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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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발렌타인 데이
불이 켜진 뒤에 드러난 저택 메인 홀의 광경은 어이가 없었다.
‘발렌타인 데이 축하해 주인님 사랑해♥’라고 한글, 그것도 크레파스 글씨로 삐뚤빼뚤하게 적힌 커다란 현수막은 그렇다 치자.
홀 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한 커다란 초콜릿 동상은 대체 왜 있는 거지?
초콜릿 동상 옆에는 대형 초콜릿 분수가 있었다.
뷔페 같은 데서 쓰이는 작은 분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초콜릿이 연못을 이룬 대형 초콜릿 분수.
무슨 초콜릿 공장도 아니고.
발렌타인 데이 기념 서프라이즈 파티까지는 예상했는데, 이건 미처 예상 못 했다.
얘네 제정신인가?
오늘이 결전 전날인데 이걸 누가 다 먹으라고?
내가 당황한 그때.
“이봐요 당신!”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비아였다.
그녀 옆에는 다른 히로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같은 반인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하루.
그리고 담임인 마유즈미 선생.
카스미 선배와 이사장인 세이라, 언더테이커 빌헬미나.
학생회장인 아리스와 한서진.
그리고 영국에서 날아온 에반젤린, 베아트리체까지.
모두가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머리에 걸린 색종이를 걷어냈다.
“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 만든 초콜릿이에요! 저, 절대 남기면 안 돼요!”
내게 다가온 올리비아가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응! 황녀님 말이 맞아. 주인님. 남기는 거 금지야!”
어느새 올리비아 옆에 나타난 에리가 그렇게 말했다.
탁자 위에는 문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초콜릿이 많이 올려져 있었다.
이걸 전부 먹으라고?
이가 다 썩어서 남아나지를 않겠네.
“어라, 당신.”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스윽.
올리비아가 내 앞으로 나가왔다.
숨소리까지 전부 들릴 정도로 지나치게 가까워진 거리.
올리비아가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내게 말한다.
“설마 지금 웃은 건가요?”
웃어?
누구? 내가?
그러고 보니 여기 들어올 때 살짝 웃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은 미소를 황급히 지웠다.
“웃긴 누가 웃었다고 그래?”
“주인님. 설마 오리발 내미는 거야? 에리링이 전부 봤는데!”
내 말에 에리가 손을 번쩍 들면서 주변을 알짱알짱 맴돌았다.
“흠. 이번만큼은 빨래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군. 나도 봤다. 덕성.”
그 옆에서 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웃은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후배 군은 의외로 부끄럼타는 부분도 있구나? 귀여워.”
카스미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우후후하고 웃는다.
대체 어디가 귀엽다는 건지.
“웃은 적 없거든.”
“니시시시. 덕성 오빠 웃었잖아? 웃었는데? 하루도 에리링 언니랑 린 언니랑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
이번에는 하루였다.
다 봤다니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말을 해도 안 통할 기세다.
그렇다면 화제를 전환하는 쪽이 낫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을 보았다.
그냥 초콜릿부터 초콜릿 케이크, 초콜릿 쿠키, 초콜릿 빵, 초콜릿 치킨······. 같은 수많은 초콜릿 음식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잠깐, 초콜릿 치킨?
이런 미친 음식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나는 초콜릿 치킨은 절대 안 먹을 거라 다짐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콜릿 한 조각을 집어서 입 안에 넣어 씹었다.
달콤한 초콜릿의 맛과 함께 새콤한 맛이 입안에 같이 퍼진다.
이거 어디서 맛 본 거 같은데.
예전에 중학교 때 제주도 수학여행 가서 사왔던 기념품 백년초 초콜릿 맛이다.
“이거 혹시 백년초 초콜릿이냐?”
내가 손에 든 초콜릿을 흔들면서 말했다.
내 말에 대답한 히로인은 세이라.
그녀가 부채를 촤르륵 펼치면서 말했다.
“후후. 그래. 하루 양과 한서진 씨의 조언을 받아 빌헬미나 언니와 함께 이 몸이 손으로 직접 만든 한국 전통 초콜릿이니라. 마음에 드느냐?”
백년초 초콜릿이 한국 전통 초콜릿?
물론 제주도에서 제법 유명한 기념품이긴 하지만, 이런 왜곡된 지식은 대체 왜 주입하는 거야?
세이라의 시선이 이쪽을 힐끗힐끗 향했다.
그녀의 부채 끝이 파르르 떨렸다.
“나······. 언니 아니야.”
옆에 있던 빌헬미나가 볼을 부풀렸다.
세이라보다 나이 많은 주제에 하는 행동은 어린애가 따로 없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네 맛있네요.”
내 말을 들은 세이라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후후. 꼬마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옆에 있는 한라봉 초콜릿도 맛봐줬으면 좋겠구나.”
한라봉 초콜릿?
백년초 말고 그것도 만들었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옆 바구니로 손을 뻗어 한라봉 초콜릿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초콜릿을 깨물자 귤 향기와 함께 초콜릿의 달콤한 맛이 입 안에 잔뜩 퍼졌다.
제법 맛있다.
“어떠냐? 맛있지 않느냐?”
“아, 네······. 맛있네요.”
객관적으로 봐도 맛없지는 않다.
움찔.
내 말을 들은 빌헬미나의 어깨가 떨렸다.
촤르륵.
세이라가 펼친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옆에 앉은 빌헬미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언니. 들었어요? 꼬마가 언니가 만든 초콜릿이 맛있대요.”
“······우우우우······.”
세이라의 말을 들은 빌헬미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세이라가 존댓말을 쓰는 대상이라니.
세상에.
원작에서 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현실이 된 지금 상황에서 보니 생각보다 놀랍다.
“······맛있다니······. 다행······.”
얼굴이 잔뜩 붉어진 빌헬미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니시시시. 세라땅 할머니. 미나 할머니. 하루 말 듣기를 초 잘했지? 니시시시.”
그런 빌헬미나와 세이라 사이로 하루가 와서 말했다.
“하, 할머니 아니야······. 세라땅이랑 묶지······. 마······.”
하루의 말에 발끈하면서 말하는 빌헬미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 세이라가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랑 묶지 말라니 너무해요······.”
“······흥. 나는 할머니······. 아니니까······. 세라땅이랑······. 달라······.”
세이라의 서운하다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볼을 부풀리는 빌헬미나.
대체 뭐 하는 짓들인지.
가관이 따로 없다.
내가 혀를 차고 있던 그때.
“덕성! 여기······. 내, 내가 만든 초콜릿도 있다······.”
부스럭.
린이 내 앞에 다가와서 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시노자키류 비전 초콜릿 레시피로 제조한 비장의 초콜릿이다. 이번만큼은······. 결코 지지 않겠다.”
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초콜릿에서는 제법 맛있는 냄새가 났다.
린도 이제 제법 요리 실력이 향상되었으니, 이상한 맛은 안 나겠지.
나는 초콜릿을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어, 어떤가······?”
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맛있네.”
린이 만든 초콜릿은 화이트 초콜릿.
하얀 화이트 초콜릿이 입 안에 달달하게 녹는다.
이 정도면 이제 요리치는 하산해도 될 정도.
“다행이군······.”
내 말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린.
그녀가 옅게 웃었다.
“주인님! 나도! 나도 만들었어!”
“니시시시. 덕성 오빠! 초 귀여운 JK갸루 신부 하루의 수제 초콜릿, 설마 안 받을 생각은 아니겠지?”
“주군, 나도 에리 쨩이랑 같이······.”
“후배 군! 내 초콜릿도······.”
“선생님도 초콜릿 만들어왔어요!”
“하와와와와, 소녀도 김덕성 님을 위해 초콜릿을 만들어온 것이와요!”
“여의 반려여, 여가 특별히 인간의 기념일을 맞아 직접 초콜릿을 만들었느니라······.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김덕성 군······. 저도 부끄럽지만 초콜릿을 만들었습니다······. 부디 받아주시길.”
“주인님의 주인님. 저도 초콜릿을······.”
린을 시작으로 자리에 있던 한서진을 제외한 모든 히로인들이 내게 초콜릿 꾸러미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각자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왔던 모양.
나는 그녀들이 주는 초콜릿 꾸러미를 모두 받았다.
“남은 건 제가 들겠습니다.”
어느새 내 옆에 나타난 한서진이 내 양 팔뚝에 흘러넘치는 초콜릿을 대신 받아준다.
“아, 그리고 김덕성 님 앞으로 한국에서 도착한 초콜릿들은 도쿄 근처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 중입니다.”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빼빼로 데이 때도 그러더니, 또 초콜릿 선물이라고?
안 그래도 그때 받았던 빼빼로가 너무 많아서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전부 고아원 같은 국내 사회 복지 시설에 전부 기증한 참이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더 좋은 데 쓸 것이지.
“알겠어.”
“그리고······. 이건 제 선물입니다.”
부스럭.
한서진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품에서 작은 초콜릿을 꺼냈다.
“유세라와 함께 둘이서 만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부디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덕성 님.”
“어, 그래. 고마워.”
나는 한서진이 건네는 초콜릿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태어나서 받을 초콜릿을 전부 받은 느낌.
나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때.
“당신.”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 초콜릿만 안 받았었지?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따, 따라와요!”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홀을 빠져나왔다.
올리비아가 나를 이끈 장소는 발코니.
달빛이 비치는 겨울의 교정이 내려다 보이는 발코니에서 올리비아가 내게 꾸러미를 꺼내서 품 안에 강제로 떠맡겼다.
“자! 이거 가지세요! 벼, 벼벼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흥!”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만든 초콜릿인 모양.
나는 아무 말 없이 곰돌이 모양 초콜릿을 하나 꺼내 입 안에 넣었다.
달콤한 초콜릿 향과 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맛있네. 직접 만든 거야?”
내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바,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을 주는 날······. 이니까요. 이 나라에서는. 흥.”
츤데레답게 툴툴대면서 말하는 올리비아.
나는 그녀의 반짝이는 백금발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 고맙다.”
“······됐어요.”
내 말에 올리비아가 투덜거린다.
마지막까지 츤데레냐.
하긴 그래야 우리 올리비아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쪽.
까치발을 든 올리비아의 입술이 내 뺨에 닿았다.
그녀가 새빨개진 얼굴로 뺨에서 떨어진다.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척하고 손을 올렸다.
“······당신은 위대한 프랑스 황실, 보나파르트 가문의 고귀한 황녀인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전속 시녀로 삼은 남자!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바, 반려가 될 남자! 그, 그러니까 반드시 내일의 결전에서 이겨야 해요!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패배는 절대로 용납 못 해요! 아셨죠?”
말을 더듬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나를 보는 올리비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음이 터졌다.
문득 학기 초, 린과 도게자를 놓고 공개 대결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올리비아가 이런 말을 했었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지면 죽는 건데, 나는 죽기 싫다.
그러니 반드시 이길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대로 올리비아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었다.
입술이 맞닿은 채로, 그대로 혀를 집어넣어 서로 뜨겁게 타액과 타액, 혀와 혀의 교류를 이어갔다.
“······!!”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얼굴이 지금까지 봤던 것중에 제일 새빨개졌다.
나는 키스를 마무리하며 입술을 떼어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은빛 실선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반드시 이겨주지.”
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올리비아를 바라보면서 선언했다.
내일.
나는 메사이어를 족치고,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의 엔딩을 보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