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27화(12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27화
죽어버린 도시(2)
봉사 활동이랍시고,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의외로 생각보다 빨리, 2시간 이내에 끝났다.
내일은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
중간고사의 최종일이라서 그런가. 학생들은 유독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이사벨과 일행은 자연스럽게 만났다.
애당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으니까.
만남은 손쉬웠다.
“이사벨, 드디어 찾았네.”
“땅딸막한 네가 나를 찾았다고? 내가 위에서 널 찾은 게 아닐까?”
“웃기고 있네. 혼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서. 다른 애들은 하루 만에 만났는데, 너 혼자만 6일 차에 합류한 거 알아?”
이사벨과 이지는 만나자마자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정겹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정겨운 모습…… 맞지?
‘대충 그렇다고 쳐.’
저 정도면 정겨운 편이지.
만나자마자 서로 죽이려 드는 인간관계가 사회에서 얼마나 흔한데.
참고로 절대 개인적인 경험담은 아니다.
진짜로.
“이사벨! 이사벨은 그동안 어디에 이써써요?!”
“나? 저기 가장 커다란 건물 보이지?”
이사벨이 손가락 끝으로 기둥처럼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그녀가 역할을 배정받은 장소.
“마탑이라고 하는 곳이야.”
“마탑?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마탑?”
“아무래도 그거 하고는 다르지. 우리가 흔히 아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권위 있는 마법사들의 집단이지만. 듣자 하니 이 대륙에서 마탑은 대도시들마다 있는 공공기관이라는 것 같아.”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겠군.”
그러니까, 결국 마탑은 마법사들을 채용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령(領) 단위의 대대적인 개발과 보안 따위를 담당하는 곳이다.
중세에서 흔히 일컫는 마법사다운 일은 죄다 하는 곳이겠지.
물론, 치안과 경비는 기사단의 몫이고.
“일은 힘들지 않고?”
“딱히? 견습생도 아니고, 어느 정도 짬이 있는 마법사로 배정받았거든. 틈틈이 이런 식으로밖에 나올 수 있는 정도려나.”
“자유 시간이 널찍하진 않은 편인가?”
“아무래도 그런 편이야. 특히 몇 년 전부터 이 땅의 영주가 지시한 걸 차례차례 해결하다 보니까 인력난도 좀 있는 편이지.”
“영주의 지시?”
이 땅의 영주라면 에포츠 자작일 텐데.
그 노인네가 무슨 지시를 내린 거지?
“글쎄. 자세한 내용까지는 나도 몰라.”
“그런 걸 알기에는 권한이 부족한가?”
“그렇진 않아. 내 원래의 지식과 지혜가 바탕이 된 덕분에, 마탑 내에서도 한 손안에 드는 지위를 거머쥐었거든.”
“그 정도면…… 귀찮아서 안 찾은 건 아니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꽤나 모욕적이었는지, 이사벨이 곧장 반박했다.
“내가 당신 같은 줄 알아? 당연히 찾아봤어. 다만…… 마탑주가 아닌 이상, 읽을 수 있는 문서가 아니더라고.”
“그런 공문서가 있을 수 있나?”
마탑의 주(主), 한 집단의 수장이 아니라면 읽을 수 없는 공문서와 이 땅의 주인이 내건 지시.
아…… 이거 냄새가 난다.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코가 삐뚤어질 정도다.
“이거 너무 뻔하지 않아?”
“흑막은 정해졌네.”
“너무 뻔해서, 의외로 페이크일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민중들에게는 비밀로 했던, 복지 활동의 일환일 수도 있고요.”
“방금 그 광경을 보고도 그 말이 나와?”
이지의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노유라가 반론을 내놓았으나.
이내 이사벨의 주장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녀가 눈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은 방금까지 그녀들이 거지꼴의 아이들을 챙겨주던 장소. 이런 곳이 버젓이 있는 도시에 무슨 복지란 말인가.
차라리 부랑자 청소가 더 어울릴 판국이다.
“방금 그 광경……? 아, 하긴 그렇겠네.”
“흥, 알면 됐어.”
“흥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이런 미친. 거기서 그게 들렸어?”
이사벨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런 태도에 몰래 중얼거린 이지.
그러나 입으로 중얼거린 탓에 이사벨의 귀에 들리고 말았다.
그러게 혼잣말은 속으로 해야지.
여기 있는 애들은 죄다 초인인데, 그게 안 들릴쏘냐.
그래도 뭐…… 덕분에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
이후 둘은 술래잡기를 했다.
여전히 술래는 이사벨이었다.
뭔가 데자뷰를 보는 것 같은 광경.
그러나 정작 저 둘이 진심으로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부로 하고 있었다.
이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는데, 일부로 이런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그 덕분에 둘을 지켜보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작은 웃음꽃이 피었다.
이사벨도 조를 이끄는 장으로서 이지의 행동에 동참해 준 것으로 보였다. 뭐랄까, 대견한 놈들일세.
“야, 잡히면 죽는다?”
“미친! 진짜 폭격을 날리지 말라고. 나 방패 지금 가방에 있다고!”
“그럼 진작에 꺼냈어야지!”
“이럴 줄 알았나, 염병할!!”
…….
어, 음.
‘……분위기 유도하려고 그러는 거 맞지?’
제발 맞는다고 해줘라.
우리 분위기라도 훈훈하게 가자.
* * *
해가 저물고, 초봄의 밤 특유의 싸늘한 바람이 도시를 매웠다.
이윽고 6일 차의 밤이 지났다.
승우는 도시 내 도서관에서 제국의 역사나 암투와 관련된 모든 책을 꺼내 훑었다. 이 중세 배경에 그런 책이 거의 100여 권 가까이 있었는데, 용케 아침이 오기 전에 전부 읽었다.
그 덕분에 이 프런티어라는 도시가 가지는 지리적인 위치나 장점, 정치적인 활용도를 전부 분석할 수 있었고.
선대로부터 내려온 프런티어 자작들의 행동 양식을 파악할 충분한 근거들을 암기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에, 자색 벌레를 이용해 이 도시의 새벽과 저택 내부를 조금씩 탐사했다.
그 덕분에 전투가 일어나게 될 경우, 어떻게 도주하고, 어떤 식으로 싸움을 유도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웠다.
“얘들아.”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잠시 할 말이 있는데…….”
“언니 또 왔구나!”
“오늘은, 와! 고기다!”
“아, 잠깐만요. 얘들아 말린 육포밖에 없지만, 수프에 푹 넣었다가 먹으렴.”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얘네들은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들인 만큼 새벽에도 진지하게 임할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시간을 날릴 줄은 몰랐다.
거지꼴의 아이들로 가득한 도시의 뒷면.
분명 거기서 봉사한 지 하루가 지났거늘.
어제와 똑같은 모습에 내가 지금 과거로 돌아왔는지, 아니면 꿈을 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우는 작금의 상황을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건 약속에 없지 않았니?”
이틀 연속으로 봉사 활동을 한다고는 안 했잖아.
“그래도 내일 또 와주겠다고 약속했는걸요?”
“……이봐, 노유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승우는 이마에 손을 올렸다.
골치가 아파지고, 입안에 단어가 몇 개 맴돈다.
지금 하려는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해도 되는 말인지 몇 번이고 곱씹은 끝에 내뱉었다.
“너희들 미쳤냐?”
“……네?”
“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감수할 수 있겠냐고.”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중간고사는 내일을 기점으로 종료된다.
내일 밤까지 공략의 최소 목표치인 50%를 끝내지 못하면, 부분 점수도 없이 전원 0점 처리를 받을 것이다.
부분 점수도 시험에 끝까지 임한 학생에게나 부여하는 것이지.
끝내지도 못한 학생에게 주는 게 아니다.
가혹해 보일지언정, 냉정한 플레이어 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융통성 없는 중간고사 채점 방식은 이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성적이 걸려 있다고 하더라도.
내 학생들은 눈앞의 아이를 못 본 척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착해서 탈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허상이라, 봉사해도 공허해질 따름임에도 말이다.
“지금 공략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아, 네? 무, 물론이죠. 오늘 아침에 저택에서 확인했는걸요. 41.2%라고요.”
노유라가 상태창을 열고, 허공을 눈으로 살폈다.
그녀의 시야가 바닥을 향할 때 즈음, 구체적인 수치가 입에서 나왔다.
41.2%.
한없이 절반에 가깝되.
하루아침에 절반까지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치.
이걸 하루 안에 해치우려면 새벽에도 끊임없이, 계획을 짜서 지금쯤 실천에 옮겼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학생들의 안일한 태도에 순간 멍해지다 못해, 화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할 무렵.
툭툭!
무언가 복부를 치는 감각에 승우가 그것을 쳐다보자, 웬 공책 한 권을 배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게 뭐지?”
“그동안 내가 마탑에서 보고 들은 자작과 마탑주의 대화. 그리고 근 3년간의 이 도시의 물가와 이에 시민들의 물가와 생각. 그 외에도 여럿 조사해 왔으니까, 봐봐.”
“그래.”
공책을 받은 나는, 이를 곧장 펼쳤다.
우선 읽어는 보겠다.
학생들이 무엇을 조사해 왔는지. 이 안에 전부 적혀 있을 테니까.
족히 100페이지에 달하는 공책은 여러 자료들과 이에 대한 분석과 추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몇 배는 자세하고 정교한 정보들이었다.
‘지난 5년간 자작이 징집한 농민 남성의 비율과 그 노동력으로 지어낸 건물의 크기와 수준의 차이. 10년간 주민들이 낸 세금의 사용처와 공백. 근 20년 주기적으로 주변 토지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진동 현상.’
그것뿐만이 아니다.
도시의 지하 수도에 프런티어 자작가의 치세에 불만을 품은 반란 분자, 일명 혁명단이 있다는 소문과 이에 대한 증거.
저택에서 보관하고 있을 식량이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자료와 통계 등등.
아주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이 땅의 모든 것을 분석한 자료였다.
물론 상당한 양의 자료는 승우가 전날 밤을 새워서 분석해 낸 정보와 겹치고 있었지만, 특정한 부분은 아예 상정하지도 못했으니.
그게 바로 반란 분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너무 얕봤나.”
승우가 마인들과 자작을 비롯한 제국의 역사 따위의 정보를 찾을 때.
그녀들도 나름대로의 정보원을 손에 넣고, 이 도시와 세계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승우가 자색 벌레를 이용해 음지와 양지.
양쪽에서 정보를 수색한다면, 학생들은 부랑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주관 섞인 정보들을 엮어 하나의 마인드맵을 만들어낸 것이다.
뭐…… 마인드맵치고는 노트 50장 분량의 보고서에 가까웠지만.
“어때. 우리도 마냥 생각이 없거나, 착해 빠져서 이런 곳에 온 게 아니라고. 봉사는 어디까지나 겸사겸사에 불과하니까.”
“잘했네.”
공책의 내용을 눈으로 크게 훑고, 「마도성」의 권능으로 내용을 단번에 암기했다. 굳이 마법에 얽힌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지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마도성」의 지식욕과 권능은 어떻게든 게걸스럽게 내용을 저장하고 분류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완전 기억능력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특성이 돼버렸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식을 저장하는 용도일 뿐. 이를 용도에 알맞게 활용하는 것은 내 주관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이를 적절하게 활용할 능력이 있었다.
“오늘 여기 또 온 이유. 혁명군, 맞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반란의 불씨가 피어나고 있더라고. 그래서 더더욱 몸을 사리려고 하는지. 여기 말고는 접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결국 학생들은 다시금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 세계의 주된 배경인 자작가와 대립하는 집단을 찾아가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사벨이 말하기를, 그녀들이 찾아야 하는 정보원은 어린아이.
어린 사내아이라고 한다.
내 눈에는 아이들 나이대가 전부 거기서 거기로 보여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본능이 직감하고 있었다.
마치 내 육체에 명령조로 지시하듯, 강제적이고 즉각적인 신호였다.
이를 말로 옮기자면.
고개를 틀어라.
살피고 훑어라.
직감과 육감에서 어긋난 본능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승우의 신경을 바늘처럼 찌르고 있었다.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서둘러 몸을 움직이라고. 결국 이성 위에 선 본능은 그의 몸을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그 끝에는.
“이거…… 먹을 수 있겠어.”
“으, 으응.”
“한번 식혀서 줄까?”
“응.”
“그래,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후후, 수프를 식히는 서늘한 숨결.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초봄에 가까운 도시의 기온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데운 수프를 식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제 품에 안긴 누군가를 위해 수프를 친히 입으로 식혔다. 그건 친애를 넘어선 보육과 사랑의 형태.
내가 식혀서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아이들은 많이 어려 보이네.
‘그러게, 유독 어려 보이네.’
가슴은 아프되.
실로 인류애가 차오르는 광경.
승우의 본능은 이런 광경을 보여주려고, 이성 위에 오롯이 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다.
애당초 그의 눈은 두 아이가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그 밑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짤랑─!
소년의 가슴에 걸린 무언가가 수프를 담은 그릇과 부딪히자 청명한 소리를 냈다.
금속끼리 가볍게 부딪쳤을 때 들리는 특유의 소리.
그것은 명찰이었다.
명찰에 새겨진 것은 꼬마 아이의 이름.
멀리서도 반사되는 명찰의 반짝임에 승우는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터벅터벅.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새, 그의 발걸음을 어린 꼬마를 향했다.
“네가 찰스라는 꼬마니?”
“……누, 구세요?”
“……으으우.”
허벅지에 겨우 올 법한 작은 키.
그런 작은 키의 꼬마가 제 품에 그보다도 작은 아이를 품고 있었다.
더 작은 아이에게 달린 명찰 속 이름은 메리.
남매로 보이는 둘.
그런 두 아이와 마주한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가슴팍에 빳빳한 종이의 감촉은 여러 명이 꾹꾹 담아서 쓴 편지지란 형태로, 코트 속에서 승우의 가슴을 눌렀다.
그것은 복선의 징조.
이 세계가 정해진 결말로 향해가는 올바른 길임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