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413)
#411 – 인류의 대명절
음력 8월 15일.
마침내 한가위가 찾아왔다.
이릉 아침에 일어난 나는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서 차례상을 차렸다.
탕국, 갈비, 전, 송편 등을 상에 올려놓고 있던 그때.
“저 이거 뭔지 알아요! *홍동백서! *조율이시!”
옆에서 올리비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복을 잉븐 채 허리에 양손을 얹고 웃었다.
프랑스 공주님이 한복을 입고 홍동백서와 조율이시를 말하는 세계라니.
(역자주// *홍동백서 : 제사상에서 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배치하는 순서, *조율이시 : 제사상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순으로 배치하는 순서)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후후. 역시 아가씨, 한국 문화에 능통하군요. 제가 알려드린 보람이 있습니다.”
스윽.
그림자에서 한복 메이드 차림을 한 벨라가 솟아올라 옅게 웃었다.
“흥. 보나파르트.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추석을 대비해서 미리 전부 외워두었지. 진정한 현모양처라면 차례상 차림을 도와줘야 하는 법. 내가 도와주겠다.”
“에리링도! 에리링도 차례상 차릴래!”
스윽.
한복을 입은 린이 끼어들면서 척척척 차례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옆에 에리가 끼어들기 시작하자, 이번에도 히로인들이 와르르 몰려 차례상에 달려들었다.
덕분에 나와 아버지의 할 일이 없어졌다.
순식간에 차려진 차례상.
교과서에서나 봤던 완전히 정석적인 차례상 차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제사 시작할게요. 다들 모이세요.”
아버지가 헛기침하며 말하자 왁자질껄 떠들던 히로인들이 뒤에 도열했다.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그녀들이 선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버지가 향에 불을 붙이고, 차례가 시작됐다.
나와 아버지, 어머니에 열일곱 히로인까지 합쳐서 딱 스무 명이 지내는 차례는 마치 총갓집을 방불케했다.
“유 세차⋯⋯.”
망건을 쓴 아버지가 차례 제문을 읊고, 계속해서 절이 이어졌다.
차례 절차가 모두 끝난 뒤, 우리는 커다란 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드디어 음복을 하는 것이와요! 하와와와와와! 소녀 음복이 기대되는 것이와요!”
분홍색 한복을 입은 에반젤린이 눈을 반짝였다.
“형제의 술잔을 나누는 의식과 비슷한 행사인가? 시노자키류 비전 음복을 보여주지⋯.”
옆에서 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형제의 술잔이라니.
돌겠네.
음복이 왜 그런거냐고.
“자, 아가씨들 한 잔 받고 쭉쭉 들이켜요.”
아버지가 손수 청주를 히로인들에게 쪼르르 따라줬다.
내 술잔에도 청주가 담겼다.
술을 들이키자 알코올 향이 코 끝에 감돌았다.
역시 술은 써서 싫다니까.
음복까지 끝냈으니, 추석에 해야 할 행사는 대충 다 끝낸 셈이다.
이제 차례 뒷정리를 끝내고 노는 일만 남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 때.
“김덕성님. 아버님, 어머님.”
한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한서진?
왠지 불안한데…
내가 살작 불안감을 느낀 그때.
한선진이 말했다.
“인류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김덕성 님에게 인사말을 보내왔습니다.”
삑.
한서진의 말과 함께 TV가 켜졌다.
커다란 스크린에 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위대한 구세주이자 민족의 성웅, 인류의 대영웅인 김덕성 님의 추석 맞이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히 저 같은 사람이 김덕성 님께 추석 인사말을 보내는 날이 오게 되다니⋯⋯. 어흑흐흑⋯⋯. 정말 감동입니다⋯⋯.]임기가 끝난 강명현의 뒤를 이어 대선에서 당선되어 취임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다가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어머나.”
“세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실신하는 대통령을 보고 놀랐다.
얼굴이 뜨겁다.
쪽팔린다.
대체 왜 그냥 영상을 찍는 건데도 얌전히 못 찍고 난리인 걸까?
미치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류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구세주이자 인류연합의 영도자인 김덕성 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지구-2의 77억 인류 모두는 김덕성 님께 목숨 빚을 졌습니다. 그대야말로 진정한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입니다. 우리 지구-2의 미국은 앞으로 인류연합의 구성국이자 상임이사국으로서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소련의 서기장이 인류연합의 영도자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리그에게 장악당해 내부에서부터 썩어들어가던 소련을 일신하고, 정상 국가로 되돌릴 기회와 망국의 길을 막아낸 건 김덕성 님 덕분이었습니다. 저와 우리 소련의 인민들은 김덕성 님을 영원히 존경할 것입니다.] [일본 총리대신이 인류연합의 영도자께 인사드립니다. 일본 전국은 지금 김덕성 님을 기리기 위해 송편 빚기와 고향방문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 일본은 구세주 김덕성 님의 외가를 감히 자처하고 있습니다. 저희 일본이 김덕성 님의 교육을 맡았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조선민족의 대영웅이자 불멸의 태양이며 세계의 구세주이자 인류연합의 령도자신 김덕성 님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삼가 인사 올립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십니까? 2000만 조선 인민들은 물론 저 역시 불멸의 태양이자 인류의 구세주인 김덕성님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부디 나중에 지구-2의 평양에도 한번 들러주시면 무한한 영광이겠습니다.] [바티칸에서 인류연합의 영도자에게 인사 올립니다. 김덕성님께서 인류의 적을 물리친 이후 인류연합이 창설되어 세계는 평화로워졌고, 전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교확청과 보편교회의 사제들, 신도들 역시 오늘 하루만큼은 김덕성 님을 위한 감사 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김덕성 님께서 인류의 적이자 하나님의 적을 처단한 덕분입니다. 올해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중국의 주석이 14억 중국 인민들을 대표해 아시아의 자존심이자 전 인류의 구세주이며 인류연합의 영도자인 김덕성 님께 인사드립니다. 중국 인민들 역시 추석을 맞아 월병 대신 송편을 빚고 폭죽을 터뜨리며 김덕성 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희 중국 역시 그 날 김덕성 님에게 구원받았습니다. 저희 중국은 김덕성 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큰 절을 올리는 영상이 끝 없이 흘러나왔다.
보고 있기 괴롭다.
부끄럽고 쪽팔린다.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부모님 보는 앞에서 이딴 건 대체 왜 틀어주는 거야?
혹시 일종의 시청각 고문인가?
“다음으로는 글로벌 기업의 CEO와 뉴 크라운즈의 영웅들이 보내는 추석 인사를⋯⋯.”
겨우 정상들의 인사가 끝났을 때.
한서진이 또 다른 폭탄선언을 했다.
아니 그만 좀 하라고.
대체 왜 쓸데없이 인사하려고 난리인 거야.
*
추석 당일.
김덕성이 괴로워하고 있던 그때.
지구-2와 지구-1, 그리고 화성과 금성, 알파 센타우리를 포함한 모든 행성계와 무림, 판타지 세계에 진출한 인류연합의 대사관에서는 지금 똑같은 영상이 모든 스크린을 통해 재생하고 있었다.
[인류연합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덕성입니다. 오늘은 대명절 추석입니다. 한 해의 수확을 기념하고⋯⋯.]지구-2.
김덕성을 구세주로 모시는 세계이자 인류연합의 발원지인 이 곳에서는 어디를 가나 김덕성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거리에서도, 도쿄의 시부야에서도,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도, 베이징의 천안문광장,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런던과 파리, 이제는 통일된 베를린과 중동의 두바이, 호주의 시두니까지.
심지어 지구 궤도에 건설된 스페이스 콜로니에서도 김덕성의 추석 인사말이 재생되고 있었다.
“어흑흑흑.”
“김덕성 님 만세!”
“인류연합의 영도자여! 영원토록 우리를 수호하소서!”
“김덕성 님 최고다!”
김덕성의 영상을 본 지구-2의 시민들은 한복을 입은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태극기와 인류연합기를 흔들었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일본에서도, 독일에서도, 중국에서도, 대만에서도, 바티칸, 동남아시아, 중동, 태평양의 섬들까지.
지구-2의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한복을 입은 시민들이 송편을 먹으면서 김덕성의 연설을 감상했다.
지구-2의 모든 방송사의 아나운서들 역시 한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김덕성의 연설을 보도했다.
[인류의 대명절 추석! 송편 만드는 비법 대공개! 이거라면 내도 송편 마니아?] [한복 제대로 입는 법 대공개! 한복은 이렇게 입는 겁니다!] [한복은 사실 한푸에서 유래되었다? 한푸의 변화과정 제대로 알아보기!]언론에서는 연신 추석에 대한 특집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1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직할령이 된 구 북한, 구 아프리카 땅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지구-2의 풍경을 살짝 이상하게 바라봤다.
“추석이 대체 뭔데?”
“한국의 명절이라는데?”
“왜 저 세계는 한국의 명절을 연합의 기념일로 기념하는 거야?”
“연휴니까 좋지 뭐.”
살짝 의아한 시선은 있었지만, 의외로 부정적인 시선은 없었다.
“그래도 이기적인 플레이어 놈들보단 지구-2의 영웅들이 훨씬 낫지.”
“플레이어 놈들 돈 안되는 던전은 방치하고, 오만가지 갑질이랑 패악질 부리다가 지구-2 영웅들한테 참교육 당하는거 웃기지 않았냐?”
“예전보다 편한 점도 많아졌고, 외계인도 아니고 같은 지구인들인데 인류연합에 편입되는 것도 나브지 않을지도?”
“추석을 쉬는 건 이해할 수 없지만, 성웅 김덕성 재단의 복지사업은 칭찬해줄 만해.”
플레이어의 시대가 열린지 10년.
지구-1은 그동안 사실상 플레이어가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보이지 않는 계층이 존재하는 사회나 다름없었다.
이기적인 플레이어들은 본인의 능력을 내세우며 갑질과 패악질을 부렸지만, 법은 솜방망이 처벌만을 했다.
실질적인 무력과 금력을 모두 소유한 플레이어들을 감히 제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1의 플레이어들이 던전으로부터 세계 수호라는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대격변 초기에는 그런 영웅적인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플레이어 시스템이 완전히 체계화된 이후로는 던전과 플레이어는 산업으로 변했다.
돈 안 되는 던전을 대버려 둬서 강제로 던전 브레이크를 유도하는 경우는 너무 많아서 신문 기사거리도 안 될 수준.
플레이어의 시대에 던전은 재난이 아닌 돈 나오는 광산 취급이었다.
지구-1의 일반인들에게 플레이어는 친절한 이웃이 아니라 보호비를 뜻어가는 깡패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구-2의 영웅들은 달랐다. 그들은 돈이 안되는 던전도 적극적으로 공략해서 게이트를 클로징했으며, 불의를 보면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인성 문제나 갑질 문제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반인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지구-1의 민간인 입장에서는 낯선 모습까지 보였다.
지구-2의 영웅은 이기적인 플레이어와는 완전히 다른데다가, 결정적으로 초상병기를 겸비한 영웅의 무력은 지구-1의 플레이어를 이미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동안 패악질과 갑질을 부리며 군림하던 플레이어 길드와 플레이어들이 몰락하는 건 한 순간이었던 셈이다.
“이 정도라면 인류연합 나쁘지 않을지도?”
“솔직히 김덕성이라는 사람, 생각만큼 독재자도 아닌 것 같고.”
지구-1에서도 점점 김덕성의 우호적인 여론이 증가하는 상황.
그렇게 상냥한 영웅들의 활약에 힘 입어 서서히 지구-1은 지구-2의 인류연합에 정서적으로도 동화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