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55)
#353
쪽팔림은 한순간
“누, 누가 네놈의 누님이라는 것이냐!”
누님 소리를 들은 세이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뺨이 파르르 흔들린다.
라노벨 캐릭터답게 세이라는 나이에 민감하다는 설정.
당연히 하얀 수염을 신선처럼 기른 할아버지에게 누님이라고 불리는 걸 못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원작 17권에서는 주인공이 교단에 쳐들어갈 때 세이라가 동참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세이라와 디에고가 만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장면도 당연히 없었고, 둘 사이에 안면이 있다는 건 설정집에서나 밝혀진 뒷설정이었다.
설정에 따르면 대장로 디에고 모랄레스는 교단 설립 이전, 파이브 크라운즈가 살아 있던 10년 전부터 악명을 떨쳤던 위험도 EX랭크 빌런이자 파이브 크라운즈를 매번 엿 먹이던 아치 에너미.
놈의 진정한 목적은 브로큰 월드에 잠든 궁극의 힘, 지맥의 원천을 획득해 세계를 지배하는 것.
그에게 유물과 로스트 테크놀로지 수집은 강력한 힘인 지맥의 원천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는 설정이다.
지맥의 원천이 품은 막대한 힘을 이용해서 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신세계를 창조하려는 메사이어와는 정반대의 목표를 가진 셈.
그래서 원작에서도 메사이어는 학원 부수기 계획에서만 디에고를 이용한 뒤 브로큰 월드에서 뒤통수를 쳐서 제거할 계획을 수립했었다고 설정집에 적혀 있었다.
[후우. 파트너. 이제 좀 살 것 같아.]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파츠츠츠츠츠츠츠츳!
하얀색과 회색 스파크가 튀면서 공간이 흔들린다.
디에고 모랄레스의 공간과 요시자키 세이라의 공간이 부딪히며 반발한다.
“누님이 아니면 할망구라고 불러드릴까요? 아무튼 오랜만입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디에고 모랄레스가 허허로이 웃는다.
그의 손에 들린 초상병기, 데스 사이드가 불길한 울음을 토해낸다.
“다, 닥쳐라! 으으으으······. 이 근처 산악지대에 세계 유리 결계가 펼쳐질 때부터 우리 꼬마한테 수작을 부리는 빌런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었다. 결계가 해제되자마자 한서진 요원의 도움을 받아 꼬마의 마력을 감지해 여기까지 날아왔건만, 꼬마한테 수작을 부린 빌런이 디에고 네놈이었다니······.”
세이라가 주먹을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떤다.
세계 유리 결계가 펼쳐진 것 자체는 현장에 있던 영웅들이라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반쪽짜리라도 EX랭크인 세이라라면, 내 위치를 즉각 파악하고 움직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그렇기에 사전에 한서진에게 결계의 동향을 세이라에게 알리고 해제되는 순간 이쪽으로 올 수 있도록 미리 언질을 준 것이다.
‘계획대로군.’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물론 반쪽짜리 EX랭크인 세이라 혼자서는 디에고와 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온전한 EX랭크인 내 심상전개의 힘을 받아 세이라가 전성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디에고와 싸우는 건 물론 이기는 것도 가능하다.
거기에 독타 쉬나벨을 처단하고 바로 합류할 언더테이커까지 생각한다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꼬마야. 다친 곳은 없느냐?”
그런 내 귓가에 세이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없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내 팔과 어깨를 주물러보며 이리저리 살피는 세이라.
그녀의 손길이 닿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게 된다.
[누님······.]흑태자가 머릿속에서 탄식한다.
“다행이니라. 휴우. 다른 아이들은? 아-쨩, 스튜어트 양. 스미스 양. 다친 곳은 없느냐?”
내 몸의 부상 여부를 확인한 세이라가 다른 히로인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없습니다. 이사장님.”
“소녀, 멀쩡한 것이와요!”
“머, 멀쩡하다.”
아리스, 에반젤린, 베아트리체가 각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나랑은 다르게 만지지 않고 그냥 눈으로 훑어보던 세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감히 이 몸의 사랑스러운 꼬마와 제자들을 건드린 건방진 늙은이한테 대가를 받아내야겠군.”
“늙은이? 누님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
디에고의 말이 떨어진 순간.
으드득.
세이라의 이가 갈린다.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소리친다.
“닥쳐라! 이 악랄한 빌런아! 누가 늙은이라는 것이냐! 이 몸은 아직 새파랗게 어린 미소녀란 말이다! 죽어! 천양의 섬광!!”
세이라가 스킬명을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 반투명한 여인 형상의 정령이 나타난다.
초월무장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정령 아마테라스.
정령 아마테라스가 손을 지켜들자 새하얀 하늘에서 하얀 빛기둥이 번쩍하고 창날처럼 수없이 디에고에게 내리꽂힌다.
콰-과-과-광!
하얀 스파크가 튀면서 공간이 찢어지고 하늘이 흔들리던 순간.
“나이에 예민한 건 여전하군요.”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던 연기를 회색 낫으로 찢어버리며 디에고가 나타난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음산한 귀곡성과 함께 그의 등 뒤에서 검은 망령이 끝없이 솟아오른다.
“세이라 누님. 뭐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전성기의 당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누님은 절대 저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안 그래도 비 오면 무릎이 쑤셔서 요즘 힘들 나이일 텐데 무리하지 말고 편히 쉬십시오. 누님! 레이스!! 토네이도!!”
디에고가 우렁차게 스킬명을 외친다.
파츠츠츠츠츠츠츠츳!
그와 함께 검은 망령에 놈의 회색 마력이 깃들면서 스킬명대로 회오리의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첨벙! 첨벙!
음산한 귀곡성과 함께 수면 위로 망령들이 솟구치면서, 놈이 하늘로 치켜든 데스 사이드의 칼날에 망령들이 까마귀 떼처럼 새까맣게 모여든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심상치 않은 마력 충격파가 놈의 데스 사이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레이스 토네이도.
번역하면 망령 회오리라는 구리기 짝이 없는 이 스킬은 디에고의 트레이드마크 스킬.
수집한 망령들에 저승의 힘을 더해 적에게 날려 타격을 주는 광역기였다.
그 모습을 본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이 몸은 무조건 꼬마와 내 아이들을 지킬······.”
“이사장님.”
세이라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꼬, 꼬마야?!”
화들짝.
세이라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의 몸이 움찔한다.
“이제 심상전개를 거두시죠.”
파츠츠츠츳!
세이라의 심상이 디에고의 심상을 일정 부분 침식하기는 했지만, 밀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디에고의 지적대로 전성기가 아닌 세이라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꼬마는 갓 심상전개를 각성해서 아직 미숙하니 어른인 이 몸이 너를 지켜야 한다. 이 몸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괜찮다. 전성기 모드를 사용한다면······.”
세이라가 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갓 EX랭크에 올라서 내 심상전개가 미숙할까 봐 일부러 본인이 앞에서 일부러 놈의 공격을 탱킹하겠다는 논리.
아주 호구가 따로 없다.
하긴 그래야 라노벨 세상이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전성기 모드, 굳이 사용할 필요 없다.
그때의 유아 퇴행을 눈 뜨고 다시 볼 수 없다.
물론 세이라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EX랭크에 갓 오른 애송이.
EX랭크 내부에서도 심상전개가 상징하는 신념의 자기 확신와 숙련도에 따라서 우열이 나뉜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갓 EX랭크에 오른 내가 EX랭크 중에서도 정상급인 놈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파트너! 지금부터는 우리 시간인 거지?]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내 등 뒤로 흑색 전신 갑주를 착용한 정령이 등장한다.
흑태자.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좌를 차지했던 그가 나와 함께한다면 숙련도의 문제 따위는 상관 없었다.
“절 믿어 주십시오. 이사장님. 이번에는 제가······.”
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뭐 대사가 조금 쪽팔려도 어쩔 수 없다.
전성기 모드 부작용으로 유아 퇴행이 온 세이라를 보는 것보단 내가 조금 쪽팔리는 대사 하는 편이 낫다.
“······이사장님과 아리스 선배, 스튜어트 양, 그리고 스미스 양을 지키겠습니다.”
내 말에 세이라의 눈동자가 떨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머, 멋있구나······.”
그녀가 작게 말한다.
멋있다고?
이게?
난 쪽팔려 죽겠는데.
“······.”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을 지켰다.
이래서 라노벨 주인공들이 청각도 좋으면서 일부러 못 들은 척을 하는구나.
쪽팔려서.
이제야 작은 목소리로 히로인들이 좋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는 라노벨 주인공들의 심정이 이해가 약간 간다.
“아, 알겠다······.”
한 발짝.
세이라가 물러선다.
파츠츠츠츠츠츠츳!
스파크와 함께 순식간에 세이라의 심상전개가 거둬진다.
“호오? 누님. 김덕성이라는 애송이한테 운명을 맡기겠다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군······.”
망령을 모으고 있던 디에고가 라노벨 빌런답게 뭐라뭐라 말한다.
놈의 말을 무시하면서 눈을 감는다.
두근.
심장이 뛴다.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공명하며 마력을 폭발적으로 뽑아낸다.
심상전개란 곧 영웅 개인이 품고 있는 신념의 형상화.
자신의 신념을 세계에 새기는 행위이다.
그러니 심상전개의 싸움은 곧 신념의 싸움.
EX랭크 영웅과의 대결은 대체적으로 더 강한 신념을 가진 영웅이 승리한다.
분명 그런 설정이었다.
신념의 싸움이라니 중2병 배틀물 라노벨다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설정집에 적힌 디에고, 놈의 신념이 세계 정복의 야망이라면 나는······.
[파트너. 가자.]흑태자의 말과 함께 눈을 뜬다.
우우우우우우웅!
듀랜달이 나에게 호응하듯 칼날이 떨린다.
눈을 뜬 나는 그대로 내 신념을 상징하는 진언을 세계에 새겼다.
【Break the Fourth Wall】
진언이 세계에 새겨진 순간.
번쩍!
검은 섬광과 함께 세계가 뒤집혔다.
금이 간 하늘의 틈 사이로 무한히 별과 성운, 은하가 반짝이는 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파츠츠츠츠츠츠츠츠츠츳!!
스파크와 함께 하늘 위에 푸른 내 고향별, 지구의 모습이 나타난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하늘 위로 나타난 우주가 점차 공간을 넓힌다.
그 모습을 본 디에고의 눈썹이 꿈틀한다.
“······최후의 발악인가? 미숙한 심상전개 따위에 모든 걸 걸다니. 이해할 수 없군. 그래도 소용없다. 내 비장의 기술인 레이스 토네이도는 이미 완성되었으니! 죽어라!!”
디에고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레이스 토네이도를 쏘아낸다.
오랫동안 모인 망령과 저승의 힘을 통해 끝없이 강화된 회색 토네이도가 공간을 찢으며 이쪽으로 날아든 순간.
나는 손을 흔들었다.
번쩍!
깨진 하늘 사이로 비치는 별이, 성운이, 은하가,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뜬 지구가 내 손짓에 호응한다.
[파트너! 이제 스킬명을!]흑태자가 머릿속으로 외친다.
스킬명이라.
그걸 꼭 외쳐야 하나 싶기는 한데, 여기는 심상전개 안.
내 신념과 심상이 현실화된 공간.
심상전개 내부에서는 스킬명을 외치는 행위가 일종의 언령으로 작용해서 스킬이 한층 더 강력해진다, 라는 빌어먹을 설정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굳이 필요없어서 안 했지만 상대는 EX랭크에서도 정상급에 속하는 강자인 디에고 모랄레스.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빌어먹을 스킬명을 외쳐야 한다.
유치하고 쪽팔린다.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 같으니, 대체 왜 그런 설정을.
하지만 해야 한다.
놈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쪽팔림은 한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스킬명을 외쳤다.
“얼티메이트 스타폴!!”
염병.
쪽팔려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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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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