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1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16화(11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16화
도시를 향해(1)
내게 있어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혹자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버티며 살아가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분명 나와 같은 수준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자들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매일 몇 번이고, 먼지가 되어 으스러지고 흩어지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러나 내게는 족쇄가 있었다.
절대로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을 강요하는, 유언과 희생이라는 형태의 저주가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
그 저주는 영원토록,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지금도 앞으로도 내 삶과 방향성을 강제하리라.
* * *
─그래서 다음 목표는 뭐니, 계약자?
“도시로 나가볼 생각이다.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거든.”
절대 배신할 수 없는 계약을 맺자, 승우와 타마모 둘 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타마모는 조금 더 편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였고.
승우는 어딘가 냉철하고 딱딱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더 깊은 계약으로 맺어진 타마모가 확실하게 포착했다.
─어머, 나를 대하는 좀 차가워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시끄러워.”
─진짜로 변했네. 나도 어린 꼬마들에게 하는 것처럼 상냥하게 대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일까?
타마모가 다가오면 승우가 밀어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이대면, 필사적으로 밀어낸다.
타마모와 백승우의 현주소는 그러했다.
정말 귀찮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 따위 맺지 않는 것이었는데.
승우는 머리를 붙잡으며, 두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너…… 이런 식으로 계속 내게 질문하면 나중에 가르침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벌써 그런 사소한 질문 때문에 스무 개가 넘었는데.”
─글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냥 질문 한두 개 찔끔찔끔하는 것보다 끊임없이 질문해서 내 호기심과 지식욕을 채우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아서 말이지.
“……제기랄.”
그 방법은 상정하지 못했다.
질문을 몇 개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만 치르면 되지만, 반대로 질문을 무한히 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도 무한히 지불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기간 따위 존재하지 않는 계약.
상대가 대가로서 원하는 것의 수가 많다면 그만 아니던가.
지금 타마모는 계약의 맹점을 제대로 찔렀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질문에 한도를 정할 걸 그랬어.’
─네 혼잣말은 전부 들리니까. 순순히 답해주는 게 좋을 거란다?
어휴, 귀찮다.
나는 슬슬 귀찮아져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일 떠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촌장이나 무덤에 묶어둔 마인과 할 얘기가 많았다.
부디 이 이상 귀찮아지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나 언제나 내 기도는 무의미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원인을 잘 모르겠단 말일세.”
“평생을 살아왔을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몇 년이 지나도 모른다고요?”
서리마녀, 아이시스를 타박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진심으로 서리 마녀가 몇 년이고 지속된 이 혹한의 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세하게 물어봤더니.
결국 원인을 모른다더라.
‘헛소리를 지껄이네’
그 혀로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내 눈까지 속일 수는 없다. 이후로도 몇 가지를 더 질문했어도 반응은 비슷했다.
“지랄 꼴값들을 떠는군.”
나는 촌장을 비롯한 테밀 마을의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툭툭, 손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이 지도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곳은 북부 지방이지만, 남극이나 북극처럼 영원토록 추운 땅은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남극과 북극에도 날이 풀리는 계절은 존재한다.
그게 다른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따뜻해서 그럴 뿐이다.
하지만 이곳 북부는 지리적으로 영구동토도 아닌 주제에 3년간 혹한기가 멈춘 적이 없다니.
“이건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야.”
쌀쌀한 지방을 추위가 가시질 않는 영구동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마법사가 필요하다.
그것도 기후에 특화된 대마법사가.
혹한과 추위에 관련된 거대 마법이나 성역을 다룰 줄 알면 더 좋다.
아니면, 대마법사가 두 명 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산맥 위 산장의 ‘마녀’가 혼자서 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촌장인 당신이 그러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믿을 거 아니야?”
서리 마녀가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으면, 아이시스가 그 역할을 넘겨받지 못했을 것이다.
북부를 혹한에 잠길 수 있는 대마법사.
그런 건 일개 학생이 대체할 수 있는 역할도 아닐뿐더러.
그 설정이 사실이라면 이면 세계의 가장 중요한 메인 NPC 중 하나로 나왔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기사, 테르미야처럼 말이다.
─지도 잘 보네? 처음 보는 지도였을 텐데.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기는, 현대처럼 체계화된 지도도 아니고. 낡은 지도 몇 장으로 지형과 기후를 잘 짜 맞추고 있잖아.
‘진짜로 별거 아니야.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작전을 짜고, 적진에 직접 침투하기 위해서는 사시사철 온갖 요소로 인해 바뀌는 지도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을 뿐이야.’
촌장과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인 후에는 무덤가를 찾았다.
지난날 밤에 몰래 나와 고문을 통해, 여러 정보를 실토하게 만들어서 그런가. 마인의 상태는 영 꽝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쓸모가 있으니.
죽일 생각은 없었다.
찍찍, 쥐처럼 우는 작은 벌레 형태의 마력 덩어리.
마인의 권능이 듬뿍 담긴 이것은 이면 세계에서 분명 쓸 만한 구석이 있었다.
누가 오지 못하게 봉인해야 되겠다.
─도와주련? 봉인을 혼자서 할 수 있겠어?
“으, 응……! 생각보다 힘들긴 한데, 못할 건 아니야……!”
간단한 봉인계 주술.
그 원리는 사슬로 꽁꽁 묶는다는 개념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한 간단한 술식이지만, 원소 마법인 [화염 마법]을 익히며 곁가지로 암기해 둔 중급 [대지 마법]을 봉인 위에 엮어서 상급 마법에 버금가는 견고함을 갖췄다.
그리고 이제 슬슬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후…… 방금 걸로 기력이 다 빠졌어.”
─방금 그 술식, 꽤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던데?
“내 뒤에서 봤을 거 아니야. 흙을 파서 만든 지하 공동을 감옥처럼 단단한 밀실로 만드는 마법이잖아.”
─아니, 그거 말고.
타마모의 손가락이 마법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술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거 [대지 마법] 아니잖아. 그치?
“……원소 마법은 또 언제 배웠대.”
─후후, 그저 네 곁에서 곁눈질로 배웠을 뿐이야. 요즘 마도서의 독서량이 부쩍 늘어났잖아.
더 이상 그 어떠한 변수라고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나는 더더욱 독서와 지식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몰라서 허무하게 당하는 상황만큼은 방지하기 위해서.
그것만큼 허무하고 공허한 게 또 없거든.
툭툭, 봉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 두들기다 보니 어느새 주변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덜 지어진 공동묘지.
학생들이 만들라고 방치해 뒀지만.
“무덤. 그냥 내가 만드는 편이 낫겠네.”
─왜? 못 미더워서 그래?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손가락으로 쌓여둔 시체 더미를 가리켰다.
시체의 상태는 깔끔했다.
부패하지 않은 것은 물론, 외관상으로는 잠든 사람과 똑같이 보였다.
학생들이 묻기 전에 장의사마냥 시체를 닦고 관리한 것이다.
“애들이 괜한 짓을 해서 말이지.”
─아직 병아리들이 성체가 될 준비가 덜 됐다고 보는 거니?
“아직 어려서 그런가. 다들 너무 상냥해서 탈이야.”
저런 무른 마음가짐으로는 살벌한 사회에서.
목숨을 건 플레이어 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세계의 결말까지도 도달하지 못한 채, 무너져 버리겠지.
차라리 이번 기회에 가르쳐 줘야 되나. PTSD가 심하게 올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가르쳐야 하는 부분이다.
이 세계는 절대로 너희들에게 상냥하지 않다는 것을.
죽음은 언제라도 각자의 목에 기댄 채, 순식간에 드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내가 아이들에게 음식이나 간식을 쥐여주며 통제되지 않은 날 것의 정보를 얻는 동안, 학생들은 마을에 잠시 체류하며 그들의 부탁이나 의뢰를 수락하며 평판을 쌓아 올렸다.
불과 이틀뿐이었지만, 친화력 좋은 이지는 어느새 마을 어른들과 어깨동무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아이시스랑 나 빼고.
술로 이 혹한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자, 낮에도 밤에도 술에 취해 있는 중년의 사내 골리스는 오죽하면 그를 술친구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이지는 미성년자라 마시지 못했다.
“서, 서, 선생님…… 혹시 냉수 있으세요?”
“……저기 사방에 가득한 눈이나 퍼먹어라. 먹어서 삼키면 냉수하고 비슷하지 않겠어.”
“아……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
나는 뒤뚱뒤뚱 눈밭을 향해 걸어가는 이지를 보았다.
저놈 저거 맛이 갔네.
술은 마시지 말라고, 몇 번 주의를 줬건만 결국은 마신 모양이다.
골리스가 강력하게 권했건, 호기심에 마셨건 아주 그냥 고주망태가 되기 직전까지 마셨네.
아니, 이미 고주망태가 된 건가.
냉수 대신에 눈 퍼먹겠다고 눈밭에 파묻히는 꼴을 보아하니 확실하다.
“이지 뭐 해?”
“무, 물…… 냉수를 마시려고 눈을 입안에 넣고 녹이고 있어.”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내 얼음을 먹어. 내 마력으로 만든 얼음 정도는 쉽게 녹일 수 있으니까.”
아이시스가 작은 컵 모양의 얼음을 만들었다.
알딸딸한 상태의 이지는 아무렇지 않게 컵의 손잡이 부분을 잡았다.
딱히 차갑다는 감상은 없었다.
동상이나 손이 얼어붙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얼음 컵을 차갑지 않게 만든 것이다.
가면 갈수록 정교해지는 얼음 마법.
과연 엘리트다운 성장 속도였지만, 그녀의 성장세는 칠성 내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축에 속했다.
이 정도면 다음 학기에는 유망주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유망주의 절반가량은 그녀와 같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니까.
못할 것도 없었다.
“자, 그러면 다 모였지?”
나는 짐을 멘 이들을 보며 주변을 훑었다.
슬슬 동이 틀 때가 왔다.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사람들은 프런티어로 가는 순간만을 학수고대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틀이나 낭비할 줄은 몰랐거든.
“결국 이사벨은 못 찾았네요.”
“아마 프런티어라는 곳에 있겠지. 그나저나 이사벨이 거기에도 없으면 안 되는데.”
“그러게 걔가 우리들 중에서는 제일 강하고, 머리도 좋잖아.”
“괜히 이사벨이 헤드라는 포지션을 맡긴 것이 아니니까.”
내가 편대를 이루며 싸우던 시절에 종종 사용하던 명칭.
헤드, 지휘관의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 냄과 동시에 대규모 마법으로 조의 화력을 보충하던 이사벨의 존재는 동료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큰 존재였다.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뭐, 마법 정도야 아이시스의 [빙결 마법]으로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녀에 비하면 한계가 명확하고.
학생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그녀의 통솔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내게 병법과 이끄는 자로서의 태도를 배우는 데에도 그리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기에 대신 길잡이를 한 명 들였다.
“왜 내가 길잡이가 돼야 되는 거지?”
텐트나 식수를 비롯한 온갖 짐을 등에 짊어진 테르미야의 공허한 외침. 당연하지만 그 공허한 외침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 준비를 마친 후, 도시를 향해 출발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침 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