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24화(12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24화
도시와 부랑자(4)
언제부터였을까?
인격이 뒤틀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인식이 비틀린 것일까.
반지와 계약으로 연결된 타마모는 승우의 마음을 표면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다채로웠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 속의 알맹이는 아무런 색채를 가지지 못한 무채색이었던 것 같다.
이건…… 솔직히 좀 대단하네.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뭇 사내들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을 홀리는 구미호는 백 개의 모습으로 살아왔으나.
각각의 생을 살 때, 하나의 가면만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지금 그녀의 모습은 ‘타마모노마에’라고 불렸을 적과 흡사한 얼굴과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승우는 달랐다.
여러 개의 가면을 동시에 쓰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정교하게 짜 맞춰져 있어서, 여태까지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잘 알겠다.
혼령이 되며 생전의 능력과 합쳐져 강력한 귀안(鬼眼)을 가진 타마모의 눈에는 온갖 기운이 구체화되어 보이는데, 여러 조각과 파편으로 쪼개진 가지각색의 가면이 엇비슷하게 승우의 얼굴에 걸쳐져 있었다.
저게…… 전부 속내를 감추기 위해 쓴 가면이라고?
─이게 무슨 일이래.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을 위해, 혹자는 연약한 스스로를 거친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다만 타마모의 눈에 보이는 그의 가면에는 티끌이나 찰나의 틈도 없어서, 그 의미를 굳이 입으로 듣지 않아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저것들은 전부, 속마음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쓴 것이다.
─계약자, 너 다중인격은 아니지?
‘그런 걸 보통 면전에 대고 말하나?’
─그래서 다중인격이야, 아니야?
‘별로, 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헤맨 적은 없어.’
구태여 ‘별로’라는 말을 덧붙이며 질문을 미묘하게 회피하는 백승우의 모습에 타마모가 집요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보렴. 그때 심상 세계에서 널 봤을 때, 칠흑처럼 아득한 세계는 거짓이었지? 온갖 인간 군상을 연기하는 가면들이 합쳐져 일그러진 심상을 그려낸 거 아니야?
아득하기 그지없던 공허와 같은 심상.
이후 펼쳐진 지옥 같은 시산혈해.
그것들은 백승우라는 인물을 정의하는 여러 가면들의 일부였다.
특히 전자의 경우에는, 여러 인격 비스무리한 것들이 합쳐져 그런 일그러진 세계를 연출한 것이 분명했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그거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야?’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니면 기만책이라도 펼치는 것인가.
백승우라는 사내에 대해 지극히 다분한 관심을 가진 타마모라도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의중과 진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약, 알고 있지?
‘거짓 없이, 배신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토로한다.’
─주된 골자는 그거였지. 하아…… 설마 이걸 네가 아니라, 나부터 유용하게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거짓은 백승우를.
배신은 타마모를 겨냥한 조건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얻고, 동시에 구속하기 위한 조건 둘.
그러나 이 두 조건이 돌연 타마모를 위한 것이 될 줄은 몰랐다.
─배신에 관한 조항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했어.
가면에 대해 언급한 순간.
타마모는 자신이 칼날 위에 서 있다는 감상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또는 수틀린다면 혼에 불과한 상태이더라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녀의 판단도 그렇지만.
반지와의 연결을 통해 느껴지는 승우의 살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보통의 사람이 그런 살기를 내뿜었다면, 타마모는 만용이라며 비웃었을 것이다. 하나 승우에게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무리일지라도 언젠가는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리고 그 자신감은 구미호인 그녀일지라도 자칫 잘못했다가는, 진짜로 인생 하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도대체 뭘 하던 사람인가 싶다.
아니, 애초에 저런 게 사람인가?
제 인격과 속내를 숨기는 가면도 여러 개를 동시에 썼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술도 범상치 않고, 그 이상으로 미심쩍은 건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투 센스와 노련함이었다.
도대체 숨기는 게 얼마나 많은 걸까.
타마모는 새삼 자신이 승우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설령 알더라도, 파편으로 쪼개진 부분 부분만 알고 있었다.
기존에 그녀의 생각은 승우가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지는… 상황을 천천히 즐기며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서둘러 백승우라는 사람의 삶과 정체에 대해 알아야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걸 모르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구미호.
하늘에 닿은 여우, 천호가 되기 직전의 경지에 다다른 자.
창공은 아니되, 그것에 가장 가깝고 닮은 타마모의 신통은 예언자 부럽지 않은 권능이었다.
다만 그런 권능조차 사후에는 미약해져서, 당장은 제대로 된 신통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졌지만 그런 신통력으로도 알 수 있는 건 있다.
─너…… 이름이 뭐야?
“이름? 뻔한 질문이네, 백승우잖아.”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 이름이 아니다.
포장에 가려진 이름이 아닌, 그 너머의 진명.
─그거 말로 하나 더 있지? 어서 말해봐. 출신 성분까지 곁들여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너 예리하네.”
그녀는 첫 단추를 어떻게 꿰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약지와 심장을 주고받은 그날의 연장선.
다소 늦은 첫인사였다.
“내 이름은 백승우.”
─이름은 똑같네?
“그야 당연하지.”
이 몸뚱어리는.
“원래의 나. 그러니까 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에 불과하니까.”
─……어?
멍한 표정을 짓는 타마모의 모습에 승우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이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았다.
조금…… 아니, 많이 곤란하네.
* * *
질문의 세례는 이어졌으나, 정작 근본적인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불만 가득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10분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 부대찌개이려나?’라는 말을 한 것이 전부였다.
사실 부대찌개 안 먹은 지 7년은 더 됐는데.
어릴 적에는 좋아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하튼 그런 시답지 않은 질문이 계속되던 와중.
바로 그때였다.
“당신…… 정신이 많이 아픈가 보군요?”
“!!!”
“아까부터 계속 혼잣말을 하던데. 그걸…… 인간들 사이에서는 뭐라고 부르더라? 저, 정신병이던가요?”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내 눈에는 도저히 보이질 않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목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몸이 움찔한 것도 잠시.
‘……지독한 연분(鉛粉) 냄새.’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킁킁, 역한 냄새.
악취와 향수가 섞이면 보통은 완화된다.
그러나 정도를 지나친 악취는 도리어 반발 작용으로 인해, 더 강렬한 향을 뿜어낸다.
‘연분이지만, 뭔가 조금 이상한걸. 마치 사람의 살결과 같은…….’
─사람의 살결 같다고?
‘그래, 순간 나도 착각할 뻔했지만 이건 분명 사람과 같은 냄새가 맞……!!’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하, 하하 설마 아니겠지.
머릿속으로는 부정하지만 몸은 확신하고 있다.
킁킁, 냄새를 맡자 느껴지는 살과 악취, 그리고 연분의 향.
이건 아마도.
─사람의 살로 만든 연분 같은데?
‘잘 아네. 아마 그럴 거다.’
아마 그걸…… 자른 후, 말리고 빻아서 만들었겠지.
여우의 후각을 쓸데없이 성능이 좋아서, 냄새에 적잖이 민감했다.
하물며 마에 관련된 족속들에게는 짙은 혐오감을 느끼는 난데. 지독한 냄새 속에 마인이나 마물의 냄새가 섞이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어머? 대답 안 해주시는 건가요? 난 조각상 같은 남자가 취향이지만, 진짜 조각상은 별론데.”
“……글쎄요.”
“흐음~ 우리 동포와 비슷한 파장이 느껴져서 와봤는데, 허탕이었네요.”
우리 동포?
저 정도 수준의 마인이 동포라고 말할 정도라면.
‘<실낙원의 귀족들>을 말하는 건가?’
─실낙원……? 잃어버린 낙원이란 뜻인가?
‘글쎄. 잃어버린 낙원일 수도 있고, 버림받은 자들이 낙원을 향하는 걸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저들이 속한 단체의 의의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무력과 위험도.
─눈앞의 미친년은 그렇게까지 강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데. 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다른 놈들은 꽤나 강한 모양이네?
‘아마…… 이 녀석은 최약체일 가능성이 높아.’
─자, 잠깐만…… 저게 최약체라고? 언뜻 살펴봐도 마기가 심상치 않은데?
실낙원의 귀족들은 소설 내 후반부까지 영향력을 끼치던 집단이다.
사실상 주인공과 히로인들과 대적하는 최종 보스 집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놈들인 만큼 나도 그들에 대해 잊어버리기 전에 일기장에 꼼꼼히 기록해 뒀다.
‘아마 이년의 이름은…… 어라?’
왜 기억이…… 아니, 애초에 어째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녀는 딱히 내가 살던 곳에서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다. 어지간한 마인은 내가 죄다 검으로 베어 죽였으니 간단한 인상착의나 권능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년은 아니다.
아무런 기억도 없다.
하지만 나는 마치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고로 접근했다.
단순히 피곤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뭔가, 무언가가 있다.
어느새 그녀는 목석 주제에 은근히 얼굴 보는 재미가 있는 놈이라며, 다음에 또 보자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저 멍하니 녀석의 빈자리를 노려봤다.
그 모습은 마치 건전지가 빠져나간 장난감처럼 정적이고 고요해서, 지나가던 시민이 뒤돌아보면서 쳐다볼 정도였다.
“…….”
그들의 시선을 줄곧 느끼던 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단지, 서 있었다.
이후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의 신고로 찾아온 경비원들이 오기 전까지.
“……이브의 짓인가?”
나는 그저 서 있었다.
지금 당장은 생각 외에 다른 행동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 * *
“다녀오셨습니까.”
세 치 혀로 사람의 뇌를 교묘하게 파먹는 공작새.
일명 미모 후작은 시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에포츠 자작의 저택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참고로 그녀는 미모 후작이라는 표현은 좋아했지만, 전자로 칭하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참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는데.
안타까워하는 시몬을 향해 그녀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것보다도 내 말부터 들어보세요.”
“무슨 말이시죠?”
“방금 마을에서 잘생긴 사내를 만났어요.”
까칠하고 묵묵한 모습이 매력적인 사내.
사실 말이 많거나 욕을 날렸어도 그녀는 똑같이 매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차가웠죠. 그게 매력적이었지만.”
매력은 얼굴로 완성되는 법.
……이라 주장하는 미모 후작이었다.
그녀는 미모라는 수식을 제게 달았을 만큼, 얼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내는.
그런 그녀의 기호에 잘 맞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얼굴은 뭐, 당신보다 잘생겼어요.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넘어가고. 특이한 점은 이 세계에서 보지 못한 검은 체모와 여우의 형질을 그대로 품고 있는 아인이더군요.”
검은 체모.
여우의 형질.
아인.
그것으로 시몬의 머릿속에는 한 사내가 떠올랐다.
현재 매스컴에서 2달 내내 뜨거운 감자로 조명 받고 있는 그가.
“검은 머리에 여우의 꼬리와 귀 말씀이십니까……?”
“네, 심지어 꼬리가 세 개던데. 천호백가의 핏줄인 것 같던데요?”
“……푸흐흐.”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자의 인상착의를 들은 시몬은 실실 웃더니, 이내 폭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빨리 조우시켜 줄 생각은 없었는데.
이러다간 저쪽에서 단단히 방비를 취할 것 같군요.
푸하하!
시몬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붉은 머리의 사내와 공작새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뭐냐, 가축. 머리라도 다친 거냐?”
“괜찮으신가요? 혹시 제 매력에 정신이라도 아득해지신 건가요? 아…… 어찌 저는 이토록 매력적인 여인인 건지.“
“지랄 마라, 미친년아. 매력은 개뿔.”
“어머, 광견병 걸린 동족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걸요?”
서로의 미간이 좁혀지며, 사내와 여인은 맞붙었다.
“정신병과 자아도취에 걸린 년.”
“분노 조절 장애. 그러나 정작 공작과 후작 각하들 앞에서는 분노 조절 잘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후후, 그래도 미친개에게 비교할 정도는 아니죠.”
서로를 비방하는 둘을 보며, 여전히 실실 웃던 시몬이 생각했다.
우선 아이들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이 도시의 이면에 넘쳐나는 부랑자들.
자작에게서 쓸모없으니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확인을 받은 그는, 이를 활용해 자폭과 분신자살을 계획했다.
저들의 희생은 순교.
모든 것은 마교를 위해.
섬뜩한 계획을 세우는 시몬의 뒤로, 붉은 머리의 마인이 지나갔다.
그는 여인과 말다툼하는 것이 지쳤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 나는 어조로 말했다.
“혹시 몰라서 말해두는데. 잊지 마라, 가축. 내가 너에게 맞춰주고, 협조하는 이유는 동족들이 깨어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게 지위의 상승을, 그 비루한 목숨을 걸고 약조했으니까.
네놈의 수완을 한번 확인해 보는 것뿐이다.
낮은 목소리로 정신 그 자체에 울리는 뒷말.
이윽고 그는 더 이상 머리를 쓰기 귀찮다는 듯, 손만 흔들고는 침대에 누우려 자리를 떠났다.
붉은 머리의 마인은 시몬의 눈과 마주친 것만으로,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은 눈치였다.
이런… 꽤나 눈치가 있는 분이셨군요.
“하하! 물론이죠. 어, 이런 벌써 가셨나요?”
“어쩔 수 없답니다, 시몬. 그는 무척이나 나태하고, 하찮은 자이니까요.”
“뭐, 그게 그분의 매력이니까요. 그나저나 미모 후작이시여,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이제 그만 당신의 사상을 뽐내소서.“
한편 공작새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와 달리, 큰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기뻐했다.
드디어.
“무지몽매한 이 시대, 이 세계의 민중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알려줄 수 있겠네요. 후후…… 기대가 돼서 미칠 것만 같아요……!!”
지혜와 지식.
가르침과 웅변의 마인.
그녀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이자, 산 제물의 위에 선 아름다운 공작(孔雀)이자 미모 후작(侯爵)이며, 동시에 마인들의 남작(男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