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30)
제 328화
의심이 많아봤자 라노벨
치직.
노이즈와 함께 스마트폰에서 영상이 재생된다.
나는 스마트폰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죄수복을 입은 프로페서의 모습이 등장한다.
“프로페서······?”
그의 얼굴을 알아본 빌헬미나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곧이어 스마트폰 안의 프로페서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스피커를 통해 고요한 로비 안을 가득 메웠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죽음, 그 배후에 리그의 마스터, 메사이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은 전부 사실입니다.]프로페서의 말이 끝난 순간.
로비 안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10년 전의 대사건, 그 뒤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이 프로페서라는 확실한 증인을 통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올리비아가 입을 틀어막고, 다른 히로인들이 숨을 죽인다.
“······.”
빌헬미나의 눈동자가 떨린다.
믿을 수 없다.
그런 표정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했던 동요하는 얼굴.
하긴 그럴 만했다.
남동생인 데미안의 죽음은 빌헬미나가 빌런으로 타락한 근본적인 원인.
그녀가 메사이어가 내민 손을 잡은 이유도 데미안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의심 많은 성격인 빌헬미나가 메사이어를 전적으로 믿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빌헬미나와 메사이어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협력 관계였다.
하지만 그 협력이라는 것도, 빌헬미나가 진실을 알지 못했기에 가능했던 관계.
[10년 전, 저는 리그의 마스터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세계의 질서를 상징하는 파이브 크라운즈의 죽음이 무조건 필요하다고, 파이브 크라운즈를 모두 제거해서 신세계 계획의 시작을 알리겠다고 말입니다.]빌헬미나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다.
[······마지막으로 데미안 하이젠버그를 죽인 정체불명의 빌런을 사주한 것도 메사이어의 수작입니다. 그는 저를 빌런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제게 설명해주며 신세계 계획의 정당성을 설파했습니다.]뚝.
동영상의 재생이 끊긴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빌헬미나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증언······. 정말 사실? 메사이어가······. 데미안을······. 데미안을······.”
“그래. 프로페서 말대로 당신 동생을 죽인 진범은 메사이어야.”
중얼거리는 빌헬미나에게 확인 사살을 한다.
움찔.
빌헬미나의 몸이 들썩거린다.
“······.”
잠시 죽음 같은 정적이 흐른다.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빌헬미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가 분노가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 동생을, 내 동생을······. 용서 못 해······. 메사이어, 죽여 버리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몸에서 아이보리색 마력 파장이 피어오른다.
빌헬미나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주륵.
텅 비어버린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른다.
완전한 폭주 상태.
당장이라도 메사이어를 죽이러 갈 태세다.
[파트너, 어떻게 할 거야? 좀 말려봐. 이대로 가다가는······.]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재촉한다.
그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빌헬미나를 지금 메사이어에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진실을 알아차린 언더테이커가 폭주해서 메사이어를 공격하는 건 원작에서도 있는 장면이지만, 그 시점은 최종장 스토리가 진행 중인 19권에서의 일.
19권 시점은 이미 메사이어가 전면에 등장해서 학원을 부수고, 신세계 계획을 진행 중인데다 주인공이 히로인과 동료들을 모아 메사이어와 결전을 벌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더테이커가 폭주해서 메사이어에게 돌격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라노벨답게 원작에서 그렇게 메사이어에게 무지성 돌격한 언더테이커는 중상을 당해 죽을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주인공에게 구원 당한다.
라노벨의 정석인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고구마 전개.
원작에서도 그렇게 당했는데, 하물며 메사이어가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은 지금 메사이어에게 언더테이커가 무지성 돌격한다면······.
그녀는 무조건 죽는다.
언더테이커가 세계관 수위권에 드는 강자기는 했지만, 상대는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의 최종 보스.
언더테이커 홀로 메사이어에게 맞서는 건 자살 행위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언더테이커는 지금 죽으면 안 된다.
메사이어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이모탈 하트를 통해 부모님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언더테이커는 반드시 내게 필요했다.
여기서 무지성 돌격 때문에 개죽음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진실······. 알려줘서 고맙다. 검은 귀축. 그럼 나는······.”
언더테이커가 그늘진 얼굴로 돌아선다.
그녀가 눈물을 닦아내면서 입술을 깨문다.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같으니.
여기 인간들은 하나 같이 목숨을 무슨 헌신짝처럼 취급한다.
타인을 위해서라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
“이대로 가면 개죽음이야. 당신이 혼자 메사이어를 이길 정도로 강한 건 아니잖아?”
먼저 언더테이커를 만류한다.
내 말에 언더테이커가 움찔한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그게 무슨 상관? 동생의 복수······.”
역시나 원작처럼 복수심에 눈이 뒤집힌 모양.
하긴 남동생이 죽었는데도, 죽음을 부정하고 그를 부활시키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려고 할 정도로 그녀에게 남동생은 소중한 존재.
그런 소중한 가족을 죽인 흉수의 정체가 마침내 공개된 게 지금 상황.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긴 하다.
그래도 무지성 돌격은 좀 아니지.
“데미안의 부활이 아니라 복수가 당신 목적이야?”
여기서는 일단 동기 부여를 다시 명확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언더테이커의 제1 목표는 어디까지나 데미안의 부활.
복수는 제2 목표에 불과하다.
“······!”
내 말을 들은 언더테이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동생······. 죽인······. 원수······. 메사이어······. 나를 기만······.”
언더테이커가 손을 파르르 떤다.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서로 협력 관계였던 메사이어와 언더테이커였다.
원작에서도 메사이어는 언더테이커에게 신세계가 도래한다면 동생 데미안이 부활할 수 있다는 식의 사탕발림으로 언더테이커를 유혹했고 그녀의 부활 연구 비용과 재료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메사이어가 사실 남동생을 죽인 진범이라니.
배신감이 안 들면 사람이 아니다.
“복수는 나중에 부활을 끝낸 뒤에 해도 돼.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 몰라? 지금은 데미안의 부활에 집중해야지.”
무협소설에서 주워들은 격언을 내뱉으면서 그녀에게 제1 목표를 다시 상기시킨다.
내 말을 들은 언더테이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복수냐 부활이냐 내적 갈등 중인 상황.
내 설득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했다.
“······그리고 네 동생의 영혼말인데, 아직 지상에 있어. 봉인 당한 채로.”
이건 프로페서조차 알지 못하는, 오직 원작을 본 나와 메사이어만 알 수 있는 정보.
전에 말했던, 의심 많은 언더테이커를 완전히 회유할 비책이었다.
내 말을 들은 언더테이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
영혼의 존재는 언더테이커의 부활 연구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동생의 부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육신과 영혼,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언더테이커는 동생의 영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을 터.
내 말을 들은 언더테이커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가 한 발짝 내게 다가온다.
“메사이어도······. 그렇게 말했어······. 명령 이행하면······. 영혼 행방······. 알려준다고······.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언더테이커가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한다.
메사이어가 그렇게 말했다고?
언더테이커가 원작보다 빨리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이거였나?
동생의 영혼이라는 미끼를 내걸어서 언더테이커를 움직인 거였나?
메사이어 놈이 그런 고급 미끼를 벌써 소진하다니.
이건 놈의 신세계 계획이 원작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메사이어가 직접 영혼의 행방을 언급한 건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에게 또다른 진실을 알려주면 될 일이니까.
“그야 네 동생의 영혼이 봉인된 소울 젬은 교단의 대장로가 갖고 있으니까. 대장로, 놈이 메사이어의 사주를 받아 네 동생을 살해한 실행범, 정체불명의 빌런의 정체야. 놈이 네 동생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고.”
교단의 대장로, 디에고 모랄레스.
17권의 메인 빌런.
놈의 빌런 시절 이명은 소울 리퍼.
이명 그대로 놈은 영혼을 다루는 기프트의 소유자였다.
그 정도 정보는 빌헬미나 역시 알고 있을 터.
게다가 대장로와 메사이어는 상호 협력 관계였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유력한 이야기.
“······.”
내 말을 들은 빌헬미나가 다시 침묵했다.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빌헬미나가 고개를 든다.
그녀의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텅 비어버린 섬뜩한 눈빛이 나를 향한다.
빌헬미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말······. 어떻게 믿지······?”
이렇게 날 의심할 줄 알았다.
내가 원래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극비 정보를 그녀 앞에서 술술 불었으니 의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지극히 정상.
언더테이커는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이니 말이다.
남이 말하면 그대로 다 믿는 라노벨 세상이 이상한 거다.
하지만 이것도 다 사전에 대비해놨다.
‘이제 네 차례야.’
나는 마음속으로 흑태자를 호출했다.
내 지시를 받은 흑태자가 말한다.
[파트너의 신뢰는 이 흑태자 님이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를 걸고 대신 보증할게. 파트너의 증언은 확고부동한 진실이야. 누님. 설마 내 말도 못 믿는 건 아니지?]“그건······.”
흑태자의 말에 언더테이커가 당황한다.
그녀가 침묵한다.
아무리 의심이 많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라노벨 세상 기준.
믿는 사람이 신뢰를 보증하면 신용이 생겨나는 신비한 세상이다.
호구 같은 세상 같으니.
“······.”
침묵이 흐른다.
한참의 정적 끝에, 언더테이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알았어. 라울이 그렇게 말하면······. 믿어······.”
언더테이커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검은 귀축······.”
언더테이커가 나를 부른다.
주르륵.
그녀의 눈동자에서 다시 눈물이 흐른다.
털썩.
언더테이커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한다.
나이는 이사장보다 언니인 주제에, 외관은 이사장이랑 비슷하니 의도치 않게 어린 소녀가 나 때문에 우는 광경이 연출되어버린 셈이다.
진심 당황스럽네.
“나, 나는 그럼 어떻게 하면 돼? 가, 가르쳐줘······. 모든 걸 부정당한······. 지금까지 속은 나는······. 복수조차 못 하는 나는······. 어떻게 하면······. 흐윽, 흐윽, 흐아아아아앙······.”
어린애처럼, 아니 외관도 소녀라서 더 불쌍하게 우는 언더테이커.
당황하고 있는 내 귓가에 카스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후배 군은 말로 어린 아이를 울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타고난 귀축이네······.”
돌겠네.
왜 이렇게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