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87)
이유는 당연하게도 히로인들과 마사지를 빙자한 스킨십을 통해 서비스신을 연출하기 위해서.
‘누구한테 배운 건가? 벨라?’
짐작이 가지는 않지만, 뭐 좋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피로가 날아가 한결 홀가분해진 몸으로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으로 향한다.
학생회 임시 집무실.
문 앞에서 나는 나가미네 레이지와 다시 마주쳤다.
“또 너로군.”
나가미네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명백히 경계하는 모습.
학생회장의 광신도이자 그녀를 남몰래 사모하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유치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회장 선배와의 약속 때문에 왔습니다. 나가미네 선배. 문 열어주시죠.”
카스미 선배는 벌써 임시 집무실에 도착했다고 메시지가 왔으니, 나만 오면 된다.
“어쩔 수 없지. 좋다. 하지만 내 경고는······.”
“나가미네 선배. 문이나 여시죠.”
경고는 무슨.
보나 마나 아리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뻔한 말이나 지껄이겠지.
“크윽······. 알았다.”
나가미네 레이지가 입술을 깨물며 문을 연다.
탁.
문을 닫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왔습니까? 김덕성 군.”
정면에서 나를 보는 아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후배 군. 왔구나?”
배시시 웃는 카스미 선배의 모습도 보인다.
카스미 선배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앉으십시오.”
아리스가 권한 자리에 앉는다.
“그럼 김덕성 군도 왔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호시노 양. 오늘 마루야마 료스케와 접선해서 얻은 정보를 보고해주세요.”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카스미 선배를 향한다.
“네? 네! 알겠어요. 회장 선배.”
카스미 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말하는 작전 결행 날짜는 연수 첫날 밤. 리그의 전력과 함께 숙소를 덮쳐서 우리 생도들을 모, 몰살시킬 거라고······.”
카스미 선배가 손을 파르르 떤다.
“제, 제가 협력하지 않으면 레, 레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합류한다는 리그의 전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냈습니까?”
“······사도가 올 거라고 했어요.”
카스미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첫날 밤, 숙소 습격에 사도 합류라.
카스미 선배의 말만 들었을 때는 원작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아직은.
메이진 영웅 학원 학원장의 정체가 13사도의 일원인 위험도 S랭크 빌런 ‘닥터 모로모로’니까.
‘원작에서는 지하 비밀 실험실에서 닥터 모로모로와 싸우다가 그만 놈을 놓치고 말지.’
닥터 모로모로는 작중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13사도이자 카스미와 레나를 키메라로 만든 키메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4권 후반부에서 주인공 유지는 올리비아, 린, 니시자와와 함께 놈과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닥터 모로모로는 넷의 합공을 여유롭게 버텨낸다.
하지만 카스미 선배가 식물 형태로 변한 레나와 정신 접촉해서 그녀를 각성시키는 데 성공, 레나의 폭주를 멈추고 그녀를 깨우자 닥터 모로모로는 실험실 자폭 스위치를 누른 뒤 유유히 탈출한다.
‘라노벨에 흔히 나오는, 초반에 등판해서 적이 이만큼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역할을 맡은 빌런이지.’
물론 나는 닥터 모로모로를 원작처럼 놓아줄 생각이 없다.
13사도는 메사이어의 최측근.
숫자를 줄일 수 있을 때 줄이는 게 좋다.
‘카미야 일문으로는 부족해.’
원작과 비슷하게 진행될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그냥 이기는 게 아닌, 압도적 승리를 위해서.
그리고 나는 이미 추가 지원 전력을 누구로 할지 결정해뒀다.
“사도라······.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 같군요.”
아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회장 선배.”
“말하세요. 김덕성 군.”
“이사장님한테 연락해서 리츠코를 은밀히 교토로 파견해달라고 하죠.”
카미야 리츠코.
이사장의 노예로 전락한 카미야 일문의 전 문주.
이미 S랭크 영웅과 맞먹는 학생회장이 있는 상황에서 S랭크 빌런인 그녀의 전력이 더해진다면, 이번에도 손쉽게 날로 먹을 수 있을 거다.
“리츠코 파견이라,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군요. 알겠습니다. 그 건은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리스가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았어.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때.
“후배 군. 회장 선배. 레나는······. 레나는 구할 수 있는 거지? 나, 레나가 아직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
카스미 선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이쯤 돼서 비밀 실험실의 존재도 밝히는 게 좋겠지.
싸움에 들어갔을 때 지상 팀과 지하 팀, 양쪽으로 나눠서 싸우는 편이 효율적이니까 말이다.
“레나가 있는 위치는······. 메이진 학원 지하입니다.”
“저, 정말이야? 후배 군?”
“그걸 어떻게 알았지?”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원작에서 유지는 마루야마 료스케를 제압한 뒤, 그에게서 비밀 실험실의 존재를 듣는다.
하지만 내가 굳이 그런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실은 교류전이 취소당했을 때부터 메이진 학원을 수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에 메이진 학원의 뒷조사를 의뢰했죠. 그 과정에서 저는 메이진 학원 지하에 알 수 없는 거대한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국정원이 있으니까.
“국정원이라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레나가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국정원 조사 결과 사토우 레나의 현재 신분은 메이진 영웅 학원 생도. 하지만 메이진 영웅 학원에 그녀가 재학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일본의 다른 병원에서 그녀의 입원 기록을 찾아볼 수도 없었고요. 그렇다는 건······.”
국정원 핑계를 대면서 원작 정보를 읊으며 말끝을 흐린다.
사실 말도 안 되는 핑계지만 여기는 그런게 통할 정도로 허술한 동네니까 괜찮다.
어떻게 보면 얼기설기 엮은 정보지만, 여기까지만 들려줘도 상냥한 세상 보정을 받은 아리스가 알아서 정답을 도출해줄 테니까.
“······지하에 있다는 그 정체불명의 공간에 유폐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군요.”
이렇게 말이다.
“레나······. 어떡해······. 레나······.”
카스미 선배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김덕성 군의 말이 맞다면······. 연수 전에 메이진 학원의 구조를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겠군요.”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그런 의미로 김덕성 군. 메이진 영웅 학원 사전 답사에 동행해주시겠습니까?”
나랑?
같이 가자고?
“호시노 양의 동행은 적의 의심만 쓸데없이 사는 행위, 그렇다고 비밀을 모르는 다른 학생회 멤버와 갈 수도 없으니, 남는 동행인은 당신뿐입니다. 김덕성 군.”
아리스가 차분하게 말을 덧붙인다.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이게 나에게 이득이냐는 건데.
‘사전 답사라······.’
이제는 살짝 피곤한 교토 관광에서 해방된다는 점은 충분한 메리트.
거기에 애니메이션과 현실은 비슷한 듯 다른 면도 있으니, 눈으로 직접 메이진 학원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마루야마 료스케가 어떤 인간인지도 확인해야 하고.
충분한 이득이다.
결론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동행 허락 감사합니다. 김덕성 군. 그럼 사전 답사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아리스, 둘만의 사전 답사가 결정됐다.
보통 머스마가 아이데이
아리스의 연락이 온 건 회의 이후 이틀이 지난 아침.
[사전 답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집무실로 오십시오. 김덕성 군.]아리스답게 예의 바른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에 찍힌다.
‘오늘은 안 시달려도 되겠군.’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방문을 나선 순간.
“후배 군!”
복도에서 나는 카스미 선배를 마주쳤다.
깜짝이야.
아니 얘가 왜 여기 있어.
“선배? 선배가 왜 여기 있습니까?”
내 질문에 카스미 선배가 손가락을 부딪치며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카스미가 횡설수설한다.
“헤헤헤······. 후배 군. 오늘 중요한 일 나가잖아? 그래서······. 가기 전에 파이팅! 해주고 싶어서! 후배 군이 나올 때까지 새벽부터 계속 기다렸어. 잘했지? 후배 군은 하렘왕을 꿈꾸는 검은 귀축이지만, 내 구원자니까······.”
구원자는 무슨.
아침부터 속이 뒤집히려고 하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잠깐. 후배 군······.”
카스미 선배가 나를 붙잡는다.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내 손에 뭔가 쥐여준다.
“세이메이 신사에서 산 액막이 부적이야······. 벼, 별 거 아니지만······. 미신이지만······. 나는 후배 군이 하는 일이 다 잘 됐으면 좋겠어······. 후배 군. 다치면 안 돼······.”
손을 펴자 빨간 천 봉투로 만들어진 물건이 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던 부적이다.
“괘, 괜히 신경 썼다면 미안해······.”
카스미 선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선물인데.
미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내팽겨칠수도 없는 노릇.
카스미 선배가 준 부적을 주머니에 넣는다.
“부적 잘 받았습니다. 선배.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후, 후배 군? 응. 잘 다녀와! 다치면 안 돼!”
선배의 배웅을 뒤로 한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최상층으로 향한다.
“또 왔군.”
어김없이 시작되는 나가미네 레이지의 유치한 기싸움을 지나쳐 방문을 통과해 아리스를 만난다.
“왔습니까? 김덕성 군.”
후룩.
아리스가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며 나를 맞이한다.
“오늘 계획은 이렇습니다. 메이진 영웅 학원에 사전 답사를 명목으로 잠입. 마루야마 료스케의 동태를 살피고 메이진 영웅 학원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
아리스가 오늘 계획을 브리핑한다.
“메이진 학원의 구조는 제 기프트를 사용해 파악하겠습니다.”
그녀의 기프트는 라이트닝.
이름 그대로 전기를 조작하는 능력이다.
원작에서 아리스는 전자파 조작을 통한 정밀 탐지 능력을 몇 번이고 보여준 적 있다.
대체 어떻게 응용하면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라노벨이 뻔뻔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튼 그걸 사용해 메이진 학원의 구조를 파악하겠다는 의미.
“제가 교정을 둘러보겠다는 핑계로 기프트를 은밀히 사용해 학원 내부 구조를 파악할 동안 당신이 마루야마 료스케와 대화하면서 시간을 끌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달칵.
아리스가 홍차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와 함께 방을 나선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회장님.”
“잘 다녀와요. 회장!”
부회장 미호와 서기 나가미네가 아리스를 배웅한다.
“회장 선배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그날로 너도 끝인 줄 알아라. 알겠나?”
나가미네가 내 귓가에 살벌한 목소리를 속삭인다.
“그럴 일 없으니 신경 끄십쇼.”
“이이익······!”
발끈하는 나가미네.
라노벨로 봤을 때는 흔한 개그용 친위대 조연 캐릭터인데, 직접 접하니 피곤하기 그지없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왜 저래.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사이다가 마시고 싶어지던 그때.
“나가미네. 후배한테 지금 그게 무슨 예의 바르지 못한 짓이지?”
대화를 들은 아리스가 나와 나가미네 사이에 끼어든다.
“회, 회장님······.”
당황하는 나가미네.
“내게 충성하는 건 좋지만, 네 충심은 너무 지나치다. 나가미네. 김덕성 군한테 사과하도록.”
나가미네의 표정이 굳는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가 식은땀을 닦아내며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미안하다. 김덕성 후배.”
진작 그럴 것이지.
“다음부터 그러지 마십쇼.”
“······알겠다.”
상냥한 라노벨 세상이고, 우상인 아리스가 주의까지 줬으니 앞으로는 안 그러겠지.
그는 어차피 애니화 용도로 만들어진 수많은 공기 조연 중에 하나다.
원작의 나가미네는 문화제 사건 이후 주인공을 회장의 짝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그러니 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갑시다. 김덕성 군.”
아리스에게 이끌려 호텔을 나선다.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메이진 학원으로 향한다.
덜컹, 덜컹.
버스 창문 밖으로 교토 시가지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슥, 슥.
시가지를 지나 있는 교외.
슈오우 학원과 맞먹을 정도로 커다란 캠퍼스를 지닌 학원 앞에 버스가 선다.
“도착했습니다.”
아리스와 함께 버스에 내린다.
메이진 영웅 학원.
일본어로 그렇게 적힌 명패가 교문에 박혀 반짝인다.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캠퍼스 건물이 펼쳐진다.
슈오우 영웅 학원이 미래지향적인 매끈한 유선형 디자인에 유리로 외장을 장식해서 반짝이는 건물이 주였다면, 이쪽은 전통적인 명문 학교라는 느낌.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과 똑같이 생겼군.’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모습과 똑같다.
교문 앞에 검은 가쿠란을 입은 실눈의 미소년이 있다.
하얀 블레이저 재킷을 교복으로 택한 슈오우 학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
“이거, 정말 만나서 영광이군요. 슈오우 학원의 회장님.”
마루야마 료스케.
그렇게 적힌 명찰을 단 실눈 남자가 가쿠란 차림의 소년 둘을 대동한 채 웃는다.
료스케의 왼팔에는 한자로 생도회장이라 적힌 파란 왼장이 채워져 있다.
“그리고 회장님의 수행원을 맡은 김덕성 군.”
료스케의 눈빛이 이쪽을 향한다.
놈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봤지만, 실제로 보니 더 재수가 없다.
목소리는 또 왜 저렇게 느끼해?
“어서 오십시오. 메이진 영웅 학원에!”
촥.
료스케가 왼쪽 팔을 뻗으면서 허리를 살짝 숙이며 과장된 목소리로 소리친다.
남자가 저러는 걸 보니 오랜만에 속이 울렁인다.
아니 저런 포즈랑 대사하면 안 쪽팔리나?
이해가 안 되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메이진 회장님.”
아리스가 무표정한 얼굴과 말투로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다.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료스케의 전신을 훑는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죠. 연수 협상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