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7)
“저 안으로 들어가야지.”
벚꽃축제는 이제 끝났다.
본 게임 시작
탕!
어색한 정적을 이시하라의 총성이 깨뜨린다.
폐사한 물고기들처럼 엘리게이터맨들이 배를 까뒤집고 둥실둥실 떠오른다.
하지만 죽는 개체보다 수면 위로 박차고 오르는 앨리게이터맨이 훨씬 많다.
이대로면 물량 웨이브에 밀릴 터.
손목에 미리 준비해왔던 헌터 워치를 찬다.
“물속 말임까?”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이시하라 다이키.
멍청한 양아치라는 컨셉에 걸맞게 순수하게 궁금증이 묻어나는 듯한 질문.
아니 아무리 설정이 그래도 그렇지.
한숨 나오네.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니시자와 에리는 말도 붙이기 싫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상황.
호수를 둘러본다.
뱃놀이를 즐기던 관광객들은 이미 전부 사라진 지 오래.
손가락으로 아직도 수면 위로 기어 나오는 악어 인간 놈들을 가리킨다.
“스탬피드가 발생한 장소는 호수 수면. 당연히 스탬피드의 근원인 게이트도 호수 밑바닥에 있겠지?”
스탬피드.
원작 설정에서 포화 상태의 게이트에서 이계종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이상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한국 웹소설 식으로 현지화하자면 몬스터 웨이브 또는 던전 브레이크.
지금 호수에서 발생한 이상현상의 이름이다.
“······스탬피드를 멈추려면 잠수해서 게이트를 공략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내 말을 받아친 건 올리비아.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에 츤츤대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진지한 모습.
영웅의 책임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녀다운 모습이다.
매일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올리비아의 말에 동조한다.
“그래. 올리비아 말이 맞아. 상황을 끝내는 방법은 입수 말고는 없어.”
“입수라니······. 어쩔 수 없겠네.”
주인공, 쿠로사와 유지가 각오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일본도 손잡이를 잡는다.
“검은 머리, 마음에는 안 들지만······. 긴급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이 협력해줄게.”
니시자와 에리가 내 쪽을 흘낏흘낏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전히 눈빛에는 경멸과 불만이 가득하지만, 그녀 역시 슈오우 영웅 학원의 생도.
이런 비상 상황에서까지 지랄할 성격이 아니라는 건, 원작 3권 내용을 통해 이미 파악하고 있던 사항이다.
원작 3권에서, 유적에 주인공과 단둘이 고립된 상황의 니시자와 에리가 지금과 비슷한 말을 내뱉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협력해주겠다고.
“나도 너 마음에 안 들거든? 어차피 따라야 할 지휘 가지고 생색이나 내지 마라. 니시자와 에리.”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가 쟤 사정을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시노자키 린을 능가하는 싸가지 같으니.
“칫······.”
니시자와 에리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린다.
두고 보자고, 노예빵.
“이 정도면 다들 이해했겠지?”
이시하라를 뺀 일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탕.
총성이 귓전에 울린다.
“쟤네 점점 더 불어나는데요? 혼자서는 역부족임다!”
이시하라가 양아치 말투로 총을 쏴대며 식은땀을 흘린다.
그의 말대로 점점 숫자가 불어나는 앨리게이터맨.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다.
“한서진.”
“예, 김덕성 님.”
명령을 들은 한서진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한쪽 무릎을 꿇는다.
“저 악어 대가리들 전부 청소해.”
앨리게이터맨은 B랭크 이계종.
보통 현장에서 헌터 전력이 상대를 도맡는 일반 이계종, 이른바 ‘잡몹’이다.
작전 수립이 끝났으니, 잡몹 상대는 한서진이 맡는 게 맞다.
S랭크 이하 일반 이계종은 보조전력인 헌터가, 제타 랭크 이상 상급 이계종은 주 전력인 영웅이 상대한다.
이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법칙이라고 설정집에 나와 있으니까.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한서진이 손목에 찬 헌터 워치의 버튼을 누른다.
철컥, 철커덕.
헌터 워치에서 튀어나온 푸른 광자가 한서진의 몸에 달라붙으며 바디 슈트로 변한다.
설정집에서나 나오던 이 세계관 헌터의 기본 장비, 마력장이 없는 초상병기의 열화판 장비. 헌터 슈트다.
헌터 슈트 착용을 완료한 한서진의 신형이 오리배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번쩍.
회색 빛무리가 수면 위로 늘어지듯 궤적을 그린다.
한서진이 그녀의 기프트인 스피드스터, 초고속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킥!] [캬악!] [끄르르르륵!]번쩍, 번쩍!
잿빛 섬광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때마다 이계종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이게 무슨······.”
이시하라의 눈동자가 커진다.
썩어도 준치라고 한서진은 헌터 전력 중 최상위 수준인 SSS급 헌터.
B랭크 이계종 처리 정도야 혼자서도 거뜬하다.
애초에 그러라고 데려온 거고.
원작에서는 저 많은 앨리게이터맨을 일일이 수중에서 처리하면서 호수바닥으로 내려가느라 유지와 올리비아의 체력, 마력 소모가 심했다.
잡몹 잡는 거 묘사하느라 1권 지면 소모도 심했고.
‘분량 날로 먹기의 정점이었지.’
웹소설이 아닌 종이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분량 불리기라 할 수 있겠다.
편당결제도 아닌데 하차할 수도 없고.
“자자, 전투 모드 전환하고 입수하자. 입수.”
한서진의 활약에 정신이 팔린 일행에게 손뼉을 친다.
설정에 따르면 초상병기의 전투 모드는 게이트 너머의 어떤 극한 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생존력을 사용자에게 부여한다.
잠수 정도야 별 거 아니다.
“알았어 김.”
풍덩.
가장 먼저 전투 모드 전환을 완료한 주인공, 쿠로사와 유지가 망설임없이 물에 잠수한다.
뒤이어 벨라, 이시하라, 올리비아, 린 순서대로 잠수한다.
“여자를 물에 입수시키다니······. 최악, 쓰레기······.”
“그 아가리 안 닥치면 태도 불량으로 징계위원회 회부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
역시 채찍이 답이다.
드디어 닥친 니시자와 에리까지 입수가 끝난다.
[듀랜달 온라인]전투 모드로 전환한다.
검은 전신 장갑이 온몸을 뒤덮고, 마력장이 전신 장갑 위를 뒤덮는다.
‘돌겠군.’
유격 훈련 때도 입수는 안 했는데.
하지만 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며 그대로 호수에 몸을 던진다.
풍덩.
맑은 호숫물이 전신을 감싼다.
차가운 느낌은 없다.
눈을 뜬다.
수중 환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일렁이는 수초와 물고기, 가라앉은 각종 생활 쓰레기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수중 환경으로 진입합니다.] [산소 공급을 시작합니다.]마력장과 전신 장갑이 몸을 보호하고 산소를 공급한다.
“게이트는 호수 밑바닥에 있다. 찾아.”
초상병기를 통해 연결된 전투용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을 보낸다.
번쩍! 번쩍!
어느새 수중까지 내려온 한서진이 회색 섬광을 빛내며 초고속으로 수중을 가로지른다.
부상하던 앨리게이터맨들이 죽어가며 내뱉는 푸른 피가 맑은 물속을 더럽힌다.
[그럴게. 김.] [물 속에 들어온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 당신이 지휘관이니 지금은 명령을 따라주죠!] [알았다. 김덕성.]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주인님의 주인님.] [알겠슴다.]각양각색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니시자와 에리는 그녀답게 대답이 없다.
그래. 얘는 이렇게 닥치는 게 낫다. 조용하니까 얼마나 좋아.
뭐 좋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우니까.
전부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다.
촤르르륵.
차가운 물을 가르며 호수 밑바닥으로 계속해서 향한다.
[게이트 찾았어. 여기, 좌표 모두한테 공유할게.]주인공 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드디어 게이트를 찾은 모양.
[전송된 좌표를 입력해 시야에 표시합니다.]듀랜달이 자동으로 시야에 게이트 위치를 표시한다.
시야가 아래로 향한다.
호수 밑바닥.
섬뜩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검은 소용돌이 구멍이 보인다.
[게이트 등급을 측정합니다.] [측정 완료.] [앱실론 등급 게이트.] [최소 영웅 5인 이상 공략을 권장합니다.]무미건조하게 이어지는 듀랜달의 알림음.
원작에서 봤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5인 이상 공략 권장.
제타 랭크보다 한 단계 높은 앱실론 랭크의 난도.
이게 내가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이끌고 벚꽃놀이에 온 이유다.
‘호구 주인공처럼 나 혼자 구를 수는 없지.’
나는 이기적인 소인배니까.
[올리비아, 쿠로사와, 이시하라, 린, 니시자와랑 나는 게이트로 진입한다.] [그리고 벨라랑 한서진은······.]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린 뒤, 게이트에 진입한다.
이제 본 게임 시작이다.
*
이노카시라 공원.
호수 밑바닥 게이트 최심부. 히든 룸.
칙칙한 해저 동굴 지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첨단 장비가 가득 들어찬 동공 안.
뾰족뾰족한 붉은 머리와 검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위험도 A랭크 빌런, 버쳐다.
“킥, 키키키킥.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야.”
히든 룸에 설치된 다중 모니터에는 지금도 게이트 밖을 향해 꾸역꾸역 나가는 앨리게이터맨들의 모습과 최심부에 잠든 보스 이계종, 거대 두꺼비 킹 토드의 모습이 보인다.
“게이트 생성 장치라니, 보스가 정말이지 최고의 장난감을 만들어냈단 말이야. 크, 크큭. 키키키키킥!!”
버쳐가 웃는다.
황금빛으로 도금된 송곳니가 모니터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아, 뉴 월드 리그. 정말 최고의 조직이야! 킥!”
버쳐의 눈빛에 황홀함이 깃든다.
사람을 죽인다.
살인의 쾌락을 아둔한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힘을 가진 자, 강자가 약자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게 뭐 어때서?
강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약육강식의 섭리 아닌가?
그런 자신의 미학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한 분.
뉴 월드 리그의 수장, 보스만이 그를 이해해주고 품어주었다.
“아아아······.”
버쳐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보스.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
그의 위대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쾌감에 온몸이 마비될 것 같다.
그때.
[침입자를 감지했습니다.]경보음이 버쳐의 귓가에 울린다.
“아, 어떤 놈들이야! 빌어먹을!”
회상을 방해받은 버쳐가 으르렁댄다.
어떤 놈들이 감히 위대한 보스를 상상으로나마 영접하는 해피 타임을 방해한단 말인가?
선글라스 속, 핏빛 눈동자가 섬뜩하게 굴러간다.
모니터 속, 불청객의 모습이 보인다.
전투 모드로 전환한 여섯 명의 생도들.
“잠깐, 잠깐잠깐잠깐! 쟤네 확대해!”
[확대를 실시합니다.]침입자 화면이 확대된다.
버쳐의 시야가 검은 머리 미소년에게 고정된다.
“검성의 아들, 쿠로사와 유지, 프랑스의 기사공주 올리비아, 삭풍의 사무라이 시노자키 린, 경국지색의 쿠노이치 니시자와 에리······.”
보스가 가능하면 처리하면 좋겠다고 언급한 보조 목표들이 그의 핏빛 눈동자에 새겨진다.
버쳐의 손이 쾌감으로 파르르 떨린다.
“무덤에 제 발로 기어들어왔군. 킥!”
버쳐가 허리춤에 찬 초상병기, 엑스큐서너를 뽑아 든다.
스르릉.
엑스큐서너의 뭉툭한 칼날이 모니터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츄릅.”
그의 혀가 엑스큐서너의 칼날을 핥는다.
“네놈들의 피 맛은 어떨지 궁금하군. 키, 키키킥! 키힉!”
히든 룸에 버쳐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퍼진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게이트를 통과한다.
울렁거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변화한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동굴이 펼쳐진다.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케흑! 쿨럭! 쿨럭!”
뒤이어 게이트를 통과한 이시하라가 물을 토해낸다.
엄살 부리기는.
주변을 둘러본다.
여전히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얼굴을 구기고 있는 니시자와 에리.
팔짱을 낀 올리비아, 이시하라의 등을 토닥이는 주인공 놈.
그리고 시노자키 린이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지, 리더?”
린이 묻는다.
사실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지금쯤이면 통제실에 있는 버쳐가 우리의 침입을 알아차렸을 테고, 곧 이계종 신호기를 사용해 보스몹인 킹 토드와 앨리게이터맨 무리를 입구 쪽으로 보낼 테니까.
하지만 모든 대화가 버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놈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처럼 행동해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