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67)
니시자와 에리가 책상 위에 양 팔을 올리며 쏘아붙인다.
싱긋.
마코토가 웃는다.
“슈오우 학원에서 전학생은 룸메이트가 멘토를 맡아서 한 달 동안 보살펴주는 제도가 있다나 봐. 그래서 마유즈미 선생님이 내 자리를 김 군 옆자리로 옮겨줬어. 니시자와 양의 자리는 저기라던데?”
마코토가 손가락을 들어 빈자리를 가리킨다.
니시자와 에리의 시선이 마코토의 손가락 끝을 향한다.
거기에는 시노자키 린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다.
‘젖소의 옆자리라니······.’
원래라면 시노자키 린과 한바탕 해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구나아······.”
니시자와 에리가 말을 길게 끌면서 마코토를 노려본다.
마코토가 싱긋 웃는다.
왕자님 웃음에 여생도들이 자지러진다.
‘······기분 나빠.’
니시자와 에리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김 군. 오늘 점심 뭐 먹을 거야.”
덥석.
마코토가 김덕성의 손을 잡는다.
“자꾸 들러붙지 좀 마라. 뒤지기 싫으면.”
김덕성이 질색한다.
“뭐, 어때. 남자끼리인데.”
싱긋 웃는 마코토.
니시자와 에리의 눈동자가 마코토를 면밀히 관찰한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그녀에게 음심을 품고 있다.
단 한 명.
주인님만 빼고.
그렇기에 마코토 역시 음심을 내비쳐야 정상이다.
설사 꽁꽁 숨기고 있더라도,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니시자와에게 남자들의 숨겨진 흑심 따위를 간파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흑심이 없었어.’
니시자와 에리가 마코토에게서 느낀 감정은 흑심이 아닌, 질투.
황녀님이나 젖소의 감정과 유사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질투하는 것도 이상한데, 은하 랭크 미소녀인 자신에게 음심을 품지도 않는다?
‘이상해······. 기분 나쁠 정도의 위화감이 느껴져······.’
대책이 필요해.
니시자와 에리는 그런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가방을 들고 린의 옆자리로 향했다.
*
전학생이 온 지 엿새째.
점심시간.
시노자키 린은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가슴에 도시락 통을 보물단지처럼 꼭 안았다.
‘오늘은······. 드디어 먹을 만한 요리를 만든 날.’
도시락 통 안에는 명란젓과 참치마요를 넣어 만든 주먹밥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모양새는 좀 그렇지만, 시노자키 린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먹을 만한 요리.
직접 맛도 봤으니, 이번에야말로 부족한 여자력을 충실히 길렀다는 사실을 연모하는 그에게 알려줄 때다.
두근, 두근.
린은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김덕성이 가끔 점심을 때우는 교정의 피크닉 테이블로 향했다.
“김덕성! 오늘은 내가 드디어 머,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들었······.”
린의 말이 끊긴다.
그녀의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초록빛 머리의 전학생, 카미야 마코토가 테이블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는 모습.
“나, 도시락 만들어 왔어. 김 군.”
마코토가 뚜껑을 열자 화려하기 그지없는 도시락 메뉴들이 드러난다.
“우와. 카미야 군. 요리도 잘해?”
“엄청 맛있어 보여.”
“있지. 카미야 군. 나도 맛봐도 괜찮아?”
마코토의 주변에 어느새 다가온 여생도들이 말한다.
마코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미안. 이건 날 위해서 고생하는 김 군을 위해 손수 만든 도시락이라 안 돼.”
마코토가 웃자 여생도들이 자지러진다.
그 모습을 본 김덕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김 군. 자. 아앙 하고 이거 먹어 봐. 맛있지? 내가 직접 만든 고로케야.”
“맛있긴 한데, 먹여주는 건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쪽팔리는데.”
“뭐, 어때. 남자끼린데.”
“돌겠네, 진짜. 하지 말라고.”
린의 미간이 좁혀진다.
카미야 마코토.
오사카에서 온 전학생.
룸메이트 멘토 제도를 감안해도, 수상할 정도로 그의 곁에 계속해서 붙어다니는 남생도.
그에 대해서는 린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든 도시락을, 그것도 먹여주는 일까지 할 줄이야.
‘나, 나도 아직 안 해본 일인데······!’
린이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성큼성큼 피크닉 테이블로 다가가 도시락을 내려놓는다.
“넌 또 뭐냐, 린?”
“도, 도시락······. 이다. 너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
딸칵.
린이 도시락을 연다.
“자 머, 먹어봐라! 이번에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니······!”
린이 눈을 질끈 감으면서 주먹밥을 김덕성에게 건넨다.
“이번에도 또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린.”
“큿······.”
김덕성이 주먹밥을 받아 먹는다.
“······의외로 평범하게 괜찮은 맛이네. 웬일이냐?”
그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두근.
린의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뛴다.
린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후후. 피나는 단련의 성과지. 세상에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
“시노자키 양? 만나서 반가워. 내 도시락도 한번 먹어 볼래?”
스윽.
마코토가 자신의 도시락을 내민다.
린의 시야에 마코토의 도시락이 보인다.
“하, 한번 맛보도록 하지.”
린이 젓가락을 들어 도시락에 있던 고로케를 하나 베어문다.
분하게도 맛있다.
그녀가 만든 조잡한 주먹밥보다 훨씬 더.
린의 시야에 마코토의 얼굴이 들어온다.
남자인데도 웬만한 여자보다 더 부드러워 보이는, 아기 살결 같은 피부가 보인다.
“큿······.”
전학생은 남자일텐데.
어째서인지 여자력에서도 피부에서도 자신이 밀리는 기분.
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 아직 나는······. 모자란 건가······.’
린이 입술을 깨문다.
남자에게도 여자력이 밀리다니.
비참해진 기분.
그녀가 황급히 주먹밥 도시락의 뚜껑을 덮는다.
“나, 남은 건 나 혼자 먹겠다······. 그럼. 이만.”
“야, 린. 어디 가?”
김덕성의 질문도 뿌리친 채, 린은 교정을 걸었다.
그때.
우웅.
린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녀가 핸드폰을 든다.
거기에는.
[야, 젖소] [전학생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그거 때문에 황녀님이랑 너랑 나랑 대책 회의를 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참여할래? 황녀님은 이미 OK했어]니시자와 에리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방금 전의 굴욕이 떠오른다.
그리고 김덕성에게 도시락을 먹여주던 마코토의 모습도.
그건 평범한 우정의 모습이 아니다.
그를 연모하기에 린은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빨래판의 말처럼.
“큿.”
그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휴대폰을 두드린다.
[나도 참전하지]히로인 공동전선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남자끼리는 무슨
마코토가 전학 온 지 엿새 날 밤.
슈오우 영웅 학원 기숙사 1층 대욕탕.
일본 목욕 문화를 허구한 날 라노벨에서 찬양하는 일본답게, 대욕탕의 시설은 넓고 깨끗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온탕에 몸을 담근다.
첨벙.
온수가 흘러넘친다.
“으, 시원하다.”
내 입에서 한국어가 절로 나온다.
뜨거운 물이 몸을 기분 좋게 감싼다.
이게 목욕이지.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
역시 목욕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하는 게 최고다.
“기왕이면 남탕이랑 여탕이랑 따로 만들 것이지.”
주인공과 히로인이 마주치는 럭키 스케베 전개 때문에, 기숙사 대욕탕은 남탕과 여탕 구분이 없다.
기숙사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대욕탕을 여생도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대와 남생도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대를 나눠서 운영하는 형태.
지금 시간은 남생도 사용 시간, 이지만 이런 늦은 시간에 목욕하는 생도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나 혼자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엿새였지.’
그날.
연구소에서 마코토가 주군이니 뭐니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은 이후.
다음 날부터 그녀가 남장한 모습으로 학원에서 묘하게 들러붙기 시작하면서 빌어먹을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는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왕자님 취급을 받는 그녀 옆에 몰려다니는 여생도들이 익룡 소리 내는 것만으로도 시끄러워 죽겠는데.
뭐? 성별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귀축?
거기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소문들까지.
“염병.”
욕이 절로 나온다.
나는 확고부동한 이성애자다.
절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100편 결제했던 웹소설이 101편에서 갑자기 인류애 드리프트를 꺾었을 때부터, 나는 남자끼리 엮이는 걸 싫어했다.
남자 캐릭터 얼굴을 쓸데없이 자세히 묘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휴.
생각도 하기 싫다.
드리프트라면 아주 치가 떨린다.
“남자끼리는 무슨.”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잡고, 밥을 먹여주는 게 무슨 남자끼리 할 스킨십이냐.
그런 짓 하면 오해받기 딱 좋다. 실제로도 오해받기 시작한 것 같고.
진짜 남자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윽.
이게 웹소설이었다면 100% 드리프트 한다고 댓글창이 불타고도 남았다.
그때.
수증기가 자욱한 욕탕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주군······. 여기 있었군요?”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지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마코토?”
아니 쟤가 왜 여기 들어와.
미친 건가?
“네, 주군의 검인 마코토입니다.”
자욱한 수증기를 가르며 마코토가 나타난다.
물기에 젖은 초록빛 머리카락, 몸에 달라붙는, 커다란 가슴이 부각되는 경기용 수영복을 입은 그녀가 온탕에 자연스럽게 입수하며 내 곁에 다가온다.
“웬 존댓말이냐?”
호칭에 존댓말까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주군한테 반말을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마코토가 얼굴을 붉힌 채 천천히 말한다.
“그냥 반말 해라, 좋은 말 할 때.”
내 위장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제발.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마코토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는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린다.
“하라고. 평소에는 잘 하면서 왜 그러냐?”
“아, 알았어······.”
마코토의 말투가 그제야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까보다는 낫네.
“그래서 여긴 왜 왔냐?”
“주군이 방에 없어서······. 혹시 나 말고 일문의 다른 암살자가 주군을 노린 줄 알고······. 찾아왔어. 대욕탕에 있어서 다행이야······.”
온탕에 몸을 담근 마코토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이게 진짜 돌았나.
“너 미쳤냐?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빨리 나가라. 좋은 말 할 때.”
지금 마코토의 남장이 들키면 안 된다.
마코토의 남장이 들킨다면, 그녀의 정체도 들킬 것이고, 마코토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리츠코가 계획을 변경해 다른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되지.’
리츠코를 곧 상대해야 하는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상대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무너진 원작, 쓸데없는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 그렇지만······.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히히히.
마코토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부딪친다.
온탕의 열기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그녀가 슬며시 내 팔뚝을 수영복에 감싸인 가슴으로 슬쩍 가져다 댄다.
미끈미끈한 수영복으로 감싸인 풍만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팔뚝에 느껴진다.
“나도 목욕, 사실 조금 하고 싶었고······.”
생도 기숙사 방의 욕실에는 샤워기밖에 없다.
목욕을 하려면 대욕탕에 와야 한다.
역시 럭키 스케베를 위해 만들어진 어거지 설정.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는 슈오우 영웅 학원 생도 기숙사에 욕조 하나 없다?
이럴 거면 세계 최고 운운하는 간판 떼버리는 게 낫다.
아카데미물 웹소설 기숙사 묘사 보면 1인 1실에 호화 저택 뺨친다는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역시 한국 아카데미물에 빙의했어야 했다.
‘이런 미친······.’
갑자기 상념이 끊긴다.
팔뚝에 부드러운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빙의 전보다 젊어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몸뚱이가 쓸데없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원작에서 주인공 놈이나 겪던 남장여자와의 목욕 에피소드를 왜 내가 겪고 있지?
그녀의 말에는 틀린 구석은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 목욕하는 생도들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라노벨에서 보면 꼭 이럴 때 누가 들어오던데······.’
원작의 목욕 에피소드에서도 목욕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와중에 대욕탕에 누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마코토와 주인공이 비좁은 락커 안에 같이 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락커 안에서 주인공과 마코토가 서로 밀착하는 에로틱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