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59)
마유즈미 선생의 말과 함께 생도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숲 너머에 불길하게 일렁이는 보랏빛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도 가자고.”
“주인님. 에리링······. 담력훈련 엄청나게 무서운데······. 주인님 손 꼭 잡고 가면 안 될까······?”
말을 내뱉자마자 들려오는 파멸의 목소리.
니시자와가 내 옆에 서서 짐짓 무섭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얘가 진짜 미쳤나.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먹인다.
“꼴값떨지 말고 그냥 뒤에 서.”
“히이이잉······. 에리링 진짜 무서운데에······.”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인데 벌써 피곤해진다.
이마를 짚는다.
“네 얕은수는 내 눈에도 다 보인다. 빨래판.”
“이번만큼은 시노자키 양의 의견에 동감이네요. 영웅 후보생이라는 자가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는 못할망정 천박한 아양이나 떨다니······.”
린과 올리비아가 니시자와를 맹공격한다.
“황녀님도 젖소도 사실 주인님 옆에 붙어있고 싶은 거잖아. 솔직하지 못하긴.”
니시자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린과 올리비아를 바라본다.
“무무무무무슨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그렇게 헤픈 여자로 보다니! 역시 그쪽 같은 부류와는 도저히 상종할 수가 없군요!”
“······마, 마마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빨래판.”
“이히히히히. 둘 다 솔직하지 못하대요. 솔직하지 못하대요. 에리링은 솔직한데! 에베베베벱! 메롱롱롱.”
여전히 파멸적인 말싸움.
저대로 방치했다간 담력 훈련에 입장하기도 전에 날밤을 샐 것 같다.
“다 입 닫고 빨리빨리 좀 입장하자. 좋은 말 할 때.”
세 여자가 일제히 입을 닫는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말썽쟁이 조원들을 이끌고 보랏빛 안개로 뒤덮인 숲을 향해 입장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담력훈련을 시작할 시간이다.
네 제삿날을 알리는 축하 폭죽이다
환상 안개 속에 입장한다.
자욱한 보랏빛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애니메이션과 똑같은 연출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생도들의 기감을 제약하는 강력한 마술 결계의 효과로, 나와 유지를 제외한 다른 조원들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바로 옆에 있는 조원 정도밖에 인지할 수 없는 상태다.
초월적인 기감을 보유한 유지나, 기프트로 퍼뜨리는 암흑을 통해 기감을 동조할 수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조원들은 길을 찾기 어려울 터.
“야, 쿠로사와. 길 안내 좀 해.”
물론 내가 길 안내를 할 생각은 없다.
“아? 응. 알았어. 나한테 맡겨줘.”
서로 허리에 로프를 묶어서 한 줄로 늘어진 상태에서 나는 길잡이로 주인공 놈을 내세웠다.
호구답게 내 명령에 아무 불만 없이 순응하는 주인공.
만능 호구, 무한 신뢰가 역시 최고다.
“나만 믿어줘. 열심히 길 찾을게.”
무색의 마력을 보유한 주인공 놈의 기감이라면 안개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괜찮다.
주인공 놈이 성큼성큼 길을 앞장선다.
그의 꽁무니를 따라가면서, 원작 설정을 복기한다.
이번에 무찔러야 할 위험도 B랭크 빌런 프리스트는 흑막 조직 ‘뉴 월드 리그’가 아닌 제3세력 ‘교단’ 소속이다.
‘교단이라.’
정식 명칭은 진리의 교단.
이세계 문명의 흔적인 유물과 로스트 테크놀로지, 초상병기를 자격 없는 자들이 사용하는 건 위험하며, 선택받은 자인 본인들만이 이세계 문명의 유산을 활용해서 인류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선민사상이 특징인 빌런 조직.
이기는 하지만, 라노벨 특유의 스토리 늘이기와 세계관 확장 용도로 등장하는 제3세력이 흔히 그렇듯 나중에는 선역으로 전향해서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는 조직이다.
‘교단을 일찍 포섭하는 게 뉴 월드 리그와 최종 보스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교단이 주인공의 조력자로 돌아서는 시점은 원작 17권.
교단의 실권자인 대장로가 뉴 월드 리그와 결탁하고 17권의 타이틀 히로인이자 마지막 추가 히로인인 교단의 상징, 성녀의 뒤통수를 치면서 벌어지는 내분에 주인공이 휘말리는 게 17권의 핵심 내용이다.
여기서 라노벨답게 주인공은 한때 적이자 빌런이었던 성녀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구원’해서 히로인으로 만들고 교단을 조력자로 만든다.
성녀는 전형적인 아군이 된 빌런 루트를 밟은 세탁기형 히로인인 셈.
‘18권부터 20권까지는 단권 완결 없이 계속 이어지는 최종 에피소드. 학원 부수기의 연속이고······.’
든든한 동맹 조직인 교단을 잃고 세력 구도에서 열세에 처하게 된 메사이어는 거사를 빨리 거행하기로 결정, 뉴 월드 리그의 전력을 이끌고 슈오우 영웅 학원을 급습한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혼비백산해서 흩어지는 생도들과 교관들.
불타는 슈오우 영웅 학원.
주인공은 18권에서 19권 동안 흩어진 아군을 재규합하고 지금까지 구원을 통해 인연을 맺은 히로인과 조연들과 힘을 합쳐 ‘유대’와 ‘우정’, ‘사랑’, ‘청춘’, ‘희망’의 힘을 통해 최종 보스인 메사이어에게 용기 있게 맞선다, 가 20권의 내용.
이 라노벨 세상의 결말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히로인은 전부 차고, 그 빌어먹을 검의 정령이랑 이어졌었지.’
엔딩은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터진다.
아무리 검의 정령, 쿠사나기가 히로인 인기 투표 1위라도 그렇지.
이 여자 저 여자 다 홀리고 다니다가 마지막에서야 사실 내가 사랑한 여자는 쿠사나기뿐이었다?
너희들 마음을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
엔딩을 그딴 식으로 내?
남자라면 합동결혼식, 하렘 엔딩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중동 가서 합동결혼식 올릴 거다.
히로인 방생 엔딩이라니!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엿 같은 작가 놈.’
작가에게 욕을 퍼붓는다.
진 히로인 드리프트, 방생 엔딩에다 외전 사기까지 당해놓고도 을 빨았던 과거의 내가 미친놈이었다.
역시 그때 일본 독자들처럼 칼날 소포를 작가 놈 주소로 보냈어야 했는데.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어쨌건 메사이어에게 시간을 많이 줄 필요는 없다.
뉴 월드 리그를 고립시키고, 나아가 최종 보스를 강제로 끌어내서 조지려면, 교단을 반드시 내 조력자로 만들어야 한다.
교단과 성녀야말로 엔딩으로 향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자들이니까.
‘엔딩의 시기와 장소는 내가 선택한다.’
주인공 놈처럼 빌런에게 수동적으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메사이어, 그리고 뉴 월드 리그.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그 미친놈들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완벽한 준비를 끝낸 뒤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설계한 전장에서 일망타진할 것이다.
이길 전장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병법의 기본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프리스트를 반드시 생포할 필요가 있지.’
프리스트는 성녀의 호위 기사단원.
그를 생포해서 나중에 있을 교단과의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게 내 진짜 목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단을 바로 포섭하는 건 불가능하다.
교단 내분과 성녀 구원까지 도달하는 데만 웹소설로 치면 200편 분량, 라이트 노벨로 치면 10권 정도 걸릴 테니까.
단지 작은 접점 하나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우우우우우우우우!!]눈앞에서 거대한 검은 유령 형태의 환상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꺄아아아아아악!!”
물컹.
뾰족한 하이톤 비명과 함께 등 뒤에서 푹신한 감각이 느껴진다.
내 바로 뒤에 있던 올리비아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것이다.
“무무무무무서워요! 다, 당신. 어, 어떻게든 좀 해봐요!! 저 귀신! 무무무섭단 말이에요!!”
올리비아가 안쓰러울 정도로 파르르 떨면서 내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는다.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는 귀신,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설정이었지.
한숨이 나온다.
스르릉.
듀랜달을 뽑는다.
우우우웅!
흑태자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검을 진동시킨다.
무시하고 듀랜달에 마력을 담아 휘두른다.
[끼에에에에엑!]허공을 격하고 날아간 검은 참격이 유령 환영을 반으로 가른다.
“으으으으으······.”
올리비아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끝났어. 올리비아.”
“또, 또 저런 유유유유령이 나올지 어떻게 아나요? 이, 이대로 계속 있을 거예요! 프, 프랑스의 황녀가 한낱 서민인 다다다당신한테 몸을 맡기는 거라고요. 여, 영광으로 아세요······.”
올리비아가 허리를 더 꽉 끌어안으며 소리 지른다.
어차피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거 같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에게 지금까지 해준 게 많은 올리비아니까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맘대로 해라.”
“따따딱히 고, 고맙지는 않거든요! 차차차착각하지 마시죠! 이, 이건 어디까지나 사심이 아니라 제 안전을 위해서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츤데레 스위치가 눌려 얼굴이 빨개진 채로 제멋대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올리비아.
저 모습도 자꾸 보니까 이제 좀 미운 정이 들려고 한다.
“쿠로사와, 빨리 가자.”
“알았어.”
올리비아를 상대하는 대신 길잡이인 주인공 놈을 재촉한다.
아직 안개 너머 목적지에 도달한 조는 아무도 없을 거다.
원작 내용대로라면, 프리스트는 목적지에서 가장 먼저 도달하는 생도, 즉 주인공 유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백귀야행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쿠로사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올리비아는 여전히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상황.
슬슬 갑갑해지려고 하던 그때.
“주인님! 에리링도 무서워, 방금 귀신 본 거 같아! 에리링도 황녀님처럼 주인님이랑 꼬옥 사랑의 허그하고 싶은데, 에리링도 하게 해줘! 얼른!”
니시자와가 내게 다가오며 도킹을 시도한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그녀의 말을 들은 올리비아가 말을 더듬으면서 내게 매미처럼 달라붙는다.
“유유유유령 같은 헛소리 자꾸 하지 마세요! 시, 신경 쓰이잖아요! 꺄악!!”
“유령 같은 건 없고, 무서운 척 발연기하지 말고 원위치로 돌아가라. 니시자와. 좋은 말 할 때.”
딱.
니시자와의 이마에 딱밤을 먹인다.
“히이이잉. 주인님, 너무해······.”
“너무하기는 뭘 너무해. 좀 조용히 좀 하자.”
“으으으으으으······.”
올리비아와 니시자와, 두 여자의 징징거림이 귓가에 울린다.
어휴.
내가 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 두 짐덩이를 데리고 안개 속에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건지.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린이 선녀처럼 보인다.
“······김덕성. 나도 사실 조금 무섭다······. 나도 보나파르트처럼 아, 안아줄 수 있겠나? 내 첫 포옹을 너한테 주겠다······. 처녀의 순백지신을 받아다오!”
라고 잠깐이나마 생각했던 내가 미쳤지.
잠깐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빌어먹을 라노벨 지뢰밭 세상 같으니라고.
“야, 린. 네가 여기서 제일 겁 없는 거 내가 다 알거든? 자꾸 개수작 부릴래?”
린의 캐릭터 설정이 그렇다.
원작 담력훈련 에피소드에서도 린은 기감이 제한된 것 때문에 주인공의 곁에 붙어다닌 거지, 환영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크읏······.”
린이 입술을 깨무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귀신 환영이 다시 나타난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올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며 찰싹 달라붙는다.
에휴.
“야, 쿠로사와. 저거 좀 치워.”
“알았어.”
유지가 쿠사나기노츠루기를 뽑아 검은 참격을 날리자 귀신 환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계속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환영 이계종과 유령이 등장할 때마다 올리비아가 소리를 지르며 내 곁에 달라붙고, 유지가 환영을 처리하는 일의 반복.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곧 도착이야.”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야, 나는 유지에게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으으으으. 정말이지, 최악의 경험이었어요!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훈련 따위를 기획한 건지······!”
유지의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린 올리비아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여전히 내 허리는 꼬옥 껴안은 채로.
뒤에서 구시렁대는 올리비아를 무시하면서, 기프트를 사용해 어둠을 일대에 얇게 퍼뜨린다.
퍼뜨린 어둠과 기감을 동조한다.
“확실히 얼마 안 남았군.”
안개의 끝자락이 느껴진다.
“빠, 빨리 좀 도착했으면 조, 좋겠네요. 저, 절대 무서워서 이러는 건 아니니까요! 착각하지 마시라구요!”
올리비아의 츤데레 급발진을 들으면서 나는 원작 내용을 떠올렸다.
원작에서, 린과 유지는 서로 손을 꼬옥 잡은 채 가장 먼저 안개를 통과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거기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자는 신부 복장을 한 교단의 빌런, 프리스트.
프리스트는 유물인 디바인 심볼을 사용, 환상 안개 결계의 통제권을 손에 넣고 이계종을 규합해 백귀야행을 강제로 일으킨다.
순식간에 퍼지는 안개, 갑자기 먹통이 된 헌터 워치, 불쑥불쑥 덮치는 이계종 무리의 방해.
하지만 유지는 초인적인 마력 감지와 기감을 통해 프리스트의 위치를 특정해서 프리스트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유즈미 선생을 포함한 교사진은 결계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바깥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교관이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억지 상황 설정이지.’
생도들의 힘으로 난관을 해결한다는 아카데미물의 클리셰를 위해 희생된 교관들.
물론 나는 원작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왜?
“도착했어. 드디어.”
유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야를 가리던 보랏빛 안개가 순식간에 걷힌다.
중앙에 우뚝 선 거목가 인상적인 공터.
거기에는 신부 복장을 한 푸른 머리의 미중년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봐서 익숙한 얼굴.
2권 메인 빌런인 프리스트다.
“역시, 당신이 제일 먼저 올 줄 알았습니다. 검성의 아들. 그리고 그의 동료들.”
프리스트가 손에 든 두꺼운 책을 펼치며 과장된 어투로 말한다.
아니 어디서 저런 역겨운 말투 가르치는 학원이라도 있나?
등장하는 빌런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말투로 지껄이니 속이 쓰리다.
“너는······. 뭐지? 목적지에는 아무도 없어야 정상일 텐데······.”
스르릉.
유지가 쿠사나기노츠루기를 뽑으면서 프리스트를 노려본다.
“그건 제가 할 말이군요. 당신, 대체 누구죠? 빌런인가요?”
올리비아가 플랑베르주의 검신에 불길을 일으키며 묻는다.
순진하게 적의 정체를 일일이 묻고 있는 모습을 보니 복장이 터질 것 같다.
“제 정체가 궁금하다면, 소개하죠. 저는······. 영광스런 교단의 집행자, 성녀의 호위 기사의 직책을 맡은 교단의 검. 아, 우리 어린 양 여러분들에게는 ‘프리스트’라는 이름이 더 유명······.”
그 질문에 또 대답하는 빌런 놈의 꼬라지란.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주머니에서 준비한, 신호탄이 장전된 권총을 꺼내 하늘에 대고 쏜다.
타앙!
총성이 울린다.
퓨수우우우! 파앙!
소음과 함께 붉은 폭죽이 밤하늘을 물들인다.
내가 쏜 신호탄의 의미는 ‘긴급 지원 요청’.
전 세계 모든 영웅 업계에 통용되는 글로벌 표준 신호이자, 헌터 워치가 먹통이 될 상황에 대비해서 내가 임간학교 전부터 미리 준비한 비장의 카드이다.
“······뭐죠?”
신나서 하고 있던 자기 PR의 맥이 신호탄 때문에 끊긴 프리스트의 눈썹이 꿈틀댄다.
자기 소개 타임을 방해받아 기분이 별로인 모양.
놈을 향해 말한다.
“뭐긴 등신아.”
난데없이 욕을 얻어먹은 프리스트의 뺨이 떨린다.
“네 제삿날을 알리는 축하 폭죽이다.”
“제삿날······?”
프리스트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슈우우우우우우우우!
저 멀리서 밤하늘을 찢는 섬뜩한 파공성이 울린다.
무시무시한 마력 파장이 환영 안개를 뚫고 피부에 저릿하게 다가오고 있다.
“대체 무슨······?”
프리스트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
하늘을 찢으며 날아오는 분홍빛 섬광이 가까워지면서 대지가 흔들린다.
“이, 이건 심상치 않군요. 어서 디바인 심볼을 발동해야······!”
프리스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땅에 박은 역십자가 형태의 유물, 디바인 심볼에 마력을 불어넣으려던 그 순간.
번쩍.
하늘에서 유성처럼 한 줄기 분홍빛 섬광이 지상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