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91)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십쇼.”
한숨을 쉬며 그를 무시하면서 엑스트라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히익! 검은 귀축이다!”
“저, 저는 맛 없어요!”
“도, 도망쳐!”
혼비백산하며 흩어지는 생도들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쉰다.
아무튼 이제 진짜 방으로 갈 시간이다.
*
아리스가 뻗은 손을 거두면서 입술을 우물댄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아리스가 머리를 부여잡는다.
“후, 후배한테 어떻게 그런 추태를······.”
뒤늦게 수치심이 해일처럼 몰려든다.
취해 있을 때는 어리광을 부렸고, 깨어나서는 정체를 들켰다는 충격에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를 부렸다.
이 사태에 그의 잘못은 없다.
모든 책임과 잘못은 그녀에게 있다.
술을 먹고 취한 것도 본인, 빠져나가려는 그를 붙잡고 같이 잠든 것도 본인이다.
“그런 주제에 후배한테 잘못을 떠넘기고 협박까지 해버렸다니······.”
선배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선배 자격 상실, 입니다.”
거기에 검은 귀축이라는 말까지 내뱉었으니.
김덕성이 그 자리에서 날뛰며 아리스의 비밀을 폭로하더라도 아리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그만큼 어제와 오늘의 자신은 추했으니까.
하지만 김덕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먼저 비밀을 지켜준다고 말해주었고, 그녀의 억지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으니까 진정해라,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라며 그녀를 위로해줬다.
“그한테는······. 빚을 져버렸습니다.”
부채감이 아리스의 마음을 짓누른다.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김덕성이 자신을 위로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진정하고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평소 모습······.”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꼬마는 상냥한 남자란다. 영웅의 자질을 타고난 소년이지.]아리스의 귓가에 언젠가 들었던 요시자키 세이라의 말이 맴돈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대도시 도쿄.
아리스의 비밀과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이사장인 요시자키 세이라였다.
언젠가부터 세이라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얼굴로 김덕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리스는 김덕성에게 살짝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때로는 언니 같고, 때로는 엄마 같은 세이라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아리스는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리스가 고개를 흔든다.
“부끄럽고 추한 감정입니다.”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입술을 깨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사장, 세이라가 왜 그토록 김덕성을 칭찬했는지.
겉으로는 퉁명스러워 보여도 그는 실은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억지 떼쓰기도 받아주지 않았을 터.
“분명 내 본모습을 보고 실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세간 사람들이 동경하는 그녀의 모습은 완벽 초인 학생회장, 세련되고 화려한 아가씨의 외형뿐이라는 사실을 아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본모습을 지금까지 철저히 숨겨왔다.
그때처럼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
그렇기에 본모습을 들켰을 때, 아리스는 분명 그가 실망해서 폭언을 내뱉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투리도,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실망하는 모습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질투는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안을 채운 건 정체불명의 감정.
아리스의 가슴이 뛴다.
“그, 그래도 어,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그런 말을 내뱉을 수가······. 위험합니다. 김덕성······.”
아리스가 고개를 흔든다.
그녀가 커다란 곰인형, 쿠마쨩을 품에 안고는 곰인형 얼굴 부분에 턱과 입을 묻으면서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정말로 포근했습니다.”
그녀가 안겨 잠들었던 그의 품 안은.
어리광부리면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덕분에 정말로 오랜만에 아리스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제가 무, 무슨 말을!”
아리스가 고개를 흔든다.
“이렇게 한눈 팔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못 다한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그녀가 탁자 위에 어질러진 서류를 수습한다.
하지만 무감각한 표정과는 다르게 아리스의 심장은 쉴 새 없이 고동치고 있었다.
혹시 사귀는 거야?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실.
커다란 책상 너머에 앉은 백발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랬단 말이냐? 놀랍구나. 리그의 마수가 메이진 학원에까지 뻗쳐 있었다니······.”
아리스에게 자초지종을 보고받은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메이진 영웅 학원의 갑작스러운 교류전 취소 통보에서 뭔가 구린 냄새를 맡은 세이라였다.
리그가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가정이 실체로 밝혀진 순간, 세이라의 뺨이 분노로 떨렸다.
“이 빌어먹을 종자들이······.”
세이라에게 있어 리그는 파이브 크라운즈의 동료와 사랑하는 남자를 살해하고, 그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긴 불구대천의 원수.
리그의 마수에 당해 허무하게 죽은 네 동료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이라가 눈을 감고 심호흡으로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힌다.
‘냉정해져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교토로 달려가거나 협회 전력을 동원하고 싶지만, 그렇게 티 나게 움직였다가는 교토로 파견된 연수단 생도들의 안위가 위험해진다.
메이진 영웅 학원을 장악했다는 건, 교토 전체가 저들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의미.
협회 교토 지부는 리그의 하수인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상대는 세계를 구원한 대영웅, 검성을 테러로 죽인 조직.
분노에 몸을 맡기고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
[예, 그래서 지원 요청을 드리려고 합니다.]“이 몸도 지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쩔 수 없이 아리스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고 그녀를 보낸 거기도 하고.
[카미야 리츠코를 교토로 은밀하게 보내 달라고 김덕성 군이 요청했습니다.]“그건 어렵지 않지. 즉시 파견해주겠다.”
리츠코가 세이라의 노예가 되었다는 건 아직은 대외적으로 기밀 상태.
리그가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을 테니, 정원 외 전력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 꼬마가 활약했구나. 돌아오면 칭찬이라도 해줘야겠구나.”
세이라가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감돈다.
아리스의 보고를 종합해봤을 때, 이번 연수단의 가장 큰 공로자는 김덕성이었다.
카스미를 설득하고, 그녀를 이중 스파이로 만들고, 적진에서 정보를 빼 오고, 리츠코 파견 제안까지.
모두 김덕성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세이라의 가슴이 콩닥거린다.
‘역시 그를 닮았어.’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그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계속해서 검성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파이브 크라운즈의 리더였던 검성 역시 서로 안 맞는 동료들 사이를 중재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모두를 구해냈다.
마치 지금의 김덕성처럼.
세이라가 고개를 흔들어 검성의 그림자를 털어내던 그때.
[공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이사장님 그······. 혹시 주변에 다른 사람 있습니까?]세이라의 귓가에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이라가 그녀에게 되묻는다.
“아니, 없느니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입학 첫날부터 지금까지.
가족처럼 그녀를 돌봐 왔던 세이라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뭔가 사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사실을.
[으으으으······.]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앓는 소리.
세이라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언니야. 내······. 김덕서이한테 내 정체를 들켜버렸다······.]곧이어 터져 나오는 칸사이 사투리.
세이라의 붉은 눈동자가 커진다.
“꼬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그게······.]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아리스의 말을 듣는 세이라.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흐, 흐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캇파도 강에 빠져 죽는다더니, 천하의 아리스가 취해서 꼬마한테 스스로 비밀을 공개해버리다니! 거기다가 뭐? 같이 동침까지?”
[노, 놀리지 마라······. 부끄럽데이······.]쑥쓰러운 아리스의 목소리.
“우리 아-쨩이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입학 전, 예비 소집일 날에도 이렇게 막 상경한 시골 소녀 모습이었지. 후후. 그때가 그립구나.”
세이라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짓는다.
상경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리스의 아가씨 연기를 옆에서 도와주고, 그녀의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을 준 장본인이 세이라였던만큼, 지금 아리스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반가우면서도 귀여웠다.
[그, 그래도 금마가 비밀은 지켜준다고 캤는데······. 진짜 괜찮겠제? 믿어도 되는 거겠제? 언니야. 무, 물론 실수는 내가 했지만서도······. 그래도······.]아리스가 횡설수설한다.
“꼬마라면, 아니 그라면 믿을 수 있으니 걱정 말거라. 아리스. 왜냐하면······.”
세이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 꼬마는 상냥하니까 말이다.”
[어, 어엉······.]아리스가 말끝을 흐린다.
상냥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냉정한 아리스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세이라가 웃는다.
“그나저나, 우리 아-쨩도 꼬마의 상냥함에 반해버린 건 아니겠지? 꼬마를 노리는 다른 후배들이 아-쨩을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르니라.”
[그, 그런 건 절대 아니데이! 기, 김덕서이는 그, 그냥 내 후배고······. 비밀 지켜준 거는 고맙게 생각하지만서도······. 아무튼 아니데이!]펄쩍 뛰며 부정하는 아리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아리스 본인은 워낙 남자 경험이 없어서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세이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김덕성에게 후배 이상의 호감을 품고 있다.
왠지 모르게 야속하다.
1학년 소녀들이 그를 좋아하는 건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 같은 아리스가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확신이 든 순간.
세이라의 마음속에 질투의 불길이 치솟았다.
‘무, 무슨······.’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질투에 세이라가 당황한다.
그녀가 뺨을 때린다.
‘도, 동생 같은 아이한테 질투라니. 이 몸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벽한 아가씨 연기 때문에 남자 한 번 만나본 적 없는 아리스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응원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질투라니?
추한 일이다.
‘이 몸은 백색 여제,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좌를 차지하는 영웅이다. 꼬, 꼬마한테 장난 수준을 벗어나 지, 진심이 되는 일 따위, 결코 없을 것이다.’
들끓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던 그때.
세이라의 귓가에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니야? 무슨 일 있나? 혹시 주변에 누구 있는 거 아니제?]아리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솟구치는 질투.
제어할 수 없는 감정에 세이라는 입술을 깨물면서 천천히 말한다.
“아, 아니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럼 이 몸은 이만 할 일이 있어서 끊으마. 꼬마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알겠데이. 도쿄 가서 다시 보재이!]아리스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통화를 끝낸다.
세이라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아, 아니다. 결코······. 꼬마와 이 몸의 나이 차이가 대체 얼마인데······. 내가 꼬마에게 진심이 될 리가······. 아, 아무리 그를 닮았다지만······.’
짝.
세이라가 양 뺨을 때린다.
“후우.”
그래.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적진 한복판, 교토에 있는 연수단을 지원해야만 한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소리친다.
“리츠코. 들어오너라.”
끼익.
이사장실 문이 열리고 민트 머리에 안대를 낀 양복 미녀가 들어온다.
“또 무슨 일입니꺼?”
미녀, 리츠코가 입에서 칸사이 사투리를 내뱉는다.
“사투리는 이 몸이 알아듣기 어렵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표준어를 쓰거라. 리츠코.”
세이라의 말에 리츠코가 입술을 깨문다.
‘이 문디 같은 할마시가······.’
속으로 불만을 삼키는 리츠코.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알겠습니다. 이, 이사장님.”
“듣기 좋구나. 리츠코. 기뻐하거라. 드디어 네가 출장갈 일이 생겼다.”
세이라의 미소르 본 리츠코의 손이 떨린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자신에게 부과되는 업무량이 많아지는 걸 몇 번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출장이라니?
“어데, 아니 어디로 말씀입니까?”
“교토다. 감시역으로 사오리도 동행할 테니 허튼수작은 부리지 말도록. 자세한 업무 내용은 도착하면 사오리가 알려줄 것이다.”
“큭······. 악덕 상사 같으니······.”
리츠코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교토 출장이라니.
거기에다 신세대 나노 머신 폭탄 개발자인 사오리까지 동행?
이건 사골까지 우려먹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러다가는 분명 과로로 죽게 될 거다.
“불만 있나? 리츠코. 방금 이 몸의 귓가에 뭔가 이상한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이 몸이 잘못 들은 거겠지?”
“아, 아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아무 불만 없습니다! 교토 출장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사장님. 하하하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퇴장하는 리츠코.
탁.
이사장실 문이 닫힌다.
“자, 그럼 사오리한테 전화를 걸어 볼까.”
세이라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
교토역.
하루에도 수만 명이 넘는 승객이 타고 내리는 대형 기차역.
애니메이션에도 자주 나온 교토역 옥상 정원 위, 벤치에 나는 아리스와 함께 앉아 있다.
도쿄에서 교토까지 출장오는 리츠코를 만나기 위해서다.
안전을 위해 난간에 둘러진 유리벽 너머로 교토 타워가 보인다.
주변을 둘러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애정 행각을 하는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손을 잡은 커플, 무릎베개를 하는 커플, 도시락을 먹여주는 커플, 키스를 하는 커플까지.
여기가 데이트 핫 플레이스였나?
“이 장소는 너무······. 민망합니다······.”
옆에 앉은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끄러운 모양인지 귓불까지 붉어진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너무 가깝게 앉지 않았습니까? 김덕성 군. 이러다가 커플이라고 혹시 오해라도 받으면······.”
아리스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던 그때.
“뭐야, 저기도 커플이야?”
“은색 머리 여자애 엄청 미소녀다! 남자한테 과분할 정도야.”
“속삭이는 거 좀 봐. 사랑 고백 하나 봐.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이라니. 완전 뜨거운데?”
“검은 머리 남자 쟤는 전생에 나라 구한 거 아니야?”
어김없이 들려오는 엑스트라들의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