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47)
#345
희소가치
스키 강습은 생각보다 진도가 빨랐다.
일단 다들 기본적으로 몸치는 아니었고,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체 능력은 이미 일반인 이상이었기 때문에 몇 번 시범을 보이니 다들 능숙하게 타게 될 터.
실제로 원작에서도 스키 배우는 것 자체는 빨리 끝났다.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꺄악! 덕성 오빠! 하루 넘어져버렸어!”
꽈당.
내 앞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넘어지는 하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스키를 아까는 그럭저럭 타더니만 지금은 넘어졌다고?
이거 일부러 넘어진 거 아닌가?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눈 속에 파묻힌 하루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다친 데는 없냐?”
내 말을 들은 하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언제나 당당한 걸 넘어서 당돌하기까지 한 평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착하고 붙잡는다.
“···으, 응 하루 괜찮아······.”
하루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의 몸에서 하얀 눈이 후두둑 떨어진다.
털썩.
그녀가 내 쪽으로 쓰러지자,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니시시. 그런데 하루. 열이 조금 있는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이렇게 초 두근두근할 리가 없는걸? 그러니까 덕성 오빠가 하루를 데리고 의무실까지······.”
하루가 요염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던 그때.
“쿠로사와! 지금 에리링의 주인님한테 무슨 짓이야! 이 도둑고양이 같으니! 에잇!”
어느새 곁에 다가온 에리가 내 품에서 하루를 떼어낸다.
“나, 아까 쿠로사와 양이 스키 잘 타는 거 봤는데······. 너무해······.”
에리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마코토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럼 그렇지.
하루 같은 초인이 그냥 넘어질 리가 없지.
초인도 감기에 걸리고, 샤워장에서 넘어지는 라노벨 세상이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속은 내가 멍청이지.
“어쩔티비 저쩔냉장고 쿠쿠루삥뽕~ 니시시시. 에리링 언니, 마코삐 언니. 지금 초 귀여운 연하 JK 여동생 하루가 덕성 오빠랑 키스나 더한 것도 아니고 고작 포옹 한번 했다고 초 추하게 질투하는 거야? 연상의 여유는 어디 간 거야? 뿅하고 사라졌어? 하긴 에리링 언니는 제일 어린 하루보다도 가슴이 초 작으니까, 가슴이 초 작은 여자는 모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완전 팩트였던 모양이네. 니시시시.”
하루가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그녀가 가슴을 내민다.
두꺼운 스키 파카를 입은 상태라 굴곡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식 설정에 따르면 하루의 가슴 사이즈는 C컵.
수영복을 입었을 때 의외로 볼륨감이 괜찮다는 설정이었다.
당연하게도 B컵인 에리보다는 한 단계 위 사이즈.
가슴 이야기를 들은 에리의 얼굴이 빨개진다.
“으으으으으으! 쿠로사와! 에리링 가슴 절대 안 작거든! 에리링은 슬랜더에 꽉 찬 B컵에 은 하 제일 미소녀거든?! 흥! 젖소보다 가슴도 작은, 진짜 거유도 아닌 주제에 감히 에리링의 가슴을······. 에리링 절대 용서 못 해! 으으으으으으!!”
에리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하루를 노려보며 소리친다.
“꺄하하하하. 에리링 언니 초 웃겨. 본인이 본인보고 은하 제일 미소녀래. 근자감 초 넘치는 거 아니야? 초 유치해. 언니가 하루보다 연상이라니 믿을 수 없어. 니시시시. 그리고 확실히 하루는 린 언니처럼 완전 거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볼륨감은 있는 가슴이거든? 니시시. 게다가 하루는 언니들이랑 다르게 성장기니까, 하루의 가슴은 하루가 다르게 사이즈가 초 커지고 있다고.”
하루가 에리를 보면서 웃는다.
그녀의 사이드 포니테일이 흔들린다.
“에, 에리링도 성장기거든! 가슴 조금씩 크고 있거든?! 매일매일 우유 하루 식후에 한 잔 세 번씩 먹고 있거든! 절대로 곧 커질 거거든!”
하루의 말에 반발하는 에리.
하루 세 번이나 우유를 먹는 거냐.
뭐 우유는 몸에 좋으니까, 많이 먹어서 나쁠 건 없다.
“니시시시. 아직도 우유 먹으면 가슴 커진다는 말 믿고 있는 거야? 에리링 언니 초 웃겨. 완전 잼민이임. 어이없어.”
“이이이이이이이익!!”
하루의 도발에 폭발한 에리가 돌격하려던 그때.
“으앗, 안돼! 참아! 에리쨩!”
뒤에서 당황한 마코토가 그녀의 양 팔을 붙잡는다.
마코토에게 구속당한 에리가 팔을 바둥거리면서 소리친다.
“이거 놔! 마코삐! 으으으윽! 지금 쿠로사와가 모든 빈유녀를 모욕했어! 빈유는 희소가치란 말이야!”
“빈유는 희소가치라는 말, 대체 언제 유행어야? 하루,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요즘 시대에 밀레니엄 시대에나 유행했던 구닥다리 옛날 유행어 듣기 싫어. 완전 초 구려. 으엑.”
하루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그녀가 혀를 메롱하고 내민다.
“으으으으으, 가, 가슴 사이즈 따위······.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그, 그런 천박하고 음란한 지방 덩어리가 대체 뭐가 좋다고······.”
하루의 말을 들은 에리가 입술을 깨물던 그때.
“쿠로사와 양. 적당히 하고 후배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덥석.
카스미가 뒤에서 하루를 끌어안으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후에에 언니? 니시시시. 갑자기 왜 왔어?”
하루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카스미의 별명은 후에에 언니냐.
얘의 호칭은 종잡을 수가 없다.
“누가 후에에 언니라는 거니? 쿠로사와. 자꾸 그렇게 얄밉게 굴면 벌을 줄 거야. 에잇!”“으아아아! 간지럽히지 마.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루를 간지럽히는 카스미 선배와 간지럼을 당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하루.
그 모습을 보던 에리가 마코토의 품에 안기면서 말한다.
“흑흑······. 마코삐. 빈유는 희소가치가 맞지? 그렇지?”
“응. 맞아. 에리쨩. 너무 상심하지 마. 주군은 에리 쨩의 예쁜 가슴도 좋아할 거야.”
쓰담쓰담.
마코토가 카스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품에 안는다.
두꺼운 스키 파카 위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코토의 풍만한 가슴이 시야에 들어온다.
최근에는 파멸적인 가슴 싸움을 안 하나 했더니, 그럼 그렇지.
제대로 된 빌어먹을 가슴 사이즈 말싸움을 오랜만에 들으니 머리가 어질해진다.
“······인간들의 문화는 이런 것이더냐······. 여는 인간들의 세계가 두렵도다······.”
그 와중에 등 뒤에서 베아트리체가 덜덜 떨면서 중얼거린다.
얘는 안대 좀 벗으면 안 되나? 볼 때마다 거슬리는데.
나는 한숨을 쉬면서 박수를 쳤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다 정리됐으면 이제 코스부터 타자.”
스키 강습은 충분히 끝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코스를 탈 차례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
겨우 정리됐네.
나는 히로인들을 데리고 코스 출발선에 섰다.
저 멀리 아래쪽에 스키 하우스가 보인다.
스키 경주를 하던 히로인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모양.
설마 결과에 승복 못 해서 상급자 코스 같은 데서 한 판 더 하는 중인 건 아니겠지?
“아까 강습에서 제가 여러분께 가르쳐줬던 대로 하면 어렵지 않게 코스를 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신호하면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실전은 처음인지 에리, 마코토, 카스미, 베아트리체는 물론 하루까지 제법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서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준비, 출발하세요!”
한서진의 신호와 함께 히로인들이 눈밭을 가르며 아래쪽으로 질주한다.
나 역시 그녀들이 모두 내려가는 걸 본 다음에 마지막에 오랜만에 눈밭을 박차며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귓가에 겨울 바람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상쾌함과 스릴이 온몸을 감싼다.
슈우우우우우우.
귓가를 스치는 파공성과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과 고글 너머로 보이는 새하얀 설산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코스를 탄 나는 마침내 스키 하우스 아래 도달했다.
“하루! 스키 완전 재밌었어! 니시시시시.”
“에리링도 주인님과 함께라면 스키장 또 오고 싶을지도······.”
“그럼 나도 에리쨩이랑 같이 갈래.”
“인간의 유희도 제법 괜찮구나.”
코스 끝에는 스키를 타고 내려온 히로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루, 에리, 마코토, 베아트리체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키 강습 과정에서 제법 친해진 모양.
“어라, 후배 군도 내려왔구나. 어서 와. 후배 군.”
그중에서 나를 발견한 카스미가 손을 흔든다.
“어라, 주인님이다! 주인님! 에리링! 주인님이 보고 싶었어!”
“니시시시. 덕성 오빠!”“주군!”
카스미의 말과 동시에 모든 히로인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에리, 하루, 마코토가 반색하며 이쪽으로 향하던 그때.
꼬르르르륵.
고요한 스키장에 천둥 같은 배꼽 시계 소리가 울린다.
범인은 베아트리체였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이, 이건. 흠. 여, 여가 낸 소리가 절대 아닌 것이니라!”
베아트리체가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고개를 젓던 그때.
“출출하시다면 스키 하우스의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니 그쪽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스윽.
어느새 나타난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그러니까 여는 그런 게 아니······.”
한서진의 말에 손사래를 치는 베아트리체.
그때.
꼬르르르륵.
그녀의 배에서 다시 더 큰 배꼽 시계 소리가 울린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따라오십시오.”
“······인간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대한테 홍련의 성녀인 여를 안내할 영광을 하사하겠도다. 인간이여.”
언제나처럼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는 베아트리체.
결국 우리는 한서진을 따라 스키 하우스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
도착한 식당은 통유리를 통해서 스키 하우스 밖에 조성된, 꽝꽝 얼어붙은 호수와 설산의 절경이 훤히 보이는 제법 분위기 있는 장소였다.
“여기입니다.”
한서진이 우리를 안내한 테이블에는 뜨끈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어묵탕과 떡볶이에 컵라면, 그리고 속초 닭강정이 있었다.
전부 스키장에 가면 자주 먹는 음식들.
원래 스키장 물가로는 눈물이 나오고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비싸지만 여기는 내 개인 리조트.
심지어 운용 비용도 전부 재벌 그룹이 대주는 상황이라 진정한 의미에서 공짜였다.
이렇게 쓸데없이 뭔가를 자꾸 대주는데도 그 의도가 탈세 같은 게 아니라 순수한 선의라는 점이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
“이 어묵탕에 들어간 어묵은 부산광역시에서 직접 김덕성 님께 진상한 부산어묵으로, 국물을 우려내는 데 사용한 해산물 역시 부산광역시에서 책임지고 공급했습니다. 조리는 칠성 호텔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 셰프가 담당했습니다.”
대체 어묵탕을 왜 칠성급 셰프가 끓인 건데.
어이가 없다.
“이 속초 닭강정은 속초에서 제일 유명한 닭강정 업체에서······.”
라노벨 하면 빠질 수 없는 지역 PPL 대사가 한서진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빌어먹을 것까지 구현 안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묵탕 안에 들어간 어묵을 찍어 먹으려던 그 순간.
덜커덕.
식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