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30화(13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30화
죽어버린 도시(5)
삶이란 건 생각보다 가혹하다.
인간은 사회와 부모라는 우리에서 삶을 연명하고, 거친 세상의 풍파로부터 몸을 지킬 시간을 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부모마저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지킬 여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가 부정할 것이다.
이 세상은 아이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살기에는 혹독하다.
심지어 혼자서도 혹독한데, 어린아이 둘이서 인권과 윤리 의식도 제대로 싹트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도, 도와주세요! 동생이……!! 제 동생이!!!”
“어서 와서 내게 보여라.”
“잠깐. 행여나 반란 분자의 소행일 수도……!”
“넌 상황 파악 좀 해라.”
거지꼴의 두 아이가 달려왔다.
보다 정확하게는 오빠가 여동생을 업고는, 나에게 필사적인 표정으로 다가왔다. 내 옆에 선 테르미야를 본 순간, 얼굴 표정이 공포로 질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내 손을 잡았다.
“동생을 치료할 곳이 없어요…!”
“어디가 다쳤는데.”
“다리 부근이요. 날아오는 침 같은 거에 찔렸어요.”
“침은 그대로 박혔냐? 아니면 스쳤냐?”
“스쳤어요.”
어디 보자.
소년의 등에 탄 소녀의 안색을 보니 파리하다.
맥박도 흐려지고, 다리 부근의 상처가 일반적인 자상과는 사뭇 다르고, 호흡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이.
“독이로군.”
증상을 보면 대충 종류까지 알 수 있다.
매일 같이 독초를 씹어 먹은 덕분이었다.
이건 맹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그냥 흔하디흔한 잡초 몇 가닥을 엮어, 솥에 푹 삶고 고우면 만들 수 있는 독.
그러나 그걸 초등학생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도, 독이라고요? 그, 그러면 제 동생은…… 어떻게…….”
“잡설은 됐고, 독에 언제 중독됐는지 알고 있어? 그걸 알아야 시술할 방식을 취할 수 있거든.”
“시, 시간이요? 저희는 시계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대충…….”
소년의 설명은 너무 대충이었다.
설명을 한번 추려서 파악한다면, 공격을 당한 장소에는 해가 질 즈음에 도착했고.
제사를 지낸 직후에 공격당했다.
하필이면 남매가 수로에 있던 탓에 하늘을 보고 시간대를 추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 하필 수로에 있었는지 거슬렸지만, 당장은 눈앞의 소녀가 더 중요했다.
“제사의 순서나 차례는 기억하고 있어?”
“둘 다 대략적으로는요.”
“그러면 어서 읊어. 어디까지 진행하다가 독에 당했는지도 말해주고.”
“그 수로에 석상에 두 개 있거든요. 하나는 신상이라고 하고, 나머지 하나는 성상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 위에 술을 붓고…….”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까.
소년의 입에서 제사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다.
죄다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제사의 차례.
그러나 우연히도 그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봉신여래(封神如來).”
신(神)과 진리를 따라 초월에 접어든 자(如來)를 봉인한다는(封) 주술적인 제사. 다시 말해 배교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봉신여래의 제사와 차례이다.
“알고 있는 제사인가 보지?”
“자세히는 몰라. 나도 어제 도서관에서 읽던 책에서 나온 구절밖에 모르니까.”
“도서관? 설마 저택 내부에 있는 걸 말하는 건가?”
“그거 말고 이 땅에 도서관이 없잖아. 그나저나 애초에 이 땅의 토박이로 보이는 네가 이걸 왜 모르는 거야.”
뻔히 도서관 책에 있는 내용인데 말이지.
그렇게 눈치를 주자 기사단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피했다.
기사는 문무겸전이 기본인데, 그녀가 지내는 저택 내의 책 내용도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한 모양이다.
그녀가 입을 닫은 사이, 나는 점점 체온이 떨어지는 소녀를 품에 감싸며 책의 내용을 회고했다.
워낙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기에,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표적인 부분은 용케도 떠올렸다.
어디 보자.
‘독에 감염됐을 즈음이 술을 바닥에 뿌린 채, 검을 들고 춤을 추는 부분이었다고 했지. 그게 아마 제사의 여섯 번째 차례였지.’
대부분의 순서가 한 번 당 일각(一刻)에 달하니. 여섯 번이면 1시간 30분.
해가 질 즈음에 제사가 시작했고, 이후 1시간 30분 뒤에 중독됐다면 대략 넉넉히 잡아서 30분 만에 내게 온 건가.
그 정도면 아직 독이 심장이나 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중독 초기면 치료가 쉽다.
“30분 정도면 살을 째서 괴사한 조직을 어떻게 할 필요까지는 없겠어. 그 정도면 간단하게 이독제독만 하고 넘어가도 되겠네.”
소녀의 상처 부위에 내 피를 살짝 흘렸다.
내 피는 맹독에 가까우나, 그 성질과 형태를 내가 품은 내성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최대한 소녀의 독을 중화시키고, 중화시키자마자 효과가 떨어지는 독을 체내에서 합성하고, 피를 상처 부위에 흘리자 10분 뒤 그녀의 표정이 조금 괜찮아졌다.
“메리라는 이름이었던가. 아마 하루만 푹 쉰다면, 메리가 죽을 일은 없을 거란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하면 형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뭔데요?”
“메리가 당한 그 수로에 어떻게 가는지 알려줘.”
혁명군이 있다는 수로에서 아이가 독에 당했다.
그 사실은 내게 무언가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빙고.”
수로 인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입구는 수로가 아닌, 잔디밭에 있었다.
진짜 그 소년의 말대로네.
입구를 잔디와 흙으로 포장했지만, 내 눈을 속이기에는 부족하다.
자색으로 번들거리는 「요마안」.
설령 벽이 앞을 막더라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형태라면 무엇이든 뚫어보는 마안이 내게 이 도시에 얽힌 커다란 윤곽을 보여줬다.
─뭐가 좀 보여?
“너도 네 눈으로 봐봐. 이건 나만 보기에 아쉽단 말이지.”
─어디 보여줘 봐……? 뭐야, 이게?
세상의 색을 잃는 대신, 마력의 유동성과 이에 얽힌 ‘틈’을 읽는 내 눈에 버금가는 타마모의 귀안.
더 이상 인간도 구미호도 아닌, 망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종족부터가 신통에 가까웠던 그녀의 눈은 활짝 트였다.
연결되어 있기에 알 수 있다.
그녀의 눈은 내 눈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녀는 귀안을 틔운 순간, 나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광경을 관조할 수 있었다.
─저게 뭔데?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가?”
하지만 그런 눈을 가졌음에도,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건 나보다 부족한지.
아니면 그저 눈앞에 일어난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사자성어를 만든 장본인이 저것도 모르는 거야? 생각보다 의외로군.”
─저게 뭔데 그래?
“토막 난 시체잖아.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진짜로……?
피의 연못, 꼬챙이에 걸린 고기들의 향연은 주지육림이 따로 없었다.
다만 원본의 사자성어와 차이가 있다면, 본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바뀐 정도다.
‘큰 차이는 아니지.’
결국 기득권은 마음대로 놀고.
평민들은 혹사한다는 주요한 맥락은 동일하다.
주왕과 달기가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와 사람들로 식욕과 성욕을 채웠다면, 이 세계는 에포츠 자작에 의해 피로 땅을 적시고 생살로 무언가 의식을 벌이고 있었다.
그 주체는 안 봐도 뻔하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설마?”
“이 땅의 시민들과 부모 없는 부랑자들이겠지.”
덜컥!
지하로 통하는 거대한 문.
그 밑으로 내려갔다.
지하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열면 열수록 진해지는 피의 냄새는 코를 타고 내 폐부를 가득 메웠다.
피와 사체의 썩은 내.
익숙한 고향의 냄새가 난다.
어두운 지하를 밝히는 불이라고는, 거의 타들어가기 직전의 횃불 몇 개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길도 험해 앞을 향해 걷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연어가 본능적으로 폭포를 뛰어올라 태어난 곳으로 향하듯, 태어난 곳을 수십 년 만에 처음 와보는 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듯 나 또한 본능적으로 앞을 향해 움직였다.
그 걸음에 망설임은 없으니.
이 끝에 다다르면 필히, 내가 원하던 것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일주일간의 노고.
그 끝에 도달할 결론과 결말은 분명 감미롭기 짝이 없을 터.
“자…… 내게 보여다오.”
자작이, 프런티어가 숨긴 비밀을.
그들의 치부를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순백의 나신째로 대령해라.
* * *
늦은 밤, 학생들은 모두 저택을 나선 지 오래였다.
그런 와중에 인솔자로 보이던 수인 사내는 아침 이래로 도통 돌아오질 않았다.
그나마 어린 학생들은 저택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저택 안의 사람들은 걱정했다.
“자작님의 손님들이 어디 가셨는지 아는 사람 있어?”
“나야 모르지. 손님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뵙는 분이신걸.”
“제기랄, 자작님께서 여느 때처럼 공방에 틀어박히셔서 망정이지. 만일 우리가 손님들을 대접하지 못했다는 걸 아시는 순간에는……!”
“뒤지겠지. 평소 온화하셔도 그런 부분에서는 깐깐하다 못해, 무서우신 분이시니까.”
승우가 아닌 자신들의 걱정을 말이다.
친한 사람이나, 프런티어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는 손님도 아닌데.
저택의 사용인이 그들을 걱정해야 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지독한 선민의식을 가진 북부 유일의 귀족인, 에포츠 자작은 자신과 같은 귀족이라는 사내에게 동질감을 비롯한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일 자작께서 같은 귀족이신 그분을 챙겨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다면 큰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 보는 손님의 대접이 그 정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런 일로 벌을 받을지도 두려워하는 것도 지극히 억지스럽지만, 그게 바로 귀족과 평민의 차이다.
“인솔자로 보이던 그 잘생긴 남자가 남부의 귀족이라고 하더라고.”
“남부면…… 대수림? 거기는 엘프나 수인만 사는 곳이잖아. 신분제는 인간에게만 있는 문화가 아니었나?”
“난들 알겠냐. 설령 없다고 하더라도, 그 걸음걸이나 품행을 비롯한 예절은 귀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
“솔직히 그 얼굴이면 끝이지. 저게 보통 평민으로 감당이 되고, 관리할 수 있는 얼굴이겠냐.”
평민은 귀족에게 감히 의심조차 품어서는 안 된다.
귀족은 수틀리면 뭐든 할 수 있지만, 평민은 당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바닥에 있는 자들은 푸른 피의 소유자가 지나가면 바짝 엎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신분제.
명예와 재산만 남은 현재의 허울뿐인 귀족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그렇기에 저택을 청소하는 시종들은 귀족의 존재를 우러러보되, 두려워했다. 하여 그분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한껏 웅크리며 살아온 그들이었으나.
“사, 사람 살려……!!”
“발리? 저택에서 그렇게 뛰면 어떡해?! 자작님이라 그분의 식솔분들에게 걸리면 큰일 난다고!”
“지, 지금! 그게 주, 중요한 게 아니야!!”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종 중 한 명이 시끄럽고 복도를 횡단하는 동료에게 말했다.
“야, 조용히 좀 해.”
“사, 사람이 죽었어……!”
“어디서? 도처에 부랑자가 굶어 죽거나 추위로 죽는 일은 간간이 있는 일이잖아.”
제대로 된 인권이 대두되지 않은 시대.
중세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면 세계에서 평민의 죽음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귀족이 죽는 거라면 또 모를까.
여기저기서 죽는 평범한 사람 가지고 왜 저런 소란일까 싶었는데.
“야! 내가 그런 거면 이렇게 달려왔겠냐?!”
“그러면 뭐, 자작님이라도 돌아가셨어?”
“부정 타는 소리 하지 말고! 저택의 문지기, 그 문지기가 죽었어!!”
“……문지기가?”
저택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죽었다.
그 말은 바닥이나 액자, 그림을 청소하는 주변 시종들마저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 우리 저택 대문에 문지기가 따로 없잖아. 기사단에서 두 명씩 번갈아가면서, 입구를 지키는데 문지기가 무슨 소리야?”
“……아, 너는 몰랐던가.”
“그게 무슨 소, 리……?”
푹!
날카롭고 기다란 무언가가 살점을 뚫었다.
깔끔한 즉사.
어찌나 깔끔한지 그 일격은 내장마저 단숨에 찌르고 휘저었다.
그러자 피가 울컥 튀어나옴과 동시에,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머지 시종들은 놀라거나 경악하지 않은 채, 저택 청소의 연장이라는 듯.
시체를 들어서 치우고, 바닥에 흘린 피를 닦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런 짓을 반복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내 친구가 동포가 아니었을 줄이야. 충격적이로군.”
“발리 집사님.”
“아, 우리 자매님인가.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으려나?”
프런티어는 초봄과 같은 날씨를 유지하는 도시.
도시 밖의 북부는 혹한 그 자체지만, 그렇다고 도시 내부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장작으로 저택을 데우는데, 오늘 나무 대신에 타기 좋은 유기물이 자작자작 타올랐다.
아, 죽었으니 무기물인가.
“그분의 몸은 치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설마 이 구역에 동포가 아닌 자가 있는 줄은 몰랐단 말이죠.”
“그게 저희들 청소부의 일인 걸요.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이 뭐죠?”
“아……! 문지기가 죽었다는 얘기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지하 통로로 향하는 입구의 문지기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예?”
어이없다는 눈치의 시종.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문지기라 하면 기사단장을 제외하고는 이 북부의 혹독한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장 강력한 전사이다.
그는 지고의 경지까지 두 걸음 남은, 소드 익스퍼트의 중급.
그런 경지에 도달한 지 2년이나 된 전사이거늘.
당최 누가 죽였다는 말인가.
“설마 기사단장님이 그러신 건 아닐까요? 그분은 자작님의 말씀에만 움직일 뿐, 딱히 저희와 뜻을 함께하시는 분은 아니시니까요.”
“그래요, 본래라면 이 땅에 문지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죠. 그러나 이틀 전, 누군가와의 수 싸움을 통해 기사단장이 익스퍼트 상급에 도달했다고 하더군요.”
“설마 그 수인이……?”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문지기를 비롯한 인근의 형제자매께서 같은 상흔을 안은 채, 순교하셨으니까요.”
“그 상흔이라는 게 대체……?”
“화상 자국입니다. 정확하게는 타다 만 석탄이나 목탄과 같은 꼴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걸요. 하지만…….”
한낱 수인이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한 게 의심스럽더군요.
모든 시신에는 공통적으로 목 주변에 화상 자국이 마친 손바닥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불꽃의 손을 가진 불의 정령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 것 같은 모양새.
그러나 정령과 정령사의 존재는 이미 100년도 전에 멸종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종의 심령 현상이나 미신을 믿고 신앙하는 병사들이 보고를 하는 것보다, 굿이나 푸닥거리를 먼저 한 탓에 상부의 대응은 꽤나 뒤처졌다.
그 사이.
“이제 보니 저택이 생각보다 넓네. 반경을 조금 줄여둘 필요가 있겠어.”
─그러면 저택 내에 일하는 사용인들이 잔뜩 죽을 텐데 괜찮겠니? 고통스럽게 타 죽을 텐데.
“글쎄…… 그 정도면 저들에게 있어서 자비로운 최후가 아닐까?”
저들이 한 짓에 비하면 말이지.
저택의 맞은편.
인적이 드문 지하에서.
화르르,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의 주인은 이 도시 가장 깊은 곳에서, 이면 세계의 결말과 결론으로 향하는 주된 단서를 목도하였기에 방화나 살인을 저지르건 행동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땅에 얽힌 진상을.
그에 관한 모든 걸 봤기에, 그리고 그 이상을 목도한 사내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는 저택의 누가 엮이든 태워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저택 지하로 다니면서 느꼈는데.
이거 필요 이상으로 넓은 것 같다.
자신이야 고향 집에 내려온 것처럼, 피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감지하기에 무리가 없었지만, 학생들은 또 그렇지 않단 말이다.
그러니까.
저택의 절반 정도만 태우면 딱 돌아보기 좋겠지?
그래 이건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손 좀 써보자고.
차고 넘치는 명분을 짊어진 그는 이내 방화범이 되기로 결심했다.
화르르륵──!!
그날 북부 제일의 도시, 프런티어의 하늘에 달이 차오를 시간임에도 해가 떴다.
저택을 장작 삼아 프런티어를 비추어 너무나도 가깝고 거대한 탓에 사람들의 살갗마저 태우는 저주스러운 태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