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3화(1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3화
첫 번째 에피소드(3)
지옥이 도래했다.
활기찬 분위기의 아카데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승호야! 승호야! 살려줘어어어어!”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구하러 갈게!!”
“비켜, 비키라고 이 미친놈들아!! 살 사람은 살아야지!!!”
“끄, 끄아아아아아악!!! 내, 내 다리 어디 갔어?!!”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살려달라는 호소와 괴로움에 가득 찬 신음이 아카데미를 가득 채운다.
불과 1시간 전만 하더라도,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장소라고는 믿기질 않는다.
“……하, 진짜 기분 더럽네.”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자기 합리화를 하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던가.
주인공이 각성해야 된다는 명목으로 방관해 왔다.
살고 싶다는 이유는 눈을 가렸다.
그 결과가 이 참사다.
나에게는 아무 말 없이, 이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아무리 괴로워도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건 내가 선택한 광경일뿐더러, 아무리 힘들어 봤자 저들보다 힘들 리는 없을 테니까.
“…….”
아무 말 없이 높은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전망이 좋아, 아래가 훤히 보이는 건물 옥상.
싸늘한 밤바람과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당장 교수들한테 연락해! 어서 돌아오라고!!”
“그 양반들 지금 외국에 있잖아! 차라리 인근 길드를 불러!”
“가장 가까운 A급 길드에서 지원이 온단다! 20분만 버텨어어어어!!”
“하, 씨발. 고백도 못 하고 뒤지게 생겼네.”
“애들이라도 살려! 나는 버리고 애들부터 챙겨…….”
전경을 내려다보며 문득 떠올렸다.
원작에서 죽은 학생의 숫자는 열 명. 전부 외곽에서 주인공과 동행하던 학생들이다.
그렇다면 경비원들과 조교들은 어떨까? 전부 죽었으려나, 어쩌면 몇 명을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뭐, 지금 눈앞의 광경을 기준으로 고려한다면 전부 죽었겠지만 말이다.
“다들 혼란스러운 모양이네.”
옥상 위에서는 온갖 군상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 목숨을 우선으로 여기는 학생, 다른 친구들을 구하려는 학생,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는 학생.
그중 단연 가장 많은 부류는 제 목숨을 우선으로 여기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대피소를 향해 달리고 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골절이나 타박상은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동급생을 밀치거나 잘못 넘어져서 기절하기까지 한다.
“오합지졸이네.”
나는 저들의 행동을 이해했다.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니까. 그런데 살고 싶으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현시점,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그런 간단한 판단도 못 하다니. 칠성 아카데미는 엘리트 집단이라고 해서 은연중에 기대했는데, 크게 실망했다.
“……첫 실전이라서 그런가. 하긴,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가만히 지켜보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들의 모습과 내 어린 시절이 비슷해서 그렇다. 나도 소년병 출신이니까.
오랜 기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눈앞에서 도망치는 아이들이 그때의 나처럼 보인다.
“…….”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며 내 시야가 점점 아래를 향했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다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노을 지고 있어서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 무언가가 달라붙었다. 꽤나 훌륭한 은신이지만, S급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림자가 내게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림자에 거대한 이빨과 날개가 펼쳐지며 나를 덮치려는 순간.
화르르, 불꽃의 가시가 바닥에서 솟아나 마물의 날개를 꿰뚫었다. 강렬한 열기는 날개를 타고, 녀석의 회색 피부를 검게 불태웠다.
예상보다도 약한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불러오는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쿵───!!!
옥상에서부터 거대한 체구의 마물이 떨어졌다.
큰 소리가 나는 것은 물론, 거대한 질량에 의해 땅바닥이 패이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다. 순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망했네.”
모두가 옥상에서 추락한 마물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시선을 위로 올렸다.
당연히 그 끝에는 내가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처음에는 분명, 조용히 죽일 생각이었다.
숨통만 끊어서 옥상 위에 올려두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거창하게 죽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대로 오른손을 뻗었다.
방대한 마력이 일렁이며, 손바닥 위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만들어졌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깜짝 놀란 학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원래는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이상,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방관했다는 명목으로 학급 재판에 끌려가면 큰일이니까.’
그러니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다.
절대로 내 의지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되새기며 옥상에서 떨어졌다.
‘나는 살고 싶어.’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죽어갈 아이들도 살고 싶겠지.
그렇기에 이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저기 사람이 떨어진다!”
“어, 저거 백승우 조교 아니야? 우리 연구실 명물인데.”
“지금 명물이고 나발이고 신경 쓸 때냐?! 어서 받쳐줘!”
바닥이 소란스러웠다.
마물과 싸우느라 정신없는 조교들과 경비원.
방해되지 않도록 그들과 최대한 떨어진 부근으로 낙하했다.
본래라면 하반신이 마비돼도 이상하지 않을 높이였지만, 염동 마법을 사용해 대미지를 상쇄시켰다.
물론, 상쇄시켜도 발목엔 꽤 무리가 왔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나는 착지하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과 최대한 떨어진 곳에 착지하려다 보니, 마물의 군세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어우, 들짐승과 마주하는 것보다도 역겨운 냄새가 났다.
“역겨운 냄새가 나니까, 아가리 좀 치워주지 않을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지, 재들도 듣는 귀가 있던가.
득달같이 달려오는 모습에 나는 바닥을 향해 발을 굴렀다.
쿠웅!
마력이 넓게 퍼지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바닥에서 불꽃이 피었다. 불꽃은 마물들의 움직임을 묶었고, 이내 거대한 가시가 되어 녀석들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불꽃의 범위에 있던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쿵! 쿵! 쿵!
덩치가 커서 불꽃의 가시에 내장을 찔리지 않았거나, 피부가 단단한 고위계 마물들은 겨우 버텼지만,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눈앞에서 죽고 말았다.
마물들이 차츰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가공할 만한 무위였다.
발 한 번 내지른 것으로 수십 마리를 쓰러뜨리다니. 지금처럼 혼잡한 전선에서 이런 활약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정작 그 장본인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 더럽게 아프네.”
남들은 놀랐을지 몰라도, 나는 고통스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방금 그 짓거리로 다리 관절하고 뼈 몇 군데가 비명을 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건데.
진짜 몸이 허약해도, 너무 허약하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이 난관을 타파할 수 있을까. 또다시 발을 구르는 것은 사양이다.
또 했다가는 진짜로,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르는 고통이었다.
나는 마물의 군세를 노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에 있는 마물은 대부분 내구가 약한 하급 마물들이다.
학생들의 범위 마법만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는 내구력. 그러나 저들 사이사이에 있는 몇몇 마물들이 변수다.
저것들만 어떻게 한다면, 여기 있는 인원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것들만 죽이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니, 망설임 없이 떠나도 되겠지.
생각을 끝마치고 곧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돌연 허공에 사람 머리만 한 불꽃들이 떠오르더니, 마물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불꽃들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녀석들의 살갗을 불태우는 사이, 나는 바닥에 마력을 흘렸다.
지난번 수련실에서 터뜨렸던 잔불의 연쇄반응.
그것을 대규모로 일으킬 생각이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뱉었다.
몸에 흐르는 마력을 대량으로 꺼냈더니, 혈류가 빠르게 흐른다.
혈압이 높아지며,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피부가 조금 창백해졌지만, 무시하고 머릿속으로 마법을 완성시켰다.
크르륵,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마물이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바로 그때 거대한 폭발 소리와 함께 땅거죽이 뒤집혔다.
발판을 잃어버린 마물들은 균형을 잃었고, 그들 사이로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연기가 일었다.
대부분의 마물이 폭발 범위 내부에 있었다.
이 정도 폭발로 전부 죽일 순 없겠지만, 강력한 마물의 발밑에 화력을 집중했으니 거의 죽었으리라.
이걸로 변수 걱정은 없다. 나는 이대로 떠나면 된다.
“크흡, 여기는 이제 맡기고 떠나면 되려나.”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달릴 수는 없었다.
저질 체력이기도 하고, 연속된 마법으로 상당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걸어가는 길에 마물은 몇 없었다.
고작 한두 마리가 전부여서, 꼬챙이 몇 개로 간단하게 해치웠다.
‘……이상한데.’
내가 방금 죽인 마물은 백여 마리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원작에서 거의 천 마리가량 침입했다고 한다.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
혹시 다른 조교나 경비원들이 해치운 것일까. 아니면 아카데미에 남아 있던 소수의 3학년이 해치운 것일까.
따위의 안일한 생각은 품지도 않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
아카데미 땅은 넓다.
아무리 일천에 아까운 마물이라도, 상대적으로 적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최악의 경우 대략 900마리 가까이 남았으리라.
행여나 그것들도 내가 전부 정리해야 하나 싶어,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똑같은 짓을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겠지만, 900마리 전부 죽이는 것은 안 된다.
나머지는 경비원이나 조교들, 남은 3학년들이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던 와중이었디.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인기척.
다급한 마음에 속도를 높이자, 시야에 넘어진 여학생과 마물 한 마리가 들어왔다. 미녀와 야수 촬영은 아니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불길이 타올라, 이내 거대한 손이 되었다.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손길은 마물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마물이 갑작스러운 부유감에 아등바등하는 것도 잠시, 불꽃의 손은 마물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자 강렬한 불길에 살점이 익어, 쉽게 짓눌렸다.
생선 살처럼 으스러지는 녀석을 던지고, 학생의 안위를 살폈다.
다리를 다친 모양이지만,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간단하게 응급조치만 해주고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다.
“당신이 왜……?”
눈앞의 여학생이 서예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진짜 징글징글하게도 만나네.’
설마 여기서까지 만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지만, 나는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다. 마력으로 그녀의 상처 부위를 감싸 석고붕대처럼 고정시켰다.
이거라면 적어도 상처가 악화되진 않겠지.
“야, 서예린. 너 혼자서 도망칠 수 있지?”
“……네.”
“그러면 어서 도망쳐. 1학년 기숙사까지 오는 길에 마물은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움직여.”
그녀는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만날 때마다 내 이미지가 개판이긴 했지. 하지만 지금 생황에서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대피소로 보내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 바지를 세게 잡았다.
야, 바지 내려가 인마.
“……그러는 당신은 어디로?”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뛰어든 다음에는 그저 앞으로만 달리고 있던 중이다. 목적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가 작은 손으로 내 바지를 더 세게 당겼다.
얘 진짜로 나를 공연음란죄로 신고할 생각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새삼 무엇보다도 진지했다.
그녀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삼키며 말했다.
“그, 그러면 도와줘……. 내 치, 친구가 저기 있어.”
“……어디에?”
“3학년 기숙사 부근.”
“……!”
거기라면 분명 주인공이 있을 곳일 텐데.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각성하면서, 인근의 3학년 기숙사가 거대한 풍압에 반파되었다고 나온다.
……어라?
‘내가 그걸 왜 알고 있지?’
순간 떠오른 지식에 의문이 떠올랐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서예린의 친구는 희생자인 모양이다.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희생자.
내가 아무 대답도 안 하자, 그녀는 나무 위의 매미처럼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제발 도와줘…… 도와줘요. 태어나서 처, 처음 사귄 친구…… 예요.”
여태껏 만나면서 처음 듣는 존댓말이다.
심지어 가장 길게 말하고 있다.
그녀는 내게 애원했다.
수련하고 있는 수련실에 당당히 들어오고, 읽으려던 책을 코앞에서 강탈하고, 의도치 않게 폭발에 휘말리게 한 나에게.
이 소녀에게 도대체 뭐라 할 수 있을까.
네 친구는 해피 엔딩을 위해 죽어야만 한다고?
그런 망발을 입에 담아야 한다니.
나는 이빨이 부서지도록 세게 깨물며, 서예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길고 예쁜 머리였다.
다만 바닥에 굴러서 흙먼지가 묻고, 열기에 노출되었는지 푸석푸석해서 만지기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대피소에 가 있어라.”
처음에는 소설이라며 방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단순히 학급 재판에 끌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눈앞에 눈시울을 붉히며 친구를 살려달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게 어딜 봐서 소설 속 세상이라는 건지.
“……부탁해…… 요.”
“알았으니까 어서 가라.”
서둘러 서예린을 보내고는 3학년 기숙사 쪽으로 달렸다.
낮은 체력과 민첩이 발목을 잡았지만, 마력으로 각력(脚力)을 강화시킴으로써 어떻게든 속도를 올렸다.
그 대가로 발목이 조금씩 망가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늦을 수는 없었다.
나는 늦지 않기 위해, 발목의 통증을 무시하고 넓은 아카데미를 가로질렀다.
* * *
한편 3학년 기숙사 부근에서는.
“도, 도망쳐!!”
“도망칠 곳은 없어! 방어해! 방어하라고!”
“꺄아, 꺄아아아아아악!”
“유라야!”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중 한 소녀는 도망치다 발목이 걸려 넘어졌다. 그 광경을 즐겁다는 듯이 지켜보던 마물은 제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 경로에는 유라라고 불린 소녀가 쓰러져있었다.
“야, 노유라! 어서 일어나!”
“바, 발목을 접질렸어!”
“이런 제기랄!”
쓰러진 유라는 일어나려 했지만, 발목을 접질려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이 부축하려 다가가려 했지만.
“으, 으윽……!”
“야, 너 왜 그래? 괜찮아?”
“위, 위아, 압감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한 친구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삿대질했다.
그 끝에는 거대한 마물이 있었다. 녀석은 어디가 입꼬리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웃음 지었다.
“저, 저 녀석이 대기 중의 마력으로 나를 아, 압박했어……!”
“……뭐라고?”
믿을 수 없었다.
마물이 대기 중의 마력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설마, 피어?”
피어(Fear), 마력만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고위계 마물의 상징.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마물은 극히 소수다. 이런 고위의 능력을 사용할 정도라면, 분명 녀석에는 상당한 지능이 있을 것이다.
먹잇감을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의 지능이.
히죽, 마물이 거대한 입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학생들은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대적할 수 없다. 저런 걸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도, 도망가자! 어서 빨리!”
“그렇지만 유라가!”
“그래서?! 다 같이 죽자고? 난 살아야겠어!”
“네가 친구냐?! 지랄하지 마!”
마물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무리는 분열되었다.
마물은 그 모습이 몹시도 기꺼운지,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서늘한 삭풍이 자신을 노리기 전까지는.
──서걱!
카일이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는 무기를 휘둘렀다.
아주 얇은 휴대용 검이었다.
검에 삭풍을 담은 카일은 마물의 양단할 각오였으나.
마물은 흥이 깨졌다는 눈치만 보일 뿐이다.
그의 검으로는 마물의 피부조차 제대로 가르지 못했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A4용지보다도 못한 일격이었다.
쾅───!!
마물은 귀찮은 듯이 앞발을 휘둘렀다.
대충 휘두른 듯한 일격에 검은 부서지고 카일은 벽에 부딪혔다.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감각.
간신히 의식은 있지만, 피를 너무 흘려서 정신이 몽롱했다.
그 사실을 놓치지 않은 마물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후 녀석의 굼뜬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반걸음, 한 걸음, 두 걸음.
보폭은 점점 넓어지고, 속도가 조금씩 붙는다.
그 모습에 서둘러 도망가려던 학생들. 이를 가만둘 리 없는 마물이 피어를 내뿜었다.
위압감에 발목이 묶인 학생들은 비명과 욕설을 내뱉었다.
바닥에 쓰러진 유라는 눈을 질끈 감았으나,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에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벽에 박힌 카일은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카일은 속으로 울분을 토했다.
허약하고 무능한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신입생 2,000명 중 1,999명으로 입학해서? 친부모가 버려서?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다르게 재능의 편린조차 없어서?
모두 정답이었다.
그는 그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역겨웠다.
아카데미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이 눈앞에서 속절없이 당할 위기다.
그럼에도 자신의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제발! 제발 움직이라고!!’
바로 그 순간, 마물이 유라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마물은 거대한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발을 뻗는다.
마물은 유라를 짓누를 생각이다.
그녀는 기어서라도 피하려 하지만, 녀석의 앞발은 코끼리의 것보다도 거대했다.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마물의 눈이 카일을 향했다.
“……!!!”
그는 그제야 마물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카일을 조롱하는 것이다. 눈앞에서 유라를 죽이고, 나머지 친구들을 죽임으로써 유희를 즐기려는 심산이다.
카일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와 구분할 수 없었기에 아직 자각할 수 없었다. 눈앞의 모든 친구들이 죽어야만 깨달을 수 있으리라.
지금 이 순간 소설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결실을 맺으려 든다.
모두가 죽고, 카일만 살아남는 것.
그로써 세상은 구원받고,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리라.
눈앞의 아이들은 제외하고서.
「파이로키네시스」
그 사실을 두고만 볼 수 있겠나.
한 사내가 전장에 개입했다.
그와 동시에 불타오르던 욕구는 사그라들고 다른 무엇인가가 불타올랐다. 그건 눈앞의 불꽃처럼 선명하고 뜨거웠다.
난 왜 이렇게 약한 걸까. 하는 일종의 자기혐오.
“이야, 이거 늦을 뻔했네.”
등 뒤의 여우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 온 사내.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아주 오래된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녀석은 웃는 낯을 하고 있었지.
그 순간 카일 속의 무언가는 조금 뒤틀렸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아드득.
카일은 부서지도록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