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26)
제 324화
두근두근☆원더 회전 커피 컵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이 펑펑 내리는, 텅 빈 도쿄 데스 랜드에서 한서진이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두근두근☆원더 회전 커피 컵이라는 쓸데없이 거창한 이름이 붙은 놀이기구였다.
어느 놀이공원에 가건 꼭 하나쯤 있는, 커피 컵 모양 기구에 올라타서 천천히 빙글빙글 도는 형식의 놀이기구.
회전목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인기 있는 놀이기구였다.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부터 타자고 하면 좀 난처할 뻔했는데 다행이다.
그렇게 한서진과 팔짱을 낀 채 입구에 도착한 내가 본 사람은.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이십니까?”
메이드복을 입은 채 직원처럼 서 있는 갈색 보브컷이 인상적인 무표정 미녀, 벨라였다.
잠깐, 벨라?
“넌 왜 여기 있냐?”
린, 에리의 개입도 모자라서 이제는 벨라까지?
내 질문에 벨라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답한다.
“출연 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입니다.”
누가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있지도 않은 출연분량 확보 메타발언 하는 거 봐라.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오던 대사를 직접 현실에서 귀로 들으니 어이가 없다.
“아, 그래······.”
할 말을 잊은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의 주인님, 한서진 님. 두 분. 확인했습니다. 기구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벨라가 진짜 직원처럼 능숙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그녀의 지시를 따라 커다란 커피잔 모양의 기구 옆 문을 열고 좌석에 앉는다.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린 덕분에, 한서진과 나를 제외한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두근두근☆원더 회전 커피 컵 운행 시작하겠습니다.]벨라의 차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그와 함께 놀이기구와 어울리지 않는 EDM 음악이 울린다.
여기가 무슨 월미도 디스코 팡팡이야?
내가 어이가 없어진 순간.
우웅.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나와 한서진이 탄 커피 컵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 전면을 때리던 그때.
[속도 조금 더 높이겠습니다.]벨라의 목소리와 함께 커피 컵의 회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주변 풍경.
월미도 디스코 팡팡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커피 컵의 무브에 마음 깊은 곳에서 당황스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아니, 이거 원래 이런 놀이기구 아니잖아?
내가 당황하고 있던 그때.
꿈틀.
한서진의 눈썹이 살짝 움직인다.
*
커피 컵의 회전 속도가 상승한 그때.
[지금입니다. 한서진 씨.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균형을 잃은 척 연기하면서, 주인님의 주인님의 품에 안기는 겁니다.]한서진의 귓속에 벨라의 지시가 들려왔다.
꿀꺽.
한서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커피 컵의 회전 속도와 진동이 제법 격렬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
영웅은 아니지만,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선 초인 헌터인 한서진에게 이 정도 회전은 별로 격렬하지도 균형을 잃을 정도도 아니었다.
실제로 한서진은 지금 격렬하게 흔들리는 커피 컵 안에서도 평화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고민했다.
한서진에게는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에 그분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하고 황송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방금까지 무려 단독 셀카에, 팔짱까지 끼지 않았던가.
한서진이 입술을 깨문다.
그것만으로 이미 차고 넘친다.
충분히 만족한다.
분면 그럴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작전을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그래도 거짓을 연기하면서까지 그분의 품에 안기라니.
아무리 작전이라지만 이건 좀······.
한서진이 한 줄기 남은 이성으로 망설이고 있던 그때.
[한서진 씨! 작전대로 얼른 그 바보한테 안기라고요!] [맞아! 빨리 지금 안겨! 에리링이 이번 한 번은 특별히 봐줄 테니까!]그녀의 귓가에 에리와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울린다.
한서진이 멈칫하던 그때.
덜컹.
커피컵이 위로 크게 흔들리면서 한서진의 몸이 김덕성에게 기울어진다.
균형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큭!”
대신 낮은 비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김덕성에게 무너지듯 안겼다.
*
“큭!”
비명과 함께 내 품에 안기는 한서진.
내 이럴 줄 알았다.
초인도 놀이기구에 타면 균형 감각 없어지는 미친 라노벨 세상 같으니.
그래도 지금은 한서진도 균형을 잃은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빌어먹을 놀이기구가 끝날 때까지는 그녀를 끌어안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포옹은 꽤 해본 것 같은데, 한서진과 이렇게 밀착 접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커피 컵.
내 품에 안긴 한서진의 귓불이 새빨개진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파르르 떨면서 품에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을 그때.
커피 컵 회전이 멈춘다.
마침내 놀이기구 운행이 종료된 것이다.
“시, 실례했었습니다! 김덕성 님!”
회전이 멈추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소리치면서 내 품에서 떨어지는 한서진.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은 그녀가 빨개진 얼굴을 손부채로 부치면서, 다른 손으로는 스커트를 부여잡는다.
[오우. 파트너. 한서진 씨한테 저렇게 소녀 같은 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한마디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 여러모로 한서진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 느낌이다.
원래는 데이트 신청권을 소모하기 위한 용도의 데이트 신청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저 모습을 보니 그나마 의미 있는 데이트가 될 것 같기는 하다.
빌어먹을 라노벨 클리셰만 없으면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저따위가······.”
한서진이 말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연신 숙인다.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오히려 이쪽이 조금 미안해진다.
어차피 럭키 스케베인지 뭔지 때문에 일어난 사고일 게 분명한데.
90도로 고개를 숙여 폴더 사과를 하고 있는 한서진에게 말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사고니까.”
“······.”
내 말에 한서진의 몸이 움찔한다.
왜 저러지?
사고 맞잖아?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 그때.
“······가, 감사합니다······.”
그녀가 한박자 늦게 감사 인사를 말한다.
이런 걸 가지고 뭘 감사까지야.
한서진은 다 좋은데 너무 낮은 자존감이랑 국뽕이 문제다.
내가 말한다고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이럴 때는 약간 내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됐고. 내리자.”
덥석.
한서진의 손목을 잡고 커피 컵 모양 놀이기구에서 내린다.
“알겠습니다.”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내리는 한서진.
놀이기구 출구로 향하자, 벨라가 나와 한서진을 맞이한다.
“즐거운 놀이기구 이용되셨습니까? 주인님의 주인님. 한서진 님.”
옅게 웃는 벨라.
즐거운 놀이기구 이용은 무슨.
커피 컵을 계속 디스코 팡팡처럼 위아래, 전후좌우로 흔들어대는 바람에 속이 약간 안 좋아졌다.
“······그럭저럭.”
하지만 그런 불만을 말해봤자 고쳐질 리가 만무한 게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내 입만 아프다.
그래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벨라의 말에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줬다.
“좋습니다. 주인님의 주인님께서 충분히 즐기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럼 다음 코스로 안내하기 전에 우선 솜사탕부터······.”
스윽.
벨라가 어디선가 가져온 노점 카트에서 솜사탕을 꺼내 든다.
하얀 눈을 닮은 솜사탕에, 루돌프 귀 머리띠 세트까지.
빌어먹을 놀이공원 분위기에 너무 쓸데없이 잘 맞는 아이템들이었다.
빙의 전에도 못 해본 걸 여기서 하게 될 줄이야.
벨라가 나와 한서진의 손에 솜사탕을 하나씩 쥐여주고, 머리에 빌어먹을 루돌프 귀 머리띠도 씌워준다.
솜사탕이야 그렇다 치자. 루돌프 귀 머리띠 같은 건 필요 없다.
언제까지 이런 바보짓을 해야 하는 건지.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 옆을 바라본 그때.
“······.”
나와 다르게 빨간 악마 뿔 모양 머리띠를 쓴 한서진과 눈이 마주친다.
화악.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한서진이 커다란 하얀 솜사탕으로 얼굴을 황급히 가린다.
“죄, 죄송합니다······.”
“후후. 주인님의 주인님과 한서진 씨. 잘 어울립니다. 그럼 오늘만 특별히 제가 기념 촬영을 해드리겠습니다.”
스윽.
벨라가 풍만한 가슴골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낸다.
아니 대체 어디까지 준비한 거냐고.
놀이기구를 배경으로 나와 한서진이 서로 멀찍이 떨어진 상황.
그 모습을 본 벨라가 한서진을 향해 말한다.
“한서진 씨. 주인님의 주인님 곁에 좀 더 붙으십시오. 구도가 안 나옵니다.”
벨라의 지시를 들은 한서진이 움찔한다.
“김덕성 님, 제가 감히······.”
“그냥 붙어.”
조심스럽게 말하는 한서진의 말허리를 자른다.
이 빌어먹을 놀이공원 데이트를 누가 기획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주지 않으면 영원히 안 끝날 터.
그렇다면 빨리 해치우고 집에 돌아가는 게 최선이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서진이 공손한 말투로 말하면서 내 곁에 찰싹 붙는다.
“자, 그럼 사진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쓸데없이 김치를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말하는 벨라.
찰칵.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진다.
스윽.
곧바로 사진이 즉석에서 인화되어 나온다.
“여기 있습니다.”
아직 인화가 덜 끝나서 그런지 사진의 형상은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
벨라에게서 사진을 받는다.
습관처럼 사진을 흔드는 내 귓가에 벨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주인님의 주인님.”
그녀가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면서 뒤에서 손을 흔든다.
오늘만 사진을 몇 장이나 찍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 코스로 안내하겠습니다.”
“거기가 어디야?”
내 말을 들은 한서진이 살짝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유령의 집입니다.”
유령의 집이라니.
하긴, 라노벨 유원지 데이트 에피소드에 유령의 집이랑 대관람차가 빠지면 그것도 모양이 이상하기는 하다.
드디어 올 게 온 건가······.
아니 오히려 이제는 익숙한 이벤트가 나오는 편이 좋다.
그래야 안 당황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서진과 함께 사람 없는 도쿄 데스 랜드를 걸었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 그것도 눈 내리는 날에 드넓은 놀이공원이 텅텅 빈 광경은 살짝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넓은 놀이공원에 사람 없이 너랑 나 둘뿐인 게 좀 썰렁하긴 하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갑자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돌아온 한서진.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설마 히로인들이 갑자기 나와서 저 커다란 검은 성에서 깜짝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그때.
한서진이 고개를 든다.
방금의 부끄러워하던 모습과는 다른, 평소의 사무적인 모습.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이상한 열기와 광기로 타오른다.
그녀가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장면을 추후 편집해서 성웅 김덕성 재단 공식 채널을 통해 브이로그로 송출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튀어나온 그녀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뭐?
브이로그?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