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04화(10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04화
이면 세계(4)
옷을 단단히 여미고, 혹시 몰라서 허리춤의 벨트에 천총운검을 차고 길을 나서자 주변 사람들이 이목이 나를 향하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내 얼굴과 꼬리만을 향했을 시선.
다만 오늘은 검으로도 시선이 분산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느끼면서 허리 부근의 요사스러움에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천총운검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느낀 건가? 다들도 감도 좋군.“
─그야 검에 엮인 오로치의 저주는 여전히 살아 있으니 당연하겠지?
무척이나 친숙한 이를 부르는 듯한 어조에 내 얼굴이 그녀를 향했다.
생각해 보면 둘 다 같은 나라에서 활동한 존재들이며, 신화에도 기록된 이들이다.
어쩌면 타마모와 야마타노오로치 둘이 알고 있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둘이 활동한 시대가 다르지만, 백 가지 얼굴로 살아온 그녀라면 그 먼 상고 시대에도 살았을지 모르는 노릇이니까.
“어째 부르는 어감이 익숙한 것 같은데? 이 검의 원재료와 아는 사이였나.”
─원재료라. 하하…… 취급이 너무 박한 것 아니야? 이래 봬도 녀석은 한때 열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은 바다뱀인걸.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군. 이게 그렇게 강한 녀석인가 싶은데.”
나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뱀을 쓰다듬었다.
영체(靈體)의 형태로 검에 꽈리를 튼 작은 뱀은 제 머리를 쓰다듬자, 설마 자기가 보일 줄은 몰랐다는 눈치로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좌우로 털고는 콰득,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이런 주독을 주입한 모양이네.
주독(呪毒).
저주를 담은 독을 일컫는 술법.
여타 주술과 독공과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나, 주술이라는 체계 자체가 천 년 전에 사장되는 바람에 전설로만 구전되는 독이다.
[상고의 독, ‘초체(草薙)의 주독’이 몸에 침입했습니다!] [체내의 모든 기가 흩어지고, 기를 운반하는 혈액째로 갈취당합니다!]‘앙큼하긴…… 이게 경매장의 직원들을 미라로 만들어 죽인 독이자 저주인가.’
혈관이 울긋불긋하게 변하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쓰라렸지만 솔직히 별 타격은 없었다.
오히려 독에 중독되는 속도보다, 항체를 만들어 해독하는 것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백독지체」에 기록된 백 가지 독을 바탕으로 ‘초체의 주독’의 해석을 진행합니다.] [진행률 : 4.9%] [진행률 : 19.4%] [진행률 : 36.3%]……
[진행률 : 99.9%] [상고의 독, ‘초체의 주독’을 완벽하게 해석하셨습니다!] [「백독지체」에 ‘초체의 주독’을 비롯한 온갖 하위 계통 주독에 대한 면역력과 항체가 구현됩니다!]이처럼 독에 대한 반응을 슬슬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지경에 와버렸다.
이러다가 <무림>의 사천당가가 염원하는 독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상태창을 열었다.
[스킬, ‘약체내성지체’에 포함된 「백독지체」의 현황을 불러옵니다.] [현재 당신이 「백독지체」로 보유한 독의 항체는 약 477종입니다.]“……이러다가 머지않아서 천독지체가 될지도 모르겠네.”
서서히 가라앉는 핏줄.
전설로 구전되는 상고 시대의 독치고는 꽤나 허무하게 해독하고 말았다.
그 광경에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타마모와 실뱀의 형태로 의기양양하게 검에 꽈리를 튼 녀석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작아서 그런가.
꽤나 귀여운 표정이다.
* * *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를 치를 시간이 다가왔다.
칠성의 운동장에 1학년 1,991명과 그들을 인솔하게 될 임시 교사들이 중무장을 하고 왔다.
“야, 너희들 준비물 다 챙겼지?”
“물론이죠 교수님. 주무기에 혹시 모를 보조 장비에 방어구. 포션 다섯 병과 물과 비상식량, 그리고 텐트까지 챙겼어요.”
“의약품은? 포션만으로는 모든 종류의 상처에 대응할 수 없다는 건 지난 강의에서 가르쳤을 텐데.”
“당연히 의약품도 챙겨왔죠. 아, 그리고 혹시 몰라서 아침밥도 챙겨와서 다 같이 먹고 있는데. 같이 드실래요?”
“물론이지. 야, 이거 김밥 맛있다! 누가 만들었냐?”
“저기 2학년 기숙사 맞은편, 분식집에서 사 왔어요.”
“어쩐지 맛있더라.”
보통의 중간고사라고 하면 진지한 이미지가 있지만, 지금 시험을 대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흡사 소풍에 나온 아이들과 같았다.
서로 아침을 교환하고 떠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제 나이 또래의 고등학생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이들이 들어갈 곳은 던전.
온갖 마물과 자연환경으로 가득한 미지의 장소.
지금은 서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긴장의 끈을 붙들고 있는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결의를 다진 채 일주일 밤낮으로 진행될 중간고사를 준비했다.
혹자는 망친 수행평가를 중간고사 성적으로 메우기 위해.
누군가는 참관인 신분으로 시험을 지켜볼 상위권 길드의 주목을 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기대와 걱정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강아지처럼 격하게 흔들리는 꼬리로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이 날이 왔군.”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리자 순간, 일대의 모두가 침을 삼키며 입을 닫았다.
그 중심에는 검은 체모의 꼬리가 살랑이는 미형의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의 정장.
그러나 그 위에 코트를 덧입은 백승우는 멍하니 쳐다보게 만드는 마성이 있었다.
“다들 내 옷만 쳐다보는 건가? 잘 어울리긴 하나 보네.”
승우는 몰랐다.
새 옷을 입으면서 기분이 신난 탓에 「매혹」의 제한이 풀렸고, 그에 더불어 반지에 내장된 「백면금모」와 특성, 「경국지색」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의 마성은 삽시간에 운동장을 삼킨 지 오래였다.
─이건…… 나도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네.
“그렇지? 확실히 옷이 좀 잘 어울리는 모양이야.”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후후…… 그래, 뭐 모르고 있는 모습도 퍽 귀여우니까.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그녀를 쳐다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뜻이 궁금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던 승우는 궁금증 위에 평정을 가장했으나, 꼬리는 여전히 궁금하다는 눈치로 물음표 모양으로 휘어졌다.
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사람들 특히 여학생이나 여성 조교들과 동성애에 눈을 뜨게 된 남자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정말로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것을 봤을 때 짓는 표정과 소리.
승우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탓에 뒤를 돌아봤지만, ?로 휘어진 자신의 꼬리 대신 입을 틀어막은 타마모만 보였다.
“……아까부터 뭐지?”
허리 부근의 꼬리를 향하는 시선을 알 턱이 없던 승우는 이 모든 시선이 내 옷을 향하는 거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반응이 심히 과해서 뭔가 싶다.
내가 그렇게 싫나?
다시금 속으로 의문을 품자, 꼬리가 또 한 번 의문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독점했다.
그렇게 자꾸만 뒤에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낀 채로 그가 맡은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 왔다.
“너희들 준비는 다 했어? 준비물은?”
“아이참, 조교님 저희를 너무 어린 애로 보시는 거 아니세요? 이미 이틀 전부터 다 준비해 놨다고요.”
툭툭, 거대한 배낭을 두들기는 노유라.
그녀가 두들기는 배낭은 보통의 배낭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거대했다.
“아공간 배낭이네. 공간 대비 효율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몇천만 원은 할 텐데. 어디서 구했데.”
승우가 가진 반지보다 공간 용적도 부족하고, 부피도 크지만 저 배낭 안에 식수나 식량, 텐트 등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무척이나 이상적인 시작이다.
“그런데 이런 걸 가지고 중간고사에 임해도 되는 건가?”
“야, 너 중간고사 평가 기준 안 봤어? 그것도 안 보고 시험에 임하느니 뭐니 하는 거야?”
“수행평가도 아닌데 그런 게 있었어?”
이지의 물음에 답답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 이사벨이 핸드폰을 들어서 보여줬다.
노란 배경의 메신저.
그 위에 공지 사항이 길게 적혀 있었다.
“여기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 있잖아. 하아…… 이런 애가 조의 방패 역할을 도맡는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신랄한 어조로 말하는 이사벨은 제 핸드폰을 이지에게 쥐여줬다.
그는 고개를 숙인 죄인의 심정으로 공지를 읽어내렸다.
상당히 길었지만, 분명 평가 기준 및 항목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높은 등급의 던전에 도전하는 조일수록 인당 반입 가능한 물품의 수가 늘어나고, 제약이 줄어듭니다.”
“우리처럼 이면 세계에 도전하는 경우에는 텐트와 음식을 비롯해, 개인적인 무기도 반입할 수 있어.”
“그러면 다른 애들은 아카데미 제(製) 무기와 장비를 착용하겠네.“
“그걸 이제 안 거야? 아무리 무심해도 그렇지, 시험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모든 학생이 중간고사 일주일 전에 알았을 내용을 당일에 깨달은 이지의 모습에 이사벨은 가슴이 답답했다.
고구마를 무더기로 삼켜도 이토록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사에 꼼꼼하고 계획적인 그녀의 마음은 알겠지만,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승우가 제재에 나섰다.
“둘이 슬슬 그만하는 게 어때?”
“감독 역인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이건 염연히 우리 조의 일이니까, 당신은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날이 서 있는 이사벨의 반응에 승우는 속으로 감탄했다.
아직 한 조를 이룬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거늘.
지금 그녀에게는 조를 이끌어야 한다는 헤드로서의 책임감이 있었다.
선생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꺼운 상황.
그러나 지금은 조금 참아줬으면 좋겠다.
“10분 뒤에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기 시작하니까. 꾸짖기보다는 슬슬 대기해야지.”
“그렇지만 여기서 똑바로 혼내지 않으면 조의 기강이…….”
“그건 들어가서 나서 잡아도 되잖아. 그리고 지금 이지의 눈가를 봐봐. 쟤 분명 어젯밤에도 아르바이트한답시고 늦게 잤을 게 뻔해.”
눈에 다크서클이 선명한데, 지금 상황에서 네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겠어?
승우는 웃으며 이사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에는 가시가 서 있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내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어린 나이에 사람들을 이끄는 자의 책무를 짊어진 탓에 여러 고생들을 해왔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연신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푸욱 숙인 그녀가 힘들게 한마디를 뗐다.
“……아, 알겠어.”
그 모습을 보며 승우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히로인이라서 그런가.
얘가 말투나 성격이 날카로워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다.
오히려 생각 깊은 녀석이다.
스윽스윽, 장하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평소라면 뭐 하는 짓이냐며 손으로 쳤을 이사벨은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더 숙였고.
노유라는 부럽다는 눈치로 이사벨을 노려보고, 이지는 혼나다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 파악 못 한다는 기색으로 주변을 쳐다봤다.
이 기묘한 광경은 우리를 던전으로 안내할 길잡이가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략 10분쯤 지났으려나.
그쯤 되니까, 나도 손이 아프더라.
* * *
칠성의 가장 깊숙한 곳.
게이트 너머에 있던 것은 거대한 공동(空洞).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하고 공허한 공동에는 전등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을 피우거나, 이사벨이 빛을 만들 정도로 어둡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딱 적당했다.
“이곳은 대체……?”
“밤하늘? 아니, 도대체 왜 동굴 천장에 별들이 떠 있는 거지?”
“쌤! 저게 뭐예요?!”
“아, 학생들은 모르실 법도 하군요.”
학생들의 감탄 섞인 어조에 길잡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저 별들에 대해서 잘 아는 눈치.
그야 당연하다.
저것들이야말로 길잡이들이 안내하는 종착지였으니.
“저 별들은 전부 뭐죠? 마치…… 진짜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내고 있네요.”
“별이 맞으니까요.”
“예? 방금 그 말 진심인가요?”
빛을 다루는 이사벨은 빛과 광원에 관해서 해박하다.
그런 그녀조차 저 별들이 뿜어내는 빛이 무엇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빛들은 보통의 빛이 아니었다.
별빛 그 자체.
그야 게이트 너머에 별빛으로 가득한 공동에 정상적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싶으면서도, 지금 이곳에 있는 것들은 고정적인 관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구역이었다.
신비를 해체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천재 마법사인 그녀조차 손발을 드는 신비의 총체.
그 정체는 명확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별이다.
“저것들은 별이 맞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구라는 땅은 하나의 별입니다. 그건 다들 아시죠?”
“그야, 당연하죠.”
“그렇다면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실 겁니다.”
길잡이의 설명은 간단하면서도 난해했다.
그의 말은 어째서 던전이 ‘멸망한 세계의 파편’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직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 난해함은 아직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이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오죽하면 나도 이 부분은 타마모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했을 정도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설명할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어째서 던전이 멸망한 세계의 파편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아시나요?”
“……글쎄요. 공간 너머의 생태계와 마물의 존재를 설명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요점만 정리하자면 결국 던전이나 이면 세계는 부서진 별이랍니다. 우리가 출입하는 모든 던전들은 하나의 거대한 원류에서 떨어져 나온 별똥별에 불과하죠.”
“그러면 던전은 원래 하나의 세상이었다는 뜻인가요?”
“하나일 수도 있고, 두 개일 수도 있죠. 다만 확실한 것은 여러 던전에서 동일한 생태계에서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공통분모가 여럿 존재한다는 거죠.”
모든 던전의 시작은 하나의 가장 거대한 별, 행성.
그곳에서 시작되고 멸망하여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그 탓에 저희나 학회에서는 던전을 일종의 별빛으로 취급하고 있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저런 형태를 하고 있고요.”
공동의 벽에 가득 채워진 별빛들.
흰색, 흑색, 적색, 청색 등등.
다양한 빛을 뿜으며 반짝이는 저 별들이야말로, 칠성이 자랑하는 던전들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독 큰 별들.
흐르는 피처럼 새빨갛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내 붉은 눈동자를 닮은 유독 거대한 붉은 별빛.
그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향할 이면 세계.
통칭, ‘영원한 겨울의 폐허, 테밀’이다.
선발대가 기록하기를 이면 세계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마을 급 수준이며, 멸망 직전에 겨울이었는지 찬 바람이 그치지 않는 북풍의 세계라고 한다.
“자, 그러면 도착했으니 바로 내부에 들어가 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의 공략에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짓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길잡이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곤, 곧바로 다음 학생들을 인솔하러 떠났다.
그사이 우리는 반짝이는 저 공동 위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은 이미 멸망한 세계의 파편.
그것은 별을 바라보듯.
별은 이미 수명이 다해, 임종을 맞이하였음에도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는 별들은 여전히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장렬한 최후의 별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갈래로 쪼개져 나누어진 별똥별처럼 멸망하기 직전의 세계를 우리들의 눈에 비추어준다.
어떤 곳들은 던전이라는 이름하에, 이미 진작에 으스러진 자연환경과 마물들을 담고 있었고.
또 어떤 곳들은 이면 세계라는 명칭 아래에, 이미 잊혀진 사람들의 삶과 갈등을 NPC라는 명칭으로 드러냈다.
저 별 위에서 오늘도 힘겹게나마 생을 유지하는 이들은 모른다.
그들의 삶이, 세상이 이미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어차피 말해줘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오늘을 살아갈 뿐이었다.
저 멀리에 있는 별이 그러하듯.
그들의 삶 또한 이미 수백 년 전의 광경을, 저 먼 곳의 죽은 별이 밝힌 과거의 불빛일 테니까.
무슨 발악을 하더라도 변치 않을 세상.
바뀌는 것 하나 없는.
멸망이 확정된 세계의 파편.
우리는 이면 세계에 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