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0화(1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0화
동기(5)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은 정말 별것 없었다.
밤새 책을 읽고 새벽에 일어나 수련실에서 한두 시간 보내다가, 8시에 맞춰서 출근한다.
출근하고서는 어김없이 남화연에게 대본으로 사용할 부분을 전달받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 대본을 작성할 뿐.
이렇게 삼 주가량 보낸 것 같다.
‘이제 슬슬 외부 활동도 나가야 하는데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숨겨진 기연이나 히든피스를 수집한다든지. 나중에 등장할 악당들을 미리 처리하고 싶지만.
그게 쉬워야 말이지.
당장 내 앞가림도 못 하는 녀석이, 무슨 기연을 얻어서 적들을 물리친단 말인가.
애당초 나부터가 엑스트라 악역이다.
그런 일은 주인공이나 주연들한테 맡겨야지.
“……그나저나 이건 어떡하지. 그냥 반납해야 되나?”
대본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교과서나 논문을 참고하던 와중, 문득 책상 위에 올려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연녹색의 산뜻한 표지.
어젯밤 빌린 치유 계열의 마도서다.
별다른 내용도 없고, 굳이 한 번 더 읽은 필요도 없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련실에서 서예린을 기다렸다.
그런데 7시가 다 되도록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수련 시간대를 바꾼 모양이다.
‘분명 나 때문이겠지.’
그동안 수련실에 갈 때마다, 지하 1층의 넓은 수련실은 그녀의 독차지였다.
그런데 오늘은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 지난번처럼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니다.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은 있었다.
그러나 서예린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아, 진짜 어떡하지.
답답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업무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덜그럭덜그럭.
자꾸만 앞뒤에서 들리는 잡다한 소음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 집중력을 흩트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치고는 연구실이 전체적으로 소란스러웠으니까.
“야, 거기 상자 좀 옮겨봐.”
“이거? 너무 무거운데 이거 맞아?”
“무겁기는 개뿔. 네가 허약해서 그런 거야. 고기 좀 먹고, 힘 좀 길러라.”
“지금 상자를 몇 개나 옮겼는데, 힘이 남아돌겠냐?”
“야 너희들 농땡이 피우지 말고 어서 짐이나 옮겨라. 나중에 교수님한테 들키면 국물도 없다.”
커다란 상자 여러 개를 힘겹게 옮기는 장정들.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구실에 있는 대부분의 조교들이 물건을 나르거나, 짐을 싸는 등 특이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호기심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물어보려 해도, 고개를 돌린 채로 무시했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정도는 익숙했다.
그런데 붙잡아도 이 악물고 무시하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다.
고참 조교들은 물론, 어제 봤던 막내도 이젠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수석 조교를 붙잡았다.
“수석 조교님. 잠시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우리 막내 나 불렀어? 근데 내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빨리 말해줄래.”
“다들 바쁜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내 질문에 수석 조교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표정과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이 섞였다. 다들 나 빼고 놀러 가나?
“아, 이거. 조만간 학회가 열려서 말이야. 우리 연구실 대부분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거든.”
맞혔다. 나 빼고 놀러 가는 거네.
무슨 학회인지는 몰라도,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준비를 하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 냄새가 났다.
중요한 것을 숨기는 냄새가.
“근데 진짜로 몰랐어? 남화연 교수님 밑으로 들어왔으면 알 법도 한데.”
“도대체 무슨 학회길래, 이렇게들 열심히인지…….”
“사흘 뒤에 마도 학회가 열리잖아. 진짜로 몰랐던 거야?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
“……!!”
수석 조교의 말을 듣고는 문득 떠올렸다.
이맘때쯤 마도 학회가 열렸다는 사실과.
그로 하여금 일어나는 사건이.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첫 에피소드부터 조금 어색한 것 같더라고.
─뭐가?
─내가 쓰는 소설이 아카데미 장르잖아. 거기에 빌런이 습격하고는, 친구들이 주인공 눈앞에서 죽어서 각성하는 장면은 개연성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단 말이지.
─하긴, 보통 아카데미에서 교수는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니까. 빌런 한 명한테 보안이 뚫리는 것도 우습지.
─응, 그래서 말이야. 내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는데, 아예 교수랑 경비원 전원을 외부로 보내면 어떨까?
……그리고 나는 그 대답에 개연성은 있겠다며 답했다.
제기랄, 그때 그런 대답을 하면 안 됐는데.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수석 조교는 슬슬 학회 준비하러 가야 된다며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제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었다. 극 초반에 불과했던 원작이, 슬슬 진행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써 에피소드가 일어날 때가 됐나. 시간이 꽤나 흘렀네.”
주인공이 칠성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친구들을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아카데미가 발칵 뒤집어지는 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아카데미 습격 사건’.
추후에 이렇게 불리게 될 사건은 원작 초반에 일어남과 동시에 분위기를 팽배하게 바꿔놓는다.
이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아카데미 꼴통 천재’이란 소설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각성하는 기념비적인 에피소드이지.’
소설 초반의 주인공은 의협심만 있을 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미숙하다.
신입생 2,000명 중 1,999등으로 입학. 노력은 하지만, 평범한 범재에 불과한 것이 주인공, 카일이다.
그는 힘도 없으면서 괜히 나대고 다니다가 사건을 키운다.
괜히 소설 제목에 ‘꼴통’이란 키워드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카일은 첫 번째 에피소드를 겪으며 각성하고, 다음 학기에는 수석의 자리를 차지한다.
소설 진행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가 찾아왔다.
아카데미가 뒤집힐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세계를 구할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주인공이 각성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계기가 일어나지.’
아카데미 습격 사건의 주체는 수백 마리의 마물들과 마인에게 사주받은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침입하는 과정에서 경비원을 여럿 죽이고, 습격하면서 아홉 가량의 학생을 죽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주인공 눈앞에서 일어나지.”
언제나 영웅 서사의 계기는 그럴듯해야 된다.
주인공이 학생이니만큼, 반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만큼 확실한 계기는 없다.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는 무력하게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동급생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
정말 안타깝지만.
그들의 희생은 필수불가결이다.
내가 아카데미 상부층에 밀고하면, 진실이야 어찌 됐든 당일 경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희생자들은 살아남겠지만, 주인공은 각성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각성하지 못하면 이 세계의 흐름은 어찌 될지 모른다. 어쩌면 원작과 다르게 배드 엔딩이 될 수도 있다.
터벅터벅.
조교들이 학회 준비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잠시 자리를 이탈했다.
업무쯤이야 한두 시간 내로 끝낼 수 있다.
지금은 잠시 걷고 싶었다.
연구실을 나와 공원을 걷다 보니 수많은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을 즐기며 젊음을 구가하는 어린 학생들. 그들은 분명히 이 사회의 새로운 씨앗이지만.
‘굳이 살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이 세계는 소설에 불과한데?’
요즘 들어 나를 옥죄고 있는 고민이다.
이 고민 때문에 최근에는 불면증까지 앓고 있다.
아무리 무고한 아이들이 죽는다고 해도, 그로 인해 주인공이 각성하고 이 세계가 올바른 결말로 향하면 그게 좋을 거 아닐까?
도덕성과 평화.
나는 이 두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어차피 답은 뻔히 나와 있으면서.
─야! 너희들 치유학 수행평가 몇 점 나왔냐?
─나? 3점. 딱 최저 점수하고 태도 점수만 받았지.
─공부 좀 해라, 새꺄. 실기는 B 등급이면서 필기는 왜 그러는 거야.
─그야 너희들하고 평균 맞추려고 그러는 거지.
─지랄하고 있네. 나도 5점은 나왔거든? 너 3반의 여자애한테 시선 팔려서 그러는 거잖아. 우리 다 알거든?
학생들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듣고 싶지 않았다.
“……개같네.”
속이 메스껍다.
금방이라도 토악질할 것 같은 기분이다.
퍽,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순간 입안에서 피가 날 정도의 타격.
아린 고통이 입천장을 맴돌자, 역겨운 기분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아, 더럽게 아프네.
힘 조절을 못 해서, 너무 세게 때렸다.
그래도 차라리 아픈 편이 났다.
고통에는 익숙하니까.
‘어서 돌아가자.’
나는 도망치듯이 연구실로 돌아왔다.
연구실은 여전히 학회 준비로 분주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멋대로 밖에 나갔다 왔음에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그 무관심 덕분인가.
어째 속이 공허한 것이, 편안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업무.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다.
업무를 재개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억눌렀다.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지금 나를 봐봐.
평소와 똑같잖아.
당연한 하루를 보내는 거야.
그저 이대로,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거야.
흔해 빠진 엑스트라처럼,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면.
나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절대로, 나는 죽을 순 없어.
* * *
새벽 1시 30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잠에 들 시간.
나 같은 경우에는 평소 이 시간에 책을 읽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어째선지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잠을 자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위협에 대비하여, 힘을 미리미리 길러둬야만 한다.
잘못했다가는 희생자 1이 될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수련은 서예린이 없는 만큼, 가장 깊은 곳에서 진행했다.
“이 짓거리도 계속 반복하니까. 화염 마법도 슬슬 안정적이네.”
허공을 유유히 떠다니는 불꽃.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변하며,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화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매일 이른 아침에 수련실을 왔던 보람이 있다.
이 정도면 [플레임]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초 화염 마법은 익혔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이제 슬슬 응용에 들어갈 차례이다.
‘바로 한 단계 위에 있는 화염 마법에 입문해도 되지만, 실전성은 떨어지니까.’
[플레임], [파이어볼] 같은 마법들은 굳이 분류하자면 기초 마법이라 할 수 있다. 거기서 한 단계 위라고 해 봤자, 하급 마법이다.당장 아카데미가 습격당할지도 모르는데, 하급 마법 가지고는 턱도 없다.
‘그러니 다른 마법들과 섞어서 상승 작용을 노려야지.’
불과 기름이 만나면 거세게 타오르고, 바람이 불면 불꽃이 넓게 퍼지듯이. 화염 마법과 합쳐져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심사숙고하여 고민한 결과 총 세 가지 후보를 추려낼 수 있었다.
저주, 언령, 그리고 염동력.
이중 내가 제일 높게 치는 것은 염동력이었다.
염동 계열의 마법은 그리 심오하지 않다. 굳이 난이도에 상하를 구분하자면, 하급에 가까울 것이다.
여타 마법들이 그렇듯이 숙달한다면 초진동을 일으키거나, 거대한 구조물을 짓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지만.
‘결국은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일 뿐이지.’
전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단지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힘, 그것이 바로 염동(念動)이다.
나는 이 심플한 마법을 화염 마법에 적용할 것이다.
우선은 기틀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자.
몇 주 동안 연습했던 화염 마법의 술식에 염동을 덧붙였다.
그러자 가늘게 뽑힌 불길이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후우웅!
내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던 불길을 벽에 닿아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썩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거 단순하게 합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술식을 덧붙이지 않고, 화염 마법 위에 염동을 덧씌웠다.
작은 불꽃을 넓게 퍼뜨리고 불꽃의 칼날을 만들려고 했는데.
──펑!
폭발 소리와 함께 갈래갈래 찢긴 불꽃이 비산했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이거 진짜 돌아버리겠네.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거지.”
위력이 모자란가.
아니, 「이중나선」을 더한다고 해도 나아지진 않으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할지 깊이 고민했다.
창의적인 발상? 경험을 통해 우러나오는 노련함?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다양한 생각이 뿌리내렸다.
아이디어는 깊은 뿌리처럼 얼키설키 뒤얽히며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쾅!
손을 뻗어 불꽃을 만들어내자 곧장 폭발했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화르르륵!!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천장과 부딪히자, 기세를 잃고는 시들었다.
이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중나선」을 섞어볼까?
아니, 기각이다.
잘못했다가는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손목이 망가질 수도 있다.
여전히 반복되는 시행착오.
그러나 얻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손과 몸에 익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고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단이 섰다.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이면 충분하다.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돌입합니다!]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섭니다.] [「마도성」의 재능이 찬란하게 피어납니다!]모든 신경을 마법에 쏟아부었다.
[플레임]의 술식에 [염동]의 술식을 이어 붙인다.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두 술식을 하나로 접목시킨다.
무식한 짓이지만 확신이 들었다.
이 방법이 옳다고.
나는 섬세한 신경 다발을 잇는 것처럼, 두 마법을 하나로 융화시켰다.
그로 하여금 피어나는 유형(有形)의 불길.
보통의 화염이 열과 빛이 방출되는 현상이라면.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는 명확한 형태가 있었다.
“……됐다.”
화염이 기괴한 방향으로 타올랐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모든 것은 내 의지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화염 마법과 염동 마법의 조화.
파이로키네시스(Pyrokinesis).
“……바로 한번 시험해 볼까.”
뇌리를 스쳐 가는 전율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꽃을 피웠다.
이미 성공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공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해야 된다. 어중간한 성공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화르륵, 불꽃이 이글거리며 몸집을 키웠다.
거대한 화염은 내 수족이라도 된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나는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오른손을 앞으로 뻗고, 주먹을 세게 쥔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불씨.
잔불처럼 일렁이는 불씨들은 곳곳에 퍼졌다. 그것들은 화르르 타오르며 흩어졌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불씨.
그러나 이 상태에서 마력을 일으킨다면.
“……아니, 시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바닥에 흩어진 불씨들을 지뢰처럼 이용해서 연쇄 작용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거기까지 알면 더 이상의 시험은 무의미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응용법은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마력을 갈무리하고, 주변을 정리하던 나는 문득 떠올렸다.
파이로키네시스에 「이중나선」을 더하면 어떨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모든 출력과 화력을 두 배로 높이는 「이중나선」의 폭발력.
그동안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 외면했지만, 파이로키네시스가 더해진다면 혹시 모른다. 사물의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염동의 묘리가 섞여 있는 만큼, 엄청난 화력을 통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순간 실험 정신이 번뜩였으나.
‘……그만두자.’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며칠 있으면 습격이 일어날 테니,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한다.
지난번에는 화력을 통제하려다가 뒤로 날아가지 않았던가.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그런 요행을 바라기는 어렵다.
나는 수련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문 앞에 한 소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안녕?”
“…….”
익숙한 얼굴의 소녀.
목창을 들고 있는 서예린과 마주쳤다.
순간 등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나한테 복수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걸까?
다행히 그녀는 나를 지나치고 수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 안도했다. 괜히 불똥이 튀기 전에, 어서 빨리 기숙사에 가야겠다.
수련실을 나서자 찬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흥건한 땀을 순식간에 식힐 정도로 차가운 바람.
그 덕분에 정신이 또렷해지며,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잔불을 거두지 않았지?”
파이로키네시스를 시험하며 사방에 흩뿌렸던 잔불.
본래는 마력을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거둘 예정이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거두지 않았다.
설마 누가 새벽 3시에 수련실을 올까 싶었다.
원래라면 30분 후에 알아서 사그라들었을 불씨. 육안으로는 파악하기 힘들 텐데, 에이 그래도 미래의 신창이라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쿠구궁!!
수련실 건물이 크게 울렸다.
폭발 소리가 들렸지만, 외부에서 폭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터졌구나.”
아무래도 서예린이 불씨를 건드린 모양이다.
불씨가 연쇄 작용을 일으켰고, 그 중심에는 서예린이 있었겠지.
“…….”
지하에 있는 다인용 수련실은 마력 방벽이 유독 튼튼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서예린이 실질적으로 입은 피해는 경미하리라.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단련된 무인이니까.
그러나 무인이라고 해서 빡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옷가지가 폭발에 휘말렸으면 더더욱 그렇겠지.
“……도망치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아직 에피소드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