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38)
#336
코타츠.
일본 라노벨 겨울 에피소드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일상물, 학원물, 배틀물 심지어 이세계물에서도 반드시 등장하는 그 코타츠가 지금 눈앞에 있다.
당연히 원작에서도 나왔다.
시노자키 저택에 있는 코타츠에 외국인인 올리비아가 들어가서 나오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정말 여기 들어가면 글러먹는 건가?
다다미방 안에는 전통식 방과 어울리지 않는 최첨단 벽걸이 TV와 눈 내린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너머 툇마루가 있었다.
방 안이라 따뜻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춥다.
항상 따뜻한 방이 익숙한 나에게는 낯선 온도.
일본 주택은 단열성이 낮아서 실내 평균 온도도 낮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
일단 하루가 앉아도 된다니까 괜찮겠지?
스윽.
코타츠 안에 들어간다.
따뜻하기는 한데, 이건 그냥 일본 집이 추워서 코타츠 안에 들어가면 따뜻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기숙사 특실은 그렇게까지는 안 추웠다.
일본에서 바닥 난방은 고급 타워 맨션에서나 하는 난방이라던데, 기숙사 특실에도 바닥 난방이 되어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탁자 위를 보니 귤이 놓여 있었다.
[덕성 오빠 제주 감귤 먹어!] [- 오빠만의 초 카와이 갸루 여동생 하루가]옆에는 하루가 직접 쓴듯한,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적힌 쪽지가 있었다.
코타츠 위의 귤은 겨울 에피소드 정석이기는 한데, 굳이 제주 감귤까지?
정성이 대단하다.
일본 겨울에 코타츠 안에 들어가서 제주 감귤을 먹다니.
아무 말 없이 귤을 까려던 그때.
“잠깐만요!”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올리비아가 나타난다.
뭐지?
“그 귤, 드실 거면 제가 까드리죠! 저는 당신의 전속 시녀니까요!”
척.
올리비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갑자기 귤을 까준다고?
청소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들던 그때.
“우와! 벨 언니 초 대단해! 청소 엄청 빨라!”
“이 정도는 보나파르트 황실의 전속 메이드의 기본 소양에 불과합니다. 쿠로사와 양.”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하루와 벨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정도면 올리비아 정도는 빠져도 괜찮지 않을까?
올리비아가 내가 가라고 해서 갈 위인이 아니기도 하고.
“어, 그래.”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귤 까기 실력을 보여드리겠어요! 프랑스 황실의 명예를 걸고!”
고작 귤 까기에 프랑스 황실의 명예를 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코타츠에 들어온 올리비아가 탁자 위에 놓인 제주 감귤의 껍질을 빠르게 벗긴다.
[오오! 역시 내 사랑스러운 동생 올리비아! 보나파르트 황실의 공주답게 귤 까는 모습까지 완벽해!]머릿속에서 흑태자의 팔불출 발언이 들린다.
보나파르트 황실의 이름이 이렇게 저렴하게 팔려도 괜찮은 건가?
내가 의문을 가지던 사이, 올리비아가 탁자 위에 놓인 귤을 전부 깔끔하게 까버렸다.
“오호호호호호! 어떤가요? 전속 시녀인 이 저의 솜씨가!”
“아, 그래. 잘했네.”
아가씨 웃음을 흘리는 올리비아의 말에 영혼 없는 칭찬을 달린다.
내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흐, 흥! 다, 당연한 칭찬 따위 들어봤자 저, 전혀 기쁘지 않거든요?! 착각하지 마세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리면서 소리친다.
칭찬이 기분 좋다는 이야기군.
그녀의 츤데레 행각에는 이제는 무덤덤한 걸 넘어서 익숙해졌다.
“알았어. 귤 먹을게.”
올리비아의 말을 무시하고 귤에 손을 대려던 그때.
“잠깐만요!”
올리비아가 나를 제지했다.
그녀가 귤을 한 조각 떼어내서 내 입 앞에 들이민다.
“자, 아 하세요. 입 안 벌리고 뭐 해요?!”
올리비아가 붉어진 얼굴로 내게 소리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입을 벌렸다.
그녀가 내 입 안에 넣은 귤을 질겅질겅 씹는다.
맛있네.
안 그래도 추운 방 안인데 따뜻한 코타츠 안에서 새콤달콤한 귤을 까먹으니까 분위기가 느긋하고 좋긴 하다.
“흥.”
올리비아가 콧소리를 내면서 본인이 깐 귤을 입안에 넣는다.
귤을 오물오물 먹는 올리비아.
[역시 우리 사랑스러운 여동생, 먹는 모습도 종달새처럼 귀엽단 말이지.]종달새처럼 귀엽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올리비아가 예쁘다는 뜻이라면 동의한다.
새삼스럽지만 올리비아는 라노벨 히로인답게 연예인 뺨치는 금발 백인 미소녀.
빙의 전 원래 세상이었다면 말 한마디 못 붙여봤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서 전속 시녀 운운에 츤데레짓까지 하다니.
빙의가 아니었다면······.
내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던 그때.
“아아······. 이 코타츠 안은 따뜻하고 좋네요. 천국이 따로 없어요. 정말 코타츠는 대단한 것 같아요. 으으 이 저택은 너무 추워요.”
올리비아가 털썩하고 탁자 위에 엎어지면서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단골로 나오는, 외국인 캐릭터가 코타츠에 감탄하는 장면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외국인이 코타츠에 감탄하는 장면은 대체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온돌과 바닥 난방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살아온 한국인.
안타깝게도 그녀의 코타츠 찬양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아아, 너무 따뜻해······. 행복해······.”
올리비아가 흐물흐물한 표정을 짓는다.
애니메이션에서 시노자키 저택의 코타츠 안에 들어갔을 때 짓던 표정
언제나 츤데레 모드로 날 선 말과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평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코타츠 찬양에는 별로 공감이 안 가지만, 올리비아의 저런 표정은 보기 좋다.
평소에도 저러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린다.
“올리브 언니! 청소 안 하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초 어이없어! 완전 황당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하루가 있었다.
손에 먼지떨이를 든 하루가 씩씩거리며 올리비아를 바라본다.
“게다가 덕성 오빠랑 단둘이 코타츠에? 하루, 이런 불공정 행위는 완전 용납 불가야! 아직 청소도 다 안 끝났다고! 나와! 에잇!”
옆에 다가온 하루가 올리비아를 끌어내려고 낑낑거린다.
“아아······. 나가기 싫어요. 코타츠는 따뜻한데 밖은 너무 춥단 말이에요.”
올리비아가 코타츠에서 나가기 싫어서 발버둥을 치면서 말한다.
“그래도 안 돼! 덕성 오빠랑 단둘이 있다니, 하루 절대 완전 초 용납 못 해!”
절대 완전 초는 대체 무슨 말버릇이야.
코타츠에서 나가기 싫은 올리비아와 그녀를 끌어내려는 하루가 코타츠에서 실랑이를 계속해서 벌인다.
저런 싸움도 한두번이지.
눈앞에서 저러니까 정신 사납다.
속으로 한숨을 쉰 나는 하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둘이 계속 싸우지 말고 하루 너도 그냥 여기 앉아라. 어차피 청소는 벨라가 다 하는 거 같던데.”
“······뭐라고요?!”
내 말에 코타츠의 따뜻함에 흐리멍텅해진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총기를 찾는다.
그녀의 시선이 하루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올리비아가 노려보거나 말거나 내 말을 들은 하루가 웃는다.
“니시시시. 덕성 오빠. 그럼 하루도 코타츠 안에 들어가도 돼?”
“어.”
“좋아! 니시시시.”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먼지떨이를 내려놓은 뒤, 옆에 앉아서 팔짱을 끼는 하루.
“하아아······. 역시 코타츠 안이 최고야······.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코타츠······. 하루 나가기 싫어.”
하루 역시 들어오자마자 따뜻함을 감지했는지 녹아내리는 표정으로 변한다.
코타츠 안에 들어가면 캐릭터가 망가지는 건 패시브인가.
라노벨 세상다운 설정이다.
“니시시. 덕성 오빠, 여기 하루가 만든 쿠키야. 아 해.”
하루가 내 입 앞에 쿠키를 들이댄다.
이런 건 언제 가져온 거야.
내가 당황하고 있던 그때.
“잠깐만요! 제가 깐 귤을 먼저 먹으라고요! 여기!”
올리비아가 질 수 없다는 듯 귤을 들이댄다.
하여간 연말에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한숨을 쉬면서 그녀들이 건네주는 쿠키와 귤을 전부 받아먹는다.
그렇게 코타츠 안에서 하루와 올리비아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던 그때.
미닫이문이 또 열리면서 벨라가 나타났다.
“주인님의 주인님. 청소가 끝났습니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면서 내게 말한다.
그걸 왜 나에게 보고하는데?
아무튼 연말 대청소가 드디어 끝난 모양.
“아아······. 따뜻하군요. 얼어붙은 몸이 녹는 기분입니다.”
코타츠 안에 들어온 벨라가 흐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는 몇 번째인지 모를 코타츠 찬양.
질리지도 않나?
“하루, 김. 다들 배고프지? 전골 준비할게.”
뒤이어 나타난 유지가 말한다.
오늘 점심 메뉴는 전골인가?
제발 신년 참배까지는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쪼르르르, 딱.
일본식 정원에 설치된 빌어먹을 시시오도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래, 여기도 있었지. 염병할 대나무 같으니.
*
같은 시각.
영국 버킹엄 궁전.
영국 왕실 일가가 머무르고 있는, 영국을 대표하는 궁전 응접실에는 그녀가 있었다.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노란 머리의 미소녀.
교단의 성녀 베아트리체였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분홍색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은 미소녀, 영국의 공주 에반젤린 스튜어트가 있었다.
“벌써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인 것이와요.”
영국답게 홍차와 다과가 잔뜩 놓인 테이블 위, 에반젤린이 홍차를 마시면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소녀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 것이와요? 트릭시 양?”
에반젤린의 분홍색 눈동자가 베아트리체를 향한다.
트릭시 스미스.
본명 베아트리체.
교단의 성녀인 그녀가 연말에 급하게 에반젤린을 찾는다.
짐작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베아트리체는 그녀의 친구.
제대로 된 이유를 그녀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베아트리체가 에반젤린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문다.
지금까지 베아트리체는 에반젤린을 속여왔다.
에반젤린은 그런 자신의 정체도 모른 채로 자신을 좋은 친구로 대해주었다.
그런 좋은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속여도 괜찮은가?
내 정체를 밝혀도 에반젤린이 자신을 도와줄 것인가.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어제, 김덕성의 제안에 따라 데미안의 소울 젬을 교단에서 빼돌렸다.
지금쯤 교단 내부는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그가 제시한 기한 전까지 대장로와 교단의 정보망을 교란하고 몸을 숨기기 위해서는 에반젤린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계약자여······. 여, 여를 노리는 무리가 있다······. 지, 진리의 교단이라고 하는 그 악랄한 놈들의 눈을 벗어나 의탁할 장소가 여는 필요하다. 여, 여를 도와주지 않겠느냐?”
베아트리체가 더듬더듬 말한다.
그녀의 품에는 이미 데미안의 소울 젬이 있는 상황.
베아트리체의 말을 들은 에반젤린이 살짝 웃는다.
에반젤린은 이미 베아트리체의 정체와 그 목적도 어느 정도 짐작한 상황.
그런 그녀가 교단에 쫓긴다는 말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자유라는 목적을 위해 드디어 직접 움직였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다면 도와줘야 한다.
결론을 내린 에반젤린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와와와와, 알겠사와요. 트릭시 양! 저는 자랑스러운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공주! 스튜어트 왕실과 저 에반젤린 스튜어트의 이름을 걸고, 소중한 친구인 당신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사와요!”
척.
에반젤린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친구의 절대 보호를 선언한다.
에반젤린의 말을 들은 베아트리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김덕성의 계획이 마침내 저 먼 영국에서 시작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