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33화(13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33화
악몽(3)
인류는 그럭저럭 잘살고 있었다.
문명이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겼지만, 이 또한 진화를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날이 다가오기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세상의 끝이나 지구의 결말.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멸망, 종말, 말세, 휴거(携擧), 아포칼립스, 하르마게돈, 라그나로크(Ragnarǫk) 등등.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까.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이형의 짐승들이 이 땅에 발을 내리고, 피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걸 먹어 치웠다.
심지어 사람마저도.
그 결과 인류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 세계 인류의 3할을 잃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은 국민들을 지키고 보호할 수단도 없는데, 국민은 또 너무 많아서 유독 피해가 컸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불과 1년 만에 3할은 피해가 너무나도 컸다.
일부 섬나라들은 멸망하고, 다른 나라에 뿌리를 내렸다.
나라와 나라는 연합을 넘어선 공존을 채택하며 생명을 연장해 나가려고 했다.
이후 펼쳐진 무차별적인 폭격.
억 단위가 넘는 사람들이 투쟁한 끝에 인류는 한 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드디어 자신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던 인류는 그 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그거 또 옛날얘기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저리 꺼져.”
“너 누나한테 저리 꺼지라는 게 무슨 망발이야? 한 대 맞고 싶어?”
“싸움은 내가 더 잘할걸.”
“그건 그래, 하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지. 어딜 동방예의지국 출신이 그럴 수가 있어?”
어이없는 말에 승우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끈질긴 적들의 공세와 연이은 전투에 머리를 자를 엄두도 나지 않았던 그의 산발 속에서, 여전히 공허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동공에 생기 따위는 없었다.
금방 죽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초연한 자태였다.
“멸망한 세계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에 의미가 있던가?”
“……여하튼 그 후에 군국이 출범했다는 건 알고 있지?”
“말 돌리지 마라.”
군국.
군인들의 국가라는 뜻으로.
실상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에 버금가는 단체일 뿐이다.
“초창기의 군국이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던 건 알고 있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에이, 오늘 안으로 이거 반응 안 해주면 나 네 막사에서 안 나간다?”
막사의 바닥에 이브가 드러누웠다.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잠시.
그녀의 말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란 걸 눈치챈 나는 오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음……. 군국은 각국의 군대들이 대의명분과 생존을 위해, 합쳐서 만든 조직인 만큼 초창기에는 언어의 차이와 인종차별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지.”
“잘 아네. 지금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라는 소속감이 희미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테니까.”
“웃기는 일이지. 한낱 인종 때문에, 마물들과의 전쟁 이전에 인간과 전쟁을 치르려고 했다는 것이.”
사람들이 마물들에 의해 수십억 명 단위로 죽어 나갔다.
나라는 멸망해 가는 가운데,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친 군인들은 서로의 이념이나 신념도 아니라 피부색과 언어와 같은 유치한 것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마물이 습격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상황을 타도하고, 여러 갈래로 쪼개진 군국을 바로잡은 것이 바로.
“─당시에 플레이어와 이능이 없었다면, 인류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쟁 발발 2년 차에 전부 죽었겠지.”
“그래, 당시의 기록이 그걸 사실이라고 뒷받침하고 있지.”
슬슬 핵폭탄과 현대의 이기로는 명백한 한계가 드러날 무렵.
인류는 마력과 이능이란 개념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 마력.
무형의 힘을 바탕으로 기동하는 개개인만의 고유한 능력, 이능.
1세대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그들은 인간을 뛰어넘은 힘을 바탕으로 분열한 군국을 억지로 조립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굴복하여, 하나가 된 군국은 그렇게 여러 전장을 거치며 패배와 승전고를 울렸고.
그 과정에서 인종과 언어를 비롯한 사소한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시의 군국은 강자만이 우뚝 서는 강자존(强者存)이었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는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의 논리로 돌아가. 늙고 볼품없어진 상층부의 힘은 무력에서 권력으로 형태가 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힘 있는 영웅을 원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야! 백승우!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이렇게까지 말해줬으면 눈치를 진작에 채고도 남았을 것을.
검성은 고개까지 돌리며 부인하고 있었다.
“그 힘이 있으면 저항해 보란 말이야!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안 하는 거야?”
“굳이 혼란을 더 키울 생각은 없으니까.”
“……뭐?”
“녀석들이 이토록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은 70년간 이어진 전쟁 중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야. 덕분에 시민들의 혼란은 최대치까지 높아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나만을 위해 썩은 뿌리를 잘라낼 정도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성의 힘과 업적.
그리고 명망이라면 군국의 모든 상층부를 갈아치우고, 혼자서 전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같은 규격의 집단인 팔대성이 있지만.
그들은 각 분야의 일인자일 뿐이지, 절대적인 무력을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
전투에 한해서는 군국 그 누구도 검성을 따라올 순 없었다.
그렇기에 검성은 단호히 말했다.
어린아이 주제에 애늙은이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꼴은, 무척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체통 있는 말투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그가 앉은 자리의 무게였으니까.
“이브, 선을 지켜라. 그리고 앞으로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를 이름이 아니라 ‘검성’이라 불러줬으면 해.”
“뭐, 뭐라고……? 너 진심이야?”
“위대한 마법의 어버이, 이브. 비록 우리는 소년병 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에 형제와도 같은 사이이지만, 지금 이 자리는 나와 같은 팔대성인 <마도성>임과 동시에. 지식을 탐구하고 지혜를 헤아리는 <대마법사>로서 그대를 맞이한 걸세.”
그러니 부디 선을 지키고 체통을 유지하시게.
우리들은 약 1억에 달하는 군국의 병사들을 대표하는 얼굴들이니까.
뒷말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브의 머릿속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러니까…… 알겠지?”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되잖아?”
“그건 안 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알면서 왜 그래.”
“너 같은 애새끼한테 그런 의무와 책임이 어디 있다고 그래?! 반항이든 투정이든 뭐든지 해봐! 한창 그럴 나이잖아!!!”
의무와 책임이라.
이것 참 심오한 주제를 던져주네.
“날 위해 희생한 자들이 있다.”
“!!!”
“내 발밑에는 언제나 시체가 가득하지. 그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병사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불사를 각오가 됐다.
그건 이미 수십 차례의 예시가 존재하는, 확정된 답안.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인간 백승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검성 백승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럴 각오가 된 것이다.
“나는 이제…… 한 사람의 인간이기 이전에, 선전용 병기에 가까워.”
“야, 너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니냐? 스스로에게 병기가 무슨 소리야?”
“알면서 묻지 마.”
“……그렇다고 너까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더 이상 존경받는 대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모님께 받은 자랑스러운 이름 석 자조차, 나를 받쳐주는 배경일 뿐.
어느새 나는 별호로 불리기 시작했다.
검성은 그 사실이 못내 허탈했다.
“그건 그렇지.”
“그러면 어서 도망쳐. 다른 놈들한테는 내가 전장에서 비명횡사했다고 말해줄 테니까. 네 분신과 환영을 만드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안 되는 거 알잖아.”
“어서!!!”
이제는 호소를 넘어서, 명령을 내리려는 이브.
손아귀로는 움직임을 강제하는 「염동력」을 펼치고, 입으로는 「언령」을 구사하는 그녀였으나.
파각──!!
검성이 조금만 마력을 발산하자, 깨진 유리처럼 허무하게 비산하는 이브의 마력의 파편들. 마법이 되다만 그것들은 유리처럼 깨져 빛을 반사함과 동시에, 날카롭게 갈라져 다시는 붙일 수 없을 것처럼 쪼개졌다.
그래, 마치 내 인생처럼…… 다시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순 없겠지.
그러니 나는 끝을 봐야만 한다.
그것이 병사들의 손에, 동료들의 희생을 밟고 올라선 내 임무였다.
그리하여, 마음을 다잡은 검성은 더 이상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하게 되었다.
입는 옷은 언제나 하얀색.
순백만이 검성에게 허용된 색깔이었다.
굳이 예외가 있다면 붉은색 정도가 있으려나.
“……벌써 흰옷만 일주일째 입고 있습니다. 슬슬 흰색은 지루한데, 검은색 옷을 입으면 안 됩니까?”
“검은색은 안 된다.”
“어째서죠?”
“피가 묻었다는 사실이 덜 부각되거든. 그대의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 병사들의 사기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사기도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이건 그 사기를 북돋기 위한 일환일 뿐이라네.”
이건 총사령관의 명령이지만, 동시에 그대를 위한 부탁이기도 하네.
부디 들어주겠나, 검성.
그런 말을 들어서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사실 명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중년의 총사령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검. 군국의 검이라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검.
목을 자르고, 생명을 비트는 단두대일지니.
감히 검성의 앞을 가로막는 사특한 마(魔)는 죽음으로써, 친히 그 죄를 다스리라.
푹─!
검을 찌르는 것치고는 꽤나 허무한 소리.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찌르는 듯, 태연하게 휘둘린 검은 태산과 같은 크기의 마물을 헤집었다.
고기를 베고, 뼈를 끊는다.
그 과정에서 검성의 갑주는 피에 흠뻑 물들고, 순백은 선혈로 하여금 그 순결함을 증명할 터이다.
“저건…… 미쳤어.”
붉게 물든 순백의 갑주.
피가 굳다 못해 셀 수 없을 만큼의 혈액을 뒤집어쓴 덕분에, 더 이상 세탁한다고 색이 원래대로 돌아올 일은 없어 보였다.
검성이 어찌나 열심히 마물들을 도륙하고 다녔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
인류의 희망이 그렇게나 열심히 활동한다는 증거 덕분에 사람들의 열광은 더욱 커졌다. 그의 순백이 검붉게 점칠 될수록 이 세상은 안전해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오직 순백과 핏빛 다홍색을 걸치는 것만이 허락된 검성은 그렇게, 순백의 갑주를 주기적으로 붉게 물들였다.
갑주의 흰색이 닳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적으면 한 달에 두 번.
많으면 1주일에 세 번이나 새로운 갑주를 입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하였고, 전장에서는 비명과 단말마가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수많은 천재지변을 인간의 몸으로 이겨낸 검성은 군국에서 제일가는 권력자가 되었고.
전장에서는 그 위용과 자태 덕분에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검귀(劍鬼).
그리고 천살성(天殺星).
공식적인 별호나 이명으로 인정되지 않은 검성의 별명들.
세간의 시민들은 몰랐지만, 같은 전장을 누비는 병사들은 알 수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전쟁에서 태어나, 지옥 같은 전쟁을 끝내줄 유일한 희망은 결국, 또 하나의 괴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