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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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아는 천장이다
이제는 익숙한 두통이 머리를 강타한다.
아프다.
이쯤 되면 흑태자 목소리가 들릴 때가 됐는데.
[파트너! 파트너!]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매트리스의 푹신한 촉감.
그리고 몸에 닿는 새 옷 질감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여기는 병원이로군.
눈을 뜨기 싫지만, 정신을 차렸으니 어쩔 수 없이 떠야 한다.
이번에는 누가 병문안을 와 있을지 조금 두려운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은 것처럼 살짝 가늘게 떴다.
가물가물한 시야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병원의 새하얀 천장.
드물게 내가 아는 병원의 천장이었다.
‘서울대병원의 천장이로군.’
천장을 확인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서울대병원.
빙의 전 우리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자, 내가 수없이 들락날락했던 병원이었다.
병원비가 어찌나 비쌌는지.
병원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는데도 벌써 돈 생각부터 난다.
어머니는 잘 계실까?
빨리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맴돈다.
역시 빨리 양방향 게이트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내 머릿속에 메사이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미친놈, 히로인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내가 이세계에서 왔다고 떠들어댔었지.’
분명 그랬었다.
[파트너. 그 말, 정말이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물었다.
이제 와서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진짜 밝히고 싶지 않은 진실은 내가 빙의자라는 사실이지, 이세계에서 왔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메사이어가 불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겠지.
‘그래. 정확히는 이세계가 아니라 평행세계라고 해야겠지.’
나는 이미 메사이어와의 조우로 확신하고 있었다.
원작에서 묘사된, 메사이어가 봤던 이상향의 세계.
원작 최종장에서 메사이어가 이쪽 세계와 합일을 시도했던 그 세계는 내 고향.
현실 세계가 맞을 거라는 사실을.
메사이어의 대사는 그 확신을 진실로 바꿔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평행세계라······. 어쩐지 그때 1차대전 종전일을 착각할 때부터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거든. 파트너가 평행세계에서 온 존재라면 이해는 돼. 아직 약간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뭐 그래도 파트너는 파트너니까. 파트너가 어떤 존재건 이 흑태자 님은 아무런 상관 없단 말씀!]빼빼로 데이 때 말하는 거네.
흑태자라면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흑태자뿐만 아니다.
바보같이 호구스러운 히로인들 역시 그냥 저렇게 넘어가겠지.
저 무한 신뢰와 선의는 대체 어디서 오는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빌어먹을 정도로 상냥한 세상 같으니.
‘그래.’
흑태자의 반응을 넘기면서 눈을 감은 채 기절하기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메사이어는 내 생각보다 강했어.’
원작에서도 사실상 세계관 최강자인 메사이어였다.
하지만 EX랭크에 도달해서 심상전개도 각성했고, 언더테이커와 세이라라는 비대칭 전력도 있으니 메사이어와도 해볼 만하다.
아니, 최소한 상대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전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EX랭크 이상으로 강화된 언더테이커, 전성기 시절의 힘을 되찾은 세이라, 준 EX랭크 수준으로 강화된 에반젤린과 아리스, 그리고 S랭크 수준으로 강화된 베아트리체에 EX랭크인 나까지.
나를 없애기 위해 디에고 모랄레스가 동원한 독타 쉬나벨, 언더테이커의 3명의 EX랭크 따위는 압살을 넘어 초살이 가능한 전력이었다.
쉽게 말해서 하루아침에 나라 하나 정도는 뒤엎을 수 있는 전략병기급 전력이었다.
그런데 전부 허무하게 제압당한 것이다.
그것도 본체가 아닌 분신 따위에게.
‘역시······.’
썩어도 준치라고, 비록 미치기는 했지만, 실력은 세계관 최강자가 맞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대놓고 무색의 마력이 아니면 상대하기 힘든 초강자라고 언급했으니.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원작처럼 메사이어의 힘과는 상극이며 놈의 힘을 상쇄하는 무색의 마력 소유자인 쿠로사와 유지가 심상전개를 각성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운에만 기대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지금 가진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놈을 무찌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 가능성이 있는 건.
‘천지검식뿐이군.’
흑광검식과 백염검식을 하나로 합쳤을 때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의 검식.
사용자의 신념을 검의 형태로 벼려서 빛과 어둠의 합일을 통해 현계에 구현하는 전설의 스킬, 천지검식밖에 없었다.
20권 마지막의 올리비아가 주인공과 대등하게 강해질 수 있었던 근원이 된 그 스킬을 얻어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천지검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상전개까지 각성했고, 그 능력으로 아군을 강화해서 메사이어를 다굴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놈이 정한 기간 동안 천지검식을 반드시 깨우쳐야 했다.
그것이 놈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흑태자. 혹시 천지검식 가르쳐줄 수 있어?’
[그건······.]내 말에 흑태자가 말끝을 흐린다.
[······솔직히 쉽지 않지만. 파트너가 그 마스터라는 놈을 꺾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흑태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좋아. 도와주지. 이 흑태자 님의 밑천까지 전부 전수해주겠다, 이 말이야. 파트너.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그 마스터, 메사이어라는 놈은 나와 동료들의 원수기도 하니까.]흑태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제 해결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로 수련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나저나 파트너. 정신 차렸으면 이제 슬슬 일어나지? 레이디들이 기다리고 있다고.]흑태자가 내게 말한다.
레이디들?
이번에는 대체 누가 왔는지 벌써 두렵다.
그래도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
‘알았어. 일어날게.’
흑태자의 말에 대답하면서 눈을 아까와는 다르게 천천히 크게 뜬다.
다시 보이는 서울대병원 천장.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건.
“다, 당신! 일어났군요!”
덥석.
내가 일어난 걸 확인하자마자 손을 덥석 잡은 백금발 미소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어, 그래.”
“덕성.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몸은 좀 괜찮나?”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가슴이 인상적인 남색 포니테일 미소녀.
시노자키 린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일어났구나!”
린 옆에는 에리가 있었다.
그녀가 방방 뛰면서 말한다.
올리비아, 린, 에리.
그녀들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병실은 6인실보다 더 큰 1인실. 바깥 창문에서는 서울의 전경이 보인다.
서울대병원에 이렇게 큰 병실도 있었나?
“왜 너희 셋밖에 없냐?”
“그야 주인님! 지금은 새벽인걸? 나랑 황녀님이랑 젖소는 불침번이야! 다른 사람들은 꿈나라에 가 있을 시간이야.”
내 물음에 에리가 휴대폰을 켜서 시계를 보여줬다.
휴대폰 액정에 떠 있는 시간은 오전 3시 25분.
확실히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긴 하다.
왠지 바깥 풍경이 한밤중처럼 보이더니 새벽이었나.
서울이 새벽이라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어서 새벽인줄 몰랐다.
빌어먹을 불야성 도시 같으니.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이틀이나 기절해 있었나.”
내가 기절했던 시간이 이틀이나 된 것.
“그리고 덕성, 너와 함께 싸웠던 다른 인원들도 다들 마력 동결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 서울대병원의 다른 병실에 입원한 상태다.”
같이 싸웠던 인원이라면 언더테이커, 세이라, 에반젤린, 아리스, 베아트리체의 5명을 말하는 건가.
그녀들을 제외한다면 남는 인원은 올리비아, 에리, 린, 하루, 카스미, 마코토, 한서진, 유지의 총 8명.
보좌 역할인 한서진과 남자인 유지를 빼면 정확히 여섯명이다.
그렇다는 말은.
“간호 희망자 6명을 반으로 나누어서 3인 1조로 나뉘어서 당신을 간호하기로 합의했어요. 흥. 그런 합의 따위 별로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애, 애당초 당신의 간호는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만의 의무라고요! 다른 사람의 간호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인정할 수 없어요! 흥!”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볼을 부풀린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예상대로 올리비아, 린, 에리의 3명이 한 조, 카스미, 마코토, 하루의 3명이 한 조로 해서 두 조로 나뉘어 2교대 간호를 돌린 모양.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다.
그럴 필요 없는데.
‘괜히 쓸데없이 미안해지네.’
새벽 세 시에도 아침처럼 일어나서 활발하게 떠드는 모습을 보니 더 그렇다.
다들 지금 졸릴 텐데.
[오, 파트너. 이제 완전히 레이디들한테 솔직해진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솔직해졌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아, 아무튼! 다행이에요! 멀쩡한 것 같으니······. 흥. 그 정도 적한테 고전한다면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주인을 자처할 자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당신. 다음에는 꼭 이기는 거예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빨개진 얼굴로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그래.”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꼭 이겨야지.
지면 내일이 없다.
원래 세상으로 귀환은커녕 문자 그대로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메사이어는 이 미친 라노벨 세상에서 최고로 미친놈이었으니까.
“······다, 다음번에는······. 저, 저도 전속 시녀로서 당신을 돕겠어요!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었다면 승부의 결과도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흥! 어, 어디까지나 이건 시녀로서의 의, 의무니까······. 벼, 별다른 뜻은 없어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이쪽을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하여간 옛날에도 그렇고 솔직하지 못한 말버릇은 여전하다.
“어, 그래. 고마워.”
내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린다.
“무······. 뭐, 뭐뭐뭐뭐가 고맙다는 건가요?!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쓸데없이 신경 쓰이게 만드는 우주 제일 바보 같으니!! 도, 도리어 당신이 사과해도 모자랄 판이라고요!!”
내 말에 올리비아가 가슴을 가볍게 툭툭 치면서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눈물이 반짝인다.
눈물?
저 모습을 보니 살짝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감수성이 풍부한지 모르겠다.
“······황녀님 말이 맞아. 에리링도 주인님 엄청 걱정했어. 주인님은 에리링의 전부니까······. 에리링, 이제 주인님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는걸······. 그러니까 주인님 절대 죽으면 안 돼.”
올리비아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에리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덕성. 나는 이미 네 미래의 아내가 되어 태어난 날은 달라도 한날한시에 죽기로 결심한 몸. 네가 죽는다면 나는······. 결혼도 못 한 채 과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린이 입술을 큿하고 깨물면서 말한다.
결혼도 못 한 과부는 대체 뭐야.
미래의 아내가 무슨 도원결의야? 한날한시에 죽게?
하여간.
괜히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들고, 감수성이 풍부한 빌어먹을 라노벨 세계는 이래서 곤란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마지 못해 팔을 뻗어 올리비아, 린, 에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다, 당신?!”
“덕성?”
“주, 주인님?!”
화들짝 놀라는 올리비아, 린, 에리.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니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나는 절대 안 죽을 거다.
내 말에 품에 안긴 올리비아, 린, 에리의 몸 떨림이 점차 잦아드는 게 느껴진다.
이제 좀 진정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슬슬 빌어먹을 국뽕 반응을 확인할 때가 왔다.
나는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집은 뒤에 인터넷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