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50)
메사이어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진다.
“그렇습니다.”
“송구합니다. 구원자시여.”
“전부 저희의 불찰입니다······.”
13사도의 몸이 공포로 떨린다.
메사이어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탁, 타닥.
“저번에도 그렇고 자꾸 사소한 곳에서 계획이 살짝 어긋나는군요······.”
메사이어의 입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뭔가를 자꾸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단 말이죠······. 다른 정보는 없나요?”
벚꽃 축제 때는 그러려니 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 가장 완벽한 계획을 짜는 메사이어였지만, 가끔가다 한두 번 어긋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연속 두 번 계획이 어긋나는 일은 이번이 처음.
벚꽃 축제 때는 목표 자체는 성공하기라도 했지, 이번에는 목표도 실패했다.
“협회와 학원에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아쉽게도······. 저희로서도 그 이상의 정보는 얻기 힘들어······.”
“누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일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구원자님······.”
13사도가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메사이어에게 고한다.
협회와 학원의 철저한 정보 통제 때문에 뉴 월드 리그에서 알아낸 정보라고는 고작 ‘작전 실패’ 단 네 글자뿐.
대체 누가 어떻게 개입해서 작전이 왜 실패했는지, 원인도 과정도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메사이어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진다.
“요시자키 세이라, 시노자키 이치로······. 두 사람이 손을 쓴 모양이군요. 괜찮습니다.”
메사이어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신세계의 도래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운명의 흐름은 잠깐 멈출 수는 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는 일! 단지 잠깐 늦춰졌을 뿐입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탁.
의자 팔걸이 위에서 놀던 메사이어의 손가락이 멈춘다.
“그렇다고 저의 구원이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메사이어의 눈길이 가늘어진다.
“신도 악마도 없는 오직 인간뿐인 세상!”
“신세계를 위하여!”
13사도가 목청 높여 외친다.
“슈오우 영웅 학원의 다음 일정이 임간학교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최근 두 번의 작전 실패로 우리 리그가 전면에 나서는 건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교단의 협조를 받아야겠군요.”
메사이어가 상냥하게 웃는다.
“교단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13사도의 대답을 들으며 메사이어가 눈을 감는다.
그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불길하게 흔들린다.
*
모형 게이트 실습은 끝났다.
구속된 매드 해터는 협회의 영웅들이 와서 연행해갔고, 실습은 그대로 끝났다.
사고가 터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치.
실습에서 터진 테러 사건은 협회와 학원의 합의 하에 정보를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학원과 협회의 위신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흑막인 뉴 월드 리그에게 정보를 내줄 수 없다는 계산 때문.
덕분에 언론에는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모형 게이트의 환영 결계 장치가 잠깐 고장난 해프닝이 있었다는 단신 기사 하나뿐.
‘라노벨답다면 라노벨다운 일처리로군.’
하여간 누가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사건 은폐가 아주 일상이다, 일상.
웹소설이었다면 지금쯤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서 주인공 후빨 타이밍일 텐데.
라노벨 놈들은 왜 이렇게 뭔가 숨기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힘숨찐이 걔네 로망인가?
덕분에 이번만큼은 국뽕 너튜브도 쉬어가는 타이밍이 되어버렸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이 전부 마무리된 지금.
“오랜만이구나. 김덕성 군.”
나는 이사장실에 불려와서 15세 외견의 할매와 같이 차를 마시고 있다.
백발적안의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가 치명적인 척 웃는다.
아무리 봐도 저 빌어먹을 치명적인 척은 적응이 안 된다.
왜 저래, 진짜.
“들거라. 이 몸이 이번에는 특별히 어린 아이 입맛인 너를 위해 단 핫초코와 화과자를 준비했느니라.”
내 앞에 놓인 김이 올라오는 핫초코와 화과자를 바라본다.
이런 거까지 할머니 취향이라니.
절망적이다.
한숨을 쉬며 핫초코를 들이킨다.
달달한 초콜릿 맛이 입안을 맴돈다.
그래도 이건 꽤 괜찮다.
스윽.
요시자키 세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는다.
“네 활약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게 불만이더냐?”
“갑자기 왜 붙어 앉으십니까?”
사람 당황스럽게.
요시자키 세이라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호오. 이 몸이 곁에 앉는 게 싫다는 말이더냐?”
“예, 불편합니다.”
내 대답에 요시자키 세이라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너는 역시 재미있구나. 이 학원에서 감히 이 요시자키 세이라한테 그런 말을 하는 생도가 있을 줄이야······.”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휘어진다.
치명적인 척하는 걸 보면 명백한 호의 표시다.
“뭐, 좋다. 새파랗게 어린 생도인 네가 이 몸을 불편해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지. 이 몸이 젊은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구나.”
배려가 부족하면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옆에 앉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사장이라 욕질할 수도 없고.
진짜로 노망이 났나?
“후후. 궁금하다는 얼굴이구나. 이 몸이 왜 너를 불렀는지.”
여전히 부채로 얼굴 반절을 가린 채로 세이라가 말한다.
아무 말 없이 화과자를 집어 먹는다.
화과자의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요시자키 세이라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번 모형 게이트 테러에서 너의 활약, 대단했다. 아리스 양도 칭찬하더구나. 남을 좀처럼 칭찬하지 않던 그 아이가. 이 몸도 아리스 양의 의견에 동의한다. 생도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를 구하기 위해 가장 위험한 작전을 자처하다니······.”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학생회장이 나를 칭찬했다고?
이건 조금 의외다.
“역시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잠깐 혀가 꼬여서 말이 헛나왔느니라.”
요시자키 세이라가 레이스 달린 부채를 흔들며 얼굴을 부친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이번 사건의 정보 통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느니라. 테러의 배후······. 그 천인공노할 악인들한테 소중한 생도들의 정보를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요시자키 세이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부채를 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이건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요시자키 세이라는 뉴 월드 리그의 음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이브 크라운즈.
짝사랑 상대인 검성과 평생 동료였던 나머지 파이브 크라운즈를 살해한 뉴 월드 리그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복수귀 캐릭터다.
화과자 하나를 더 씹어 삼킨다.
“신경 안 씁니다. 그런 거.”
어차피 엎질러진 물.
게다가 따지고 보면 정보 통제가 나한테 꼭 손해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테러 사건의 전말이 뉴 월드 리그의 귓가에 들어간다면, 메사이어 미친놈이 나를 경계하는 수위가 한층 올라갔을 터.
아직 원작 초반인데 벌써 경계 수위가 올라간다면 귀찮은 일이 잔뜩 발생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흔한 아카데미물 웹소설의 클리셰대로, 지금은 아직 두각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호오? 그래? 사사로운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도 꼭······. 아니, 내 맘에 꼭 드는구나.”
요시자키 세이라가 눈웃음을 짓는다.
마음에 든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기는 하다.
어쨌건 썩어도 준치라고, 요시자키 세이라는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이사장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이브 크라운즈.
시노자키 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영웅인 그녀와 인맥을 쌓는 건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이사장을 상대하는 건 정신적으로 힘들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도 모두를 구한 너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넘어가는 건 이 몸의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무엇이든 말해보거라.”
요시자키 세이라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요염한 척 웃음을 짓는다.
“지금이라면 네가 이 몸과의 데이트를 원한다 해도 기쁘게 받아들이겠도다.”
아 진짜.
핫초코 마시다 사레들릴 뻔했다.
아니 이 할매가 진짜 미쳤나.
데이트 같은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진짜.
시노자키 이치로도 그렇고, 잘 나가다가 또 드리프트야. 빌어먹을.
“데이트는 필요 없고요.”
“그거 참 아쉽구나. 이 몸도 한창 젊은 시절에는 남자들이 손 한번 잡아보려고 자택 문 앞에 끝없이 줄을 섰는데 말이지.”
안 물어봤다고.
걔네가 줄을 서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 네가 가슴이 큰 여인을 좋아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혹여 이 몸의 빈약한 가슴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아 X발.
왜 또 가슴 얘기야. 또.
머리가 아프다. 혈압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왜 잘 나가다가 항상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거지?
이게 다 이 미친 세상이 이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엿 같은 라노벨 세상 같으니.
이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면전에서 욕을 퍼붓지 못하는 게 한이다.
시노자키 린 진짜 너는 뒤졌어.
“이 몸도 전성기 시절에는 보나파르트 양과 맞먹는 사이즈의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보유했었느니라. 젊은 아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역시 빨리 힘을 되찾아야겠구나.”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대체 어디까지 뇌절을 할 셈인지 모르겠다.
속이 안 좋다. 소화제, 소화제가 필요하다.
“그······. 소원이랑 상관없는 얘기는 좀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쌍욕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깡패지, 깡패.
“알겠느니라. 후후.”
촤르륵.
세이라가 다시 레이스 부채를 펼치며 얼굴을 가린다.
“그래서, 데이트가 아니라면 원하는 다른 소원이 따로 있느냐? 말해보거라.”
화과자를 하나 더 삼킨다.
단 게 들어가자 속이 조금 진정된다.
겨우 버텼다.
아무튼, 예상대로 세이라가 소원을 들고나왔다.
그러니 준비해둔 답안을 제출할 때다.
세이라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번 테러를 저지른 배후······.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유받고 배후 관련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사장님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리그의 내부자인 호시노 카스미를 통해 정보를 직접 공유받고 있는 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카스미 선배를 이중 스파이로 활용할 수는 없을 터.
거기다 뉴 월드 리그와 메사이어는 이미 원작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형 게이트 실습에 매드 해터와 야타가라스가 나타난 게 그 증거다.
‘그러니 더더욱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
그렇기 때문에 이중 스파이로서 카스미 선배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다른 정보원을 찾아야 한다.
거기에 적격인 게 이사장인 요시자키 세이라.
일본의 핵심 권력자인 그녀의 활용 가능성은 정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정보 셔틀로 골수까지 빼먹어주지.’
그래서 이 기회를 틈타 그녀를 내 장기 말로 만들어야 한다.
학원조차 복수의 도구로 생각하는 요시자키 세이라는 내가 그녀의 장기 말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어림도 없다.
“배후에 관한 정보 공유라······. 생도가 관여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구나. 혹시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느냐?”
요시자키 세이라의 붉은 눈빛이 나를 향한다.
한 번 튕길 거라고는 이미 예상한 상황.
여기서는 그녀의 취향에 맞게 ‘상냥한’ 대답을 내뱉으면 된다.
심호흡을 한다.
빌어먹을 라노벨 대사를 내뱉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이번에는 제가 모두를 지킬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학원을, 아니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원흉을 뿌리 뽑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염병.
내가 이런 말을 내뱉는 날이 또 오다니.
빌어먹을 작가 놈. 진짜 내가 돌아가기만 해 봐라.
저가항공 일본행 비행기 티켓 끊고 직접 현피떠서 죽이러 갈 거야.
내가 봐도 살짝 발연기 같은 대사.
하지만 상냥한 라노벨 세상답게, 요시자키 세이라는 내 말의 진의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떨린다.
사실 내가 댄 건 말도 안 되는 핑계.
생도라는 내 신분을 생각해본다면 치기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아카데미 생도 주제에 현역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다는 흑막을 잡겠다니, 언어도단이 따로 없다.
하지만 여기는 학원이 중심 무대인 학원 배틀물의 세상.
“······그렇다면 좋다. 허락해주지.”
모두를 지키겠다는 치트키가 상냥함이 최고 미덕이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라노벨 세상에서 안 먹힐 리 없다.
“감사합니다.”
작전 성공이다.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지
그래야 속쓰림을 참고 대사를 친 보람이 있지.
이제 이사장도 내 셔틀이다.
남은 화과자 하나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용무도 다 끝났으니,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시간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사장님.”
“벌써 가느냐? 조금 아쉽지만, 젊은이가 가는 길을 늙은이가 가로막을 수는 없는 법. 어쩔 수 없지. 잘 가거라. 김덕성 군.”
마지막까지 라노벨다운 배웅 인사와 함께 이사장실을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며 숨을 크게 들이킨다.
폐부에 맑은 공기가 가득 들어찬다.
빌어먹을 노친네 같으니라고.
이사장을 속으로 욕하고 있던 그때.
우웅.
스마트폰이 울린다.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을 켠다.
거기에는.
[이건 이 몸의 개인 연락처이니라. 김덕성 생도 (✧∀✧)/] [잘 기억해두거라. 후후. б(>ε<)∂]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마 三っ•̀.̫•́)っ]이사장이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왜 저러지?
다시 짜도록 하지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실.
교정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가 인상적인 넓은 사무실 안.
하얀 머리와 빨간 눈이 인상적인 검은 고스로리 드레스 차림의 미소녀가 회전의자에 앉은 채 휴대폰을 보며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휴대폰 화면에는 김덕성이 보낸 답장이 떠올라 있다.
백발의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가 양손으로 붉어진 뺨을 감싼다.
“후후. 역시 젊은이들이 쓰는 이모티콘을 보내기를 잘했구나.”
빙그르르.
다시 회전의자를 돌리는 요시자키 세이라.
“모두를 지키겠다고······.”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