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29)
제 327화
한 점 부끄럼 없는
열린 문 너머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덕성! 괜찮은가?”
미라 복장을 아직 입은 린이었다.
걱정스러운 그녀의 얼굴.
그 뒤로 귀신 복장을 한 에리가 등장한다.
“주인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에리링, 주인님 무지 걱정했는데!”
“덕성 오빠! 무슨 일이야? 하루, 덕성 오빠 걱정해서 초 빠르게 1등으로 달려왔어? 잘했지?”
뒤이어 달려온 건 하루.
그녀의 복장은 검은 세일러복을 입은 전형적인 여고생 귀신의 모습이었다.
“김덕성 군. 방금의 마력 파장, 대체 무슨 일입니까?”
“후배 군. 나쁜 남자인 후배 군을 걱정해서 왔는데······. 히익! 저 소녀는 누구야? 후배 군의 또 다른 여자?”
“주군! 나 왔어!”
하루의 뒤를 이어 아리스, 카스미, 마코토까지.
히로인들 전부가 들이닥친다.
“······.”
졸지에 모두에게 노출된 빌헬미나의 미간이 좁혀진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잔뜩 붉어진다.
그녀가 드러난 가슴골을 손으로 가리면서 어깨를 움츠린다.
[파트너, 어떻게 해. 설명 계속해? 다른 사람도 있는데?]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사람이라.
어차피 여기는 라노벨 세상.
쓸데없이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비밀은 충실히 지키는 히로인들이 상대라면 설명을 굳이 끊을 필요는 없다.
‘계속해.’
무엇보다 그녀들이라면 이 정도 비밀을 알 권리는 있다.
[좋아.]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흠흠. 새로운 레이디들이 많이 도착했군.]흑태자가 헛기침을 하면서 손짓하자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마력이 문에 닿는다.
열려 있던 문이 쾅하고 닫힌다.
[아, 어디까지 설명했지? 이 흑태자 님이 안 죽고 정령이 된 데까지 설명했었나?]“응.”
흑태자의 말에 빌헬미나가 무표정한 얼굴과 반쯤 눈이 감긴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오라버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듀랜달의 정령이 되어서 저 바보한테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런 추측은 했었어요. 그런데 그 짐작이 진짜일 줄이야······.”
뒤이어 올리비아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흑태자를 보면서 말한다.
아까 놀란 표정과는 달리 제법 진정된 모습.
그런데 짐작하고 있었다니.
“흑태자 님이······. 살아있었다고?”
“과연······. 덕성이 흑광검식을 사용하는 건 흑태자 님의 도움 덕분이었나?”
아리스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고, 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히로인들이 수군거린다.
“그런데 황녀님. 저 사람은 누구야?”
움찔.
에리의 손가락질을 받은 언더테이커의 몸이 떨린다.
하루, 린을 제외한 다른 히로인들은 언더테이커와 초면일 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분은······.”
올리비아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내 이름······. 빌헬미나 하이젠버그.”
빌헬미나가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며 말한다.
“데미안, 누나······.”“그렇다면 당신이 10년 전 실종됐다던 하이젠버그 씨······?”
빌헬미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자 린이 반응한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가족이었던 만큼, 둘 사이에 안면 정도는 있을 법하다.
실제 원작에서도 그랬고.
빌헬미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니시시시. 빌헬미나 언니는 왜 이제 나타난 거야? 그동안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
뒤이어 하루가 나선 그때.
“······다들 조용.”
빌헬미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아이보리색 마력을 뿜어낸다.
EX랭크 강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격이 다른 기세와 위압감에 모든 히로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라울이랑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내 이야기 상대······. 검은 귀축이랑 흑태자······. 너희······. 아니야.”
빌헬미나의 황금빛 눈동자가 탁하게 반짝인다.
지금의 빌헬미나는 위험도 EX랭크 빌런.
이런 식으로 끼어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라면 모를까, 내가 아는 사람들을 저렇게 압박하는 건 기분이 조금 별로다.
곧바로 빌헬미나에 대항해서 마력을 끌어올린다.
우우우우웅!
듀랜달이 떨리면서 몸에서 흑색 마력이 일어나 빌헬미나의 마력 압박에 대항한다.
“푸하.”
사색이 된 히로인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녀들이 숨을 내돌린다.
흑태자의 말을 들은 빌헬미나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녀가 손을 파르르 떨면서 말한다.
“나······. 아니야······. 노처녀······.”
스스스스.
빌헬미나가 마력을 거둔다.
로비를 가득 채운 위압감이 눈 녹는 것처럼 사라진다.
하필 민감한 게 그거였냐고.
어이가 없다.
그녀가 마력을 거둔 걸 확인한 내가 마력을 거둔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로비.
그 모습을 본 빌헬미나가 흑태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다들······. 조용······. 좋아. 할말······. 계속해······. 라울······.”
[내가 10년 전에 오메가 랭크 이계종 파프니르한테 죽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상대한 파프니르의 상태는······. 좀 이상했었지. 다른 오메가 랭크 이계종과 비교했을 때 이상하게 강했고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거든.]흑태자의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아무튼 난 죽기 직전에 금주마술을 써서 듀랜달에 내 영혼을 봉인했어. 성공 확률은 10%에 불과했지만, 이 흑태자 님은 불세출의 행운아이기 때문에 성공! 이렇게 정령으로 있게 된 거지. 하하하하하하하하!]흑태자가 웃는다.
그 말을 들은 빌헬미나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게······. 끝······?”
[내 이야기는 여기서······.]빌헬미나의 질문에 흑태자가 답하려던 순간.
“잠깐만요!”
올리비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에 끼어든다.
저벅, 저벅.
한쪽 손으로 가슴골을 가린 채 앞으로 나선 올리비아가 흑태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오라버니. 역시 10년 전의 그 일,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던 거죠?”
“단순한 사고······. 아니라니?”
올리비아의 말에 이번에는 빌헬미나가 놀란다.
[······.]흑태자 역시 침묵한다.
“사실 수학여행 때 그 바보가 오라버니의 심상전개를 사용하는 모습을 얼핏 봤을 때부터 저는 의심했었어요. 그때, 서울에서 봤던 듀랜달의 정령이 혹시 오라버니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그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때의 광경도, 저 바보가 보나파르트 황실의 비전인 흑광검식을 사용하는 것도 전부 명쾌하게 설명되기도 했고요.”
츤데레 모드가 아닌 진지한 표정의 올리비아가 흑태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수학여행 때 내가 흑태자의 심상전개를 사용하는 모습을 봤다고?
‘야, 너 그때 올리비아가 깨어있는 거 알았냐?’
[아니, 나도 몰랐지. 파트너.]흑태자도 몰랐던 사실.
아마 그때 나도 흑태자도 무리해서 심상전개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지쳐서 올리비아가 깨어있다는 사실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누구보다 절 아꼈던, 누구보다 영웅답고 진중했던 오라버니가 가족이었던 저한테까지 정체를 숨긴다는 건,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 더군다나 흑기사라는 이름으로 그런 경박한 모습을 연기하면서까지 본인의 생존 사실을 숨긴다면······. 그렇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올리비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흑태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다 좋은데 경박한 모습이 연기라고?
그건 100% 본인 진짜 모습이다.
‘야, 진중한 영웅이라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흠흠. 파트너. 파트너도 이제 한 명의 훌륭한 신사니까 알겠지만 레이디와 사랑스러운 동생 앞에서는 신사답게 행동하는 게 예의야.]흑태자가 씨알도 안 먹힐 헛소리를 지껄인다.
신사답게 행동은 무슨.
그냥 내숭 떤 거겠지.
“하지만 생전의 오라버니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던, 누구보다 영웅적인 삶을 살다 돌아가신 프랑스와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를 드높인 불세출의 영웅.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좌를 차지한 인류와 세계의 구세주였어요!”
한 발짝.
올리비아가 다시 나선다.
“그런 오라버니가 가족인 저한테도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이라면, 역시 10년 전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세간 사람들은 모르는 오라버니의 죽음에 관한 진상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죽음의······. 진상?”
빌헬미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10년 전, 흑태자의 죽음.
거기에 대한 진상 때문에 정체를 숨겼을 것이다.
대부분이 흑태자의 만들어진 이미지와 올리비아가 동경하는 흑태자의 환상에 근거한 추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추측은 놀랍게도 진실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오라버니의 죽음, 그 이면에 세간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면······. 10년 전 죽었던 다른 파이브 크라운즈 분들의 죽음에도 역시 이면의 진실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계의 구원자이자 인류의 구세주였던 파이브 크라운즈가 같은 날에 사망한다는 건······.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너무 작위적이니까요.”
뒤이어 나온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랐다.
거기까지 추측했다고?
방금까지는 예상 내였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이다.
작중 천재라고 묘사되는 올리비아였지만, 그녀의 머리가 여기까지 돌아갈 줄은 몰랐다.
10년 전.
파이브 크라운즈 네 명의 죽음.
불행한 우연의 일치라고 불리던 그들의 죽음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이 존재한다.
기존에 알려진 사실을 완전히 뒤집는 올리비아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그중 가장 놀란 사람은 빌헬미나였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죽음······. 이면의 진실······?”
빌헬미나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빌헬미나가 한 발짝 흑태자를 향해 다가가 말한다.
“라울. 방금······. 올리비아의 말······. 정말? 숨겨진 진실······. 이, 있는 거야······?”
지금까지 텅 비어있던 빌헬미나의 금빛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온다.
그녀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열의가 타오른다.
평생의 목표였던 동생의 부활.
그 죽음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건, 언더테이커를 동요하게 만들기 충분했을 터.
[아하하하하, 그, 그건······.]흑태자 역시 당황한 모양인지 머리를 긁적인다.
올리비아가 본인의 추측만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건 의외의 일이었지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어차피 언더테이커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10년 전 그날의 진실을 그녀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문제는 어떻게 대화를 거기까지 유도하는가였는데, 그 유도를 올리비아가 나 대신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오히려 올리비아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 츤데레 1호기, 적절한 도움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설명하지. 나한테 바통을 넘겨.’
[알았어.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대답한 뒤에, 그가 말한다.
[10년 전 사건의 숨겨진 진실은 물론 존재해. 역시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야. 똑똑해.]흑태자의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오, 오라버니! 무, 무무무슨 그런 쪽팔리는 소리를 하는 거예욧?!”
팔불출 발언이 쪽팔리는 듯, 손부채로 빨개진 얼굴을 부치는 올리비아.
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웃는다.
[하하하하. 내 귀여운 올리비아가 똑똑한 건 사실이니까! 이 오라버니는 절대 부끄럽지 않아. 아무튼, 이면의 진실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내가 아닌 파트너, 김덕성이 설명할 거야. 파트너. 준비 됐지?]흑태자가 나를 지목하자, 빌헬미나와 올리비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드디어 녹취록을 사용할 날이 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들어 이날을 위해 준비한, 10년 전의 진실 고백이 담긴 프로페서 면회 녹화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진실의 방, 아니 진실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