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4화(1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4화
첫 번째 에피소드(4)
「파이로키네시스」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일으킨 폭발.
순식간에 땅거죽을 헤집었다. 하나 고위계 마물의 질긴 가죽에 타격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무게 중심이 어긋난 상황이라면, 넘어뜨리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이거 내 생각보다 강한 놈인 것 같은데.’
방금 넘어진 충격으로 두개골이 크게 흔들렸을 텐데.
녀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거대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몸을 옥죄기 시작하는 위압감에 깨달았다.
이 녀석, 방금 전까지 죽여왔던 마물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역시 고위계 마물은 다르다는 건가.’
마물은 가진 무력과 위험도에 따라 10위계부터 1위계로 구분된다.
이 위계라는 단위는 무척이나 유동적인데. 사람이 인위적으로 매기다 보니, 수시로 위계가 변하는 마물도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고블린이다.
단일 개체만 따졌을 때는 9위계에 불과한 미물이지만, 무리 생활을 한다는 특성과 인간을 겁탈해서 번식한다는 위험도 때문에 7위계로 분류된 적도 있다.
이처럼 위계란 관점의 여지에 따라 수시로 바뀌지만, 어느 기점부터는 쉽사리 바꾸지 않는다.
바로 고위계를 상징하는 등급, 5위계부터이다.
‘10개의 위계를 기준으로, 상하를 나눈 기준점이지.’
5위계부터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들은 피어라는 권능을 다루며,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갖춘 경우가 허다하다.
분명 눈앞의 마물도 상당한 지능을 갖췄으리라.
“……어두워서 그런가. 잘 안 보이는걸.”
며칠 전, 만약을 대비해서 마물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마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무슨 마물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독특한 생김새였으면 모를까. 거대한 윤곽만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이었다.
거대한 마물이 한두 마리여야지.
“어이쿠…….”
쓰러진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을 무렵.
거대한 무언가가 내 머리를 노렸다.
녀석의 앞발이었다.
거대한 녀석의 공격은 꼴에 어울리지 않게 재빨랐다.
아무리 내 민첩이 느리다지만 간신히 피했다.
“거대한 몸집과 재빠른 앞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진 마물이라…….”
방금의 공격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후보군은 서른일곱 가지.
그러나 세세하게 파고들면,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마물이다. 논문에 기재되지 않은 마물인가?
쾅쾅, 마물은 거대한 몸집을 이용한 육탄 공세를 퍼부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기에 불꽃을 피웠다.
불꽃의 방벽은 앞발 공격 한 방에 무너져 일회용에 불과했고, 화염의 가시와 창은 질긴 가죽을 뚫지 못했다.
찰나의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한 행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녀석의 정체를 간파하기에 충분했다.
기민한 감각이 정보를 수집했다.
논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 마물이었다.
묵직한 공격을 방어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대한 마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눈치.
상당히 불쾌했다.
“……원숭이 주제에.”
“……!”
내 중얼거림에 크게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마물.
역시 내 생각이 맞은 모양이다.
저 거대한 몸체는 녀석의 본체가 아니다.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이래서 논문을 읽기만 한 것이랑 직접 경험한 것은 다르다니까.’
5위계, 일루전 몽키(Illusion monkey).
환상을 다루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궁지로 몰아가는 악질적인 마물이다. 가진바 무력은 하위계에 불과하지만, 환상을 다룬다는 점이 녀석을 고위계로 자리 잡게 해주었다.
논문에는 단순히 환상으로 상대를 현혹한다고 하지만, 직접 체험해 보니 녀석의 능력은 단순히 현혹 수준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모습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땅바닥을 부순 것 또한 환상의 일부분이다.
“어지간한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겠는걸.”
다행히 내 경우에는 S등급이라는 높은 감각 덕분에, 기묘한 이질감을 잡아낼 수 있어서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수백 명의 학생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아아아악───!
내가 녀석의 정체를 간파한 것이 못마땅했는지, 마물은 원숭이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나 보다.
머리 위로 검은 음영이 드리운다. 거대한 마물의 앞발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뒤 좌우, 사방을 가리지 않고 거대한 발이 날아왔다.
한치의 퇴로도 용납하지 않는 공격. 저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위기감을 느꼈다. 저 중에 실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눈동자가 자색으로 물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일렁이는 자줏빛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눈동자의 조금의 깜빡임도 없이 측면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한 원숭이가 손을 휘둘러오고 있었다.
거대한 앞발이 아니다.
사람만 한 원숭이의 손이었다.
그 손에 내 몸에 닿기 전, 옆으로 피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있던 자리에서 화염이 터져 나왔다.
화염에 휩싸인 마물의 눈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솔직히 나도 당혹스러웠다.
설마 이 능력을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마안(妖魔眼)」
등급: A
설명: 동양 전반의 전설로부터 비롯된 요괴의 권능 중 하나입니다. 사용하면 기존에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야를 확립하게 해줍니다. 지금은 잊혀진 옛 종족은 이를 통해, 영지(靈智)를 쌓아 올렸다고 전해집니다.
*영안(靈眼)
마나의 흐름과 영적인 개념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틈새 포착
시각을 높이고, 사물이나 대상의 ‘틈새’처럼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중나선」과 달리, 내가 빙의한 직후부터 가지고 있던 스킬.
매일 새벽 수련할 때마다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괜한 불안감에 사용하지 않았다. C급인 「이중나선」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주제에, A급 스킬을 통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잘 보여도, 너무 잘 보이네…….’
「요마안」으로 하여금 엿보는 세계는 무채색(無彩色)이었다.
오직 흰색과 흑색으로 이루어진 세상. 그 속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색상이 있다면, 푸른빛의 마력이었다.
푸른빛의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부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사고 능력이 과부하될 지경인데.
거기에 ‘틈새’라는 것도 같이 보이면서 안구의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역시 A급 스킬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이중나선」하고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지경. 나는 안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억누르며, 눈앞에서 타오르는 원숭이를 노려봤다.
자주색의 눈동자가 허실(虛實)을 꿰뚫는다.
본래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는 참과 거짓이 구분된다. 지금 마물은 필사적으로 바닥에 몸을 구르고 있었다.
제 몸에 붙은 불씨를 끄기 위한 발버둥. 여전히 거대한 환상으로 학생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것과는 상반됐다.
하, 입에서 비소가 흘러나왔다.
“고작 이런 녀석한테 학생들이 죽는다고?”
무능한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계기치고는 한심한 꼴이다.
더 이상 이런 녀석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다. 나는 불꽃으로 기다란 창, 한 자루를 만들었다.
푹, 하는 소리가 마물의 심장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몸이 차갑게 식어간다. 혈액을 전신에 운반하는 심장이 터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끄아…… 끄에엑!
마물은 꽤나 초라한 단말마를 질렀다.
심장이 터지는 고통은 5위계 마물조차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불꽃의 창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척추를 노렸다.
단단한 뼈는 베어내기 힘들었지만, 타오르는 열기로 녹여 버렸다.
마물은 한계를 느꼈는지 비명을 내질렀다.
──히에에, 히흐…… 끼에에에에에엑!
처절하고 한심한 비명이었다.
학생들의 목숨을 가지고 놀던 녀석과 같은 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향했다.
모두들 나와 원숭이 녀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과 척추를 당해서 환상을 유지할 기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나저나 척추를 부수고도 살아 있다니.
이거 확실히 끝내야겠는걸.
그 순간이었다.
마물은 흐릿한 시야 사이로 괴물을 보았다.
정작 괴물은 자신이거늘, 상대에게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시야가 흐릿해서 검은 머리카락과 옷가지는 밤하늘과 동화된 지 오래다. 마물의 시선에는, 오직 자수정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한 쌍만 들어왔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자줏빛 눈동자.
마물은 공포에 떨며 폐에 남은 숨을 간신히 내뱉었다.
본능적으로 최후를 직감한 마물이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으려는 순간.
이글거리는 불꽃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녀석의 목을 그었다.
“……이제야 죽었네.”
목을 긋자 팍, 하고 터지는 핏물.
창의 열기는 순식간에 핏물을 증발시키며, 시체 한 조각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거칠고 거세게 타올랐다.
잔인한 손속.
그러나 깔끔했다.
원숭이 가죽이 전부 타오를 때쯤, 바닥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숙여서 확인해 보니 동전이 아니라 검게 그을린 돌멩이였다.
“……아, 그러고 보니 마석 회수를 안 했던가.”
마물의 몸속에는 마석이라는 물질이 존재한다.
이 세계의 주요 자원으로, 플레이어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강력한 마물일수록 품질 좋은 마석을 떨군다.
5위계 정도라면 상당한 값어치를 하겠지.
나는 마석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팔아도 되고, 마법의 매개로 사용해도 되겠지.
“……저, 조교 선생님?”
“음?”
마석에 묻은 그을림을 털고, 주머니에 넣는 사이.
학생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싸울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숫자가 많다.
크게 다쳐서 아이들이 양옆으로 부축해 주는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10명.
이 중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죽을 운명이었다니.
나는 언짢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가, 감사합니다……. 사, 사례는 어떻게 해드려야 될지.”
“애들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사례는 됐으니까, 어서 대피소로 가라.”
“그러면 선생님은……?”
“저, 저희랑 같이 가요! 만약에 대피하다가 또 마물이라도 마주친다면……!”
“아니, 난 갈 데가 있다.”
학생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중에는 사례를 운운하는 어른스러운 학생도, 마물의 존재에 공포심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다.
참, 어쩌다가 이런 세상에 온 걸까.
스윽스윽, 허리를 숙여 맨 앞에 서 있던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 전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학생이라 머리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서 털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 나이에 어울리는 소녀다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싸우라고 강요하는 걸까.’
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원래 아카데미 장르라는 것이 그렇지만.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다니.
소설의 내용일 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화가 났다. 어쩌면 내가 소년병 출신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너희는 어서 도망치렴. 난 이 사건의 주동자를 잡으러 가야 하니까.”
“그, 그건 주변 길드가 지원을 온 후에 가셔도……!”
“아니. 그때면 너무 늦어.”
원작에서 습격의 주동자인 ‘마법사 사냥꾼’은 주인공의 각성을 목격하자마자 자리를 떠난다. 그의 각성과 동시에 5위계 마물이 산산조각 나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학생들을 구하며 각성은 물거품이 됐다.
사고 한번 제대로 친 셈이다.
주인공은 여전히 무능할 것이고, 이 사태의 범인은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
뭐 어쩌겠냐. 내가 선택한 길인걸.
‘원래부터 책임은 질 생각이었어.’
옥상에서 올라갈 때부터 다짐했다.
학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리라고.
단지 책임질 주체가 달려졌을 뿐이다.
“저쪽으로 가면 길이 있어. 내가 청소하며 달려온 길이니까 걱정 말고 달려.”
“그, 그러면 저희가 경비원 아저씨나 다른 조교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할게요!”
“도움은 됐으니 어서 가렴.”
“그, 그렇지만……!”
“야, 노유라! 어서 가자. 하실 일이 있으시다잖아.”
머리 위의 흙먼지를 털어준 여학생의 말을 정중히 거절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다른 사람이 온다고 해서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오히려 짐만 되겠지.
‘마법사 사냥꾼’이란 녀석은 그런 녀석이다.
뭐, 물론 다른 사람들이 온다면 내 생존율은 높아질 것이다.
내 안위는 중요하다.
다만, 내 신념도 그만큼 중요하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원작에서는 중반부에나 겨우 잡을 수 있는 중간 보스야.’
‘마법사 사냥꾼’을 상대하는 것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아직 마인으로 전락할 시기가 아니라, 상대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럼에도 나는 하려고 한다.
설령 주인공의 각성을 막고, 그 모든 책임을 내가 뒤집어쓰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살아남는다.’
평생을 전장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높은 곳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학생이었다. 절뚝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방금 전 마물의 공격에 의해 벽에 부딪힌 녀석이다.
입에서 핏물과 단내를 흘리는 남학생은 힘겨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문득 호기심에 남학생의 명찰을 훑었다.
흙먼지로 이름이 가려졌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은 내 정신을 멍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싸 ……싸우고 싶어…… 요.”
이 녀석이구나.
남들보다 유독 긴 명찰.
그곳에는 흐릿하지만 카일 아이리스라고 적혀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주인공의 기개인가.’
주인공, 카일은 싸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벽에 부딪히면서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의 그로서는, 만전의 상태라도 도움이 될 리 없다.
“아니, 친구들과 함께 도망쳐라.”
“……저,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제, 제가 걸리적거리면 버리셔도 돼요. 그러니까 저도……!”
“그런 말이 아니다.”
단호한 답변에 입을 꾹 닫은 카일.
그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추운 걸까. 아니면 약한 자신이 부끄러운 걸까.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슬리니 친구들과 함께 도망가렴.”
“……그, 그렇지만 나 같은 녀석도!”
“야, 카일 너 우릴 구해주신 분께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카일의 양팔을 붙잡은 채로 연행하는 학생들.
그는 한사코 저항해 보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다시 등을 돌렸다.
뒤에서 카일의 핏물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 나 같은 녀석도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요……! 싸울 수 있다고요!”
“피, 핏물 나온다. 어서 보건실로 가자!”
“이 상황에 양호실이 열려 있겠냐?! 대피실에 보건 선생님이 계실 테니, 어서 가자!”
주인공이 저리 정의감 넘치는 성격이었던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를 해소할 여유는 없었다.
“……친구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 싸울 수 있다고?”
그러니 이리 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카일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이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얘야, 학생은 어른한테 도움받으면 되니까. 이 틈에 어서 친구들과 도망쳐라. 어차피 네 실력으로는 아무도 구하지 못해.”
잔혹하지만 사실이었다.
지금의 주인공은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
그가 각성한다면 모를까.
‘이미 내가 시나리오를 망쳤으니까. 무의미한 가정이지.’
녀석에게 무슨 과거와 서사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브의 언급으로밖에 모르니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더 이상 주인공으로 각성할 일은 없다는 것 정도다.
그가 전선에서 싸울 일도, 눈앞에서 친구들을 잃을 일도 없다.
그는 한 명의 학생으로서 남을 것이다.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혼란으로 가득할 이 세상을 어떻게 될까?
너무나도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 역할을 전부 내가 짊어지면 될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카일의 의견을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생각이 깊어졌을 즈음.
뒤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부 대피소로 이동한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카일이 대피소로 향했다는 것은 확인한 순간.
망막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책임] [설명: 당신은 학생들의 목숨을 구하고, 주인공의 각성을 무마시켰습니다. 도덕성과 결말 중에서 전자를 선택한 셈입니다. 과연 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다만 지켜보기에 앞서, 당신은 주인공의 무게를 짊어질 책임이 있습니다. 일그러진 시나리오 속에서 칠성 아카데미에 침입한 ‘마법사 사냥꾼’을 죽임으로써 신입생들을 지키십시오.] [성공 시: 민첩 +1단계] [실패 시: 민첩 +1단계]
*당신이 무슨 선택을 하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확인해 보니 어느새, ‘서브 퀘스트’가 ‘메인 퀘스트’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야 슬슬 내가 저지른 짓이 체감된다.
나는 지금 이 시나리오의 중심에 서 있다.
주인공을 떨어뜨려서 말이다.
하아, 속이 쓰라리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뱉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까 회수한 마석이었다.
어디에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곧장 마석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마법의 매개로 활용했다.
이 마석은 이제부터 사냥감을 유인할 미끼이자, 덫이 될 예정이다.
준비를 마친 직후, 근처의 풀밭에 몸을 숨겼다.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죽여서 인기척을 지웠다. 그러자 10분 뒤쯤에 사냥꾼이 나타났다.
그는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깔아둔 미끼에 관심을 보였다.
자, 사냥꾼이 사냥감으로 전락할 시간이다.
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참, 지랄 맞네…….”
군대 전역한 지가 5년이 넘었는데, 몸은 아직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좋을 것 하나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이래서 상이군인들이 PTSD 때문에 고생한다니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경험.
나는 허리를 숙인 채, 소년병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재빨리 움직였다. 마른 나뭇가지나 돌무더기를 밟더라도 소리는 없다.
숙련된 암살자의 것처럼 은밀하고 고요하다.
순식간에 적의 뒤를 점령.
A+ 등급의 마력을 있는 힘껏 쏟아부어 불꽃을 피웠다.
싸늘한 밤바람을 데우는 화염이 적장의 목을 노렸다.
「파이로키네시스」
「이중나선」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일격.
내 마력에 바닥에 깔아둔 덫이 호응했다.
질량과 형태를 지닌 불길이 「이중나선」의 공명으로 증폭하여 거대한 불의 파도를 일으켰다.
넘실거리는 불길이 사내를 덮쳤다.
“……하,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불바다 속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사내.
피해는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다.
기껏해야 옷이 조금 그을렸을까나.
그것조차 확실치 않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준비해 둔 다음 마법을 펼쳤다.
호흡이 딸리지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손을 위로 뻗었다.
「파이로키네시스」
「파이어 애로우」
불의 화살 다발이 밤하늘에 땅거미처럼 걸렸다.
화살 다발은 미리 설정해 둔 경로에 따라 바닥으로 쏘아지며 바닥을 부쉈다.