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46)
#344
한 입만
모노레일 안은 쓸데없이 넓었다.
나와 히로인을 포함한 일행 전원이 스키 장비와 함께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정도.
모두 탑승하자 부드러운 소음과 함께 모노레일이 움직인다.
기관사 없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모노레일이 궤도에 매달려서 빠르게 슬로프를 향한다.
모노레일 내부는 쓸데없이 초호화 인테리어였다.
푹신푹신한 카페트에 금박을 바른 벽지가 시야에 보인다.
당연히 모노레일 내부는 난방 때문에 바깥과는 달리 따뜻한 상황.
이게 무슨 왕실 전용 열차야?
왜 이렇게 과해?
“우와아아아.”
에리가 창문에 딱 달라붙어서 탄성을 터뜨린다.
창문 너머로 하얗게 눈이 쌓인 스키 코스와 코스를 둘러싼 침엽수림이 보인다.
원작에서도 그렇고 일본 라노벨에서는 야밤에 스키 타거나 다른 짓 하다가 설산 조난 당하는 게 클리셰인데, 이 정도로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으면 조난 당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원래라면 그렇겠지.
[파트너, 긴장한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긴장이라.
딱히 긴장한 적은 없다.
EX랭크 빌런 셋.
원래라면 나라 하나 정도는 하루아침에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지만, 그 셋 중에 한 명은 내 편이다.
게다가 이쪽에는 같은 EX랭크인 나와 반쪽짜리긴 하지만 EX랭크인 세이라도 있다.
거기에 유사시에 지원 올 일본 영웅 협회 전력까지 생각하면 이건 질 수 없는 게임이다.
긴장 따위 할 필요 없다.
적이 구사할 전략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로부터 결계로 분리해서 설상 조난 상황을 가장한다.
확실히 독타 쉬나벨의 비전마술인 세계 유리 결계는 강하지만, 사전에 결계의 약점을 미리 알고 있다면 파훼하지 못할 건 없다.
오히려 독타 쉬나벨이 결계 해제의 반동으로 부상을 입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 이쪽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난에 휘말려서 놈들의 뒤통수를 거꾸로 치면 될 일이다.
[스키 못 타는 건 아니지?]흑태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스키 못 타는 것.
잠깐, 스키?
긴장이라는 말이 스키 이야기 하는 거였어?
어이가 없다.
‘누가 그래. 못 탄다고.’
스키를 수준급으로 타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초보까지는 아니다.
대학교 다닐 때 겨울마다 과에서 스키장으로 겨울 MT를 갔는데, 거기 꼬박꼬박 참석한 덕분에 스키는 상급자 코스 정도는 무리 없이 탈 수 있다.
[그래? 난 또 파트너가 스키 못 타서 긴장하는 줄 알았지. 뭐, 아니라니까 다행인데. 만약 그래도 혹시 스키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말하라고. 이 흑태자 님이 알프스에서 단련한 스키 기술을 동기화로 전수해줄 테니까! 하하하하하하하!]올리비아도 그렇고 알프스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때.
모노레일 내부에 안내 방송이 울린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저희 모노레일은 곧 목적지인 이순신 코스에 도착합니다. 감사합니다.]코스 이름에 왜 이순신 장군님의 이름을 붙인 거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탁.
모노레일이 정차하고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도착한 이순신 코스에서 내려다보는 스키장의 모습은 제법 좋았다.
일행이 전부 내리자 모노레일이 다시 움직여 스키 하우스를 향해 내려간다.
“코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유롭게 스키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서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올리비아가 나선다.
“오호호호호호호! 이 정도 코스는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한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어요! 다들 제 우아한 스키를 보고 감탄할 준비나 하고 계세요! 아시겠나요?”
“흥. 누구 마음대로 감탄할 준비를 하라는 거지? 나야말로 이 정도라면 갓난 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더 쉬울 것 같군.”
올리비아의 아가씨 웃음에 반발하듯 린이 나선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파츠츠츠츠츳!
스파크가 튄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과장된 연출이 아니라, 진짜 올리비아와 린이 서로의 몸에서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 승부예요!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바라던 바다!”
그 빌어먹을 승부 아직도 하고 있었냐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포상 없는 승부는 시시하니, 대가를 걸도록 하지. 이 승부에서 이기는 사람이 덕성과 데이트하는 걸로. 어떤가? 보나파르트.”
척.
린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두꺼운 스키 파카 위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린의 거유가 보인다.
대체 얼마나 큰 거야.
“그 제안, 후회 안 할 자신 있나요? 이 승부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어요.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승리로 말이죠! 오호호호호호호호호!”
올리비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크읏······. 그쪽이야말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찌릿.
린이 올리비아를 노려보려고 말한다.
뭐야.
그냥 승부해야지 뭘 또 날 걸고 그래.
이거 왠지 뭔가 불안한 느낌이······.
라고 내가 생각하던 그때.
“그냥 승부가 아니라 김덕성 군과의 데이트라면······.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불쑥.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올리비아와 린 사이에 아리스가 보드를 탄 채로 끼어든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조용히 열의로 불타오른다.
이럴 줄 알았다.
그냥 스키 여행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또 산으로 가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참가자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더 많은 참가자가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한테 도전할수록, 저의 압도적 우위만 더 부각 될 테니까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웃는다.
참가자를 더 모집한다고?
‘올리비아 쟤는 대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
[파트너. 사랑스러운 여동생인 올리비아한테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니! 올리비아는 어릴 때부터 겨울마다 알프스 스키장에서 스키 실력을 단련해온 스키 천재. 내로라하는 스키 프로 선수들이 칭찬할 정도의 스키 영재였다고!]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반박한다.
아, 그래······.
그런데 그거 그냥 공주라서 칭찬한 건 아니겠지?
설정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올리비아는 국민 아이돌 같은 위상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현실에서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고.
물론 빌어먹을 국뽕의 화신이 되어버린 나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국민적인 인기를 가진 셈.
그런 올리비아에게 스키 못 탄다고 말할 깜냥이 있는 사람이······.
나는 그쯤에서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다들 아마추어니까,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스키를 잘 탄다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흠. 보나파르트 양의 뜻이 그렇다면 이 몸도 참가하겠다!”
올리비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이라가 손을 든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열기로 불타오른다.
[누님······.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그 모습을 본 흑태자가 한숨을 쉰다.
체육대회에 이어서 또 애들 놀이에 참가하다니.
흑태자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만 하다.
“하와와와와! 그렇다면 소녀도 참가하겠사와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단련한 스키 실력을 이번 기회에 김덕성 님한테 선보이는 것이와요······!”
번쩍.
뒤이어 손을 든 건 에반젤린.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알프스에 이어 스코틀랜드까지.
쓸데없이 글로벌하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벌어진 스키 경주에 참전하게 된 인원은 올리비아, 린, 아리스, 에반젤린, 세이라까지 총 5명.
“심판은 모두한테 공정하게 한서진 씨와 쿠로사와 군한테 맡기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심판을 볼 한서진과 쿠로사와 유지까지.
도합 7명이 스키 경주에 동원되게 되었다.
내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경주 준비가 완료되었다.
규칙은 당연히 마력 사용 금지, 가장 먼저 코스를 통과하는 1등이 나와 데이트하는 걸로.
빌어먹을 데이트 같으니.
“그럼 준비.”
슬로프에서 올리비아, 아리스, 린, 에반젤린, 세이라의 다섯 명이 일제히 출발선에 선다.
한서진과 유지가 양쪽 옆에서 그녀들을 지켜본다.
“출발하세요.”
한서진의 차분한 말과 함께 다섯 명이 일제히 코스를 내려간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다섯 히로인을 제외하고 슬로프에 남은 건 에리, 마코토, 카스미 선배, 하루, 베아트리체의 다섯 명.
슬로프 정상에 있는 카페 겸 휴게소.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다섯 명을 향해서 묻는다.
참고로 스키장 내부에 입점한 카페, 음식점, 편의점의 물건 가격은 전부 공짜였다.
오직 베아트리체만이 어색한 모양인지 겉돈 채로 코코아를 홀짝이고 있었다.
“너희는 왜 스키 타러 안 갔냐? 카스미 선배도요.”
옹기종기 앉아 있는 네 명을 향해 묻자, 하루를 제외한 그녀들의 얼굴이 살짝 빨개진다.
“후, 후배 군. 그, 그건······.”
카스미 선배가 말을 더듬은 그때.
“니시시시. 그건 언니들이랑 내가 스키 탈 줄 몰라서 그래.”
하루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스키 탈 줄 모른다.
하긴 원작에서도 베아트리체를 제외한 네 멤버는 스키 탈 줄 몰라서 유지가 스키를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베아트리체야 뭐 원래 밖에 나가본 적 없다는 설정이니 스키를 못 타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서 말인데. 덕성 오빠. 초 귀여운 JK갸루 하루한테 스키 가르쳐줄래? 하루, 덕성 오빠의 두근♥두근 스키 개인 강습 받고 싶은데? 니시시시시. 원한다면 더 두근두근하고 더 끈적한 개인 강습도 초 환영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가 내 귓가에 속삭인다.
스키 강습?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나?
“니시시시. 언니들 바보 같아. 스키 경주할 시간에 덕성 오빠랑 개인 강습 받는 게 초 100만배 이득인데.”
하루가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거기 쿠로사와. 에리링 몰래 주인님한테 달라붙어서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거야? 흥. 개인 강습이라니! 에리링!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주인님. 에리링도 스키 가르쳐주는 거지? 그렇지!”
그 모습을 본 에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녀가 이쪽을 향해 다가와 하루와 나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한다.
“주군! 나도, 나도 주군한테 스키 배울래!”
뒤이어 마코토가 에리의 뒤에 따라붙는다.
“후배 군······. 나, 방치 플레이도 좋지만, 이제는 후배 군한테 스키 배우고 싶은데. 설마 나쁜 남자 후배 군, 귀축스럽게 나를 이용만 하다가 버릴 생각은 아니지?”
마지막으로 카스미 선배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스키 강습이라고?
스키를 탈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걸 타인에게 가르쳐주는 건 별개 문제인데.
그렇다고 이대로 그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곤란해하던 그때.
“김덕성 님. 스키 강습이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불쑥.
한서진이 등 뒤에 나타나서 내 귓가에 속삭인다.
한서진이 도와준다면 안심이지.
“너, 스키 경주 심판은?”
“쿠로사와 유지 씨와 스키장 관리 요원한테 위임했으니 괜찮습니다.”
한서진이 내게 빠르게 답한다.
그렇다면 상관없겠지.
“좋아. 그럼 따라와라. 스키 타는 법 가르쳐줄 테니까. 베아트리체 너도.”
“여, 여가 왜 인간들의 하등한 설상 유희를 해야한다는 말이더······.”
“싫으면 여기 너 혼자 버리고 간다.”
“······여는 관대하다. 그래서 평소부터 우매한 인간들의 유희에 제법 흥미가 있었도다.”
내 말에 바로 발끈하다가 꼬리를 내리는 베아트리체.
진작 저랬어야지.
그렇게 나는 남은 히로인들과 함께 때아닌 스키 교실을 열게 되었다.
*
같은 시각.
김덕성 리조트 외곽.
군경 합동 경계 태세가 삼엄한 이곳을 세 명의 외국인이 낡아빠진 모텔 옥상에서 관찰 마술을 통해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언더테이커, 독타 쉬나벨, 디에고 모랄레스였다.
독타 쉬나벨이 손에 들고 있는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속초 닭강정을 이쑤시개로 찍어 씹어먹으며 말한다.
“경계가 삼엄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빈틈이 많군요. 침투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입니다.”
“어차피 우리 전력을 생각해보면,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옆에서 디에고 모랄레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속초 닭강정을 한움쿰 집어서 입 안에 넣는다.
EX랭크 빌런 셋.
핵폭탄과 비견될 정도로 강대한 전력이 모인 이상, 뚫을 수 없는 방어선 따위는 없다.
“그래도 요란하게 침투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침투하는 쪽이 좀 더 작전 성공에 유리합니다. 요란하게 방어선을 뚫으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챈 적이 도주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디에고 모랄레스가 다시 속초 닭강정을 한움쿰 집어 우악스럽게 입 안에 넣는다.
그의 볼이 닭강정으로 빵빵해진다.
“그렇다면야······. 엇?”
독타 쉬나벨의 눈이 손에 쥐여진 속초 닭강정 종이컵으로 향한다.
종이컵 안에 남겨진 닭강정은 없었다.
그저 부스러기뿐.
그 모습을 본 독타 쉬나벨의 시선이 디에고 모랄레스의 빵빵해진 뺨에 향한다.
“설마 다 먹은 겁니까?”
“한 입만 먹은 거다.”
“이게 무슨 한 입입니까! 장난하지 마시죠! 아껴 먹고 있었는데!”
디에고 모랄레스의 멱살을 잡고 투닥거리는 독타 쉬나벨.
그 둘의 모습을 뒤에서 본 언더테이커가 한숨을 내쉰다.
작전 실행까지 이제 반나절도 남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