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64)
원작에서 전학생이 등장하는 건 8권.
뉴 월드 리그가 주인공 유지를 적으로 인식한 뒤, 카미야 일문에 암살 의뢰를 넣은 다음이다.
그때 전학생으로 오는 캐릭터는 8권의 타이틀 히로인, 카미야 마코토.
마코토라는 중성적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라노벨이라면 빠질 수 없는 남장여자 히로인이다.
‘대체 누구지?’
마유즈미 선생의 얼굴을 응시한다.
“전학생이라고?”
“중간고사 바로 전에?”
“우리 학원 편입시험 엄청 어렵잖아!”
“대체 누굴까?”
생도들이 웅성대던 그때.
탁탁.
마유즈미 선생이 지시봉으로 다시 교탁을 친다.
“들어오세요! 카미야 군.”
그녀의 입에서 전학생의 성이 흘러나온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전학생이 들어온다.
목덜미까지 오는 초록빛 숏컷, 에메랄드를 닮은 초록빛 눈동자와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만화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중성적인 귀공자 스타일의 미소년.
하지만 그 정체는 남장여자 압박붕대 거유 미소녀.
‘카미야 마코토군.’
카미야 일문의 암살자이자 8권의 타이틀 히로인.
카미야 마코토가 등장했다.
원작보다 훨씬 앞선 시점에.
8권의 흐름이 3권으로 앞당겨졌다는 건, 원작 스토리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의미.
‘이제 원작의 흐름은 참고 수준으로만 생각해야겠어.’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쨌건 나는 이 미친 세상의 전부를 알고 있으니까.
“전학생, 잘생겼어.”
“왕자님 같아.”
“완전 꽃미남!”
“쿠로사와 군도 잘생겼지만, 전학생이 좀 더 내 스타일이야.”
“꺄악!”
여생도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진다.
남장여자 히로인의 전형적인 클리셰가 현실에서 재현되다니.
눈 뜨고 못 봐줄 수준이다.
아니 저게 남자로 보이나?
아무리 봐도 여자인데?
왜 아무도 의심을 안 하지?
“안녕. 난 오사카에서 전학온 카미야 마코토라고 해. 편하게 카미야 군이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마코토가 싱긋 웃는다.
남장한 마코토의 컨셉은 전형적인 왕자님 스타일.
후광이 비치는 듯한 미소에 교실에 환호성이 가득 들어찬다.
“꺄아아아악!”
“카미야 군 최고!”
“카미야 왕자님! 오늘부터 나 카미야 왕자님 팬 할래!”
정말 일관적인 엑스트라들의 반응.
시기가 좀 앞당겨지기는 했지만, 8권에서 카미야가 왜 하필 전학생으로 학원에 잠입한 건지는 알고 있다.
‘주인공을 암살하기 위해서지.’
7권 분량의 스토리에서 뉴 월드 리그의 핵심 주시 대상으로 떠오른 주인공 유지.
그를 암살하기 위해 리그에서는 일본 암흑가를 지배하는 가문, 카미야 일문에 암살 의뢰를 넣는다.
의뢰를 수락한 문주 카미야 리츠코는 유지를 암살하기 위해 카미야 마코토를 남장해서 전학생 신분으로 잠입시킨다, 가 8권의 도입부다.
‘그 이후로는 뻔한 전개고.’
룸메이트가 유일하게 없는 생도가 유지였기에, 자연스럽게 마코토는 유지와 룸메이트가 된다.
슈오우 학원에는 전학생은 룸메이트가 한 달의 적응기간 동안 맡아서 챙겨주는 제도가 있다.
딱 봐도 남장여자 에피소드를 노리고 만들어낸 일회용 억지 설정.
그동안 마코토는 유지를 암살하려 하지만, 라노벨이 다 그렇듯 유지의 ‘상냥함’에 점점 감화되며 실패한다.
결국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가 8권의 핵심 전개.
‘하지만 지금은 내가 유지랑 룸메이트인데?’
그럼 전개가 어떻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랑 룸메이트? 아니면 방 재배치?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계획을 짜놔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나와 유지가 아닌 제삼자와 룸메이트가 될 경우.
‘그 경우에는 마코토가 내 통제 밖으로 벗어나는 셈이니 위험해진다.’
차악의 경우는 내가 마코토의 룸메이트가 될 경우.
‘내가 그녀와 룸메이트가 된다면, 귀찮은 일을 본격적으로 떠맡게 될 테니······.’
최선의 경우는 유지 놈과 마코토가 룸메이트가 될 경우다.
여기서는 반드시 유지 놈과 마코토를 붙여야 한다.
린 떠넘기기는 실패했지만, 마코토마저 실패할 수는 없다.
‘기숙사 재배치를 신청해야겠군.’
슈오우 학원에는 1년에 한번, 기숙사 재배치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실제로는 사문화된 제도고, 재배치 신청서를 써서 내도 반려될 가능성이 99%지만, 이사장 직통 연락처를 가진 나라면 할 수 있다.
[이사장님] [불렀느냐? 꼬마야 ヽ(✿゚▽゚)ノ]부르자마자 읽음 표시와 함께 날아오는 칼답.
어김없이 붙은 이모티콘.
이제는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다.
[기숙사 재배치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호오? 지금 룸메이트인 쿠로사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더냐? (¬◡¬)✧] [쿠로사와랑은 이제 룸메이트가 아니더라도 절친이니까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다.]변명을 내뱉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새로운 친구라. 우리 꼬마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후후. {*≧∀≦}] [좋아. 우리 꼬마의 새로운 친구를 위해서라도 재배치를 승인해주지 (*^ー^)v]말도 안 되는 변명에도 친구라는 한 마디에 곧바로 넘어가는 이사장.
역시 상냥한 세상답다.
[감사합니다.]휴대폰을 끈다.
인맥빨이 이렇게 좋다.
“흐음. 마코토 군 자리는, 저기 빈 자리에 앉으세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왕자님 목소리로 웃으며 답하는 마코토.
그녀가 선생님이 지정한 빈자리로 향한다
다행히도 내 옆자리는 아니다.
히로인과 더 엮이는 건 질색이다.
이번만큼은 니시자와에게 고맙다.
“다들 전학생 군이랑 사이 좋게 지내야 해요! 알았죠? 그럼 오늘의 HR은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마유즈미 선생의 말을 들으면서, 1학기 교과서를 꺼낸다.
주인공 놈.
이번에야말로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
방과 후.
슈오우 영웅 학원 기숙사.
[꼬마가 새로운 친구를 맞이할 방은 211호이니라 @^▽^@]나는 일찌감치 유지에게 이별을 고한 뒤, 캐리어로 짐을 싸들고는 이사장이 보낸 메시지에 적힌 방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211호, 211호······. 여기군.”
211호라고 새겨진 방문이 보인다.
‘누가 새 룸메이트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이시하라였으면 좋겠군.’
걔가 제일 부려먹기도 좋고 편하다.
이시하라가 아니라도 좋다.
성격 좋은 엑스트라면 그걸로 만족한다.
삑.
도어락에 생도 수첩을 찍자 문이 열린다.
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선다.
익숙한 구조의 2인 1실 기숙사 내부.
거기에, 내 룸메이트가 있다.
“어라, 룸메이트인가? 어서 와.”
더없이 익숙한 목소리.
후광이 비치는 듯한 기분 나쁠 정도로 상쾌한 미소를 짓는 초록 머리 미소년.
아니 미소녀.
카미야 마코토가 거기 있다.
아까 가정한 최선, 차악, 최악 중에서 차악의 상황이 현실로 펼쳐진 순간이다.
피가 거꾸로 끓는다.
‘이 미친 할망구가······!’
너 남자 아니라 여자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책임져야 한다고.
저 빌어먹을 남장여자 짐 덩어리를?
비현실적인 상황.
기숙사 재배치는 이미 써먹었으니, 두 번 써먹을 수는 없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다.
“김······. 덕성 군이지?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남장여자, 마코토가 걱정스러운 표정과 중성적인 미성으로 내게 말하며 다가온다.
이름은 명찰에서 알아낸 모양.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흘러나온다.
그 사이, 나는 죽음의 5단계의 마지막인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개 같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 던져진 주사위.
되돌릴 방법은 없다.
내가 아무리 쌍욕을 퍼부어도 떠나간 기차는 돌아오지 않는다.
‘최소한 최악보다는 나으니까.’
나도 유지도 아닌 제삼자와 룸메이트가 되는 건 피했다.
일단은 내 시야 안으로 들어온 셈.
단지 내가 좀 많이 귀찮게 됐다는 게 문제다.
드디어 좀 쉬나 했더니 시험 기간인 것도 빡치는데, 남장여자라고?
심호흡을 하면서 분노로 뛰는 심장을 가라앉힌다.
철커덕.
문을 닫는다.
“무슨 일? 일이야 있지.”
아주 많아서 문제야.
얘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굴린다.
“어떤 일인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나한테 말해줄 수 있을까?”
스윽.
마코토가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온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믿음직스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김 군의 룸메이트니까.”
덥석.
그녀가 내 손을 슬며시 잡는다.
얼씨구.
꼴에 위장하겠다고 1인칭을 와타시가 아니라 보쿠로 하는 것 좀 봐라.
어이가 없네.
손을 빼낸다.
“······아, 미안! 김 군! 내가 너무 주제넘었구나.”
착.
마코토가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 돌겠네.
기껏 유지 놈한테 합장을 자제시켰더니, 이제는 남장여자가 합장하고 있다.
“하지 마라, 진짜.”
“···알았어.”
어색하게 웃으며 내 곁에 앉은 마코토.
더 이상 말을 걸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이쪽을 흘깃흘깃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무시한 채 생각에 빠진다.
원작 8권에서 마코토의 목적은 유지의 암살.
‘하지만 원작이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금, 그녀의 목적이 8권의 목적과 같다는 보장은 없어.’
그러니 마코토가 전학생으로 잠입한 진짜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마코토의 캐릭터 설정을 떠올린다.
‘마코토는 어린 시절부터 카미야 일문의 후계자로 키워졌지.’
부모님을 어릴 때 여의고, 고모인 블랙 로즈 카미야 리츠코에게 길러졌다는 설정.
카미야 리츠코는 조카인 마코토를 강제로 남장시켜 남자로 키웠다.
뒷세계에서는 여자보다는 남자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마코토는 어릴 때부터 카미야 일문을 위한 도구 취급받으며 학대와 냉대가 가득한 성장기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린이랑 비슷한 설정이지.’
린과의 차이점이라면, 구원으로 갱생하는 이치로와는 달리 카미야 리츠코는 이 작품에서 드문 순도 100%의 빌런이라는 점.
그래서 리츠코는 마코토를 완전히 노예로 삼기 위해, 체내에 나노 머신 폭탄을 주입했다.
만일 마코토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기폭시켜 죽일 수 있도록.
이 폭탄이 바로 구원 포인트.
린이 도구라면 마코토는 노예인 셈이다.
그래서 마코토는 폭탄 억제제를 맞고 리츠코와 혈투를 벌인 끝에 그녀를 제압하고 카미야 일문의 규율에 따라 문주 자리에 오르고 나서야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런 캐릭터이기에, 남장하라는 별도의 명령 없이도 남생도 신분으로 잠입했을 확률이 높아.’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마코토는 여자력, 여성스러움, 야마토 나데시코, 평범한 일상, 학원 생활 같은 것들에 내심 집착과 동경이 심하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남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코토의 목적이 원작과 똑같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거의 90%는 원작과 같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도 있으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마코토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느린 방법과 빠른 방법이 있다.
느린 방법은 원작에서 주인공 놈이 한 것처럼 한 달 동안 같이 붙어 다니며 그녀를 챙겨주면서 ‘상냥함’으로 감화시켜 사정을 스스로 고백하게 하는 것.
‘그런 답답한 짓을 내가 할 이유는 없지.’
그러니 여기서는 빠른 방법이다.
결정을 내린 나는 마코토를 불렀다.
“마코토.”
“김 군. 불렀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사하게 웃는 마코토.
그녀를 바라보면서 허리춤에 채워진 듀랜달에 손을 얹는다.
“너, 남자 아니라 여자지?”
내 질문을 받은 순간.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그녀의 표정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동요.
암살 훈련을 받은 프로 암살자다운 표정 관리다.
‘정작 암살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는 허당 암살자 설정이지만 말이야.’
살인 경험이 없는 프로 암살자면서 허당이라니.
거기에 사실 암살자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은 상냥한 성격이라는 설정.
뭐, 원작에서는 그래서 리츠코가 마코토의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폭탄을 심어뒀다는 설정이기는 한데, 정말 라노벨에서나 나올 법한 모순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새삼스럽게 이 미친 세상이 라노벨 원작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하하하······. 주변에서 여자 같다. 곱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나는 김 군과 같은 남자인걸?”
능청스럽게 내 질문을 받아넘기는 마코토.
그녀의 실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내뱉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그래? 그럼 같은 남자끼리 친목도 다질 겸 목욕이라도 하고 오면 되겠네. 지금 당장.”
“그건······.”
마코토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모습.
“그 사실······. 내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 다른 사람한테 알몸을 보여주기 조금 그래서······. 미안해. 김 군!”
착.
다시 합장하는 마코토.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 원작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마코토가 저런 변명을 했었다.
유지는 호구답게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