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99)
카스미 선배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린다.
“후배 군······. 나 감동 받았어. 후배 군한테 감사 인사를 들을 줄은 몰랐어. 후배 군은 상냥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나쁜 남자니까 틀림없이 모른 척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후배 군이 감사 인사를 해줘서 나는······.”
카스미 선배가 눈물을 흘린다.
아니 근데 말이 왜 저래?
감사 인사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니?
누가 보면 내가 쓰레기처럼 보이잖아?
내가 이기적인 소인배 사이다패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 말종은 아니다.
“카스미. 여기 손수건.”
레나가 카스미 선배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그녀가 레나에게 받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나를 끌어안는다.
“정말 감동이야. 후배 군. 역시 나는 후배 군이 없으면 안 돼. 후배 군한테 몸도 마음도 전부 줘버렸는걸? 후배 군의 가장 착실한 스파이는 나라는 걸 기억해줘. 후배 군. 후배 군······.”
“으으으으으으!! 아, 안 돼요! 접촉 금지예요! 선배! 전속 시녀의 자격으로 금칙 사항이라고요! 떠, 떨어지시라구요!! 에잇!”
올리비아가 나와 카스미를 다시 떨어뜨려놓는다.
잘했어. 올리비아.
역시 우리 츤데레다.
“쳇. 보나파르트 양은 눈치가 빠르구나. 나는 눈치가 빠른 후배 양은 별로야.”
“흥. 저도 시도 때도 없이 육탄 돌격하는 선배는 별로예요! 그런 사람은 시노자키 양 한명으로도 충분하다고요!”
올리비아와 카스미 선배가 다시 신경전을 시작하려던 그때.
덜커덕.
문이 열린다.
“김덕성! 네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주인님. 주인님 깨어났다는 소식, 에리링이 들었어! 주인님은 에리링 보고 싶었어? 에리링은 주인님이 무지무지 보고 싶었는데!”
“주군, 일어났구나.”
열린 문으로 시노자키 린과 니시자와 에리, 카미야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처럼 커다란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 늠름한 척 나를 힐끗 바라보는 린.
“주인니이이임!!”
그리고 가장 먼저 이쪽으로 달려오는 니시자와.
“주군. 몸은 좀 괜찮아?”
소심하게 말을 건네는 마코토까지.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해지는 인원들이 전부 모이고야 말았다.
아, 얘네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와장창할 미래가 떠올라서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시끄러우니까 다들 나가요!! 그는 지금 저,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의사가 말했단 말이에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내 머리 아픈 건 또 어떻게 알고.
역시 이 멤버 중에 올리비아가 제일 선녀가 맞다.
“보나파르트. 그렇다면 너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맞아. 황녀님. 새치기는 반칙이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주군 곁에 있을래.”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린, 니시자와, 마코토가 한 목소리로 반발한다.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왜냐하면 저는······. 그의 전속 시녀니까요! 당연히 그를 곁에서 간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요. 아시겠나요?”
올리비아가 의기양양한 아가씨 웃음을 흘린다.
한숨이 나온다.
거기서 전속 시녀가 왜 나오냐, 또.
어이가 없네.
“그럼 나도 선배로서 후배 군을 간호할 의무가 있는걸. 그러니까 나도 남을래.”
“궤변이군, 보나파르트. 그렇다면 나도 미래의 아내 자격으로 김덕성의 곁에 있겠다!”
“나는 주군의 검이니까, 주군의 곁을 지킬 거야.”
“주인님의 곁에는 당연히 에리링이 있어야 해. 왜냐하면 주인님은 에리링의 주인님인걸!”
올리비아의 말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네 사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내가 앓느니 죽지.
“힘내요. 김덕성 님.”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나가 손을 잡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레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총체적 난국이다.
아무튼, 중간에 약간 삐걱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교토에 이제 볼일은 없다.
다시 도쿄의 슈오우 학원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학원으로 돌아가면······. 단련도 좀 하고 유사시에 대비해서 애들을 한군데 붙들어놓을 수단을 만들어야겠어.’
원작의 비틀림은 각오했지만, 13사도 세 명 등판은 좀 선 넘은 수준.
4권 시점에서 이 정도인데, 앞으로 더 강한 적이 안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웹소설 세상이라면 기연 독식으로 혼자서 사이다를 뻥뻥 터뜨리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혼자 다 해 먹는 게 불가능한 엿 같은 라노벨 세상.
나 혼자로는 안 된다.
타인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원에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원작 인물을 묶어둘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동원령을 때리면 긴급 집합해서 나 대신 몸빵을 설 게 아닌가?
이번에야말로 진짜 날로 먹어야 한다.
‘부활동이라던가.’
역시 부활동이 좋겠어.
이사장에게 연락해서 임시 부활동인 독서부를 정식 부활동으로 승급해달라고 하고, 거기에 유지랑 이시하라도 강제로 가입시켜야겠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
다 같이 죽자고.
이 이상 경쟁자가 늘어나는 건 곤란
슈오우 영웅 학원.
이사장실.
썰렁할 정도로 넓은 집무실 내부, 백발적안의 미소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차를 후루룩 마시고 있다.
촤르륵.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친 앳된 외양의 미소녀, 요시자키 세이라 앞에는 학생회장 사이온지 아리스가 서 있다.
“교토 연수단 관련 임무는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구나. 호시노 양도 사토우 양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지?”
세이라가 붉은 눈동자로 아리스를 응시한다.
“예, 다만 협회 감옥에서 죽은 닥터 모로모로의 존재가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결국 리그의 의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습니다. 모든 게 안개 속······.”
아리스가 말끝을 흐린다.
그녀 말대로 며칠 전, 협회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닥터 모로모로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죽음이지만, 협회에서는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 사실이 아리스는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아리스의 말을 들은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그건 리그의 수장, 마스터······. 그놈의 짓이 틀림없다.”
세이라의 입을 가린 부채가 파르르 떨린다.
마스터.
이명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리그의 수장이자 수수께끼의 존재.
10년 전, 파이브 크라운즈 네 명을 죽이고, 자신의 제자를 부추겨 배신하게 만든 불구대천의 원수.
그날 이후, 세이라는 줄곧 그를 추적해왔지만, 그녀가 알아낸 정보는 기껏해야 마스터, 세 글자밖에 없었다.
마스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름이 뭔지, 어떤 이명으로 불리는 건지,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놈은 브로큰 월드를 노리고 있어.’
브로큰 월드.
슈오우 영웅 학원이 세워진 인공섬 지하에 잠든 초거대 유적.
리그가, 마스터가 노리는 목표는 브로큰 월드 최심부에 있는 지맥의 원천이 틀림없다.
대재해 이후 이 세상에 나타난 마력 지맥.
전 세계 대지 밑을 거미줄처럼 뻗어 관통하고 있는 도도하고 장대한 마력 흐름의 근원지, 지맥의 원천이 품고 있는 힘은 측정이 불가능한 규모이다.
가히 세상을 멸망시킬 만한 잠재력이 잠든 곳.
그 어마어마한 힘이 악당의 손에 넘어가서 악용된다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러니 리그를 막아야 한다.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세이라를 보는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토사구팽이라. 앞으로 리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요.”
“우선 학원의 보안을 한층 강화하고 이치로 군한테도 협력을 요청해야겠구나.”
“알겠습니다.”
세이라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공적인 대화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아리스.”
“네, 이사장님.”
“어허. 아-쨩.”
세이라의 말에 아리스가 움찔한다.
딱.
세이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레이스 부채가 접히면서 염동력으로 두둥실 떠올라 아리스의 머리를 살짝 때린다.
“사적으로 대화할 때는 언니라고 불러야지.”
“······세이라······. 언니······.”
아리스가 더듬더듬 붉어진 얼굴로 말한다.
세이라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그래. 아-쨩. 교토에서 돌아온 이후 우리 꼬마랑은 좀 어떠냐? 잘 되어가고 있느냐?”
세이라의 질문에 아리스가 당황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김덕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술에 취해 그에게 주정을 부린 일도, 그의 품에 안겨 잤던 날도 떠오른다.
따뜻했던 그의 품속······.
감촉을 떠올리던 아리스가 고개를 젓는다.
‘이, 이 무슨 망측한······.’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 그날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아리스가 손을 내젓는다.
“그, 그기······. 내랑 가랑은 그, 그런 사이가 아니데이······. 언니야도 참. 착각하면 안된다카이!”
“후후. 그러냐?”
“그래! 내랑 가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그래 하기로 했으니까!”
아리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칸사이 사투리를 내뱉는다.
그녀가 눈을 감는다.
세이라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세이라가 손을 흔들자, 아리스 옆에 떠 있던 레이스 부채가 날아와 그녀의 손에 쥐어진다.
세이라가 다시 부채를 펼친다.
“아-쨩. 너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해도 좋은 것이냐?”
그녀의 말을 들은 아리스가 눈을 뜬다.
“그, 그거는······.”
시골 소녀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상관없다는 듯 평범하게 자신을 대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면, 그날 했던 이야기들까지 전부 없어지는 걸까?
아리스의 뺨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래야제······.”
아리스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진다.
“내는······. 아니 저는 슈오우 학원의 학생회장. 실버 퀸. 사이온지 아리스니까요.”
아리스의 말투가 사투리에서 표준어로 돌아온다.
시골 소녀의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자신은 언제까지고 완벽 초인 아가씨로 남아야 한다.
그러니 아쉽지만, 그날 일은 없던 일로 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자꾸 쿡쿡 찔리는 건 왜일까?
아리스가 입술을 깨물면서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그렇구나.”
세이라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답한다.
세이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딸이자 동생 같은 아리스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마냥 흐뭇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리스가 아직 연심을 자각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이 이상 경쟁자가 늘어나는 건 곤란······.
거기까지 생각한 세이라가 입술을 깨문다.
‘따, 딸 같은 아이를 상대로 그런 어린 아이나 할 법한 생각을 하다니······.’
세이라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설마 이 몸보다 한참 어린 꼬마를 상대로 진짜 진심이라도 된 건······.’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다.
꼬마는 그저 꼬마일 뿐.
그래야만 한다.
세이라가 안도감을 억누르면서 말한다.
“그래. 앞으로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건 이 언니한테 상담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언니.”
아리스가 옅게 웃으며 답한다.
교토에서 연수단이 귀환한 직후 있던 일이었다.
*
교토 연수에서 귀환한 다음 날.
카스미 선배는 부원으로 등록된 생도 전원을 부실로 불러들였다.
뒤풀이 파티라는 명목으로.
나 역시 그녀의 호출을 받고 부실로 가는 중이었다.
물론 카스미 선배의 의도는 이미 간파한 상황이다.
‘부른 이유야 뻔하지.’
독서부 해산을 선언하려는 거겠지.
원작 4권 마지막이 구원받은 카스미 선배가 주인공 유지에게 ‘이제 후배 군이 있으니까 독서부는 필요 없어. 해산이야.’라고 말하며 부활동을 끝내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나름 좋은 작화로 연출된, 팬덤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으로 꼽히기도 한 장면이다.
트리 위키에서도 ‘구원받아 혼자가 아니게 된 카스미가 허울 뿐인 부활동을 정리하고 주인공에게 진심이 되는 4권의 역대급 감동적인 마무리’라고 미화 가득한 문장으로 적혀 있을 정도.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독서부 해체는 안 된다.
부활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서.
‘이제 나를 위해 살겠어.’
고구마는 치우고, 탄산 가득한 사이다 길만 걷기 위해서는 부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파트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사람이 좀 베풀 줄을 알아야지.]흑태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시끄러워. 원래 모든 사람은 다 이기적이야.’
안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성인군자다.
그래서 성인군자가 드문 거고.
[하긴, 파트너는 말만 매일 독식한다 나만을 위해 살겠다 하고 행동으로는 은근히 남 챙겨주고 그러니까.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츤데레, 그런 거 맞지?]츤데레?
이 인간이 미쳤나.
누가 츤데레래?
‘츤데레는 네 동생이 츤데레고.’
츤데레 유행이 언제적 얘긴데.
[그건 부정할 수 없네. 확실히 사랑스러운 내 동생 올리비아가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 어이 잠깐. 파트너. 치사하게 그런 식으로 말 돌리기냐?]‘이제 곧 도착하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입 닫아. 네 동생 보고 싶으면.’
[쳇······.]흑태자가 혀를 차며 입을 닫는다.
사내 자식이 귀여운 척을 하니 속이 울렁거린다.
다행히 그 이후 흑태자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별관 내부에 들어선 나는 부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부실 문을 열자 나를 맞이한 건.
“후배 군. 왔구나. 후배 군이 제일 늦었어.”
언제나 앉아 있던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카스미 선배.
“주군, 왔어?”
그 옆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 마코토.
“주인님이다! 주인님! 에리링은 오늘도 주인님이 무척 보고 싶었어! 에리링 소원 들어주기 안 잊었지? 주인님?”
여전히 에리링 호칭을 잃지 못하고 까부는 니시자와.
“어서 와라. 김덕성. 나는 한눈팔지 않고 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시노자키 린, 그리고.
“흐, 흥. 지각이라니. 정말 당신이라는 남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매너라고는 하나도 없는 꽝인 남자로군요!”
팔짱을 끼며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올리비아다.
사각형 테이블을 놓고 창가 쪽 끄트머리에 앉은 카스미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