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73)
니시자와 에리, 시노자키 린, 올리비아.
그녀처럼 그를 연모하는 소녀들이, 몸을 던져 김덕성을 지키는 모습을.
그리고 한심하게 주저앉아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대로 가다가는 저 여자들보다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일.
그럴 수는 없다.
나만 뒤처질수는 없다.
화르륵.
그녀의 마음 속에 질투의 불길이 일어난다.
“싫어.”
[무슨 소리고? 일문을 배신하겠다는 말이가? 일문에게 버림받은 니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을 낀데?]“없어도 좋아.”
사르륵.
마코토가 압박붕대를 벗어던진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셔츠 위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코토가 이를 악문다.
리츠코의 목소리 따위,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내 정체가 드러나도 좋아. 설령 모두한테 버림받아도 상관없어.”
스르릉.
마코토가 허리춤에 찬 와키자시 형태의 초상병기, 호네바미 토시로를 빼든다.
“주군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올리비아에게, 시노자키에게, 니시자와에게 질 수는 없다.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지도 않고, 변덕도 아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당신이 내 몸에 멋대로 주입한 나노 머신 폭탄을 주군께서 해결한 그 날부터 내 몸과 마음은 전부 그분한테 바치기로 맹세했으니까.”
마코토의 눈빛이 빛난다.
“더는 망설이지 않아.”
츠팟.
섬광이 터지며 전투 모드가 활성화된다.
초록빛 전신 장갑이 마코토의 전신을 뒤덮는다.
“그러니까 이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성격 나쁜 노처녀 아줌마!!”
[이이이이이이이익! 노처녀 아니라고오오오오!!]리츠코의 절규를 들으면서 마코토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한다.
전장의 판도가 변하는 순간이었다.
살았다
“카미야 류 살법! 제4식! 살상난무!”
우렁차게 스킬명을 외치는 리츠코.
파츠츠츠츳!
민트색 스파크와 함께 허공에 유려하게 그려진 녹색 실선이 살벌하게 덮쳐든다.
난무라는 말처럼 허공에 그물망 형태로 펼쳐진 참격.
이를 악물며 듀랜달을 휘두른다.
지잉.
동기화가 진행되며 주입된 흑태자의 재능이 검로를 제시한다.
[백염검식] [제3식] [백금 방패]화르륵.
검게 타오르는 마력 불꽃 방패가 나타난 순간.
콰광!
터지는 폭음.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마력 충격파.
이를 악문다.
1/4로 나눠진 힘이 이 정도면, 대체 본체는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거야?
아무리 결계 내부에서 버프를 받는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진명해방도 안 한 게 이 정도라니.
‘노예들이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군.’
3인방의 미행이 오늘만큼 반가운 날이 없다.
콰광!
주변에서도 계속 폭음이 터진다.
올리비아, 린, 니시자와가 각각 리츠코의 다른 분신과 맞서는 모습.
우웅.
듀랜달이 떨린다.
흑태자가 불만이 있는 거 같은데.
슈슈슉!
“뒤져라!! 김덕성!! 바퀴벌레 같은 자슥아!!”
리츠코가 칸사이 사투리를 내뱉으며 단도를 휘두른다.
금방 죽을 줄 알았던 내가 안 죽으니 본인도 안달이 난 모양.
눈앞에 민트색 실선이 어지럽게 그려진다.
깡! 깡! 깡! 깡!
흑태자의 재능에 의지해서 그녀의 공격을 모조리 쳐낸다.
‘돌겠네.’
이 세상의 설정에서 적합도란 초상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연비와 초상병기를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재능을 뜻한다.
적합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적은 마력을 사용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초상병기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
반대로 적합도가 낮은 영웅에게 초상병기는 마력 먹는 하마에 가깝다.
게다가 이 세상에서 적합도와 마력 컨트롤, 전투 재능 등 각종 재능은 비례 관계에 있다.
적합도가 높을수록 다른 재능도 높다는 의미.
적합도가 C랭크에 불과한 나, 아니 김덕성의 몸으로는 본래 S랭크 빌런과 방어전을 펼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블랙 스톤과 동기화의 힘 덕분에 가능하게 된 거지.’
듀얼 코어로서 마력 증폭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블랙 스톤.
이 세상에서 손꼽히는 대영웅인 흑태자의 재능과 경험을 빌려오는 동기화 어빌리티.
이 두 능력의 기막힌 조합 덕분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올리비아, 유지, 린 같은 천재들의 발뒤꿈치까지는 따라갈 수 있었다.
내가 의도한 결과다.
두근, 두근.
마력을 쥐어 짜낸다.
가슴 안에 있는 마력로와 블랙 스톤이 공명하며 마력을 뿜어낸다.
[금강불괴]두 번째 어빌리티를 사용한다.
부서지지 않는 마검의 방어력이 전신을 뒤덮는다.
쾅! 콰광!
그녀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으며 전진한다.
금강불괴는 라노벨식 허세 스킬이 다 그렇듯 거창한 설명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무적의 방어 스킬은 아니다.
방어력이 전부 벗겨지거나, 금강불괴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공격이 들어오면 무력화된다.
하지만 적어도 리츠코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만들어낼 정도의 성능은 된다.
“뒤져라!!”
“아 참 거 겁나게 시끄럽네.”
리츠코를 바라보며 듀랜달을 손에 쥔 순간.
“주군은 내가 지킬 거야. 나만의 주군, 내 전부를 바치고 섬길 사람은 내가 지킬 거야! 보나파르트 양도, 시노자키 양도, 니시자와 양도 아닌, 주군의 유일한 검인 마코토가 지킬 거야. 나만의 주군이니까. 그러니까 내 충성심을 지금 여기서 증명할 거야. 날 봐줘! 주군!”
등 뒤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뭐지?
대사가 왜 저래?
“마코토, 이 문디 가스나가 기어코······.”
리츠코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
쐐애애애애애애애액!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초록빛 섬광이 나와 리츠코 사이에 떨어진다.
폭음과 함께 갈라진 바닥 속에서, 초록빛 전신 장갑을 걸친 숏컷 미소녀가 몸을 일으킨다.
남장을 푼 모양인지, 몸에 달라붙은 전신 장갑 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커다란 가슴이 인상적인 마코토가 손에 검신이 조금 짧은 일본도를 든 채로 웃는다.
“주군, 주군의 검인 마코토가 왔어. 조금 늦었지? 미안해.”
“아니······.”
당황스럽다.
계속 정신 못 차리고 뒤에 쳐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먹은 건 아니지?
“이제부터 주군은 내가 지킬 거야. 못생긴 아줌마.”
철컥.
마코토가 일본도를 든 채로 입술을 깨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일본도에 녹색 마력이 타오른다.
“마코토. 지금까지 누가 니를 길러줬는데, 암흑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전투 기술을 가르쳐준 게 누구인데, 감히 길러준 정을 이딴 식으로 통수를 치나? 뭐? 못생긴 아줌마? 니 생사여탈권을 누가 쥐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 아니겠제?”
리츠코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의 눈동자에 배신감이 깃든다.
당연히 리츠코에게도 사연은 있다.
라노벨에서 미녀 악당인데 사연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사실 마코토를 학대한 것도 암흑가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녀 나름대로 배려였다, 는 건 설정집에서만 나온 리츠코의 뒷사정이다.
라노벨에서 흔한 사실 얘가 착한 의도였지만 결과가 나빴다는 클리셰.
원래는 세탁기를 돌려서 히로인으로 만들 예정이었던 거 같은데, 라노벨 특성상 캐릭터가 막 쏟아지다 보니 결국 공기화 돼서 100% 빌런으로 남은 모양.
“니가 내 말을 안 들을 거라면 본때를 보여줘야겠제.”
리츠코가 웃는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긴다.
나노 머신 폭탄의 고문 기능을 사용하려는 모양.
“아까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아? 아줌마? 그거 이제 안 통해.”
마코토가 싸늘하게 내뱉으며 그대로 돌진한다.
츠팟!
그녀의 전신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바람을 조작하는 마코토의 기프트인 ‘질풍’이 발현된 순간.
그녀의 신형이 앞쪽으로 발사된다.
“주군 앞에서 사라져!!”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초록빛 돌개바람의 격류가 그녀의 전신을 감싼다.
번쩍.
칼날바람 회오리가 리츠코의 전신에 직격한다.
“큭!”
나노 머신 폭탄만 믿고 있다 허를 찔린 리츠코가 비명을 내지른다.
그녀의 몸이 환영처럼 흔들리다 빛가루로 화해 사라진다.
미러 이미지를 사용해 본체를 다른 곳으로 옮긴 모양.
“환영이었나.”
마코토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어딜 보는 기고. 마코토. 내가 니를 그래 가르쳤나? 니가 처치한 건 분신이데이.]매장 전체에 리츠코의 변조된 사투리가 울린다.
[마코토. 니가 이러면 안된데이. 니가 나를 배신할 수는 없데이. 내가 니를 딸처럼 키웠는데, 이럴 수는 없데이.]츠팟, 츠팟.
올리비아, 린, 니시자와가 상대하던 마코토의 분신이 섬광과 함께 사라진다.
그그그그그그그.
층계가 흔들린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제. 얼라들 상대로 ‘진심’을 내보일 생각은 없었는데, 이게 다 마코토. 니가 날 배신했기 때문인기라.]섬뜩한 음성이 층계를 메운다.
[이마노츠루기── 진명해방]파츠츠츳.
스파크가 튀며 허공에 리츠코의 신형이 나타난다.
[천 개의 그림자를 조각하는 단도]리츠코의 말이 끝난 순간.
그녀의 몸이 분열한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끝없이 분열하는 리츠코의 분신이 층계를 순식간에 메운다.
““““““““지금부터 장난이 아니고 ‘진심’으로 갈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그래이!””””””””
리츠코의 분신이 같은 목소리로 일제히 입을 연다.
섬뜩한 광경.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듀랜달을 붙잡는다.
이거 진짜 좆된 거 아닐까?
원작 주인공 놈이야 재능빨로 간신히 이겼다지만 나에게는 그런 초월적인 재능이 없다.
게다가 원작에서 리츠코는 적합도 F랭크인 주인공을 계속 얕보고 방심하다가 진명해방을 하지도 못하고 제압당한다.
그래서 리츠코의 진명해방은 세탁기 설정과 마찬가지로 설정집에서만 나온다.
‘천 개의 그림자를 조각하는 단도, 능력은 분신의 무한 생성······.’
그에 비례해서 능력치도 약해지지만, 진명해방 동안에도 살상결계가 그대로 유지되기에 일정 수준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인해전술로 끝없이 들이박아 상대를 압살하는 능력.
여기 있는 애들로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시 이사장이 필요하다.
10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흥. 누가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할 줄 알고? 주인님은 에리링이 지킬 거야. 못생긴 노처녀 아줌마는 아무리 늘어도 아줌마야. 결코 시집을 갈 수 없어. 늙다리 아줌마는 아무도 안 받아줘. 주인님도 아줌마 같은 여자는 싫어할 걸?”
니시자와 에리가 내 앞을 막아서며 사슬낫을 빙빙 돌린다.
그녀가 입술을 깨문다.
니시자와 옆으로 시노자키 린이 붙는다.
린이 뽑은 일본도에 새하얀 서리가 달라붙는다.
“시노자키 일도류는 무적이다. 나는 현시대 최고의 영웅인 아버지, 검귀 시노자키 이치로의 검을 직접 이어받은 자.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김덕성. 내가 여자력은 부족하지만, 너를 지킬 자신은 있다. 네 미래 아내의 힘을 내가 똑똑히 보여주마. 기둥서방이라도 좋으니 너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도록.”
화르륵.
백금빛 불길이 일어난다.
린 바로 옆에 올리비아가 선다.
그녀가 플랑베르주를 든 채로 전방을 노려본다.
“당신은 정말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에, 우주에서 제일 둔하고 무드 따위는 전혀 모르는 한심한 최저최악의 남자지만, 그래도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일하게 인정한 남자. 그러니 당신의 전속 시녀로서 당신을 지키겠어요. 그게 제 의무니까요. 감사하라구요!”
올리비아의 귓불이 빨갛게 물든다.
척.
마지막으로 남은 한쪽 면을 마코토가 막아선다.
그녀가 와키자시를 들면서 말한다.
“노예처럼 살던 나를 일깨워준 것도, 구원해준 것도, 일상을 알려준 것도 전부 주군 덕분이야. 내 목숨은 주군의 것, 두 번째 삶은 주군을 위해 살고 주군을 위해 죽겠어. 다른 사람한테 지지 않을 거야. 누가 뭐라해도 나는 주군의 첫 번째 검이니까.”
가운데에 내가 있고, 사방을 네 여자가 둘러싸듯 나를 감싸며 호위하듯 초상병기를 치켜들고 있는 상황.
평소라면 역겨워할 대사였지만, 이번만큼은 역겹게 들리지 않는다.
말이야 어쨌건, 저들은 진심으로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까.
그것이 신뢰로 맺어진 상냥한 라노벨 세상의 법칙.
하지만 나는 죽기 싫다.
아니.
그녀들이 내 앞에서 죽는 꼴도 보기 싫다.
히로인 캐릭터가 단 한 명이라도 없다면, 최종 보스인 메사이어 공략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다.
‘정말 그것뿐일까?’
입술을 씹는다.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미묘한 감정을 애써 억누른다.
인정하기 싫다.
나마저 이 상냥한 세상에 동화될 수는 없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픈 어머니와 정년 퇴임을 앞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정을 붙여서는 안 된다.
이를 악물던 그때.
[반항해도 소용없데이, 이제 끝이······.]라노벨답게 최후 선언을 하려던 리츠코의 말이 중간에 잘린다.
번쩍.
새하얀 섬광이 층계를 가득 채운다.
압도적인 마력이 살상결계를 뒤덮는다.
저릿한 위화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건······.”
이상을 눈치챈 올리비아가 눈을 크게 뜬 순간.
[World End White]【종언을 부르는 백색 세계】
‘법칙’을 뒤트는 진언이 세계에 새겨진다.
하나의 영웅이 쌓아올린 심상세계가 현실로 전개된다.
심상전개.
자신만의 세계를 초상병기를 매개로 현실에 덧씌워서 섭리와 법칙을 초월하는 궁극기.
진명해방 다음 단계이자, S랭크 영웅과 EX랭크 영웅, 위험도 S랭크 빌런과 위험도 EX랭크 빌런을 가르는 기준.
파워 인플레이션이 일상인 라노벨이기에 일대일 비교는 어렵지만, 굳이 익숙한 개념으로 따지자면 진명해방이 무협소설의 화경이라면 심상전개는 현경의 경지와 상응하는 수준.
중2병의 정수를 농축해놓은 것 같은, 온통 새하얀 모습이 정신병원을 연상시키는 이 빌어먹을 기술의 주인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놈이 감히 이 몸의 사랑스러운 꼬마를 이리도 핍박하는 것이더냐?”
찬란한 백색 빛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피처럼 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백발을 지닌 검은 고스로리 드레스 복장의 미소녀가 검은 레이스 양산을 쓴 채로 하얗게 물든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 사뿐히 발을 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