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93)
“알았으니까 손 치워라.”
“그래. 김. 파이팅이야.”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보이는 유지.
끝까지 이상한 소리를 주워섬기는 주인공 놈을 뒤로 한 채, 난장판이 된 컨퍼런스룸을 빠져나온다.
작전 회의는 아무튼 끝났다.
이게 제대로 된 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남은 건, 메이진 영웅 학원 놈들과의 결전뿐이다.
날로 먹는 게 최고
작전 회의 이후 시간이 흘러 마침내 견학 당일이 다가왔다.
전세 버스를 타고 메이진 학원 교문 앞에 도착한 연수단을 맞이한 건 메이진 학생회장 마루야마 료스케.
“어서 오십시오. 우리 메이진 영웅 학원에!”
여전히 역겨운 말투와 제스처로 연수단을 맞이한 그를 따라 견학이 시작되었다.
견학 내용 자체는 별것 없었다.
메이진 영웅 학원의 시설을 관람하고, 학원 커리큘럼을 체험해보는 게 전부인 수준.
“적합도 랭크와 영웅 랭크는 다른 개념입니다. 적합도 랭크가 말 그대로 초상병기 적합도만을 측정한 데이터라면, 영웅 랭크는 적합도를 포함해서 마력 제어, 전투력, 실적, 마력량, 전투 센스 등등 한 명의 영웅이 가진 역량을 종합한 데이터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적합도가 C랭크지만 영웅 랭크가 B랭크인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 랭크 중에서도 S랭크와 EX랭크는 특별한데. S랭크는 진명해방, EX랭크는 심상전개를 각성해야만 진입 자격이 주어집니다.”
“진명해방은 초상병기의 진명을 해방해서 사용자와 초상병기를 일체화시켜 일시적으로 모든 힘을 대폭 증폭시키는 기술입니다. 진명해방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꾸준한 단련을 통한 초상병기와 사용자 본인의 정신적, 육체적 일체화와 극도의 집중을 통한 일체화의 영역 도달이 필수입니다.”
“일체화의 영역을 통해 진명해방에 도달한 영웅은 극소수로, 재능과 노력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특히 이론 수업 참관은 지루해 죽을 뻔했다.
안 그래도 공부에는 별로 자신이 없는데, 교관의 말투가 전형적인 잠 오는 선생 말투라 들으면서도 꾸벅꾸벅 졸 뻔했다.
지옥의 이론 수업 참관이 끝난 후, 대련 수업 참관에 이어 학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야 오늘의 일과가 끝났다.
저녁부터 밤까지는 자유시간.
연수단 생도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메이진 학원 생도들과 교류를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거나, 학원 부근으로 놀러 나갈 때.
나는 내 몫으로 주어진 별관 숙소 방에 앉아 있었다.
내게 주어진 방은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주택에 다다미가 펼쳐진 방.
‘이제 곧이군.’
창문 밖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카스미 선배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해가 떨어지고 연수단의 모든 생도가 숙소로 복귀해서 모두가 잠들기 직전이 놈들의 작전 타임이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린다.
“···후배 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카스미 선배.
그녀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무슨 일입니까?”
“레나를······. 레나를 구해주는 거지? 그때 부실에서 후배 군이 약속해줬던 것처럼······.”
덥석.
카스미 선배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내 손을 잡는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뚝, 뚝.
카스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약속한 건 지키니까 쓸데없이 걱정하지 마십쇼.”
카스미 선배를 온전히 써먹기 위해서는 레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
게다가 레나는 이 작품에서 몇 없는 치유의 기프트를 가진 능력자.
앞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구원은 필수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없겠지만.’
아리스에다 리츠코.
S랭크 전력 둘이 있으니 이번에도 날로 먹을 수 있을 거다.
날로 먹는 게 최고다.
“거, 우는 것도 좀 그만하시고.”
우는 건 왜 또 울어.
울고 싶은 건 5700자 쪽지 좀 보냈다고 갑자기 미친 세상에 떨어진 나다.
“흑, 히끅! 아, 아라써······. 후배 군······.”
카스미가 소매로 눈물을 닦아낸다.
울음을 그친 그녀가 고개를 든다.
빨갛게 퉁퉁 부은 눈두덩이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떨린다.
“알았어. 후배 군. 나······. 이제 안 울어. 나는 후배 군만 믿을게. 후배 군은 나쁜 남자에 검은 귀축이지만, 그래도 후배 군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니까. 나는 후배 군을 믿으니까. 나는 후배 군의 착실한 스파이니까······.”
카스미 선배가 붙잡은 손을 놓아주질 않는다.
한숨을 쉬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빨간 노을로 물든 하늘이 보인다.
이제 곧 해가 지고 작전이 시작된다.
*
교토의 밤이 찾아왔다.
먹구름이 밤하늘을 가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가쿠란을 입은 실눈의 남자가 메이진 학원 본관 옥상에 서 있다.
그의 뒤로 가쿠란을 입은 남자들은 물론, 각양각색의 사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빌런들, 리그원들이 속속들이 집결한다.
넓은 옥상이 꽉 채워졌을 때.
실눈 미소년, 료스케의 눈이 번쩍 떠진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감히 메이진에 침입한 벌레들을 찍어 죽이기에는 적당한 때로군요! 크흐흐흐흐흐흐”
음침하게 웃는 료스케.
그의 실눈에 슈오우 학원 연수단이 묵는 별관이 들어온다.
“학원장. 아니 닥터 모로모로 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척.
료스케가 검은 반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아직 불이 다 꺼지지 않은 별관을 가리킨다.
“감히 리그의 땅인 교토를 밟은 슈오우의 쓰레기들······. 저들 전원을 처리하라고! 거기서도 특히 검성의 아들 쿠로사와 유지, 실버 퀸 사이온지 아리스, 그리고 검은 귀축 김덕성은 반드시 제거하라고 말입니다!”
촥.
료스케가 과장된 몸짓으로 양팔을 하늘을 향해 뻗친다.
스르릉
그가 허리춤의 일본도 형태 초상병기, 코기츠네마루를 뽑는다.
어둠 속에서 일본도의 칼날이 빛난다.
료스케가 일본도의 칼날을 핥는다.
우웅.
가쿠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한다.
[준비 끝났어요.]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호시노 카스미.
슈오우 학원에 잠입한 리그의 스파이다.
‘멍청한 여자 같으니.’
료스케의 입술이 뒤틀린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슈오우 학원 생도 전체의 몰살.
거기에는 호시노 카스미 또한 포함이다.
리그는 처음부터 카스미를 토사구팽할 생각이었던 거다.
물론 카스미의 메시지는 료스케를 방심시키기 위해 보낸 거짓 메시지지만, 료스케가 그걸 알 길은 없었다.
료스케가 코기츠네마루에 마력을 주입한다.
번쩍.
섬광이 터지며 전신 장갑이 그의 몸을 뒤덮는다.
“자, 다들 준비하세요.”
푸슉.
그의 등 뒤에서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부스터가 나온다.
료스케가 형광빛으로 반짝이는 푸른 약물이 담긴 주사기를 들어 올린다.
“이 약물이야말로 신기술의 총화! 닥터 모로모로 님의 걸작! 신약의 프로토타입인 증폭 비약 mk2!! 크흐흐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허리를 젖히고 음침하게 웃는 료스케.
푹.
그가 주사기를 팔뚝에 꽂는다.
“하읏, 하아. 하아아아아아아······!!”
료스케의 동공이 풀린다.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료스케의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두근, 두근.
그의 마력로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약기운이 뒤섞여 증폭된 마력이 료스케의 온몸을 휘감는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오르가슴마저 초월하는 이 압도적 쾌감! 만족스럽습니다! 자 제군들!!”
척.
약 기운에 얼굴에 핏발이 서고 눈동자에 실핏줄이 불거진 료스케가 웃으면서 팔을 펼친다.
“파티입니다! 슈오우 학원의 벌레들을 모조리 남김없이 구축하겠습니다! 전군 진격!!”
광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료스케의 등 뒤에 있는 부스터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순식간에 별관 건물 근처 상공에 다다른 료스케.
그의 뒤로 리그의 병력이 떼지어 날아 도착해 허공에 도열한다.
“우선 이 쓰레기 같은 건물부터 처리해야겠군요!!”
그가 일본도에 마력을 불어넣은 순간.
“김의 말이 맞았어.”
그의 귓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죠? 감히 이 마루야마 료스케의 대업을 방해하는······.”
“마루야마 료스케, 당신이 악의 하수인일 줄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료스케의 말허리를 자른다.
료스케가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지닌 미소년.
쿠로사와 유지가 마찬가지로 비행 모드 상태로 검은 마력이 덧씌워진 일본도를 든 채 허공에 서 있다.
평소의 상냥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놀랄 정도로 싸늘한 눈동자로 료스케를 바라보는 쿠로사와 유지.
그의 눈동자에는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다.
“호오? 검성의 아들.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가요?”
“아니.”
유지가 고개를 젓는다.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 너희들이야.”
유지의 말이 끝난 순간.
콰광!
폭음과 함께 별관 지붕이 무너지며 전투 모드로 변한 슈오우 학원 연수단 생도들이 비행 모드로 솟아오른다.
료스케가 웃는다.
“겨우 이것뿐······.”
“김의 안배는 여기서 끝이 아닌걸.”
다시 말허리를 자르는 쿠로사와 유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 외부에서 완전 무장한 병력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김덕성이 마코토를 통해 호출한 카미야 일문의 암살자들이 별관 지붕이 무너지는 신호를 보고 합류한 것이다.
예상 외 전력의 합류에 료스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우세라고 생각했던 전력이 한순간에 열세로 뒤집힌 상황.
“무, 무슨!?”
척.
당황하는 료스케를 향해 쿠로사와 유지가 일본도를 겨눈다.
“악의 하수인. 마루야마 료스케. 지금부터 내가 너를 처단하겠어.”
“아···?? 아아아아아아아······!!! 네, 네노오오오오오옴!!!!!!”
평정을 잃은 료스케의 실눈에서 실핏줄이 터진다.
료스케의 일본도가 마구잡이로 휘둘러진다.
일순간 수십 번 휘둘러진 참격.
약물이 아니었으면 보여주지 못할 기예.평범한 영웅이었으면 전부 쳐내지 못할 압도적인 빠르기의 공격이 유지를 덮친 순간.
“느려.”
유지의 손에 들린 일본도가 빛살처럼 허공을 향해 쏘아진다.
허공에 검은 실선이 그물망처럼 어지럽게 그려진다.
오직 한 번의 휘두름.
일합으로 수십 번의 참격을 전부 쳐내는 유지의 모습에 료스케의 눈동자가 커진다.
유지의 검은 눈동자가 강당 쪽을 향한다.
‘김, 잘하고 있겠지?’
*
모든 게 계획대로다.
료스케가 별관을 덮친 것도, 유지를 필두로 한 지상팀이 놈들의 발목을 묶은 것도.
지상팀이 료스케의 시선을 끌고 발목을 붙잡은 덕분에, 나를 포함한 지하팀은 아무 방해 없이 빠르게 강당까지 올 수 있었다.
물론 놈들도 아예 멍청한 건 아니어서 강당에 경계 병력을 배치해두긴 했지만, 이 정도 허술한 보안으로는 S랭크 전력 둘을 막을 수 없었다.
털썩.
강당을 방비하던 리그원들이 허무하게 쓰러진다.
“겨우 이 정도갖고 엄살 부린 기가.”
[어허. 리츠코쨩. 허세 부리지 말라고 했지?]“시끄럽데이!”
별관 지하에 임시 통제실을 세워놓고 원격으로 오퍼레이터 업무를 보는 사오리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럼 바닥 부수겠습니다.”
아리스의 차가운 말과 함께 그녀의 손에 쥐여진 창날에서 은빛 스파크가 튄다.
파츠츠츠츠츠츠츠!! 번쩍!
은빛 섬광이 강당을 가득 메운 순간.
강당 바닥 전체가 무너지며 숨겨진 지하 공간으로 떨어진다.
[다들 비행 모드 펼치고, 지하 실험실 지도 네비게이션 띄워줄 테니까 직진. 직진!]사오리의 음성과 함께 눈앞에 홀로그램 미니맵이 펼쳐진다.
[음후후후후후. 유능한 오퍼레이터 사오리쨩이 있는 이상 이건 무조건 우리가 이기는 게임이라고!]사오리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착.
비행 모드를 펼쳐 바닥에 착지한다.
탁, 타닥. 번쩍.
인기척을 감지한 모양인지 일제히 켜지는 조명들.
[경고! 경고!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빨간 사이렌이 울리며 스피커에서 경고 방송이 흘러나온다.
놀랍지 않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
우우우웅!
호응하듯 손에 쥔 듀랜달의 칼날이 떨린다.
이제 드디어 교토에 온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시간이다.
긴장 따위는 되지 않는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겠군.’
왜냐하면 이번에도 나는 날로 먹을 생각이니까.
원래 머리가 나쁘는 건 몸이 고생하는 법.
나는 결코 몸을 고생시킬 생각이 없다.
싸우는 건 S랭크 둘이서 다 하라지.
한 번 가지고 되겠냐?(삽화 有)
비밀 실험실 내부 풍경은 애니메이션과 비슷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새하얀 벽, 금속 바닥, 차가울 정도로 하얀 조명.
[최대 경보 발령.] [실험용 이계종의 격리를 해제합니다.]애니메이션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경고 방송.
[크르르르르르!!] [캬오오오오오오오!!]곧이어 들려오는 굉음.
원작에서 지하 실험실로 진입한 주인공 파티는 이계종을 상대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마력을 허비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지친 마당에 S랭크 빌런 닥터 모로모로를 상대해야 했으니 승리는커녕 비기는 것조차 버거웠을 게 당연하다.
웹소설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하지만 라노벨에서는 당연하기 짝이 없는 고구마 전개.
하지만 호구인 주인공 놈이라면 모를까, 이기적인 사이다패스인 나는 결코 눈앞의 고구마를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전방 이계종 4기 출현! 리츠코쨩! 밥값해야지!]오퍼레이터 사오리의 신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사오리의 지시를 받은 리츠코가 미간을 좁힌다.
“하이고. 내가 우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얼라 명령을 받는 신세가 되어버렸을까······.”
[잔말 말고 돌격☆]리츠코가 한숨을 내쉬며 단도를 쥔 채 기프트를 사용한다.
분신 능력으로 순식간에 네 명으로 불어난 리츠코가 벽을 달린다.
타타타타탁!
“카미야 류 살법──!!”
부웅.
우렁찬 스킬명 외침과 함께 민트색 섬광이 전방을 뒤덮는다.
[키에에에에엑!] [키익!]쿠웅.
네 이계종의 거체가 동시에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진다.
“후. 이 정도야 마 가뿐한기라.”
츠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