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29화(12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29화
죽어버린 도시(4)
충분히 시간도 끌었겠다.
슬슬 그녀를 떼어놓으려고 했는데.
“왜 따라오시는 겁니까. 스토커라도 되시는 건가요?”
“나는 이 도시의 치안을 총괄하고 있다네.”
아하, 그러시군요.
참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자네…… 지금 속내가 곧장 튀어나오지 않았나?”
“그래서 뭐, 상관있습니까? 어쩌라고요.”
“……난 정말로 자네가 싫어.”
속을 살살 긁으니 금방 반응이 온다.
몇 번을 놀려왔지만, 도저히 이만한 규모의 도시를 책임지는 기사단의 단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약하고 무딘 멘탈과 반응.
이쯤 되면 에포츠 자작 그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기사단장의 위치에 올려놓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요? 저도 당신이 싫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체류하고 싶다면 참도록 하게.”
“그게 무슨 뜻이죠?”
“자작님의 명이다. 설령 손님이라도, 치안을 어지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내가 감시하라고 말씀하셨다.“
치안을 어지럽힐 가능성?
자작이 무슨 생각으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의문을 품은 그때.
창문에서 몰래 마인들과 함께 있었던 테르미야와 자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말이다.
‘그런 명령을 내린 게 자작이 아니라, 마인일 가능성도 있겠어.’
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테르미야와 자작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온 마인들이라면 나를 경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지금까지 어지럽힌 그들의 계획만 한 달 사이에 벌써 두 개나 된다. 어지간한 마인들이라면 자작과의 교섭으로, 자작령 제일의 실력자로 보이는 그녀를 내 곁에 억제력으로 둘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은 순응하는 편이 좋겠다.
별달리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내가 자작보다 지위가 높은 귀족도 아니고, 그들에게 당장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이 땅의 영주가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최선이다.
“저를 따라오신다고요?”
“그래, 싫지? 나도 싫다. 하지만 이건 북부의 혹한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하시는 자작님의 명령인 만큼 불복종은…….”
“알았어요. 그러면 같이 갑시다.”
“대체 어디를?”
“보면 모릅니까. 아이들 챙겨줘야죠. 당신도 따라온 김에 한 손 거드시죠.”
그녀는 결국 나를 뒤따라 부랑자들이 가득한 골목에서 아이들을 챙겨주러 왔다.
학생들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이었다.
신기한 게 몇 번이나 왔음에도, 어른은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
오직 아이들만 가득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밥을 퍼주며,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가볍게 놀아주려고 하는데.
“나 저거 싫어! 무서워!”
“무, 무섭다고……?! 이 갑옷이?”
“우와……! 갑옷 괴물이다. 모두 도망쳐!”
“우와아아아!!”
피부가 노출되는 부위 하나 없이, 견고하고 단단한 갑주로 전신을 가린 테르미야의 등장에 모두들 도망치기 바빴다.
하여 어떻게든 아이들을 모으고자 밥을 미끼로 사용했지만, 어째 다들 내 주변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다들 그녀가 무서운 눈치였다.
하긴 이런 외지고 인적 드물어 방치된 곳에 깔끔한 갑옷을 치렁치렁 입고 온 기사라니. 나 같아도 미심쩍어서 피했을 것 같다.
오죽하면 먼발치에서 학생들이 그녀를 째려보고 있을까.
“애들이 아무도 당신을 안 따르는데?”
“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갑옷이라도 벗으면 애들이 조금은 달라붙지 않을까?”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테르미야의 머릿속에 갑옷을 함부로 벗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모양이다.
“소, 소인도 빈민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중에 아는 애들이 분명 한 명이라도 있을 텐데……!”
빈민가 출신이라.
그런 과거를 가진 것치고는 꽤나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녀가 자작을 섬기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일까.
어쩌면 테르미야는 구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궁창에서 살다 보면 간절히 구원을 바랄 때가 있거든.
그 마음 잘 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구원의 손길은 매우 비좁고 한정적이기에, 그녀처럼 타인의 손길과 성은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성공과 출세의 덕을 에포츠 자작에게 넘기고, 그를 우러러보는 것이 분명하리라.
참…… 멍청하네.
아직 그녀도 소녀의 티를 벗을 때가 되긴 했지만, 어려서 그런가. 가진 바 실력이나 재능에 비해 지나치게 순진하고 멍청했다.
‘이건 분명히 사용할 순간이 온다.’
그녀의 과거에 성정에 대한 추론.
이는 오늘 밤 유용하게 다룰 수 있는 패임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비수를 다루듯 품에 숨긴 채 화두를 평소와 같이 놀리는 방향으로 돌렸다.
“푸하하하! 사실 본인만 친구였다고 착각했던 거 아니야?!”
“닥치십시오! 이 찢어 죽일 여우가!”
“사실만을 말하는 여우지만 말이지.”
“이이……!! 한마디를 안 지려고 꾸역꾸역 말하는 꼴이 어린애 같군요. 저는 더 이상 당신의 말에 응수하지 않겠습니다!”
됐다.
자연스럽게 놀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우리 기사단장 나리의 신경을 천천히 긁으며, 보다 깊은 정보를 천천히 파낼 차례다.
“정말로?”
“…….”
“자신 있어?”
“…….”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해도 반응이 없자.
나는 아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진짜로? 정말로? 대답 안 할 거야? 그래, 굳이 답하거나 응수할 필요 없어. 계속 나만 말하면 되니까. 그런데 진짜로, 말 안 할 거야? 자신 있어? 네가 계속 그러면, 나도 계속 이럴 텐데. 정말로…….”
“끄아아! 이런 바다에 던져도, 아가리만 둥둥 뜰 사내 같으니라고!! 언젠가 당신을 때려눕혀 염전에 담그겠소!!!”
“해봐. 할 수 있으면.”
애당초 이 혹한의 땅에 염전이 어디 있다고.
바다의 향도 느껴지지 않는 이 땅에서 염전 부르짖는 꼴이 퍽이나 우스웠다. 그나저나.
와, 진짜로.
‘타격감 장난 아니다.’
적잖은 세월 살아온 내 지론인데.
이렇게 반응이 재미있는 장난감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테르미야는 몰라도, 나는 엄청나게 즐거웠다.
이 죽어버린 도시에서 그나마 인간다운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기에 더더욱 그런 것일까.
그 대비 때문에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러실 겁니까?”
”…….”
“슬슬 저녁이라고요. 저기요. 제 말을 무시하는 건가요?!”
“아, 미안 뭐라고 했던가?”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알면 알수록 짜증 날 수가 있는 겁니까!!”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은 놀리거나 장난치기에 최적이었지만, 지금은 글쎄?
‘이 가면도 오래 못 쓰겠군.’
슬슬 대꾸하거나, 일일이 대답하는 것이 귀찮았다.
싫증도 나고, 짜증도 났다.
그녀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이유는 내적 친밀감은 억지로 높인 다음에, 써먹기 위한 패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지만, 이 세계에 체류할 시간의 끝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지금.
테르미야에게 감정 노동을 하면서까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나 싶었다. 정보는 이미 충분히 얻었다.
‘비효율적이지만…… 그래도 몇 시간만 더 어울려 줄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지금 투자할 찰나의 시간이, 내 손에 어떤 패를 쥐여줄지 모르니까.
난 다시금 ‘백승우’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테르미야에게 다가가기 위해 연기를 한다.
그 연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과연 죽은 것은 이 도시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나는 차마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낼 수 없었다.
“이제 저녁이니 어서 저택으로 가시오. 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
“그 말투 좀 안 하면 안 돼? 60대 할아버지보다도 늙은 것 같다니까.”
“내가 하겠다는데 뭐 어쩌라고!? 사사건건 시비 걸지 말게나!”
그렇기에 다시금 그녀를 놀렸다.
음, 역시 재미있네.
테르미야를 놀린 순간, 가슴속에 차오르는 즐거움을 느낀 나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가면을 제대로 눌러 쓴 것 같다. 어떠한 형태로든 자의식을 확립했기 때문일까.
더 이상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들지 않았다.
* * *
텅 빈 밤의 시내.
그 밑의 지하 수로에는 매일 밤 비밀스러운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벌고, 하루를 사는 시민들로 자작이 통치하는 북부의 사회에 반항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집단은 본래 크지 않았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납치 사건이나 실종 사건으로 치안을 지켜야 할 기사단과 자작을 향하는 신뢰가 급속도로 하락하였고. 이러한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집회.
일명 혁명단이 되었다.
이들의 목표는 자작을 타도하고, 실종된 사람들의 행방을 찾거나 이에 대한 책임의 소지를 귀족들에게 묻는 것이었으나.
“오호, 10,281명의 제대로 정렬했군요. 벌써 저들은 새로운 빛에 눈을 뜬 것입니까?”
“물론이죠. 이미 ‘계몽’은 진작에 끝났답니다.”
“역시 미모 후작이십니다.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데 한 시진도 채 소모하지 않으실 줄이야.”
어딘가 멍한 눈치의 사람들.
몇 년간 군대에서 구른 사람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깔끔하게 정렬한 사람들을 뒤로 미모 후작과 시몬은 대화를 나눴다.
혁명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아직 시민 의식도 제대로 싹트지 않은 시대의 미물인걸요. 이 정도는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죠.”
“자작에게 들켰으려나요?”
“그 늙은이도 아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야, 그만한 기백을 내뿜던 사내였는걸요. 설령 가축일지언정, 그만한 족속은 함부로 속단하지 않는 편이 좋겠죠.”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이라는 사내는 수로를 빠져나갔다.
미모 후작은 흡사 왕좌처럼 보이는 거대한 의자에 몸을 눕힌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매로 보이는 인간 한 쌍이 몰래 수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를 유심히 살피던 그녀가 이내 눈을 닫고,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웃었다.
“호호, 모르는 척 힘드네요. 하지만 슬슬 직접 움직여도 되겠죠?”
공작새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마모 후작이 후후 웃었다.
지금 그녀에게 부채만 쥐여준다면,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서 고귀한 귀족 부인이 따로 없었다.
자작의 아내보다 그녀가 훨씬 고귀하고 품격 있어 보였다.
도저히 사람들이 혐오하는 마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자태.
그러나 입가에 질질 흐르는 군침처럼, 방금 막 즐거운 식사를 끝냈다는 듯이 입가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선혈의 흔적은 그녀의 품위를 죄다 깎아먹고 있었다.
“전채(前菜)도 나쁘진 않았지만, 생식이다 보니 맛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메인이 기대되는 법이죠, 후후후.”
잘생긴 사내의 비명과 생육은 언제가 감미로운 법.
입에 침이 고이는 걸 느낀 미모 후작은 손가락으로 자색 벌레를 짓누르며 터뜨렸다.
곧,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본래의 결말을 맞이할 때가 왔다.
이 벌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