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35화(13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35화
악몽(5)
챙!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보통의 검사라면 검성과 검을 맞댄 순간을 영광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끝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거늘.
꾸우우욱.
검병을 세게 꼬나 쥐며 강렬한 의지를 표출하는 과부와는 하등 상관없었다. 그녀는 묵묵히 내 검을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도망치지 마십시오.”
“어디로부터, 무얼?”
“당신의 의무로부터 도망치지 마십시오, 검성.”
“…….”
그래, 이건 도피였다.
딱히 죽음으로 이 지옥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 얼굴에 흠을 하나 낼 생각이었다.
과연 전장에서 구르며 반병신보다 끔찍한 꼴이 된 몸뚱어리와 같이, 흉터가 가득한 얼굴도 사람들은 좋아해 줄까?
문득 그걸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사춘기 소년의 치기 어린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권력자의 외로움과 비애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판단인지는 몰랐다.
그런 사소한 것을 따질 정도로 검성의 마음은 평온치 않았기에.
생각이 떠오르고, 판단이 든 순간 곧장 시행하려고 들었다.
“딱히 죽을 생각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얼굴에 흉 몇 개만 낼 생각이었다.”
“당신의 얼굴에 흉조차 내지 않게 하기 위해, 목숨을 불태운 병사의 숫자가 만에 달합니다. 부디 스스로의 용안을 귀히 여기소서.“
그리고 그걸.
자신 때문에 남편을 잃은 과부의 병사가 말렸다.
“너…… 생각보다 귀찮은 녀석이구나.”
“그렇습니까?”
“성격도 그렇고, 말투도 별로야. 하지만 곁에 두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네.”
“저는 당신의 곁에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귀한 사람도 아닙…….”
“그래?”
그런데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상관 앞에서 할 말은 전부 하는 재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내 동료로서 최적의 자질을 가지고 있군.”
“……예?”
“긴말 하지 않겠다. 그대여, 이름이 뭐지?”
뭐지 뭔가 이상한데.
보통 이쯤 되면 욕을 하진 않아도, 징계를 줄 생각은 하지 않나?
남편을 잃은 충격에 브레이크를 망각한 과부는 자신의 소신을 있는 힘껏 드러냈고.
이는 예상외로 검성의 호의를 샀다.
“한연우입니다…….”
“한연우라. 동향의 사람이었군. 그래, 한연우 내 동료가 되지 않겠는가?”
“그건……!”
“물론 대가는 확실히 지불할 생각이다. 그대의 남편을 화장한 후, 귀환했을 무렵 그를 반드시 명예 있는 제사에 단독으로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약속하지. 그리고 연봉도 4배로 올려주마. 부족하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넉넉히 줄 생각이다.”
적잖은 대가.
과연 그녀는 내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궁금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내 제안을 수락할 법도 했지만.
“……제안은 감사하오나 저는 당신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뱁새는 황새를 무리하게 따라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지요.”
“그러면 내 친히 한낱 뱁새 따위가 황새를 넘어서, 한 마리의 고고한 매가 되는 법을 알려주마.”
“!!!!!”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제안을 거절하진 않겠지.
사실 명령으로 강제하면 상관없긴 하지만.
검성은 그녀 같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전장에 뛰어들 때,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될지 궁금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함부로 과부를 제자로 들이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다. 애당초 그에게 제자가 되기 위해 충족하는 조건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자신의 세대가 끝이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그 어떠한 신성도 감히 사제 관계로 두지 않았다.
“그…… 검성께서는 여태까지 제자가 없으셨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면 만일 검성께서 문파를 만드신다면, 제가 대사형이 되는 셈입니까?”
“?”
그런 건가?
대사형과 사형은 남자에게 붙이는 수식이 아니었던가.
검성을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딱히 그런 문파에 소속된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가르침을 원하기도 전에, 자신으로부터 재능을 엿본 이들이 자신에게 온갖 기술들과 성명절기(成名絕技)를 가르쳤다.
타고난 무골을 가지고 있다거나.
무신조차 경천동지할 무재를 타고났다는 둥, 너무 어린 탓에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고는 자신들의 모든 걸 내놓았다.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특정 문파에 소속됐다고 볼 순 없지만, 대신 사사(師事)하는 분이라면 한 분 계신다.
“난 딱히 문파에 소속된 적도 없고. 창설할 의향도 없어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런 것입니까? 저는 당신이 화산에 소속된 적이 있었고, 이내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위극 할배를 말하는 건…… 화산의 <위창천>, 위극 어르신을 말하는 겐가. 그분이 내게 창술을 가르친 것은 맞지만, 굳이 따지자면 사제 관계는 아니었다네.”
“그렇다면 대체……?”
“사제 관계보다는 학습과 발전이 뛰어난 병기에게, 자신의 기술을 입력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뭐.”
손주보다 어리다고 간간이 간식도 사주셨다.
너무 많이 사주신 날에는, 신체 균형이 흐트러져서 내게 가르침을 주시던 다른 분들께 자주 혼나곤 하셨지.
그럼에도 내가 뭔가를 먹는 모습이 복스럽다고 줄곧 간식을 사주셨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돌아가신 노장을 회상만 할 뿐.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어서 말을 돌렸다.
“내게 스승이라고 한다면, 그분만이 유일하시지.”
“그게 누구십니까? 소문이 워낙 여럿 돌아서 한 명으로 좁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게 누구냐니. 당연히 연…… 본명으로 말하면 모르려나. 염라 말일세.”
요즘 하시는 행적들을 살펴보면 검사보다는 방화광에 가깝지만, 그분의 본질은 검사.
검성의 검은 대부분 그녀의 것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그녀만이 그의 스승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한연우 병장은 딱딱하게 굳은 모습이었다.
딱히 숨긴 적도 없는 내용인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제자와 스승이 팔대성이라는 동등한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니.
아무리 제자를 이기는 스승은 없다지만.
청출어람에도 정도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뭐, 사실 스승에 관련된 부분은 딱히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기에 주제를 다시 되짚었다.
“그리고 내 제자에 대한 말이다만, 있기는 있었다.”
“!!!”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녀석이 그리 부르짖던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이야말로 내 제자였지.”
검을 알려달라고 병아리처럼, 검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재능은 창과 도끼에서 두각을 드러내, 결국 검이 아닌 다른 무기술을 직접 가르쳐 줬다.
당시에는 꽤나 귀찮았지만.
막상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러면 그분은 지금 대체 어디에……?”
“눈치가 빠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둔한 것 같기도 하군. 과거형으로 말한 걸 보면 감히 안 잡히나?”
이미 죽었다네.
그 말을 돌려서 말했다.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무척이나 애처로운 일이기에.
조금은 우회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달래는 최선이었다.
“녀석은 백검대 소속이었지. 내 후배 기수로 들어온 주제에, 제자가 되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녀석이었다.”
“아…….”
백검대, 검성이 유일하게 운용한 부대.
이곳에 속한 병사들이 대부분 죽거나 부상으로 은퇴한 탓에 지금은 전장의 병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전설처럼 남은 별동대의 이름이다.
“여하튼 녀석에게 검을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그놈은 엄연히 내 학생이자 제자이다.”
그의 사후에 검성은 제자를 들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살짝 생각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도, 그의 명성을 지켜주고자 악착같이 살아 있는 한연우의 모습. 보아하니 곁에 두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제자로 거두었다.
그녀는 검성보다 20살이나 많은 연상이었지만, 사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닌 가르침.
그러나 간혹 검성이 음식을 먹다가 칠칠치 못하고 입가에 묻힐 때는, 살며시 웃은 과부가 그의 입가를 휴지로 닦아주었다.
간혹 밥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둘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 관계가 아니게 될 즈음.
2위계 마물을 또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데자뷔를 되새기는 것처럼 비극은 다시 일어났다.
한연우의 몸 위로 거대한 마물의 공격이 내려앉았다.
최대한 저항했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절반만 막는 것이 한계였다.
“아…… 불쌍한 나의 검성.”
“아, 안 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순 없어. 또 이렇게 보낼 순 없다고!”
“후후… 살아생전 당신이 화내는 꼴을 다 보네요.”
눈앞에서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검성은 좌절했다.
인형처럼 무감각했던 그가 눈물을 흘리는 꼴을 본 과부는 죽어가는 몸으로 그의 눈물을 대신 훔쳤다.
“불경한 얘기지만, 저는 은연중에 당신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몸의 절반이 날아갔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지만, 마력과 이능을 가진 초인의 육체는 유언을 내뱉을 찰나의 순간을 허락해 주었다.
“……내 어머니랑 아버지 살아계시거든? 고아라서 소년병이 된 게 아니라, 재능이 너무 뛰어난 탓에 군국에서 스카우트한 거라니까.”
“어머…… 후후, 그랬군요. 그런 것치고는 여성의 손길에 익숙하지 않아 보였거든요.”
“……워낙 어린 시절에 입대했으니까.”
“몇 살에요?”
“다섯 살.”
어렸다.
어려도 너무 어리다.
과부는 검성이 짊어진 의무와 책임에 비해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여리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제자로 살아온 1년.
그 길지 않은 시간은 죽은 남편과 자녀 계획을 세웠던 그녀로 하여금, 모성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면 저를 엄마라고 불러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미쳤어?”
“아뇨. 그렇지만 한 번쯤 그렇게 불려보고 싶거든요. 부탁드려요, 스승님.”
불경한 요구를 하는 제자.
그러나 그녀의 부탁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기에.
“어…… 어머니.”
“후후……. 이것 참 불경한 생각이 다 드네요.”
사제 관계는 역전됐다.
비록 하늘이 맺어준 천연(天然)의 관계는 아니라지만, 그녀와 검성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인연으로 하여금.
한시적인 모자 관계를 맺었다.
이는 한 시간도 채 가지 않을 짧은 인연일 것이다.
그럼에도 검성은 그 인연에 충실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살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떻게든 살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없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허무하게 보냈다.
이후로도 지옥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군국의 생도로 교육받던 시절.
매일 짧은 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나를 가르쳤던, 전대의 고수들.
온갖 무기술과 병법, 거친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신 어르신들이 죽음을 도모하고 나를 지키기로 다짐했다.
“하, 할머니 뭐 하는 거야! 가면 죽는다고!!”
“우리 똥강아지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거든.”
“헛소리하지 말고 일로와! 가지 마! 가지 말라고!!”
“꼭 끝까지 살아남고…… 이 지옥 같은 전쟁을 미리 끝내지 못해서, 네 세대까지 물려줘서 미안하구나.”
“허허, 할매 가버렸구만. 자, 이제는 내 차례다.”
“당신은 또 왜! 앞날도 창창한 늙은이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지 말란 말이야!”
“예끼! 이 싹수없는 새끼야. 너를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지…… 라고 당당하게 말하긴 힘들겠네.”
선택과 판단.
전성기에서 멀어진 노인보다는, 인류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청년을 살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난 수십 년 동안 뼈저리게 몸소 체감한 노인들은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몸을 불태우는 불나방이 되었다.
이후 마지막 노인이 남을 때 즈음.
검성의 눈은 탁하게 물들었다.
더 이상 그를 상징하던 찬란한 별빛과 같은 선성은 느껴지질 않았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남은 노인은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너는…… 우리들의 공동전인이다.”
“하, 할배. 100년은 더 살 것처럼 행동했잖아……! 이렇게 죽으면 막내 손자 재롱은 어떻게 보려고?! 이제 막 두 살이라고 나한테 자랑했잖아!!”
“하하……. 손자 재롱은 너한테서 충분히 봤다. 그러니 너는 꼭…… 끝까지 살아남아서 행복해져라. 이 할아비 소원이다.”
“지랄하지 마! 나한테 전부 떠넘기고 가지 말라고!! 싸울 거면 나랑 끝까지, 같이 싸워달라고, 할배!!!”
그렇게 시대를 풍미한 전대 영웅들마저 황혼이 되어 저편으로 져버렸다. 이후에도 죽음은 끊기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반복되려는지.
전장에 있는 자들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후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후방에서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명장들이 그렇게 죽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야(老爺)가 왜 죽어? 그 위대한 노옹(老翁)들이, 명장들이 죽을 일이 어디 있다고?”
“각하, 여기 그분들의…….”
“내 물음에 대답이나 해.”
“……여기 그분들의 유서가 있습니다.”
“내놔.”
유서에는 별말이 적히지 않았다.
지난 원정에서 얻은 별의 심장이라는 재료.
그걸 내 검으로 가공한다면 분명 전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에, 목숨을 걸고 재료를 달궈 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별의 심장에서 방출되는 강대한 마력에 의해 지대한 타격을 입었고, 명장이란 명장은 죄다 죽었다고 한다.
사살상 이게 그들의 마지막 유작이자, 현 문명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의 무기라며. 마지막까지 대장장이로서 재미있게 즐기다가 떠난다고 적혀 있었다.
……미친 늙은이들.
“이러면 앞으로 무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거 아니야.”
죽은 눈의 검성은 유언이 적힌 편지를 찢고는, 편지와 함께 온 검 한 자루를 손에 쥐었다.
순백의 도신.
황금빛으로 찬란한 검의 이름은 성검이라는 것 같던데.
어째 탄생 일화는 마검과 다를 바가 없어서 조금 불길했다.
그래도…… 노옹들의 유작인 만큼 성능은 탁월했다.
그들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성검은 눈앞의 모든 마물과 마인들을 소거했다.
슬슬 전황에 숨통이 트이고, 인류가 승리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콰득─!
토마토가 터지듯.
같은 기수에 전장을 활보한 친구들의 머리가 눈앞에서 짓이겨졌다.
전쟁의 판도를 자신들의 쪽으로 다시금 기울이고자, 천만 단위의 공세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자 천하의 검성조차 허를 찔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허무하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이제는 더 강해질 구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는 성검도 손에 쥐었는데.
또 지키지 못했다.
또.
“각하! 적 마물들의 공세에 비해, 아군이 훨씬 우세하다는 정보입니다. 군국의 사망자는 약 12만 명. 그에 반해 마물들은 600만이 넘게 절명하고는 바다 너머로 도망치고 있다고 합니다!”
“…….”
“이게 전부 각하께서, 검을 이렇게 저렇게 휘두르며 100만의 마물을 학살한 덕분입니다!”
아무것도 손에 들린 게 없음에도 이름 모를 사내는 검을 움켜쥔 듯.
우스꽝스럽게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 그리고 각하. 참모총장께서 명령을 하달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일본 부근으로 가시라고 하더군요.”
“……싫어.”
“……예?”
성인도 되지 못한 검성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색의 맑게 갠 하늘.
그는 푸릇푸릇한 청춘의 시기를 겪을 때이거늘.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어, 푸른 하늘조차 우중충한 회색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검성 각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닥쳐.”
“……예?”
“사랑하는 사람 한 명 지키지 못한 검이 검성은 개뿔.”
나는 검. 군국의 검이라네.
거친 풍파를 이겨내지 못해 부러진 검.
세월에 무뎌, 신념에 따라 타인을 죽이지 못하는 검도 아니라.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할 무능한 검이라네.
“이제는…… 다 싫어.”
검도 마물도.
흰색도 전부 꼴 보기 싫다.
나 이제 그만할래.
힘들어.
너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