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75)
저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일 터.
한숨을 쉰다.
역시 이 세상에 정상인 따위는 없다.
국뽕에 심취한 한서진은 그냥 내버려 두자.
‘중간고사나 걱정해야지.’
카스미 선배가 타이틀 히로인인 4권의 핵심 스토리.
교토 교류전.
그 멤버가 되려면 중간고사 상위권에 들어야 한다.
반드시.
제1회 카미야 마코토 청문회
마코토가 여생도 신분으로 재입학한 첫날.
학생회관 소강당.
라고 삐뚤빼뚤 크레파스 글씨로 적힌 벽 아래 세 개의 책상이 놓여 있다.
책상에 앉은 사람은 올리비아와 린, 니시자와 에리.
앞에 놓인 의자에는 남장을 푼 카미야 마코토가 앉아 치맛자락 끝부분을 손으로 만지작대고 있다.
마코토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귓불이 빨갛게 물든다.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적을 깨뜨린 사람은 린.
그녀의 차가운 남색 눈동자가 마코토를 향한다.
“그러니까, 전학생. 네가 여자였다는 말이지?”
“으, 응······.”
마코토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학생이 여자였다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올리비아가 마코토를 훑어보며 말한다.
“······에리링 감쪽같이 속았어. 기분 나빠.”
니시자와 에리의 시선이 마코토를 향한다.
“모두 속여서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착.
마코토가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다.
드르륵.
니시자와 에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벅저벅.
그녀의 발걸음이 마코토의 등 뒤로 향한다.
덥석.
“이렇게 커다란 지방 덩어리를 달고도 잘도 남자 행세를 하고 다녔네? 카미야 양.”
마코토의 뒤에 밀착한 니시자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흐익?!”
낯선 감촉에 마코토의 눈동자가 커진다.
“또 젖소가 늘어났어. 에리링 기분 나빠. 가슴 따위, 그저 지방 덩어리일 뿐인데.”
니시자와 에리의 입술이 튀어나온다.
올리비아, 린에 이어서 마코토까지.
하나같이 그녀보다 가슴이 큰, 세간에서는 거유라고 불리는 여자들뿐.
그 사실이 니시자와 에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꺄앗?! 소, 손대지 말아줘?! 니시자와 양!”
“싫─어! 젖소처럼 커다란 지방 덩어리는 이렇게, 이렇게! 에잇!”
“흐엣?!”
마코토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두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는 추하다. 절벽.”
“닥쳐. 젖소. 에리링도 가슴 있어. 꽉 찬 B컵이야. 평균이야. 빈유도 아니고 절벽은 절대 아니거든?”
마코토에게서 그제야 떨어진 니시자와 에리가 볼을 부풀리며 린에게 항의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몇 번이나 벌어졌던 가슴 사이즈 대결이 다시 개최되려던 순간.
“그, 그렇지만 커다란 가슴 따위 흉물일 뿐인걸······.”
니시자와에게서 해방된 마코토가 붉게 물든 얼굴로 가슴을 감싸며 던진 한마디에 린과 니시자와 에리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그, 그게······.”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마코토가 치맛자락을 꽉 붙잡으며 말한다.
“구,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니시자와 양처럼 적당한 사이즈가 좋다고 생각해······.”
마코토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그녀에게 있어 본인의 커다란 가슴은 콤플렉스.
주군께서 자신의 가슴이 흉하지 않다고 말해주기는 했지만, 10년이 넘게 형성된 콤플렉스는 아직 마코토를 짓누르고 있었다.
마코토의 말이 끝나자 린의 표정이 굳고 에리의 표정이 펴진다.
다다다다.
마코토 곁에 다시 다가간 니시자와 에리가 웃으면서 말한다.
“정말? 전학생, 아니 마코삐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마코삐?”
마코토의 눈동자가 커진다.
“에리링이 즉석에서 만든 전학생의 애칭이야. 왜? 마음에 안 들어?”
니시자와 에리의 주황빛 눈동자와 마코토의 초록빛 눈동자가 마주친다.
“아, 아니. 아니야.”
마코토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냥, 애, 애칭으로 불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이름조차 제대로 불린 적 없는 마코토에게 있어서 애칭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마,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당황했달까, 아하하하하하······.”
솔직히 말하자면 좋다.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며 서슴없이 애칭으로 불리는 삶.
그런 일상을 마코토도 갖고 싶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
마코토가 활짝 웃는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좋아.”
짝.
니시자와 에리가 손뼉을 친다.
“마코삐는 저기 앉은 성격 나쁘고 여자력도 낮은 젖소녀랑은 다르게 좋은 사람 같으니까, 특별히 에리링을 ‘에리’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줄게! 에리링은 안 돼. 그건 주인님 전용 애칭이니까!”
에리의 말에 린이 발끈한다.
“뭐? 성격이 나빠? 여자력도 낮아? 젖소녀? 지금 말 다 했나. 빨래판?”
“젖소. 네 성격 나쁜 거랑 여자력 낮은 건 우리 학원 생도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걸? 요즘은 사실을 말하는 것도 죄인가 봐? 한국에서는 그걸 ‘팩트 폭력’이라고 한다던데.”
니시자와 에리가 조소를 날리며 린을 바라본다.
린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쉰다.
린의 남색 눈동자가 마코토를 향한다.
“한숨이 나오는군. 이봐. 전학생. 너는 스스로의 가슴 사이즈에 좀 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커다란 가슴은 모성과 색기의 상징. 남자들은 여자의 가슴이 크면 클수록 좋아한다. 그건 김덕성 역시 마찬가지다.”
“모, 모성? 색기?”
노골적인 말에 마코토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커다란 가슴으로 향한다.
쓸모없는 지방 덩어리.
그렇게 폄하 당하기만 했던, 흉물이라고만 생각했던 가슴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주군께서도 큰 가슴을······.’
두근.
마코토의 심장이 뛴다.
주군과 함께 도쿄 플라자 의류매장에 들렀을 때, 탈의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안 흉하다고 해주셨어.’
어쩌면 린의 말대로 그는 정말로 자신의 쓸모없기만 한 큰 가슴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주군이 자신을 한 명의 여인으로 봐주실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코토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한다.
수줍어하는 마코토의 모습을 본 린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그래. 여자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가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빨래판은 여자로서 낙제점인 셈이지.”
“뭐? 지금 도내 최고 미소녀이자 학원 최고의 아이돌인 에리링을 무시하는 거야? 에리링만 바라보는 남자들만 지구 한 바퀴라고. 물론, 에리링은 그런 역겨운 남자들 따위 전혀 관심 없지만. 에리링은 주인님밖에 없어.”
저벅저벅.
자리에서 일어난 린을 향해 걸어간 에리가 그녀와 부딪친다.
두 사람의 이마가 맞부딪힌다.
두 여자의 흉부가 서로 맞부딪혀 짓눌린다.
“우리 마코삐한테 이상한 지식 주입하지 마. 젖소.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 제일 아름답다는 건 상식이야.”
“평소와 같은 헛소리군, 빨래판. 언제부터 전학생이 ‘우리 마코삐’가 됐지?”
“저, 저기 니시자와 양? 시노자키 양? 내 잘못이니까 싸우지들 마······.”
서로 으르렁대는 시노자키 린과 니시자와 에리의 모습에 마코토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쪽 두 사람 다 유치한 싸움 그만 좀 해요.”
올리비아의 싸늘한 목소리가 소강당을 울린다.
황급히 입을 다물면서 떨어지는 니시자와 에리와 시노자키 린.
조용해진 소강당.
올리비아가 팔짱을 낀 채 마코토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뭐, 좋아요. 일단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게 밝혀진 이상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군요. 저희를 속였다는 사실이 조금 괘씸하기는 하지만······.”
올리비아의 말에 마코토가 움찔한다.
“······감히 이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속여서 헛걸음하게 만든 죄는 크지만, 사정이 있었던 것 같으니 이번만 특별히 넘어가 드리죠.”
올리비아가 입술을 삐죽인다.
마코토가 모두를 속인 건 괘씸하다.
하지만 그녀의 뒷사정을 외면할 수는 없다.
올리비아 역시 이 상냥한 세상의 일원이니까.
“······그쪽과 사이좋게 지내달라는 바보 같은 어떤 남자의 부탁도 있었고요. 이봐요 전학생! 그러니까 저한테 감사하시라구요. 아시겠나요? 다음은 없어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그의 부탁이라면······.”
“혹시 주인님 말하는 거야? 황녀님?”
올리비아의 말에 반응한 건 마코토가 아닌 린과 니시자와 에리.
양쪽 옆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이 올리비아에게 향한다.
눈길을 받은 올리비아의 입가에 아가씨 웃음이 떠오른다.
“그, 그래요! 흐, 흥. 그의 명령 따위 정말 지지진심으로 듣기 싫지만 저는 어쨌건 그의 전속 시녀니까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는 없어요.”
청문회를 개최하기 전, 김덕성에게서 마코토와 되도록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올리비아는 솔직히 야속했다.
‘정말,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눈치 따위는 더럽게 없는 은하 제일 둔감남! 그런 걸 왜 하필 저한테 부탁하는 건가요!’
다른 여자와 사이좋게 지내라니.
전속 시녀로서 자격 없는 여자를 배제해야 하는 그녀의 임무를 망각하는 발상이다.
라고 방금까지 생각했던 올리비아였다.
하지만 김덕성의 부탁을 들은 사람이 3인방 중에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올리비아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요. 김덕성, 그 남자한테 오직 저만 들은 부탁이에요. 역시 그 바보는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보좌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후후.”
아가씨 웃음을 짓는 올리비아.
야속함 따위는 이미 날아간 지 오래.
“······나는 또 패배했다.”
“주인님, 너무해. 에리링도 마코삐랑 잘 지낼 수 있는데!”
볼을 부풀리는 에리와 얼굴이 굳는 린.
눈앞의 난장판을 보면서 마코토는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에 얼굴을 붉혔다.
‘주군께서 나를 부탁한다고 말씀해주셨다고?’
화악.
마코토의 얼굴이 붉어진다.
역시 주군은 다정하신 분이다.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제가 당신을 인정한 건 아니니까요. 착각하지 마세요. 아시겠나요? 그의 곁은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자리. 자격 없는 어중이떠중이들한테 허락할 수 없어요.”
올리비아가 마코토를 바라보며 말한다.
알 수 없는 박력에 마코토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주인님의 말도 있으니 마코삐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뭐부터 하면 좋을까. 야 젖소. 뭐 좋은 아이디어 없어?”
“······때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니 같이 시험 공부하는 건 어떤가?”
린이 궁색한 답변을 내놓는다.
“고지식한 젖소답게 고리타분한 의견······.”
에리가 린에게 딴지를 걸려던 그때.
“아뇨.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요.”
올리비아가 니시자와의 말을 자른다.
“······이지만 황녀님이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니까 에리링도 찬성할게. 황녀님한테 감사해. 젖소.”
니시자와가 황급히 말을 바꾼다.
올리비아가 팔짱을 낀다.
그녀의 머릿속에 김덕성과 만난지 얼마 안 된 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스터디룸에서 그와 함께 공부했던 추억.
순살 양념 치킨도 같이 먹었었다.
어쩌면 그때처럼 다시 같이 공부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올리비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으으으으······. 아, 아무튼! 이왕이면 그 바보도 같이 공부에 참여시키는 게 좋겠어요! 그 바보는 멍청이 답게 필기 공부 수준이 바닥이니까요!”
“주인님도? 좋아. 좋아! 에리링은 완전 찬성이야!”
니시자와 에리가 방방 뛰면서 웃는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런데 김덕성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나. 보나파르트?”
“그건······.”
시노자키 린의 질문에 올리비아의 말문이 막힌다.
그녀도 지금 김덕성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까 사이좋게 지내달라는 부탁을 듣고는 서운해져서 대충 대화를 주고받다 나와서 청문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겠네요.”
“주인님, 어디 있는 걸까.”
“우선 김덕성부터 찾는 게 도리겠군.”
세 여자가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그때.
“그······. 저기······.”
자리에 앉은 마코토가 손을 든다.
“무슨 일인가요. 전학생?”
올리비아의 질문에 마코토가 소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알고 있어. 주군, 어디 있는지.”
마코토의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힌다.
“······독서부 부실에 간다고 했어. 거기서 어떤 2학년 선배랑 같이 시험공부를 한다고······.”
마코토의 말이 끝난 순간.
드르륵.
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배? 또 라이벌 등장이야? 에리링 너무 피곤해.”
“······동급생도 모자라서 선배까지······. 그를 노리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군.”
“자격 없는 도둑고양이들이 감히······. 전속 시녀인 이 저의 허락도 맡지 않고 꼬리를······!”
니시자와, 린,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마코토가 어색하게 웃었다.
또 다른 연적을 향한 견제가 물밑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독서부실.
책상 위에 교과서와 노트를 펼치고 공부 하고 있던 김덕성이 손가락으로 왼쪽 귓구멍을 긁는다.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누가 내 얘길 하나.
김덕성이 왼쪽 귀에서 손을 떼어내던 그때.
“에엣취!”
마주 앉은 보랏빛 머리 미소녀, 호시노 카스미가 재채기를 한다.
카스미와 김덕성의 눈이 마주친다.
카스미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황급히 노트를 펼쳐 얼굴을 가리며 말한다.
“미, 미안해. 후배 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서. 누가 내 얘길 하나 봐.”
“헛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다시 설명해주십쇼. 선배.”
“응. 알았어. 후배 군.”
드르륵.
카스미가 의자를 옮겨 김덕성 곁에 붙으면서 개념 설명을 시작한다.
1학년 히로인 4인방이 들이닥치기 전, 평화로운 부실 풍경이었다.
독서부는 네 명의 신입 부원을 받았다
“오늘 공부할 분량은 이만큼이야. 후배 군.”
쿵.
책상 위에 프린트와 교과서, 참고서가 산처럼 묵직하게 쌓인다.
내 옆에 달라붙은 카스미 선배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는다.
저 선배는 공부가 그렇게 좋나?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나는 공부가 즐겁다는 사람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성적은 대학교 때도 과탑, 성적 우수 장학금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었다.
A+는커녕 B바라기만 해도 감사할 정도였고, 대부분 C뿌리기 수준.
그런데 이제 와서 필기 공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