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41)
#339
또다시 귀국
김덕성이 시노자키 저택에서 스키 여행을 선언하던 시각.
새해를 맞이한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에반젤린의 방.
베아트리체와 함께 티 타임을 가지고 있던 에반젤린의 귓가에 진동음이 들린다.
탁자 위에 올려진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개인용 휴대폰.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와와와······. 대체 누가 연락한 것일까요.”
에반젤린이 혼잣말과 함께 진동하는 휴대폰을 켜서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십니까, 에반젤린 스튜어트 공주님. 한서진입니다.]그녀의 귓가에 울리는 건 한서진의 목소리.
전화 상대가 한서진인걸 확인한 에반젤린이 깜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한서진은 에반젤린에게도 은인인데다가 그분의 최측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한서진 씨.”
[김덕성 님께서 에반젤린 스튜어트 공주님과 트릭시 스미스 양을 한국 스키 여행에 초대했습니다.]한서진의 말을 들은 순간.
달그락.
에반젤린이 손에서 티스푼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두근, 두근.
에반젤린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간다.
그분과의 스키 여행이라니.
“무, 무조건 갈게요! 트릭시 양도 데리고 갈 것이와요!”
한서진의 말을 들은 에반젤린이 소리친다.
교환학생 이후로 그분을 실제로 보지 못한 에반젤린이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먼저 자신을 잊지 않고 초대하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설렌데, 실제로 그분을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고 한다.
에반젤린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번 스키 여행을 놓칠 수 없게 된 것이다.
[날짜와 장소는 곧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한국 왕복 항공권도······.]“항공권은 안 주셔도 괜찮사와요. 후후. 영국 왕실 전용기를 타면 되는 것이와요.”한서진의 말을 에반젤린이 끊는다.
그녀는 영국을 지배하는 스튜어트 왕실의 공주이자 후계자.
왕실 전용기가 있는데 겨우 항공권 때문에 그분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하와와와. 알겠사와요.”
뚝.
통화를 끝낸 에반젤린이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의 입에 싱글벙글 미소가 걸린다.
“계약자여,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웃는 것이더냐.”
그 모습을 본 베아트리체가 묻는다.
“하와와와와. 트릭시 양. 김덕성 님께서 저와 트릭시 양을 한국 스키 여행에 초대한 것이와요! 그러니 트릭시 양도 내일부터 스키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와요!”
베아트리체의 질문에 에반젤린이 하얀 레이스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말한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베아트리체가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말아쥔다.
한국, 스키 여행.
그 키워드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베아트리체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시작인 거구나.’
대장로, 디에고 모랄레스.
소울 리퍼라는 이명으로도 유명한 EX랭크 빌런.
그녀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언젠가는 제거할 야심을 품고 있는 대적자.
그를 처리할 무대를 김덕성이 마침내 준비한 것이다.
두근, 두근.
베아트리체의 심장이 긴장감으로 떨린다.
베아트리체가 입술을 깨문다.
욱신.
안대에 가려진 그녀의 눈에서 살짝 고통이 올라온다.
‘부디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만······.’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에반젤린에게 향한다.
스키 여행 소식 때문에 기분 좋은 얼굴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에반젤린의 모습이 보인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모두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할 것이리라.
에반젤린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차향이 그녀의 코 끝에 맴돌았다.
*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는 북극해 해저.
그곳에 반구형의 기묘하고 거대한 금속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의 정체는 진리의 교단 총본산.
한때 딥 블루 시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해저 유적이었다.
째깍, 째깍.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금속음이 인상적인 총본산 내부의 가장 깊은 곳.
거기에 대장로의 집무실이 있었다.
하얀 사제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
디에고 모랄레스의 얼굴에는 평소의 인자함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한 상태였다.
“성녀의 행방은 찾았느냐?”
디에고 모랄레스의 분노가 깃든 목소리가 집무실을 울린다.
째깍, 째깍.
톱니바퀴의 마찰음이 집무실을 고요하게 울린다.
그의 주름진 손이 파르르 떨린다.
영혼을 다루는 기프트인 소울 이터의 소유자인 그에게, 타인의 영혼을 마석에 가둬서 만들어내는 소울 젬은 그의 강력한 힘을 증폭시키는 원천이었다.
강력한 영혼으로 만든 소울 젬일수록 힘의 증폭도 커진다.
그래서 파이브 크라운즈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EX랭크 영웅 데스페라도의 소울 젬은 디에고 모랄레스가 가진 소울 젬 중에 가장 강력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물건을 도둑맞았다.
물증은 없지만, 대장로 본인 외에 소울 젬 창고에 기록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성녀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사실상 성녀가 범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영국에 있던 성녀의 소식이 끊긴 것도 그가 소울 젬의 도난을 알아차린 직후였다.
“······아직 정확히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무능한!”
파츠츠츠츠츳!
하얀 사제복 로브를 뒤집어쓴 대장로의 몸에서 압도적인 마력파가 쏟아진다.
EX랭크 빌런.
전 세계 최악의 기술 테러리스트이자, 100억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전 세계 최고액 현상범.
그의 압도적인 마력에 교단 신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빌어먹을 성녀 같으니······.’
교단.
정확히는 진리의 교단이라는 이 조직을 만들고, 선택받은 자만 이세계 문명의 유산을 독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내세운 건, 순전히 대장로 본인이 유물을 독식하기 위해서였다.
성녀는 그저 상징에 불과한, 유적의 문을 여는 데 이용하기 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물론 성녀가 자신의 야심을 기프트를 통해 알아차렸다는 사실 정도는 대장로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적당한 선, 그러니까 궁극의 힘이 잠들어 있다는 슈오우 영웅 학원 지하 유적, 브로큰 월드의 문을 연 뒤에 성녀를 토사구팽할 생각이었다.
브로큰 월드에 잠든 궁극의 힘만 얻는다면, 성녀 따위를 내세울 필요는 없으니까.
성녀 역시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성격이기에, 세력이 모자란 상태에서 함부로 자신을 배신하지 못할 것이다.
최악의 빌런 조직에 몸담았던 그녀였다.
교단을 배신하더라도, 그녀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세력이 부족한 그녀가 반란을 일으켜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성녀는 날고 뛰어봐야 자신의 손바닥 안이다.
대장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녀가 영국의 영웅 학원에 잠입한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건 그런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데 성녀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게 될 줄은 몰랐다.
“대장로님! 하지만, 하지만 방금 입수한 정보에서 성녀로 추정되는 인물의 목적지를 알아냈습니다.”
하얗게 질린 교단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목적지?”
대장로가 마력 파장을 거둔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성녀로 추정되는 인물······. 트릭시 스미스는 영국의 공주인 에반젤린과 함께······. 검은 귀축 김덕성의 초대로 한국에 도착해 스키를 즐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교단원이 더듬더듬 설명하면서 품에서 서류를 꺼내 대장로의 책상 위로 내밀었다.
서류를 검토한 대장로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국이라······.”
한국.
제대로 된 영웅 전력이라고는 검은 귀축 김덕성뿐인 약소국 중의 약소국.
그런 나라에 한가롭게 스키 여행이나 가다니.
대장로의 입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애 같은 발상이군. 아니 그러면 나야 좋지.’
함정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영웅 강국인 옆 나라 일본이라면 모를까 한국 같은 약소국에 함정을 파둬봤자 어차피 자신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성녀와 데미안의 소울 젬을 함께 탈취할 기회다.
‘이번에 성녀를 탈취한다면, 교단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해야겠어.’
대장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단원을 향해 손짓했다.
나가라는 의미의 제스처였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대장로님!”
교단원이 인사를 붙이면서 퇴장한다.
탁.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대장로가 탁자 위의 버튼을 누른다.
푸슉.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책상 위에 나타난다.
[오랜만이군요. 대장로님.]그의 귓가에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영상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지닌 미남자가 등장한다.
뉴 월드 리그의 수장, 메사이어.
그와 동맹을 맺은 자였다.
“데미안의 소울 젬을 훔친 성녀의 위치 정보를 입수했다. 한국으로 스키 여행을 갈 거라더군.”
[그래서요?]“그건 당신한테도 중요한 물건 아닌가? 이번 작전에 리그의 전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는데.”
대장로인 자신이 직접 나서면 승률은 거의 100%.
김덕성인지 뭔지 하는 애송이가 EX랭크를 각성했다지만, 자신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나설 생각도 없었다.
그는 101%의 승률을 추구하는 신중한 성격.
상대를 압살하는 전력이 아니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흐음······.]홀로그램 영상 속의 메사이어가 침묵한다.
“작년에 당신의 요청으로 우리 교단의 기사단원이 슈오우 학원 임간학교에 난입했다 협회에 체포당한 사실을 잊었나? 우리 교단은 동맹의 의무를 다했다. 이제는 너희 리그가 동맹의 의무를 지킬 차례다.”
임간학교에 동원했던 프리스트 이야기로 대장로가 압박하자, 메사이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희 리그에서는 교단에 독타 쉬나벨과 언더테이커를 지원 전력으로 보내드리지요.]독타 쉬나벨, 언더테이커.
남은 포 호스맨 전원이 온다는 소식에 대장로가 웃었다.
그 정도라면 안심이다.
그들이 합류한다면 작전의 성공률은 120%
절대 실패할 수 없다.
“협력 고맙군. 리그의 마스터.”
[아닙니다. 저야말로, 성공적인 작전 수행되시길 바랍니다. 대장로님.]뚝.
의미심장하게 웃는 메사이어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홀로그램 통신이 끊긴다.
대장로가 지팡이를 짚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성녀 베아트리체.
대장로는 뒷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면서 웃었다.
*
성웅 김덕성이 겨울방학에 또 귀국한다.
한서진에게서 전달된 그 소식은 당연히 대한민국 전국을 뒤흔들었다.
펄럭.
여름방학 때처럼 전국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명현 대통령 김덕성 방한 대비 임시 국무회의 개최······.] [강원도청, 성웅 김덕성 방문 대비 총력전. ‘성웅 김덕성 환영 위원회’ 설치. 강원도지사가 위원장 겸임. 강원도 기초지자체, 지역기업, 지역사회까지 민관 협의체로 구성······.] [강원도의 애물단지였던 양양국제공항 ‘김덕성국제공항’으로 명칭 변경해서 재탄생, 공항 재활성화 가능할까······.] [성웅 김덕성님, 강원도 방문 경제 효과 1조 5000억 추정······.] [성웅 김덕성님! 드디어 대한민국 방문! 그분께서는 한국을 사랑하신다!]국민들은 열광했다.
성웅 김덕성.
한국의 유일한 영웅이며, 수많은 빌런을 물리치고 일본과 프랑스를 구원했으며 EX랭크에 도달한 살아 있는 대한민국의 전설이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다.
국뽕의 쓰나미가 한반도를 뒤덮은 그때.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강원도 양양국제공항.
아니 김덕성국제공항에 김덕성 전용기가 착륙했다.
그와 함께 공항에 배치되어 있던 예포가 포구에서 연기를 뿜었다.
쾅! 콰광!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발사된 예포의 포성이 공항을 뒤흔든다.
발사된 예포는 총 21발.
바야흐로 스키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