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62)
#360
첩실은 필요 없어
“이, 이게 뭐지······?”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배우자 후보 리스트라니.
아직 내 머리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다.
“봐 주시길 바랍니다. 김덕성 님.”
한서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붙잡았다.
이 뒤를 넘기기가 두렵다.
[파트너. 외면하지 않겠다며?]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했다.
외면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이런 급전개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라노벨 세상에서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세계 한국은 쉽지 않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거기에는 한서진의 말 그대로 배우자 후보 명단이 적혀 있었다.
배우자 명단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은.
“올리비아······?”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그 뒤를 이어 시노자키 린, 니시자와 에리, 호시노 카스미, 카미야 마코토, 쿠로사와 하루, 마유즈미 마유, 사이온지 아리스, 요시자키 세이라, 에반젤린 스튜어트, 베아트리체, 빌헬미나 하이젠버그까지.
히로인들의 이름과 함께 옆에 친필 서명이 있었다.
그 밑에는 배우자가 아닌 첩실 후보 명단이 따로 있었는데 한서진과 유세라, 벨라의 이름과 서명이 적혀 있었다.
첩실?
대체 이런 빌어먹을 구분은 왜 넣은 거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김덕성.
그 옆의 서명 란은 아직 빈칸이었다.
“이미 저를 포함한 모두가 동의한 사안입니다. 물론 여지에 따라 더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이거······. 전부 네가 계획한 거냐?”
나는 서류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이 서류를 내민 것도 한서진.
그리고 그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뉴스를 튼 것도 한서진이다.
그렇다면 이 계획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한서진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다.
내 말을 들은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든다.
정장을 입은 한서진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말한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하렘 계획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김덕성 님께 드디어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목소리에서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광기.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하렘 계획을 오래전부터 했었다고.
황당하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솔직히 누군가는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했었는데.
이미 전원의 동의를 받아놨었다니.
법적 준비까지 마련했다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스윽.
한서진이 내게 고급 만년필을 건넸다.
그러니까 사인하라는 거지?
[파트너. 사인해야지?]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했다.
일단 전부 책임지기로 했으니, 사인 못 할 건 없다.
나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만년필을 들었다.
“첩실은 필요 없어.”
나는 첩실이라는 글자를 만년필로 스윽 그었다.
이제 와서 굳이 첩실과 배우자라는 차등 대우를 할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다 같은 배우자야.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첩실이 뭐냐.”
“······!”
내 말을 들은 한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서명을 한 뒤 그녀에게 서류를 건넸다.
내 서류를 받아든 한서진의 빨간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과분한 대접 감사합니다. 김덕성 님. 그럼 저는 상부 보고를 위해 이만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한서진이 서류를 품에 안은 채로 자리를 떠났다.
탁.
회의실 문이 닫힌다.
회의장 안에 내려앉는 침묵.
분위기가 어색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한서진이 미리 세팅한 것처럼 보이는 콜라가 있었다.
치익.
콜라를 따서 입 안에 머금은 그때.
“당신.”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올리비아였다.
그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 책임지겠다는 말, 고마웠어요.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이자 보나파르트 황실의 혈통을 이은 적장녀인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전속 시녀로 둔 남자라면 마땅히 그 정도 포부를 가져야죠!”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척하고 올리면서 말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죠?”
“끝이 아니라니?”
“영웅의 숫자는 각 국가의 안보와 국력에 직결되는 문제. 법적인 문제는 해결됐고 당사자의 의지도 확고하지만, 국제 외교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요. 제 조국인 프랑스도, 영국도, 일본도 영웅을 함부로 약소국 한국의 영웅인 당신한테 주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정말 당신 말대로 모두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올리비아가 말끝을 흐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국제정치를 지배하는 법칙인 힘의 논리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빛나는 위업을 세워야 해요. 라울 오라버니가 소속됐던 파이브 크라운즈에 비견될 정도의, 전 인류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위업을요.”
올리비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힘의 논리라.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원작 지식을 통해 내가 선점한 듀랜달을 되찾겠다며, 결투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던 올리비아의 모습이 눈앞의 그녀에게 겹쳐 보였다.
힘의 논리는 내가 그때 비아냥대며 언급한 말이었다.
이런 식으로 돌려받을 줄은 몰랐는데.
올리비아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한국 내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당사자가 동의한다더라도 히로인들의 모국에서 그녀들을 순순히 내줄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계는 영웅 전력이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세계관.
전략병기를 공짜로 타국에 양도하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내가 그런 억지를 부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위상이 필요했다.
내가 웹소설식으로 갑질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의 압도적으로 높은 위상이.
“그러니까 저를 포함한 모두를 진정으로 책임지기 위해서는 당신이 이 세계를 리그의 마스터로부터 구원해야만 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올리비아가 빨갛게 물든 얼굴을 들어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녀는 솔직하게 내게 말했다.
올리비아의 말이 맞았다.
내가 압도적으로 높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메사이어의 음모를 한 달 뒤에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그래서 세계 구원자가 되어야 했다.
원작의 제목인 최약영웅은 세계 구원자를 내가 직접 실행에 옮겨야 했다.
“그리고 저는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다, 당신의 전속 시녀이자 신부가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소녀를 위해서, 이 세계를 구원해줘요.”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내게 말한다.
모든 히로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그녀들의 시선이 내 입으로 향한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올리비아가 움찔했다.
“네가 굳이 말 안 해도, 난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그녀와 히로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결코 내 행동의 결과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요?”
올리비아가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제부터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올리비아의 약혼식 소동 때부터?
아니다.
그 이전이었다.
최초로 원작이 나 때문에 어긋난 날.
그로 인해서 내가 원작에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한 날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결심했었다.
나로 인해 벌어진 모든 일의 결과는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라고.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네가 정식으로 전속 시녀가 되었을 때부터.”
“으으으으으으으······.”
내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그, 그그그그 이야기가 왜 지금 나오는 거예요!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무드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우주 제일 바보 같으니!!”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히로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후배 군은 기사공주만 편애하는구나. 후배 군, 역시 나쁜 남자야.”
가장 먼저 말한 건 카스미 선배.
그녀가 볼을 부풀린 채 이쪽을 바라봤다.
“주인님. 에리링은 두 번째라도 상관없어. 황녀님이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어. 히히히. 에리링은 주인님과의 사랑의 증표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걸.”
다음은 에리.
그녀가 눈을 반짝이면서 목에 착용한 개목걸이를 만지작댄다.
결국 지금까지 저 빌어먹을 개목걸이를 떼는 건 실패했다.
“흠흠. 덕성. 그래도 미래의 현모양처는 오직 나밖에 없다. 이제 정식으로 김 린이 될 기회를 잡았으니 앞으로는 궁극의 야마토 나데시코를 만들기 위한 시노자키류 비전 신부수업 수행에 정진하겠다.”
다음으로는 린이 풍만한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한다.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표정과 목소리.
그러니까 대체 성은 왜 바꾸냐고.
현기증이 치민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김덕성 군이라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기, 김덕서이는 내 으, 은인이니까······. 괜찮데이······.”
아리스가 귀엽게 얼굴을 붉히면서, 사투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주군. 나. 주군의 여자가 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뻐! 앞으로 더 노력할게!”
이제는 단발이 된 마코토가 손을 흔들면서 내게 말했다.
그녀의 초록빛 머리 단발이 인상적이다.
“······크흠흠. 그럼 꼬마야. 이 몸도 잘 부탁하마. 빌헬미나 언니도.”“······부탁······. 그리고 나······. 세라땅 언니 아니야······. 흥.”
같이 앉아 있던 세이라가 쑥쓰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빌헬미나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돌렸다.
둘의 나이 합이 세 자리 숫자를 넘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어이가 없다.
“하와와와와······. 김덕성 님! 소녀, 김덕성 님의 배우자가 될 수 있어서 정말로 영광인 것이와요! 베아트리체도 좋아할 것이와요. 그렇죠?”
“흐, 흥······. 내, 내게 자유를 선물해준 인간이라면 여의 반려로 삼아도 상관은 없겠지······. 홍련의 성녀의 반려가 되는 일이다. 여, 영광으로 알도록······.”
이번에 말한 건 에반젤린과 베아트리체.
하와와와 거리면서 웃는 에반젤린과 고개를 돌리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2병 컨셉은 아직도 못 버린 거냐고.
“니시시시. 덕성 오빠. 축하해. 하루처럼 귀여운 갸루 JK 여동생 신부를 맞이할 수 있다니. 덕성 오빠 완전 초 럭키☆ 두근두근하지? 응? 신나지? 니시시시. 앞으로 하루, 덕성 오빠의 최애캐가 될 거야! 언니들한테 절대 안 질 거야!”
하루가 입을 가리면서 웃는다.
그녀의 손목에 걸린 금속 팔찌가 서로 부딪혔다.
“아, 아무튼! 저, 전부 책임지라고요! 당신! 아시겠나요?”
마지막으로 얼굴이 새빨개져서 씩씩거리는 올리비아가 내게 소리쳤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전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한 달.
그 안에 천지검식을 완벽히 마스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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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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