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6)
왠지 마음에 걸렸다.
“저도 처음 들어봅니다만, 조사할까요?”
“네, 그래 주세요.”
올리비아는 베개에서 얼굴을 뗐다.
“욕탕에서 목욕이나 해야겠어요.”
그의 말대로.
올리비아는 뒷말을 삼키며 얼굴을 붉혔다.
‘서, 설마 그때 냄새가 났다던가······!’
올리비아가 황급히 팔뚝을 들어 냄새를 맡는다.
기분 탓인지 땀냄새가 조금 나는 것도 같았다.
“지, 지금 당장 가야겠어요!”
“다녀오시길.”
벨라의 인사를 뒤로 한 채, 올리비아는 황급히 세면도구를 챙겨 기숙사 공용 대형 목욕탕으로 향했다.
기숙사 복도는 묘하게 한산했다.
올리비아는 기숙사 내부도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목욕탕을 향해 걸었다.
그때.
쾅!
그녀 귓가에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이 울렸다.
목욕탕 방향이었다.
‘뭐죠?’
궁금증이 동한 올리비아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목욕탕 입구에 도착한 그녀가 목격한 광경은.
“감히 이 나의 나신을 훔쳐보다니, 죽을 각오는 제대로 됐겠지?”
알몸을 수건으로 가린 채, 길다란 남색 포니테일을 흩날리며 흉흉한 기세로 일본도를 겨누고 있는 늘씬한 미녀와.
“아니 그건 시, 실수라니까?”
당황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검은 머리 미남자의 모습이었다.
상황을 순식간에 전부 이해한 올리비아의 얼굴이 상기된다.
“벼, 변태!!”
그녀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진다.
원작이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
슈오우 영웅 학원의 식사는 꽤나 훌륭했다.
병원식이라 맛은 포기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일본 최고, 세계 최고를 자처하는 학원다운 퀄리티다.
저녁을 빠르게 해치운 나는 교복으로 환복하고는 빠르게 병실을 벗어났다.
‘밥도 먹었으니, 슬슬 목욕탕 상황이나 확인하러 가야겠군.’
올리비아에게 목욕탕에 가라고 말해두기는 했지만, 원작 그대로 상황이 흘러갈 거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목욕탕에 없을 경우, 다시 올리비아를 찾아가 독촉해야 한다.
‘둘이 만나기만 하면, 이제 내가 귀찮을 일은 없겠지.’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듀랜달도 이제 내 소유니까, 이 학원에서 꿀 빨 일만 남았다.
구르는 건 주인공이랑 히로인 둘이서 실컷 하라지.
병원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재촉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정을 걸어 기숙사로 잠입한다.
미리 다운 받은 기숙사 내부도를 보며 복도를 걷는다.
‘얼마 안 남았군.’
1층.
목욕탕 팻말이 저 멀리 보인다.
슈오우 영웅 학원의 기숙사 대형 목욕탕은 성별 구분이 없다.
그래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남학생과 여학생의 사용 시간이 나뉘어 있다.
‘불상사 방지? 엿이나 쳐먹으라지.’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는 학원의 공용 목욕탕에 남탕, 여탕 구분이 없다?
목욕신과 럭키 스케베를 넣기 위해 만들어진 얄팍한 편의주의적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뽕빨물 수준 하고는.’
나는 투덜거리며 계속해서 걸었다.
길다란 복도의 끝, 목욕탕 팻말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변태!!”
올리비아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린다.
성공인가?
발걸음을 멈춘다.
두근, 두근.
마력을 일으킨다. 마력로에서 한 가닥 일어난 마력이 눈으로 향한다.
시야가 망원경처럼 확대된다.
저 멀리, 목욕탕 문앞 풍경이 보인다.
당황한 올리비아.
식은땀을 흘리며 만화처럼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 검은 머리 미소년, 주인공 쿠로사와 유지.
그리고, 그 앞에서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굳힌, 수건으로 알몸을 감싼 남색 포니테일의 미소녀.
“시노자키 린?”
그녀의 이름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시노자키 린.
한 권에 한 명의 히로인이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라노벨의 법칙에 맞춰, 2권의 표지를 장식한 타이틀 히로인이자 현 일본 최고의 영웅 명문가인 시노자키 가문의 아가씨.
일본 최고의 기재. 주인공의 소꿉친구.
그리고 수석 입학생인 올리비아 때문에 차석 입학으로 밀린 비운의 천재.
원작 2권의 스토리는 올리비아와 주인공에 대한 그녀의 열등감을 해소해주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하고 압박하던 시노자키 가문의 당주와 싸워 그녀를 구원해주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대체 왜 여기에?’
미간이 좁혀진다.
머리를 식히고 상황을 살핀다.
올리비아는 손에 목욕 바구니를 든 채, 사복을 입고 있다.
반면에 시노자키 린은 젖은 머리에 물기 있는 알몸을 간신히 수건으로 가리고 있다.
딱 봐도 목욕 직후의 모습.
이걸 보면 머저리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주인공 놈이 알몸을 본 상대가 바뀌었군.’
올리비아에서 시노자키 린으로.
‘나비효과인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때. 귓가에 시노자키 린의 목소리가 울린다.
“실수라고 변명하는 무례하고 뻔뻔한 행태, 참을 수가 없군. 쿠로사와.”
그녀의 남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시노자키가 조용히 오른손을 든다.
탁.
일본도 한 자루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그녀의 오른손에 잡힌다.
시노자키의 전용무장, 토츠카노츠루기다.
“네 죄는 검으로 묻겠다. 쿠로사와 유지.”
시노자키의 경멸어린 시선이 주인공 유지에게 꽂힌다.
시노자키 가문은 10년 전, 쿠로사와 가문이 흑막 조직, 뉴 월드 리그의 습격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만년 2등 취급받던 가문.
어려서부터 늘 주인공과 비교당하며 자란 시노자키였기에 쿠로사와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유지에게 경쟁심과 열등감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정이다.
‘그랬었지.’
원작 설정이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른다.
그 와중에도 유지와 시노자키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미안해. 린.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친한 척,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시노자키가 차가운 표정으로 유지를 노려보며 말한다.
“미안해. 시노자키.”
“입에 발린 변명 따위, 듣기 싫다. 지금 당장 대련장으로 나오도록. 쿠로사와.”
“······알았어.”
유지가 마지못해 대답을 내뱉자, 시노자키가 그를 노려보며 차갑게 발길을 돌린다.
“이런 씨발.”
시노자키가 사라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국어로 낮게 욕을 내뱉는다.
시작 부분부터 원작이 어긋나다니.
주인공이 누구의 알몸을 봤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라노벨 세계의 현실에 어이가 없고 현자타임이 올 것 같지만, 어쨌건 미래는 이미 바뀌었다.
엎질러진 물.
되돌릴 방법 따윈 없다.
‘골 때리는군.’
수습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놀고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한다.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뉴 월드 리그, 그 미친놈들과 직접 싸워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 새끼들 개같이 쎈데.
‘그러니까 나 대신 주인공 네놈이 굴러야지.’
시선이 주인공 유지를 향한다.
미남자라는 설정답게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다.
하긴, 저러니까 하렘을 해 먹겠지.
마음에 안 든다.
‘날 귀찮게 한 비용에 대한 대가는 원금에 복리이자로 후려쳐서 청구할 테니 기대하라고.’
원작에 끼어드는 건 귀찮기는 하지만, 못 해 먹을 일은 아니다.
주요 사건은 언제나 주인공에게 몰리는 법.
옆에 있으면 콩고물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국뽕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는 나름 매력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주목받으면 주목받을수록, 국뽕 수치도 끝없이 올라갈 테니.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네. 귀찮다는 단점만 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유명해져서 높은 위치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와 사용 가능한 수단이 늘어난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인공 놈 골수까지 빨아먹어야지.
어차피 난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때.
“잠깐만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히전죽 마렵네
올리비아의 목소리다.
“거기 당신, 그 검은 머리······. 김덕성 맞죠?”
이래서 싫다.
검은 머리면 개나 소나 다 알아보잖아. 희소해서.
“엿 같네.”
한국어로 낮게 중얼거리며 등을 돌린다.
백금발 미소녀, 올리비아와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주인공 유지가 보인다.
“맞으면 어쩔 건데.”
주인공과 올리비아를 번갈아 응시하며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건······.”
올리비아가 말문이 막힌다.
혀를 차며 팔짱을 낀다.
유지는 중간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
“됐고. 너. 쿠로사와.”
“응?”
유지가 이쪽을 바라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올리비아와 유지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유지의 얼굴이 보인다.
문득 양아치 같은 나, 아니 김덕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같은 검은 머리인데 외모 차이가 이 정도?
불공평한 세상이다.
주인공의 어깨를 툭 친다.
“봐주지 말고 그냥 정직하게 이겨라. 괜히 봐줬다가 상황 더 악화시키지 말고.”
유지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힘숨찐 놀이가 걸렸다는 사실에 당황한 모양이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하하하···.”
놈이 어색하게 웃는다.
누가 라노벨 주인공 아니랄까 봐 거짓말이라는 게 표정에 다 티가 나서 어이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편이 네 목적에도 더 부합하는 길이야. 뭐, 시노자키랑 더 멀어지고 싶으면 계속 숨겨보던가.”
할 말은 해야겠다.
괜히 2권에서처럼 소꿉친구니까 봐준다고 힘 숨기고 그러면 나만 피곤해지니까.
상대가 누구건 지금 시점의 주인공은 일단 힘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꼬인 스토리가 그나마 잘 풀린다.
“······.”
유지의 눈동자가 커진다.
놈의 얼굴이 굳는다.
이 정도 하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발걸음을 옮긴다.
“잠깐만.”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할 말은 끝났다.
남자 놈에게 붙잡혀주는 취미는 없다.
유지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지나쳐 올리비아에게 도달한다.
올리비아가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야.”
“부르셨나요?”
그녀의 시선이 이제야 나를 향한다.
프랑스의 황녀답게 우아한 몸가짐.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이 골칫덩이 메인 히로인은 당분간 내가 맡아야 할 거 같다.
“넌 따라와. 얘기 좀 하자.”
나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말했다.
“제, 제가 왜요?”
이마를 짚는다.
츤데레 히전죽 마렵네.
“싫으면 말던가.”
튕기는 건 딱 질색이다.
그녀를 지나쳐 걸어간다.
“싫다고는 말 안 했어요!”
뒤에서 올리비아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혀를 찬다.
진작 그럴 것이지.
*
올리비아, 그리고 정체불명의 검은 머리 생도가 사라진 목욕탕 앞.
거기에는 쿠로사와 유지만이 홀로 남아 있다.
“실력을 숨기지 말라고.”
유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머릿속에 검은 머리 생도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과 같은 흑발흑안의 소유자.
처음 보는 얼굴.
흑광의 마력색이 희소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학원에서 자신과 유일하게 같은 머리색을 가진 생도일지도 모른다.
“더 멀어질 거라니···.”
소꿉친구, 시노자키 린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가운 표정과 말투.
그건, 단순히 그가 그녀의 알몸을 본 것에 기인한 분노가 아니다.
어쩌면 그 이상.
시노자키 가문과 쿠로사와 가문 사이에 존재하는 오랜 악연에서 나오는 분노일지도 모른다.
‘혹시 그걸 말한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두 가문 사이의 비사는 일반 생도가 알만한 사안이 아니다.
거기에다 그가 언급한 목적.
그건 ‘가문의 복수’를 언급하는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