝거린다.
[실험체 트릭시 오늘도 등판 ㅋㅋㅋㅋ] [곧 독극물 먹고 피토할 예정 wwww] [매번 알면서도 당하는 ㅋㅋㅋㅋ] [솔직히 공주님보다 트릭시가 더 커엽지 않냐? ㅋㅋㅋ]트릭시가 등장하자마자 폭발하는 댓글 반응.
뭐야 게스트로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 아니었어?
[어서 드셔 보시와요! 트릭시 양!] [좋다. 그럼 계약자의 정성을 봐서라도 한번 맛 정도는 봐주겠다.]오만한 표정.
하지만 먹고 싶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던 베아트리체가 불닭 빼빼로를 집어서 입 안에 넣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컥.]얼굴이 새빨개지는 베아트리체.
그녀가 팔을 버둥버둥거린다.
[계, 계약자여! 이것이 초콜릭 과자가 맞는 것이냐?! 왜 이렇게 매운 것이더냐! 컥, 케헥!]빨개진 얼굴로 항의하는 베아트리체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반젤린.
[어머, 트릭시? 괜찮은 것이와요?] [물! 물을 다오! 물! 계약자여! 제발 여한테 감로수를······. 주, 죽겠도다!] [죽으면 안 되는 것이와요! 여기 물이······.]빨개진 얼굴로 난동부리는 베아트리체에게 에반젤린이 물을 가져다주는 순간.
삐익.
영상이 끊기고 아름답고 목가적인 서양 시골 풍경이 찍힌 영상으로 전환되었다.
[화면 조정 중입니다.]짹짹짹.
새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귓가에 울린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영상을 중단하고 댓글창을 본다.
[제대로 완성한 빼빼로는 김덕성님께 국제 택배로 보냈답니다! ^^]에반젤린이 단 댓글이 있다.
제대로 완성한 빼빼로?
그거 정말 제대로 완성한 물건 맞나?
갑자기 오한이 서린다.
[- 저도 보냈어요! 제 사랑이 담긴 수제 빼빼로!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네요.]밑에 달린 댓글.
유세라 공식 계정이었다.
[- 성웅갤 주딱 여기서 뭐함? ㅋㅋㅋ] [- 사랑이 담긴? 어디 아이돌 따위가 성웅 김덕성님한테 꼬리를?] [- 주딱 갤 관리나 하라고 ㅋㅋㅋ] [- 유세라님 우리는 유세라님이 정말 부끄럽습니다!]밑에 달린 댓글들.
아이돌 따위라니.
아이돌이 언제부터 따위가 되었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주군,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귓가에 마코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황급히 너튜브 어플을 끄고 답한다.
어차피 더 볼 생각도 없었는데, 말 걸어준 마코토 덕분에 살았다.
“아냐, 아무것도.”
내 말을 들은 마코토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딩동댕동.
수업 종이 울렸다.
이제 다음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다.
*
수업이 끝난 뒤.
나는 교과서를 가방에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부활동이 없으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가방을 메고 교실 문을 나서면서 생각에 잠긴다.
포 호스맨도 하나가 죽고 하나가 무력화됐으니 이제 남은 상대는 독타 쉬나벨과 언더테이커 둘뿐.
독타 쉬나벨은 리그가 결성되기 이전부터 메사이어를 따르던, 그의 심복이자 최선임 부하.
당연히 충성심도 광신도 수준이니 만나면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
반면에 언더테이커는 원작에서도 전향해서 히로인이 되는 캐릭터니, 여기서도 회유해야 한다.
원작에서는 베아트리체를 구원하고, 교단을 정리한 뒤에 나온 기밀 서류로 언더테이커를 설득했지만, 내게는 다른 수단이 있으니 상관없다.
언더테이커를 회유하고, 교단을 파괴해서 리그의 손발을 모두 자른 뒤에, 메사이어를 학원으로 유도해서 최종결전을 치러야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이봐요! 당신!”
귓가에 뾰족한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교실이 늘어선 학교 복도에 교복을 입은 채 선 백금발과 벽안이 인상적인 미소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생각해보니 다른 히로인들에게는 빼빼로를 받았는데, 올리비아에게는 아직 받지 않았다.
준비를 안 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일본에서도 생소한 기념일인데, 프랑스 출신인 올리비아는 아예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볼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다.
“어머! 기사공주님이 검은 귀축을 불렀어?”
“무슨 일이지?”
“설마······. 전속 시녀로서 공개 플레이 제안?”
“꺄아아아아아아악!”
나와 올리비아 사이를 원형으로 포위한 엑스트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엑스트라들의 목소리를 들은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의 몸이 움찔한다.
가방끈을 쥔 그녀의 손과 탐스러운 분홍색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무슨 일인데?”
“······겨, 겨겨겨결투 신청이에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그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진다.
“옥상으로 따, 따라오도록 하세요!!”
휙.
자기 할 말만 끝낸 올리비아가 몸을 돌린다.
모세의 기적처럼 양 옆으로 갈라진 엑스트라들 사이로 올리비아가 걷는다.
“오, 옥상으로 따라오라니!”
“옥상에서 이렇고 저렇고 그런 짓을 해버릴 생각인걸까?!”
“기사공주님······. 공개 고백이라니······. 대담해!”
“검은 귀축······.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렘 멤버들한테 이렇고 저런 플레이를 시킨다는 소문은 역시 사실이었어!”
“꺄아아아아아악!”
끊임없이 확장되는 검은 귀축 유니버스.
이제는 해명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그나저나 결투라니.
무슨 학원액션물도 아니고 왜 하필 옥상으로 따라오라는 거야.
[파트너. 사랑스러운 내 동생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은 아니겠지?]아니나다를까 역시나 여동생 바보 팔불출 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흑태자가 굳이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어차피 갈 생각이었다.
내 팔자가 그럼 그렇지 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올리비아를 따라 옥상으로 향했다.
*
탁, 철컥.
옥상에 도착한 나는 문을 닫은 뒤에 잠갔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11월.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태양과 함께 싸늘한 바람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옥상 난간에 쳐진 안전 펜스와 방치된 여분의 책상, 거대 환기구가 나를 반긴다.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장소에는 화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전형적인 일본 학원물 옥상 풍경.
거기에는 역시 일본 학원물 히로인처럼 옥상 펜스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 내게서 뒤돌아있는 금발 미소녀, 올리비아가 있었다.
“왔나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와는 달리, 떨림이 묻어나는 긴장된 목소리.
“어. 왔는데. 결투가 뭐냐?”
설마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진짜로 초상병기 들고 싸우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불길한 생각을 털어내던 순간.
휙.
그녀가 몸을 돌린다.
윤기 넘치고 반짝이는 백금발이 휘날린다.
올리비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가방에서 부스럭대며 포장된 선물상자를 꺼낸다.
아마도 빼빼로.
빼빼로 주려고 결투라는 말을 꺼낸 건가?
그건 그거대로 올리비아다운 대사긴 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부욱.
올리비아가 포장을 푼 뒤에, 초콜릿이 발린 빼빼로를 하나 꺼낸다.
“오, 오늘은 빼빼로 데이······. 그러니까 한국의 전통대로 빼, 빼빼로 게임······. 승부예요!”
그녀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게 소리친다.
뭐?
빼빼로 게임? 승부?
한국의 전통?
대체 그게 무슨 나도 처음 듣는 이상한 소리지?
내가 당황한 순간.
“자! 오세요! 저, 프랑스의 황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당신의 전속 시녀로서 오늘! 당신과 결착을 내겠어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내게 선전 포고하듯 외친다.
“이 빼빼로 게임으로!”
말을 마친 올리비아가 입에 빼빼로를 물고, 키스하듯 발꿈치를 든 채 눈을 감는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하.
빼빼로 게임으로 뭘 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