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408)
#406
누굴 불효자로 만들려고
그렇게 해서 빌헬미나와 함께 가장 먼저 귀환한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광화문광장.
그리고 처음으로 본 광경은 눈앞에 뜬 상태창이었다.
라노벨 세계에서 살아온지 어언 4년차.
빌어먹을 라노벨 세계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토록 애타게 불러도 응답이 없던 상태창이 귀환하자마자 나타난 것도 황당하지만, 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이름: 김덕성] [레벨: @%%@%$#$@#] [칭호: 구세주] [종족: 인간(지구-2)] [능력치] [힘: @#$@$$] [민첩: @#@$#@$$] [마나: @#$@$#$$] [체력: @@#$@#$@#$$] [고유능력] [@$$@#$#$@#$] [보유 스킬] [@#$#@$#@$] [@$@#$@$#$] [@##$@#$$]어떻게 된 게 신상 정보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수치가 출력되는 칸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무슨 상태창이야.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뭐 쓸모가 없기는 해도, 신기하기는 하다.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된 게임 같은 상태창이 진짜로 등장하다니.
내 고향이 빌어먹을 헌터물 세계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렇게 광화문광장으로 귀환한 내가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귀환자 관리국이었다.
헌터물 클리셰답게 10년 동안 수많은 귀환자와 이세계인이 지구로 유입된 덕분에 이런 행정 절차는 놀랍도록 체계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김덕성 씨. 마나 측정기에 손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협회 직원의 말과 함께 눈앞에 수정구가 달린 거대한 기계장치가 바닥이 열리며 솟아올랐다.
헌터물에서 자주 나오는 클리셰인 능력 측정이다.
나는 살짝 마력을 뻗쳐 측정기를 탐지했다.
‘이 정도밖에 안 돼?’
내가 기술에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마나 측정기라는 기구의 역량이 내 마력을 측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겠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다.
지구-2의 기준으로 EX랭크 영웅만 되어도 저렇게 조악한 측정기로는 능력 측정이 불가능할 것이다.
측정기 하나로 고향의 기술 레벨을 판단하는 건 조금 무리수 같지만.
아무래도 헌터물 지구가 된 빌어먹을 내 고향의 기술 수준은, 라노벨 세계인 지구-2보다 한참 뒤떨어진 것 같았다.
하긴 이제 플레이어와 마나가 등장한 지 고작 10년밖에 안 된 세상이었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이능력과 마력이 함께했으며, 인류사 전체에 걸쳐 마력 관련 기술과 이능력 사용 방법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던 지구-2와 비교한다면, 이제 막 이능이 등장한 지구-1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 편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혹시 이게 제일 수준 높은 측정기입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 SSS급 측정기예요. 이 모델보다 더 측정을 세밀,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기기는 없습니다.”
협회 직원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 그렇군요. 안타깝게 됐네요. 이 측정기 SSS급이라니 좀 비싸 보이는데.”
나는 수정구 위에 손을 얹었다.
어쨌건 내 고향은 더 이상 내가 알던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었다.
아마도 메사이어,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헌터물 세계관으로 변한 게 틀림없었다.
몬스터와 던전이 등장한 시점이 정확히 월드 게이트가 닫힌 10년 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하다.
어쨌거나 내 고향은 플레이어 개인의 무력이 곧 권력으로 직결되는 헌터물 세계가 되어 있었다.
지구-2에서도 지구-1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지 방법론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다가 결국 선발대인 내가 고향에서 받는 취급에 따라 접근 방법을 바꾸기로 결정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의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좀 유치하지만 내 힘을 저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
그 퍼포먼스로, 좀 흔한 클리셰기는 하지만 측정기를 부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꼬우면 더 강한 측정기 갖고 오던가.
“이제 새로 사셔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정 구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파츠츠츠츠츳!
투명한 수정구 안에 순식간에 검은 마력이 가득 들어차며 스파크가 튀었다.
“마나량 계속 상승합니다. 현재만 해도 SSS급 플레이어의 마나량과 맞먹습니다!”
“측정 한계에 0.34초 만에 도달! 이건 신기록입니다! 천마도 이 정도로 빠르게 측정 한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상태창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능력치, 스킬, 고유능력 모두 글자가 깨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사상 최초입니다.”
“칭호는······. 구세주?”
측정실 안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마력을 계속해서 주입했다.
두근.
현자의 돌과 마력로가 공명하며 무한의 마력을 계속 뽑아낸 순간.
파슥!
콰-과-과-광!
수정구가 터지고 기계가 폭발하며 파편이 휘날렸다.
“기계 폭발했습니다.”
“천마 이후로 두 번째······. 측정 불가, 규격 외 등급의 귀환자라니······.”
“귀환 게이트의 출력을 보고 짐작했지만 이건······.”
측정실의 연구원들이 헌터물에 등장하는 엑스트라처럼 웅성거렸다.
그놈의 천마 이름은 왜 자꾸 나오는 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김덕성 귀환자님.”
폭발로 엉망이 된 측정실의 문이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협회 직원이 들어왔다.
“협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노벨 세계고 헌터물 세계고 좀 클리셰에서 벗어나면 어디 덧나나?
*
한국 플레이어 협회 빌딩 최상층.
협회장실.
대격변부터 지금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한국을 지켜온 노련한 플레이어인 협회장의 시야에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가 보였다.
“김덕성, 빌헬미나 하이젠버그······.”
귀환자와 차원 난민은 대격변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빈도가 드물지언정, 지금도 꾸준히 1년에 수십 명 정도가 이세계에서 귀환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게이트에 휩쓸려 지구로 넘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의 출신 차원이었다.
‘······평행세계의 지구.’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지구로 돌아온 귀환자, 또는 이세계인 중에서 지구보다 문명 수준이 높은 차원 출신의 인물은 없었다.
기껏해야 중세에서 근세 레벨의 검과 마법의 서양 판타지 세계거나, 아니면 전근대 중국이 배경인 무림 세계, 둘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지구 각국에서 이들을 큰 위험 요소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강력하다고는 해도 결국 개인.
마나와 마도공학을 체화시켜 한 단계 도약한 현대 문명의 힘과 매력 앞에서는, 제아무리 강력한 개인이라도 결국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지구에서 귀환자, 이세계인은 강력한 플레이어 자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평행세계의 지구라면 다르다.
모두의 기억 속에 10년 전의 그 일은 아직도 생생했다.
하늘에 열린 균열, 그 너머로 보이던 다른 세상의 지구.
그 당시 열린 초대형 균열에서 넘어온 평행세계의 지구의 인간은 전부 죽은 상태였지만, 균열을 통해 넘어온 물자들은 각국에서 아직 극비리 정보로 취급되어 연구 중이었다.
그런데도 지구-2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지구-2에서 최초로 귀환자가 도착한 것이다.
‘······천마를 능가하는 최강의 귀환자, 김덕성이라.’
측정 결과도 놀라웠다.
SSS등급 마나 측정기 두 대가 오늘 박살 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니 말 다한 셈이다.
김덕성의 상태창 감정에서는 사상 최초로 절대 진리인 상태창의 글자가 깨져 나오는 현상이 목격되었고, 그의 동행자인 빌헬미나 역시 측정기로 상태창을 제대로 감정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 등급으로 치자면 EX, 규격 외 등급.
전 세계에 존재하는 EX급 플레이어의 숫자가 20명밖에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야말로 천외천의 강함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엄청난 괴물이 다시 돌아온 걸지도 모른다.
‘지금쯤이면 벌써 정보를 입수한 하이에나 같은 대형 플레이어 길드, 일본과 중국, 미국 정보기관들이 움직이고 있겠군.’
이 정도 거물이라면 정보를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대격변 이후 플레이어의 시대를 지배하는 대형 플레이어 길드와 주변 강대국들이 그의 전력을 탐낼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귀환자가 등장할 때마다 그랬으니까.
그러니 협회장으로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그는 이 최강의 귀환자를 한국에 붙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대격변 이후 한국은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플레이어 강국이었지만, 김덕성 정도의 전략병기급 강자를 마다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협상 카드는 충분하다.’
서류 다음 장에는 김덕성의 가족 관계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가 있었다.
아마 그의 귀환 사유도 다른 귀환자와 마찬가지로 가족 때문일 터.
그렇다면 그를 한국에 붙들어두기는 충분하다.
물론 협박 같은 저급한 수단은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저런 강자의 경우에는 협박보다는 협조가 더 효과적이니까.
‘그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국에 남게 만들어야 해.’
협회장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끼익.
문이 열렸다.
“절 찾으셨습니까?”
그리고 그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구세주 김덕성.
최강의 귀환자와 그 동행자인 빌헬미나가 협회장실에 들어선 것이다.
*
협회장실.
마천루 꼭대기에 있는 덕분에 서울의 전경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서 나는 빌헬미나와 함께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이라는 중년인을 만나고 있었다.
“자네 부모님은 잘 살아 계시네. 어머니는······. 편찮으시긴 하지만, 이 부분은 최신 치료제를 쓰면 병세 호전이 가능해. 원한다면 내가 협회장의 권한으로 처리해주지. 대신 자네도······.”
협회장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옆에는 빌헬미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협회장이 나눠준 ‘이세계인, 귀환자를 위한 한국 완전 정착 가이드’ 책자를 펼쳐보고 있었다.
부모님의 행방을 알아봐 달라 요청했지만, 그걸 협회장이 직접 설명하는 걸 기대한 건 아닌데.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수장이라면 시노자키 이치로와 비슷한 위치의 인물.
그런 높은 양반이 날 부른 이유가 고작 이거 알려주려고?
“말 좀 그만 돌리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협회장님.”
상냥한 라노벨 세상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그걸 믿는 놈이 호구지.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자네와 자네의 동행자의 등급은 EX급으로 판정되었네. 규격 외 등급이라는 뜻이지. 규격 외 등급의 플레이어는 전략병기급 강자로 취급되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는 대형 길드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같은 강대국이 탐내는 인재일세. 한국이 국제적인 플레이어 강국이기는 하지만, 전략병기급 강자가 해외로 유출되는 건 국가 안보에 곤란해.”
“그러니까 한국에 남아달라는 건가요?”
여기서 또 뻔한 헌터물 전개라니.
“국내 길드라면 길드에 입사해도 좋네. 어떤 형태로건 한국에 남으면 호위, 면세, 품위 유지비, 주거지 지원을 포함한 각종 혜택 제공은 물론 자네한테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지. 물론 자네 가족에 대한 보호도 당연히 들어가는 거고. 어떤가?”
협회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면세? 주거 지원?
그런 귀여운 걸 혜택이랍시고 포장하다니.
거기에 내 가족을 가지고 협상하듯 말하는 거, 마음에 안 들었다.
말이야 유화적이지, 실질적으로는 칼 들고 협박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하여간 귀환한 지 얼마나 됐다고.
헌터물 세계의 매운맛이 벌써 올라올 줄이야.
지나치게 상냥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음험해도 문제다.
“혜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뇨 그냥 좀 웃겨서요. 설마 지금 협회 빌딩 앞에 대형 길드 스카우터들이 막 떼거지로 모여서 우리 길드에 와달라고 도떼기시장처럼 스카웃 준비 중인 건 아니죠?”
“그건······.”
내 말에 협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뭐야.
그냥 해본 말인데 진짜 대기 중이야?
어이가 없네.
나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전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쪽 말마따나 제 가족이 여기 있으니까요. 대답은 이걸로 됐습니까?”
지금 당장은 말이지.
그리고 한국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세계에 다른 한국도 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감히 내 가족을 협상 카드로 써먹어?
아무래도 이 세계에 대한 접근 방법론은 유화책보다는 강경책 쪽으로 선회하는 게 맞겠다.
“그래.”
“확답을 드렸으니 제 부모님이 입원 중인 병원 정보나 내놓으시죠.”
“여기 있네. 부모님과 좋은 재회 되길 바라지.”
나는 협회장에게 서류를 받아서 팔랑팔랑 넘겼다.
서울대병원이라.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일 줄은 몰랐다.
탁.
나는 서류를 덮은 뒤에, 차원 송수신 장치가 부착된 스마트폰으로 지구-2에 신호를 보내고는 옆구리에 끼고 일어섰다.
“그럼 갑니다. 욕보십쇼. 가자. 빌헬미나.”
“······알았어.”
“유익한 만남이었네.”
협회장의 감사 인사를 끝으로 나는 집무실을 나왔다.
욕보라는 말, 그냥 인사치레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빌헬미나와 함께 협회장실에서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1층으로 향했다.
띵.
알림음과 함께 멈추는 엘리베이터.
1층에 도착하자마자, 기감에 수많은 사람의 기척이 잡혔다.
협회장의 반응에서 짐작했지만, 설마 이런 빌어먹을 헌터물 이벤트를 진짜로 겪게 될 줄이야.
협회장 그 능구렁이 같은 양반 힘이라면 치워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볼 때는 일부러 안 치운 거다.
‘날 길들이려는 거지.’
이 헌터물 세계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알던 고향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남은 건 오로지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플레이어라는 무력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현대 판타지의 세계일 뿐.
하여간, 메사이어 그놈은 왜 월드 게이트를 열고 남의 고향을 조지고 지랄이야.
내가 원하는 건 그냥 평범한 세계에서, 조용하게 부모님이랑 아내들이랑 잘 먹고 잘사는 거였는데.
그렇다면 여기서는 강경책이 옳다.
“······우우.”
옆에 있던 빌헬미나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빌헬미나의 손을 잡고 협회 빌딩 회전문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김덕성 귀환자님! 저희는 한국 플레이어 길드 랭킹 2위에 빛나는 신성 길드입니다.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면······.”
“10대 길드의 일원인 불새 길드요.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계약금 300억을······.”
“우리 길드로 들어오시면······.”
예상대로 밖으로 나가자마자 수많은 양복쟁이가 무리를 지어서 내게 명함을 들이댔다.
무슨 도떼기시장도 아니고, 좀 격식 갖춰서 스카우트하면 어디 덧나나?
게다가 지금 나더러 길드 따위에 들어가라고?
어차피 조금 뒤면 정리될 인원이긴 하지만, 한시바삐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 할 시간에 이런 한심한 소꿉놀이에 발목을 붙잡히니 짜증이 치밀었다.
원래 세계라면 다들 알아서 모세의 기적으로 비켜줄 텐데.
이것저것 귀찮은 일투성이다.
그렇다고 모처럼 고향에 돌아왔는데 마력을 뿌려서 위협할 수도 없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길드 안 들어갑니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들의 명함과 제안을 거절하면서 빌헬미나의 손을 잡고 인파를 헤쳐나가던 그때.
“계약금 1000억원.”
차가운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그와 함께 도떼기시장 같은 스카우터판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오만한 인상의 남자가 검은 세단에서 내렸다.
그의 뒤로 경호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탁하고 007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오랜만에 보는 심사임당이 그려진 오만원 권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야. 심사임당 오랜만이네.
라노벨 세계 지구에서는 10만원권에 내 얼굴이 들어가서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
5만원권에도 내 얼굴을 넣겠다는 대통령을 말리느라 얼마나 진땀이 났는지.
“미래 길드에 입사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일시불로 지급하지. 어떤가? 귀환자 씨.”
딱 봐도 헌터물 초반에 주인공에게 앙심을 품고 해코지하는 재벌가 망나니처럼 생긴 젊은 남자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 사람은······.”
“미래 길드의 길드장 박태혁?”
“미래 길드라면 한국 1위 재벌 대기업인 미래그룹에서 운영한다는 그 길드?”
“한국 플레이어 랭킹 1위도 이번에 찍었다며?”
“미래 길드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저번 유망주들도 돈지랄로 싹 다 쓸어갔다잖아.”
웅성웅성.
등 뒤에서 엑스트라들이 시의적절하게 눈앞의 남자의 신상 정보를 전부 이야기해준다.
아, 그러니까 맞네.
재벌가 망나니 엑스트라.
재벌이······. 말대꾸?
안 그래도 부모님 보러 가는 앞길을 막아서 짜증이 치미는 판국에 이제는 재벌인지 뭔지 하는 장사치 놈들까지 끼어들고 난리야.
이놈들이 누굴 불효자로 만들려고.
“아까 못 들었냐?”
나는 귀를 파면서 말했다.
“길드 같은 데 안 들어간다고.”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 귀환자들은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하다니까. 당신이 그쪽에서 얼마나 대단했건, 여기는 지구인데 말이야. 좋아. 그럼 1000억에 얹어서 1000억 더. 2000억은 어때?”
탁.
옆에 있던 경호원이 또 007 가방을 열어 현찰다발을 보여줬다.
나는 혀를 찼다.
“이깟 종이 쪼가리 같은 거 필요 없어.”
돈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게다가 당신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난 다른 귀환자들이랑 다르게 이쪽에서도 좀 대단해질 예정이니까. 좀 비켜라. 앞길 막아서 사람 뜨거운 효자 만들지 말고.”
“그게 무슨······.”
내 말에 재벌가 망나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때.
삐빅.
호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이건 지구-2에서 온 강경책을 실행하겠다는 신호였다.
하여간 느려터져가지고는.
이제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겠네.
“아, 시간 됐네. 자, 이제부터 하늘을 보라고.”
나는 친절하게 그의 어깨에 어깨동무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하늘 쪽으로 돌려주었다.
“지금부터 이제 이 세계는 영원히 바뀔 테니까.”
“말도 안 되는 헛소······.”
내 말에 재벌가 망나니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서울의 푸른 하늘은 지금 없었다.
왜냐하면 하늘 대신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으니까.
파츠츠츠츠츠츠츳!
압도적인 마력 스파크와 함께 열린 거대한 게이트 너머로 유선형의 매끈한 차원 전함 수십 대가 함대를 이루어 서울 상공에 출현했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함대의 그림자가 도시의 풍경을 강제로 낮에서 밤으로 바꾸었다.
인류연합 우주군 제1 차원함대 전력이 양쪽 세계 교류를 위해, 그리고 내 지원을 위해 지구-1에 워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