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81)
#379
졸업식
최후의 전쟁 종결 이후 2년 뒤.
유적 브로큰 월드를 다시 도쿄만에 봉인하고, 그 위에 새로 만들어진 인공섬에 재건된 슈오우 영웅 학원.
3월, 벚꽃이 만발한 봄.
겨울인 2월 졸업식이 대세인 한국과 다르게 일본의 졸업식은 3월이다.
그렇다. 오늘이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라노벨 세계의 학원을 내가 졸업하는 날인 것이다.
시야에 만발한 벚꽃이 보였다.
졸업식에 참가를 위해 온 학부모들과 후배들이 보였다.
“검은 귀축이다!”
“구세주!”
“우리의 슈퍼 스타!”
“꺄! 가까이서 보니 조금 매력적인 것 같기도?”
“나도 구세주 하렘에 들어갈래!”
날 발견한 엑스트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익숙해지고 싶어도 익숙해지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에 살아온 지도 벌써 3년 차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
게다가 저 엿 같은 구세주라는 이명은 들을 때마다 손발이 사라질 것 같다.
제발 그만해.
“파트너!”
저 멀리 인간의 몸을 되찾은 흑태자가 나를 불렀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동복을 입은 올리비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흑태자.
라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흑태자는 자신의 부활에 뭐 대단한 무용담이 숨겨져 있던 것처럼 묘지에서 입을 털어댔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2년 전, 메사이어가 월드 게이트를 열었을 때 현실 세계와 라노벨 세계의 물건, 사람, 생물이 서로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군소 규모 게이트를 통해 왕복한 적 있었는데, 그렇게 이쪽 세계로 온 사람 중에 평행세계의 흑태자에 해당하는 인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평행세계의 흑태자가 차원이동 직후 죽었다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때 이쪽 세계의 흑태자가 죽은 평행세계의 본인 몸에 빙의해서 살아난 것이다.
쉽게 말해서 평행세계의 본인 몸에 빙의해서 영혼이 합쳐진 나, 김덕성과 같은 케이스였다.
이시하라 사오리의 말대로라면 흑태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우연,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맞물린 기적이라는데, 뭐 라노벨 클리셰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다.
어쨌건 일반인의 몸에 빙의해서 본의 아니게 부활한 덕분에 지금의 흑태자는 더 이상 이능력자는 아니었다.
“여기야, 여기! 하하하하하하! 감사하라고! 이 흑태자 님이 우리 파트너를 위해 직접 코르사주를 준비해왔으니까!”
흑태자가 나를 보면서 코르사주, 가슴에 다는 꽃장식을 들고 흔들었다.
꽃다발이 국룰인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졸업식 국룰은 코르사주 달기.
보통은 부모님이 달아주는데,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없으니 흑태자가 부모님 대신 코르사주를 준비한 거다.
“자. 됐다.”
흑태자가 내 가슴팍에 코르사주를 달아줬다.
그가 손을 탁탁 털어냈다.
무슨 게이도 아니고, 저걸 왜 흑태자가 달아주지.
어이가 없네.
“당신, 옷차림이 그게 뭔가요?! 전속 시녀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옆에 있던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볼을 부풀렸다.
스윽.
올리비아가 내게 다가와 하얀 손으로 교복 와이셔츠 칼라와 넥타이를 만졌다.
“좋아요. 이제 됐어요. 이제 조금 봐줄 만하네요. 흥. 하여간······. 당신은 제 시중이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
올리비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아가씨 웃음을 터뜨렸다.
전속 시녀 이야기는 이제 3년째인데 제발 그만하면 안 될까?
내 얼굴이 다 화끈하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앞머리를 땋은 아이보리색 단발 벼머리가 인상적인 하얀 고스로리 복장 미소녀.
언더테이커 빌헬미나 하이젠버그였다.
“······안녕. 오늘······. 졸업······?”
“아, 네······.”
“축하해······.”
내 대답에 빌헬미나가 얼굴을 붉히면서 작게 박수했다.
빌헬미나의 축하에 내가 고개를 끄덕인 그때.
“······흥. 너 아니었으면 이런 데는 안 왔어. 이 도둑놈 같으니.”
그녀 옆에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장신 미남자가 나타났다.
데미안 하이젠버그.
빌헬미나가 그토록 살리길 원했던 동생이자,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좌를 차지하는 대영웅이었다.
데미안의 부활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에 이루어졌다.
메사이어를 처치하고 얻은 현자의 돌과 리그의 본거지에서 나온 관련 연구 자료도 전부 주고, 내 명령으로 세계관 최고 천재 캐릭터인 사오리까지 빌헬미나에게 협력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현자의 돌을 소모하지 않으면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내가 부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데미안 하이젠버그가 심각한 시스콤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설정집에 시스콤이라고 대놓고 박혀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덕분에 만나면 항상 이 지경이었다.
데미안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면서 나를 노려보던 그때.
“······데미안. 은인한테 그럼 못 써. 때찌야.”
쿡쿡.
빌헬미나가 볼을 부풀리면서 데미안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으악! 미안해 누나. 크흑······. 두고 보자, 감히 내 누나의 마음을 훔치다니······. 용서 못 해! 김 뭐시기!”
데미안이 선글라스 너머로 금빛 안광을 반짝이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빌헬미나가 쪽팔리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 동생······. 철 없어······.”
나이로는 데미안이 동생, 빌헬미나가 누나지만 외형만 보면 거구의 미남자인 데미안이 오빠고 15세 미소녀 외형이라 작은 체구인 빌헬미나가 동생 같아 보이는 조합인데 빌헬미나가 저렇게 말하니까 좀 어이가 없다.
“괜찮습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시스콤 캐릭터가 저러는게 한두번도 아니고 이젠 해탈했다.
내 말을 들은 빌헬미나가 작게 웃었다.
이건 데미안의 부활을 포기했던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
데미안의 성불을 선택한 원작의 빌헬미나는 지금처럼 행복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봐야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김덕성 님. 곧 졸업식 시작입니다. 안으로 입장하셔야 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가씨, 도련님, 주인님의 주인님.”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한서진이 나타났다.
뒤이어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벨라가 나타났다.
내 앞에 졸업 축하 현수막이 걸린 대강당 입구가 보였다.
“그럼 파트너. 졸업식 잘 참석하라고.”
“······우리도······. 뒤에 있을게······.”
“흥.”
나는 벨라와 한서진의 안내를 받아 올리비아와 함께 대강당 입구로 향했다.
등 뒤로 데미안, 빌헬미나, 흑태자의 목소리가 나를 배웅했다.
[졸업생 선배들이 입장합니다. 다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그렇게 대강당에 입장하자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귓가에 1학년, 2학년 생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와 함께 나는 올리비아와 함께 미리 준비된 3학년 졸업생 자리에 앉았다.
[먼저 이사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가 귤 상자와 함께 등장했다.
귤 상자?
설마 그건 아니지?
세이라가 귤 상자를 단상 앞에 놓고, 발판 삼아 올라섰다.
마이크와 딱 맞는 높이에 올라선 세이라가 마이크로 말했다.
“반갑다. 이 몸은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 백색 여제 요시자키 세이라다.”
세이라가 진지한 척 붉은 눈길로 좌중을 훑으면서 말했다.
“3학년 생도들의 졸업식이 벌써 오늘로 다가왔군.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빠른 걸 느끼는구나···.”
세이라의 개회사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훌륭한 영웅이 되라는 둥, 들어도 좋고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에 멍때리고 있던 그때.
“······좋다. 이 몸의 개회사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 졸업생 대표가 졸업 답사를 할 차례구나. 졸업생 대표······. 이 몸의 사랑하는 예비 서방님인 김덕성 꼬마. 앞으로.”
세이라가 얼굴을 붉히면서 이쪽을 바라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뭐? 김덕성 꼬마?
예비 서방님?
어이가 없네.
“꺄아아아아아아!”
“검은 귀축!”
“우리들의 구세주!”
“최고다! 구세주!”
세이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숙한 졸업식장이 순식간에 공연장처럼 환호성과 박수로 가득 찼다.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가 졸업식장 맞냐?
졸업생 대표에 내정됐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날 부를 줄이야.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 위로 올라서자 귤 상자 위에 올라서서 날 내려다보는 세이라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치명적인 척 미소를 날렸다.
나는 세이라의 미소를 무시하면서 어제 외웠던 송별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슈오우 영웅 학원 3학년 생도이자 졸업생 대표인······. 구세주 김덕성입니다.”
이 쪽팔리는 이명은 대체 왜 직접 말하라고 하는 거야.
손발이 배배 꼬이는 걸 간신히 참으면서 나는 기나긴 인사말을 계속해서 낭독했다.
“이 자리를 빌려 학원의 모든 졸업생을 대표해 졸업식에 참여해준 은사님, 내외귀빈 여러분, 후배 생도들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지난 3년 하니 그동안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메사이어를 조지고, 원작 스토리의 끝을 본 이후에는 거짓말처럼 빌런의 습격도, 학원 외부 활동이나 행사 도중 사고가 터지는 일도 전부 사라졌다.
에필로그 이후의 세계에는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지난 2년 동안 학원 생활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학원 생활이 아니라, 청춘 러브 코미디 라이트 노벨에서나 나올 법한 학원 생활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기는 했다.
치고박는 것보다는 나았지.
그렇게 2학년, 3학년을 보내고 마침내 오늘이 다가왔다.
졸업.
끝.
대부분 일본 학원물 작품에서 결말을 장식하는 행사가 드디어 도래했다.
하지만 현실은 라노벨도 아니고, 학원물도 아니니 내 삶은 졸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아직 못 다한 일이 있기도 하고.
“······이상. 졸업생 대표 구세주 김덕성이었습니다.”
내 송별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귀를 따갑게 울렸다.
“졸업 축하한다. 서방님♡”
쪽.
세이라가 내게 졸업증이 담긴 지관통과 학사모를 건네준 뒤에, 내 입술에 슬쩍 입을 맞췄다.
갑자기 키스라고?
당황스럽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우우우우우우! 벌써 하렘 자랑이냐!”
“귀여운 이사장님의 마음까지 뺏어가다니······. 너무해······.”
“하지만 구세주의 하렘이라면 어쩔 수 없을지도.”
“맞아. 지금도 구세주 하렘에 들어가려는 미소녀들이 전국에 잔뜩 있다던데!”
“나도 키스하고 싶다!”
귓가에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식 석상에서 대체 왜 저러는지.
“후후.”
세이라가 키스를 끝내면서 음흉하게 웃었다.
나는 혀를 차면서, 입술을 문지르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음은 상장 수여가 있겠습니다······.]그 이후에도 졸업식 행사는 식순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졸업생 상장 수여, 동문 및 내외귀빈의 축사, 졸업증 수여 등등.
기나긴 행사 끝에 마침내 졸업식이 끝나고, 내가 지관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때.
“주인님! 주인님! 우리 졸업 사진 찍자! 찍자!”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리였다.
그녀가 주황색 눈동자를 빛내면서 한 손에 지관통, 다른 손에는 DSLR을 든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빨래판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 졸업식에는 졸업 사진이지.”
“니시시시. 덕성 오빠. 하루도 당연히 같이 찍는 거지? 그렇지?”
“나도······. 나도 주군이랑 졸업 사진 찍을래!”
“흥······. 전속 시녀인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자리는 당연히 당신 옆이죠? 그렇죠?”
에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늘 방금 같이 졸업한 히로인들이 내게 다가왔다.
에리, 린, 하루, 올리비아, 마코토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이야, 파트너 인기 많은데?”
“쳇.”
“김 군은 원래 인기남이니까요.”
“부럽슴다. 형님.”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흑태자가 코를 쓱 문지르고, 데미안이 혀를 차고, 유지가 맞장구를 치고 이시하라가 부러워하는 말투로 말했다.
“······나도······. 사진······.”
“김덕성 군. 절 잊은 건 아니겠죠? 오늘 당신의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휴가를 내서 왔습니다.”
“나쁜 남자 후배 군, 나도······. 회장 선배랑 레나랑 같이 왔어······.”
“선생님도! 김 군의 은사로서 같이 졸업 사진 찍을 거예요!”
“흠흠. 우리 꼬마의 졸업 사진에 이사장인 이 몸이 빠질 수는 없지.”
“주인님의 주인님. 저도 괜찮으면 같이 사진 찍어도 되겠습니까?”
“김덕성 님! 나도 서진이랑 같이 사진 찍을래!”
“덕성쨩! 나도! 나도 덕성쨩이랑 졸업 사진 찍을 거야!”
“하와와와. 김덕성 님. 소녀를 빼놓으실 생각은 아니겠죠?”
“여의 반려여. 특별히 홍련의 성녀인 여의 존안을 찍을 기회를 그대한테 주도록 하겠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졸업해서 현역 영웅으로 활동 중인 아리스, 카스미 선배는 물론 3학년 때도 담임 교관이었던 마유즈미 선생, 세이라, 빌헬미나에 벨라와 유세라, 한서진, 영국에서 왕실 전용기를 타고 날아온 에반젤린과 베아트리체, 그리고 이시하라 사오리에 카스미 선배의 친구인 사토우 레나까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인연들이 내게 오고 있었다.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래, 사진 찍자. 찍어.”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히로인들과 다른 멤버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온 곳은 교내에서 가장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잔디밭.
“그럼 사진 찍겠습니다. DSLR 타이머 세팅하겠습니다.”
삼각대에 DSLR을 세팅 완료한 한서진이 빠르게 대열로 합류했다.
찰칵.
DSLR의 타이머가 돌아가면서 사진이 찍혔다.
그렇게 몇 번 사진을 찍은 뒤에, 나는 마침내 기념사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왁자지껄, 히로인들이 벚꽃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서로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내게 올리비아가 다가와 물었다.
“당신. 졸업 이후에는 뭘 할 생각인가요?”
“글쎄······.”
나는 올리비아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졸업 사진을 찍고 나니 이제 진짜로 졸업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내 마지막 졸업식은 전생에 했던 대학교 졸업식······. 이었는데, 워낙 취직 때문에 바빠서 그런지 졸업식 행사에 참여를 못 했다.
대학교 졸업 앨범 사진도 안 찍었고.
그래서 내 진짜 마지막 졸업식은, 거의 10년쯤 전에 있었던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지금과는 같지만 다른 졸업식.
친구들과 졸업 앨범 사진을 웃기게 찍고, 부모님에게 꽃다발을 받고 교정에서 지금처럼 기념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졸업했으니까 짜장면이라도 먹어야지. 탕수육도 시켜서.”
짜장면을 먹었었다.
졸업식 날 꼭 먹어야 한다면서 어머니랑 아버지가 사줬던 짜장면과 탕수육.
그때는 어머니도 아프지 않았다.
그때는 아버지의 표정에 그늘도 없었다.
그때는 마냥 좋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수험 생활이 끝나고 자유를 찾았으니까.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이 기대됐으니까.
대학 가면 여친도 사귀고, MT도 가고, 선후배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때 먹은 짜장면이 제일 맛있었다.
“짜장면······. 맞아요. 한국에서는 졸업식 날 짜장면을 먹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올리비아가 박수를 짝하고 친 그때.
“짜장면이라면 근처 식당을 빌리고, 한국 호텔 중식당 요리사를 초빙, 중식 풀코스를 준비해뒀습니다. 김덕성 님.”
번쩍.
한서진이 회색 섬광과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벌써?
늘 느끼는 거지만, 한서진은 준비가 너무 과해서 탈이다.
“······모두 함께 가시겠습니까?”
한서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곧.
그때처럼 다시, 부모님과 아무 걱정 없이 짜장면을 먹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빌헬미나, 베아트리체, 사오리가 참가하고 전 세계가 지원하는 양방향 게이트 개발 프로젝트가 마침내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니까 말이다.
3월.
벚꽃잎이 흩날리는 졸업식 날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3년 전, 내가 빙의한 뒤 처음 슈오우 영웅 학원에 도착했을 때처럼──
그런 하늘과 벚꽃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잠깐만. 주인님! 단추! 단추! 에리링한데 주인님 교복 두 번째 단추 줘!”
불쑥.
내 눈앞의 에리의 예쁜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단추?
설마, 일본 만화에 자주 나오는, 졸업식 날 좋아하는 남자에게 두 번째 단추를 선물 받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클리셰인가?
“빨래판? 네가 무슨 자격으로 덕성의 단추를 가져가려 하는 거지? 덕성의 단추는 당연히 미래의 현모양처인 내 몫이다.”
“후배 군. 나쁜 남자인 후배 군. 나한테 단추······. 줄 거지?”
“······김덕성 군. 설마 저 말고 다른 소녀들한테 단추를 줄 생각은 아니죠?”
“선생님도! 선생님도 단추 가질 거예요!”
“흠흠. 꼬마야. 단추는 당연히 이 몸의 것이겠지?”
“하와와와와······. 소녀, 김덕성 님의 단추가 갖고 싶사와요······.”
“흥. 인간의 문화 따위는 관심 없지만······. 반려의 단추라면······. 어쩔 수 없지. 이 홍련의 성녀가 가지겠노라.”
“주군, 나도 주군의 단추······.”
“단추······.”
“덕성쨩! 단추!”
“흥. 당신. 당신의 두 번째 단추는 당연히 전속 시녀인 이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소유겠죠?”
히로인들의 목소리가 귀에 가득 들려왔다.
그녀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내 단추는 하나뿐인데 대체 이게 무슨······.
내가 당황하던 그때.
“니시시시. 언니들 바보야? 덕성 오빠 단추는 당연히 방금 막 따끈따끈 졸업한 초 귀여운 갸루 여동생 하루의 소유물인 게 당연하잖아! 에잇!”
하루가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불쑥 내 앞에서 등장하더니 그대로 나를 정면에서 덮쳤다.
풀썩.
갑작스러운 기습에 나는 그만 하루와 함께 잔디밭에 포개지듯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부딪혀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니시시시.”
하루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훑다가 단추를 톡하고 건드린 그때.
“잠깐! 그건 반칙이야! 나도!”
“누구 마음대로 선점하려는 건가요! 전속 시녀인 제가······.”
다른 히로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풀썩.
뒤이어 그녀들이 하루와 나를 덮치면서 새파란 하늘이 히로인들의 몸으로 가려졌다.
올리비아, 린, 에리, 아리스, 카스미 선배, 마코토, 하루, 세이라, 마유즈미 선생, 빌헬미나, 이시하라 사오리, 유세라, 벨라, 에반젤린, 베아트리체.
투닥투닥.
그녀들이 내 교복 두 번째 단추를 가져가려고 내 위에 겹쳐져 꿈틀거렸다.
숨이 막힌다.
“하하. 파트너. 청춘이구만, 청춘이야!”
“······김은 언제나 고생이구나. 힘내.”
저 멀리서 흑태자와 유지의 응원 아닌 응원이 들려왔다.
코 끝에 희미한 벚꽃 향기가 감돌았다.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히로인들의 수라장.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빌어먹을 라노벨 세상이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늘, 나는 두 번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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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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