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25화(12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25화
도시와 부랑자(5)
오래된 기억이다.
……요즘 따라 오래된 기억을 자주 떠올리곤 하네.
뭐지, 나도 늙어서 영광된 과거를 회상하곤 하는 노인이 된 건가?
그런 것치고는 내 과거 중에 영광된 시절이 없을 텐데 말이지.
여하튼 뿌리를 타고 내려간 기억은 꽤나 과거…… 내가 학생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나이가 많았을 즈음이었다.
‘하필 떠올려도 이건 떠올리네.’
요즘 들어 이런 날이 종종 있다.
오래된 기억, 잊고 싶은 꿈을 꾸는 날들.
최근 이면 세계에 온 이후로 그 빈도가 이상하리만큼 증가했다.
이 정도 빈도수라면 백치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내 기억이나 꿈을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항하고 싶지만, 깊은 심해에 빠지는 듯한 무력한 감각이 전신을 휩쓸었다.
나는 그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오래된 과거 하나가 내 뇌리에서 재생되었다.
……
스승님은 내게 언제나 웃으라는 말을 하셨다.
웃으면 복이 온다거나, 힘들어도 웃어서 견디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웃으라는 거다.
그분은 언제나 내가 웃으면 좋아했거든.
그때는 마냥 좋아서 웃었지만, 때때로 스승님의 눈이 위험해지셨던 걸 떠올려 보면 사실 그런 쪽 취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형님! 이 새끼 웃고 있는데요?!”
“가만히 둬. 일주일 동안 고문당하면서 실성했나 보지. 제아무리 군국 최강의 병기라도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이상,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망가뜨리면 끝이니까.”
“…….”
내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꽉 막힌 사방.
내 몸에는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마력이 제대로 모이질 않고, 의념도 갈무리되질 않는다. 심지어 사지는 단단히 묶여 칼이나 망치 따위로 두들겨 맞으니 웃음보다 내장이 먼저 나올 지경이었다.
“구……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혀, 형님 이거 입을 열었습니다! 무릎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도끼로 내리찍어도 입도 뻥끗하지 않던 녀석이……!!”
“좀 닥쳐봐.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게 입을 열었다는 게 더 중요하지. 그래, 검성 각하께서 우리 같은 천민에게 무슨 볼일이실까.”
피가 잔뜩 흘러, 딱딱하게 굳어버린 입을 힘겹게 열자 두 사내가 다가왔다. 동공이 뒤집힌 역안과 산양의 뿔을 가진 마인들.
둘은 나이프와 집게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다가왔다.
쇠붙이에 검붉게 눌어붙은 피는 전부 내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피가 부족해서 쇼크사하더라도 모자랄 피를 줄줄 흘렸지만, 나는 살아 있었다.
강철 같은 의지와 정신력으로 무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가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푸…… 커 흙…… 너희들 같은 잡종이 어찌 나를 납치한 것이지……?”
“……그 질문을 잡혀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하는 거야?”
“어지간히도 미쳤나 보군. 하긴 그 <염라>가 코앞에서 죽었다는데. 제정신으로 있기는 힘들겠지.”
염라.
불과 검의 여신.
그녀가 행차하는 전장은 언제나 유황불이 꺼지지 않으며, 죽음과 탄내가 만연했다.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
그러나 그 냄새가 전장에서 빠진 지도 이제 일주일이 다 됐다.
“……돌아가셨나.”
그래…… 역시 그건 꿈이 아니었나.
스승님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억지로라도 과거 속에 머무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이상은 시간 초과인 모양이다.
하긴 이런 외진 곳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히 오래 보낸 거지.
고통에 미쳐, 추억에 잠겨 있기에는 마음 한구석의 텅 빈 상실감과 그녀의 유언이 너무나도 컸다.
슬슬 움직여야지.
차르르르─!
근육으로 가득한 단련된 몸.
전신의 관절과 뼈마디를 사슬로 묶었음에도, 나는 발버둥 쳤다.
차르르르─! 차르르르──!!
사슬과 사슬이 부딪히며 커다란 금속음을 낸다.
그럼에도 사슬은 떨어지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푸하하하! 야, 그게 빠지겠냐?!”
“혹시 몰라서 사슬 끝에 날붙이를 달고, 네 살에 쑤셔 박아 넣었다. 그런 게 쉽게 벗겨질 것 같니? 죽은 후 네 시신을 해부해도, 살점을 칼로 썰어도 쉽지 않을걸.”
그 말을 듣고 이제 와서 보니, 관절이나 손바닥을 비롯한 전신에 날붙이가 꽂혀 있다.
“내가 무슨 예수도 아니고…… 왜 십자가에 달아뒀나 했더니만. 이것 때문이었나.”
“이제 알았냐? 넌 못 도망친다!”
“야, 이 멍청한 녀석아! 힘줄도 끊어놨는데, 놓아준다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겠냐? 절대 못 할걸, 하하하!!!”
“그래도…… 내가 너희보다는 강하지 않을까?”
“하?! 관절이 망가지고, 왼쪽 다리는 덜렁덜렁거리는 꼴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그래?”
콰득!
목이 가볍게 돌아가며, 뼈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그런 것치고는…… 목뼈가 지나치게 말랑하네. 마치 과자처럼 말이야.”
“서, 선배……?”
“고작 이런 놈이 톱으로 내 다리를 거의 괴사시킨 건가? 배짱은 대단하네. 너희들 위에 있는 간부들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야. 뭐…… 그래 봤자 성모께서 회복시켜 주시면 그만이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예수처럼 십자가에 묶이는 거,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치료해 줄 선생님의 별호가 <성모>이시니.
어떤 의미에서는 찰떡이네.
“대체 어떻게……? 사슬과 몸에 마기를 때려 박아서, 마력의 유동을 끊었을 텐데.”
“선천진기.”
심장 혹은 심상.
가장 깊은 곳에 묻혀 모든 기를 아우르는 중심에 있는 생명력 그 자체. 인간의 삶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기인 선천진기를 아주 조금.
티끌만큼 떼어와 나를 고문한 날붙이들을 움직였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했거든. 여하튼 이제는 내 차례 맞지?”
속박을 시작으로 사지를 조금씩 조여가며 칼, 도끼, 망치, 못 따위로 두 형제의 살과 내장을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일주일 동안 받은 고문을, 조금 타이트하게 7시간에 걸쳐 대갚음해 줬다.
고문을 통해 얻어낸 정보도.
복수에 대한 통쾌함도 없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받은 것을 대갚음해 준 후 스승님의 말씀을 되새겼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내가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그분의 말씀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웃으라고 했던가.
“히, 헤헤, 히흐흐흐흐……!!”
이렇게.
이렇게 웃으면 되는 거지, 스승님?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푸흐, 하하하하하!!!”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래서 아예 차라리 광기에 몸을 맡겼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념무상보다 고요한 정적이었다.
차라리 살기보다는 이대로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해 희생한.
전우들에 대한 모욕.
무엇보다도…… 끝까지 싸워서 쟁취하라는 스승님의 유언에 어긋난다.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가면을 만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여러 상황과 여러 사람에 대비하기 위해 잔뜩. 내가 만들 수 있는 한 다양한 가면을 뒤집어썼다.
영 불쾌한 감각.
실제로 얼굴 가죽에 무언가를 붙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닌 무언가를 연기하는 듯한 감각으로부터 비롯되는 생리적인 불쾌감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피로 웅덩이를 이룬 표면에 빛이 반사되며 희미한 내 표정의 윤곽이 엿보였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자연스러운 표정.
“좋아, 이거라면 잘 웃을 수 있겠네.”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모를 정도로 완벽한 가면.
즉석으로 만든 것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했다.
그렇게 성년도 채 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은 우는 법보다 웃는 법을 먼저 배웠다.
감정을 토로하고 내뱉는 것보다 가면을 뒤집어쓰는 법을.
고통을 호소하는 것보다, 참고 견뎌내는 법을.
꽃을 키우고 생명을 기르는 것보다, 마물이든 사람이든 적이라면 망설임 없이 죽이는 법을.
배우고, 익히고, 숙달하고.
이윽고 완숙했다.
그리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모략가와 철혈의 군신이 탄생했다.
찔러도 피를 흘리기 이전에, 웃으며 상대를 죽일 방법만 궁리하는 검성이 만들어졌다.
전쟁의 역사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하고 미친 병기.
이후 가면은 역경과 희생, 거듭되는 전쟁을 통해 더더욱 정교하고 단단해져 벗겨지지 않을 철가면이 될 것이니.
백승우.
어느샌가 내 이름 석 자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닌, 인류의 희망이자 등불 그 자체. 그와 동시에 인류 최후의 수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마냥 웃기만 하였다.
민중의 희망, 영웅의 상징인 내게 웃는 얼굴 외의 다른 표정은 필요치 않았다.
* * *
이 세계에서 보내는 다섯 번째 아침.
이제 남은 시간은 이틀에서 사흘 사이에 불과하지만, 공략의 진행도는 최소 기준인 50%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방학 숙제도 아니고.”
마지막 하루에 전부 해결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직 시간은 미묘하게 남았지만, 자연스레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얘들아 안녕~ 너희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자, 잠깐만 얘들아! 난 친구가 아니라 형이야! 자꾸 그렇게 올라타지 말고……!”
“얼음으로 곡예라도 보여줄까?”
답사한답시고 함께 외출한 학생들이 외진 길목에서 아이들을 여럿 만나자마자, 돌연 중간고사에서 봉사 활동으로 변했다.
“봉사 활동은 수행 평가만으로 족하지 않나?”
“다들 좋아하는 표정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마자요! 다들 행복해지면 조찬아요!”
“난 안 좋은데.”
그런 아이들의 행보에 나는 머리를 싸맸다.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친절하고 상냥한 것은 좋지만, 공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아직 이 중간고사의 중요성과 이면 세계에 얽힌 것들에 대한 위험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그런가.
다들 나긋나긋한 면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속도라면 50% 정도는 쉽게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해도 될까……?”
“그래…… 하루 정도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애제자나 다름없는 서예린의 부탁에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한 번 고생 제대로 해봐야 다시는 이런 말을 안 꺼내지.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 찰나로 쪼개며 분주하게 활동해도 모자랄 판에 괜한 일에 정신이 팔리면 어떻게 되는지 배울 좋은 기회.
내 수락에 학생들은 크게 기뻐하며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길가의 아이들을 도왔다.
“자, 얘들아. 배고픈 사람들은 이리로 오렴.”
배를 곯은 아이들은 노유라와 서예린의 말에 따랐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
프런티어는 테밀 마을에 비해 인프라가 발전했고, 주민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에도 이곳의 아이들은 테밀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양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시스는 얼음을 이용한 곡예를 통해, 어린아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모았다. 또래처럼 보이는 이지는 특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고 경계심을 낮췄다.
우리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저 모습으로 17살이라고? 후후…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저건 내가 봐도 그렇네.”
대체로 다들 14살 정도로 보이는데.
이지는 그중에서도 체격이 왜소한 편에 속해, 가장 나이가 많음에도 도리어 가장 막내처럼 보였다.
신기하네.
성연화는 특유의 활발함으로 어린아이들의 경계심을 허물고, 벌써 어울려 놀고 있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가는군.
‘결국은 이미 멸망한 세계에 불과하거늘.’
저 아이들의 봉사 활동의 의의는 무엇일까.
자기만족?
나보다 못난 누군가를 봉사한다는 사실에서 보는 우월감?
순수한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지나치게 특수했다.
저들에게 봉사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얼마 안 있어 이 세계는 멸망한다.
그런 세계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썩 효율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나 혼자였다면 그런 미련한 선택지는 결코 고르지 않았을 것…… 그건 아닌가.
그 논리로 따지면, 내가 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큰 차이는 없으려나.
“……요즘 따라 쓸데없는 생각이 잦네.”
불필요한 잡념을 지웠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거리를 조금 벌릴 필요가 있었다.
터벅터벅.
뒤로 뒷걸음질 치며 학생들과 거지꼴의 아이들을 한눈에 담았다.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네.
아이들의 옷과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저 아이들은 부모가 없다.
설령 있더라도 저 아이들을 챙겨주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쉽게 말하면 부랑자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현대와는 다르게 중세 배경의 이 세계는 부랑자에 대한 정책이나 도움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다들 혐오하기 바쁘다.
그렇기에 외진 길과 골목에서 부랑자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눈에 쉽게 띄게 마련이다. 예시를 들자면.
“얘들아 언니 말 잘 듣고 있었어?”
“네에! 언니 오늘도 사과예요?”
“아니! 오늘은…… 빵이랑 수프를 가져왔어!”
그래, 저 옆 골목.
봉사에 정신이 팔린 학생들은 보이지 않을 구석에서 이사벨이 몇 명의 아이들에게 딱딱한 빵과 미지근한 수프를 주는 광경.
눈에 너무 잘 보여서, 못 본 척하기도 힘들 정도다.
“어디 있나 싶었는데. 역시 이 도시에 있었군.”
그녀의 복장을 살펴보니, 여러 방어 마법이 걸린 교복 위로 중세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도시에는 마탑이 있었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이사벨의 마탑 소속의 마법사로 역할이 주어진 모양이다. 자신의 영역을 펼치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
그런데.
‘보통 중세 배경의 마법사라고 한다면, 거만하지 않나?’
쟨 뭘 저렇게 밥을 열심히 챙겨주고 있는 거야.
평소 행실에 걸맞지 않게 아이들을 챙겨주는 그녀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이사벨이 돌보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그녀의 소매를 꾸욱 잡아당기며 내게 삿대질했다.
“언니, 저기 이상한 오빠가 빤히 쳐다보고 있어.”
“이상한 오빠? 어디, 어떤 놈이야?”
“저기 있잖아. 저~기.”
그러자 그제야 시선을 마주치는 나와 이사벨.
“…….”
“…….”
“언니……?”
얼굴을 마주쳐도 계속해서 가만히 쳐다보자.
부끄러운 꼴을 들켰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필사적으로 손을 저었다.
“…….”
“보, 보지 마! 그런 따스한 시선으로 날 보지 말라고!!”
비록 변하는 건 없을, 무의미한 봉사일지라도.
봉사를 한다는 것,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이도 적지 않은 만큼 당당해도 상관없을 텐데.
이사벨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뭐랄까.
첫인상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귀여운 녀석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